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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3월 24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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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사순 제3주간 목요일 -

 

 

2022년 3월 24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백성에게 주님께서 명령하신 길만 온전히 걸으면 잘될 것이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당신을 반대하는 자고, 당신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3월 24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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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예레 7장 23-28절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11장 14-23절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성체를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를 인자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이 신비를 올바른 삶으로 드러내며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창현 비오 신부 집전

 

 

2022년 3월 24일 (목)
이창현 비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3월 24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하느님의 역동적 현존을 체험하도록 초대하는 예수님의 기적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루카 11,1-13 참조) 이제 군중을 만나십니다. 앞서 제자들과 만남에서 기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아버지의 본질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면, 이제는 반대자와 빚는 갈등과 깊어지는 적대감이 핵심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보여 주시는데, 이에 군중은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워하지만, 이어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켰다고 비난하거나 표징을 요구합니다(11,14-16 참조). 이처럼 구마 기적은 한편으로는 신적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대자와 논쟁을 벌이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기적을 지켜보고도 그가 누구이며 무엇을 행하였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반대자는 예수님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설정하여 그분의 활동과 영향력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여 주신 기적 행위를 변호하십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사탄의 하수인도 아니시고 마귀들을 제압하는 마술사나 마법사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는 기적 행위로 베엘제불의 힘을 뛰어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을 보여 주고자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적 행위를 통하여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역동적 현존을 체험하도록 초대합니다. 만약 누군가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베엘제불의 종으로 왜곡하지 않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표징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을 등지지만 않으면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오늘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마침 그제부터 클라라 수녀님들 특강을 위해 이곳 제주에 와 있는 저는 수녀원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이런 묵상이 되었습니다.



내 앞에 무엇이 있나?

걱정이 있나? 기도가 있나?

 

내 앞에 무엇이 있나“

염려가 있나? 사랑이 있나?

 

내 앞에 누가 있나?

사람이 있나? 하느님이 있나?

 

내 앞에 걱정이 있어도 좋다.

기도가 그 너머에 있으면 걱정도 기도가 된다.

 

내 앞에 염려가 있어도 좋다.

사랑이 그 너머에 있으면 염려도 사랑이 된다.

 

내 앞에 사람이 있어도 좋다.

하느님이 그 너머에 계시면 사람도 하느님의 현현이다.

 

하느님을 등지지만 않으면 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길만 온전히 걸읍시다.

 

주님께서 총애하셨던 이스라엘 백성과 당신 사이의 관계를 묵상하다 보면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때로 자상한 아버지와 막 나가는 막내아들 사이 같습니다. 또 어쩌다 보면 착하고 충실한 남편과 지속적으로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는 불충실하고 부도덕한 아내 사이 같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그 눈길, 그 마음은 그야말로 절절합니다. 사랑을 넘어섭니다. 결국 애증(愛憎), 사랑하기에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주님 당신만 바라봐줬으면 좋겠는데,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가지 말아야 할 엉뚱한 길로 샙니다. 아무리 돌아오라 외쳐도 귀를 막습니다. 그렇게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주님의 마음은 하염없이 무너져버립니다. 그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너덜거립니다. 그러나 너무도 사랑하기에 마냥 인내하십니다.

그러다 도저히 참다 참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 즉 참을성의 임계점에 도달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이번 한 번만 더 참아주자, 또다시 기회를 주지만, 끝끝내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윤리·도덕적 타락을 거듭하고 돌아올 줄 모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인내의 달인이시죠. 진노하시고 대폭발하시기 전 또 다른 기회를 주십니다. 당신을 대신한 전령, 예언자들을 보냅니다. 이스라엘의 악행을 낱낱이 고백하며 죽음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강경한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그런 주님의 무한한 인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막습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악한 길, 우상숭배의 길, 타락의 길, 죽음의 길,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그저 직진할 따름입니다.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해 걸어갑니다. 

이윽고 주님의 거룩한 진노가 시작됩니다. 배신과 불충실에 따른 응분의 조치가 내려집니다. 철저하게 파괴되고 도륙됩니다. 낯설고 머나먼 땅으로 유배를 끌려가고, 길고 긴 종살이가 계속됩니다.

그런 가련한 이스라엘의 모습 앞에 또다시 주님의 마음이 찢어집니다. 다시 한번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자며 새 삶의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금 당신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복원시켜주십니다. 이것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역사입니다.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 더 나아가 주님과 우리 사이에 되풀이되어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는 엄청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길만 온전히 걷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입니다. 사악하고 완고한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뻣뻣해진 목을 부드럽게 한 후 주님께, 그리고 이웃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악령의 힘으로도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유대 지도자들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마귀의 힘을 빌려 병이 치유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믿으면 그래서 성령을 모독하게 됩니다. 만약 저절로 생명이 생겨나고 저절로 진화하여 고등동물이 된다면 그렇게 하시기 위해 당신이 사용하신 손가락, 곧 성령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있으나 마나 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없었던 뼈가 생겨나고 순식간에 암이 사라지고 고사한 부분에 새살이 돋아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힘일 뿐입니다. 

세상에 창조자는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며 늙고 병들고 썩어갑니다. 인간도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인간보다 더 수준이 낮은 사탄이나 마귀가 창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악마를 섬기는 행위가 됩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하며 마귀에게도 힘이 있다고 말할 때 이미 이들은 사탄을 숭배하는 자들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얼마 전 JTBC 뉴스에 뇌성마비 장애인인 20대 여성 A씨가 허경영 대표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인터뷰가 보도되었습니다. A씨는 “허 대표에게 치료받으면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허 대표가 운영하는 경기도 양주 ‘하늘궁’을 찾았습니다. 

A씨는 이곳에서 허 대표가 ‘에너지 치료’를 이유로 폭행과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녀는 “뇌성마비라서 머리 쪽에 혈관을 누른다는 목적으로 제 뺨과 코 등 얼굴 전체를 내리쳤다”라면서 “무섭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렸는데 독소를 다 빼내야 한다고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이어 A씨는 “어깨·허리·골반·허벅지 안·종아리 등 제 몸 중에서 안 만진 곳이 없을 정도로 온몸을 다 만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치료 전 나중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미리 썼기 때문에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A씨는 사건 열흘 뒤 인터넷 동아리에 피해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렸고, 다음날 허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밝혔습니다. 전화 녹취록에 따르면, 당시 허 대표는 “빨리 고쳐보려고 했는데 너무한 것 같아. 진짜 미안하다”라며 “손가락 끝으로 혈을 자극해서 뇌 사상 하부를 좀 이렇게 고치는 건데, 효과를 본 사람은 금방 고쳐진다”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 동아리에 올린) 글을 우선 좀 내려줘야 해. 선거 때라서”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후에도 A씨가 해당 글을 내리지 않자, 하늘궁 관계자이자 허 대표의 지지자 B씨가 피해 여성 A씨를 찾아와 “좀 봐달라”며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이 분이 대통령이 되셔야 국민을 살린다. 1억 원씩을 받아야 대한민국 개인들이 빚진 것을 다 갚는다”라면서 “매달 150만 원씩 받아야 어려운 사람들이 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A씨는 허 대표를 고소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각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각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도 말합니다. 

여기에서 더 문제는 A씨와 그의 어머니입니다. 진화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피조물의 병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자기 영혼을 팔아 성공을 얻거나 병이 고쳐지고 힘을 얻거나 외모가 변하는 등의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악령은 이미 피조물 중에서도 최하위로 떨어진 존재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만약 그것들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 자체로 하느님의 손가락인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은 신기한 일을 일으키는 것 같은 경우를 봅니다. 분명히 속이는 것 같은데 그것이 성령의 힘인 것도 같습니다. 이럴 때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단편영화가 있습니다. 조금 각색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미 오염으로 지구가 멸망한 뒤의 미래입니다. 어떤 사이보그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신이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분명 그는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이 지워져 있습니다. 자기 손과 얼굴을 보고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인간들의 명령에 따라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 로봇은 지쳐 쓰러집니다. 

다시 눈을 뜨니 어디엔가 묶여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와 여자가 자신 앞에 있습니다. 남자는 우주복을 입은 여자에게 이 로봇을 돌로 치라고 합니다. 공기가 오염되었기에 여자는 우주복을 입고 있지만 남자는 입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그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남자는 치유도 해 주고 자신들이 사는 땅에서 살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제야 로봇은 기억해냅니다. 그 돌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자기 여동생이었음을. 로봇은 여동생을 불러보지만, 여동생은 잠깐 멈칫할 뿐 자신의 오빠를 사정없이 내려칩니다. 사이보그가 된 오빠는 그렇게 폐기됩니다. 

여자는 이제 완전히 그 교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주는 여자가 숨을 쉴 수 있게 해 줍니다. 숨이 쉬어집니다. 맑은 공기를 마십니다. 교주는 또 여자의 상처 난 얼굴을 치유해 줍니다. 기적처럼 치유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곳에서 공기를 마시며 농사를 짓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다 마치고 교주는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엄청난 기계가 있고 그는 인간의 껍데기를 벗고 기계를 흠숭합니다. 그는 인간이 아니고 완전한 기계였습니다.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인데, 기계가 인간 모습을 하고 오히려 인간을 기계처럼 만들어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계가 된 인간은 그렇게 종살이하고 또 형제들에 의해 폐기됩니다. 

어떤 인간도, 더군다나 마귀들도 기적을 할 수 없습니다. 기적을 일으킨다면 하느님입니다. 그렇게 보인다면 다 속임수입니다. 인간이 진화할 수도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인간이나 마귀가 치유 기적을 할 수 있고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헛된 상상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상이 인간을 그것들의 노예로 만듭니다. 

그래도 그럴듯하게 속여서 기적 같은 일을 한다면 어떻게 보면 될까요? 위 허경영 씨의 경우는 어떤가요? 성령한테서 오는 것이라면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위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를 죽여가며 받는 성령은 없습니다. 다 속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새것이 좋고 예전의 것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일까요?

 

요즘에는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날 때, 거의 모든 차가 하이패스 차선으로 지나갑니다. 하이패스 차선으로 지나가면 자동으로 정산되기에, 훨씬 빨리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분의 차를 탔는데, 하이패스 카드가 없다면서 고속도로 요금 징수원이 있는 차선으로 들어가더군요. 그리고 요금과 함께 차에 있던 귤 두 개를 건네면서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이패스 구간이 없어서 무조건 요구 징수원을 만났는데, 요즘에는 하이패스 구간으로 다니다 보니 징수원을 만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누던 정도 사라지고 세상이 삭막해졌다는 생각에, 하이패스 구간을 피해 징수원에게 조그마한 것을 건네며 옛날의 좋은 점을 느끼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의 것이 무조건 다 나쁜 것일까요? 새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것도 많고, 지금을 사는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좋은 것은 계속 지키고, 나쁜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의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지금을 사는 데 커다란 힘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마치 어리석음의 표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이렇게 남들에게 주기만 해서는 어떻게 현명하게 살 수 있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을 느끼며 잘 사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모습에 백성들은 경탄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설득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 행위가 이방인들 사이에서 성행했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배격했었기 때문입니다.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내쫓는다는 논리는 억지 이론입니다. 만일 반대자의 말대로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이 자기들의 나라인 악의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것인데 자기가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겠습니까? 사탄의 적대자는 하느님입니다. 사탄은 절대로 악과 싸우지 않습니다. 
 
또한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라고 말씀하시지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도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 행위를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마귀를 쫓아내니,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사탄과 예수님 사이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악과 선 사이에 중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싸움에서 예수님의 편에 들지 않는 사람은 사탄의 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 편에 서는 것, 즉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가장 큰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 에디 캔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루카 11,17)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의 신앙을 반성한다. 단 한번도 예수님 편에 서지 않았다. 단 한번도 일치에 속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내 뜻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벗어나지 못한 의심의 연속이다.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았다. 거듭되는 분열의 삶이다. 

믿음과 무관한 삶이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님께 돌아서야 한다. 주님께서 만들어가시는 온전한 일치의 평화이다.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다. 믿음이 잘린 마음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마음을 살리는 삶은 주님과 함께 마음을 모아들이는 삶이다. 

마음을 모아 흩어진 이마음을 봉헌한다. 이렇듯 신앙은 허비할 시간이 아니다. 모욕과 배척의 마음까지 정화하여 주시는 주님이시다. 헛되이 살아야 할 삶이 결코 아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가 제정신으로 살지 않으면 한 순간에 망하고 한 순간에 무너지는 어리석은 집들같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오는 봄처럼 희망은 있다.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힘을 다시 얻는 사순이다. 정신이 썩으면 모든 것은 다 썩는다. 온전한 정신으로 다시 살게하시는 주님의 진정한 치유를 우리는 참으로 믿는다. 

치유의 힘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모아들임의 은총이다. 모래같이 흩어 버리는 악순환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간절히 주님께 기도드린다. 온전한 정신의 우리들이 되기를 애절하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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