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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2월 24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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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12월 24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다윗 임금은 하느님의 궤를 모실 성전을 짓겠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십니다.

 

 

✠ 오늘 복음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서 주님께서 아들 요한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계획을 노래하며 주님을 찬미합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2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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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2사무 7장 1-5절, 8ㄷ-12절, 14ㄱ절, 16절

 

다윗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영원할 것이다.

 

다윗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나는 내가 뽑은 이와 계약을 맺고,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였노라.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 그와 맺은 내 계약 변함이 없으리라.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1장 67-79절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때에 요한의 

67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0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72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73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74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75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놀라운 이 성사로 생기를 되찾고 비오니 마땅히 경배하올 성자의 성탄 축일을 정성껏 준비하여 기쁜 마음으로 영원한 선물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최두헌 요한 요셉
신부 집전

 

 

2021년 12월 24일 (금)
최두헌 요한 요셉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2월 24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나의 혀와 입은 무엇을 노래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아버지가 부르는 ‘즈카르야의 노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노래를 루카 복음사가가 수집하여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기리는 노래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래는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성령으로 가득 찬 즈카르야의 대답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사건을 밝히심으로써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이 드러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또한 그 사건들의 의미를 아시기에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즈카르야의 노래 전반부는 원수들과 미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박해를 받아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 앉아 있다가, 구원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두려움 없이 거룩하고 올바르게 하느님을 섬기고 평화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부르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찬미받으소서.’ 하고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에서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시어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고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속량’은 노예 제도 시대의 개념으로, 노예의 몸값인 속전(贖錢)을 내고 노예를 해방시키거나 포로를 석방시켜 자유인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셨다는 말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베푸셨다는 의미로, 장차 오실 메시아가 원수들을 쳐서 승리한다는 말입니다(유충희, 『루카 복음』, 68-69면 참조).

노래의 후반부는 세례자 요한의 앞날과 역할을 예언하는 시구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장차 예수님께서 오심을 준비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아 구원받으리라는 사실을 주님의 백성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린 즈카르야는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합니다. 나의 혀와 입은 무엇을 노래할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닫힌 말문이 열리기까지

 

지난 17일 이후 복음을 유심히 읽은 분들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한 분들 가운데서 오직 즈카르야만 말문이 막히고 그래서 찬미할 수 없었음을 보셨을 텐데 그것은 즈카르야만 성령에 이끌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즈카르야의 아내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하지요.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같은 부모인데 즈카르야의 찬미는 엘리사벳의 찬미와 시차가 있고 오늘 비로서 성령에 가득 차 외칩니다.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그가 다른 사람과 달리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았고 말문이 막힌 이유는 그의 합리적인 생각이 믿음보다 강해 믿기보다 의심케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의심이 성령이 들어올 문을 막았고, 성령께서 들어오실 문을 막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찬미의 말문뿐 아니라 아예 모든 말문을 막으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불신이 더 그렇지만, 의심도 말문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막히게 합니다. 불신과 의심은 나의 문을 모두 걸어잠그게 하잖습니까? 나 외에 모든 사람을 도둑으로 의심하거나 불신하면 모든 문을 걸어 잠그겠지요. 반대로 누구나 믿으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요. 

그런데 그 의심엔 하느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하느님을 더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아예 존재 자체를 불신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교만한 사람은 성령 대신 불신과 의심의 망령(妄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즈카르야의 경우에는 그런 의심은 아닐 것이고, 보통 사람의 그 합리적인 생각 때문이고 그러므로 그 의심은 병적인 의심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의처증처럼 병적인 의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의심이 인간적으로는 병적이지 않더라도 영적으로는 병적이거나 적어도 장애가 있는 것이지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안 되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생각은 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그것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능력이고 가능성이고 구원인데 합리적인 생각에 갇히면 하느님의 능력과 가능성과 구원을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합리적인 의심이 깨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이것이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시차인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아들처럼 생각하는 형제가 외국에서 살다가 아주 큰 병이 들어 돌아왔습니다. 그 부모도 제가 같이 잘 알고 있는데 아버지는 말을 듣고 고칠 수 없다고 체념하고 대비하는 데 비해 어머니는 단순해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고 그 형제가 말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맞다고 제가 말해주면서 형제도 어머니처럼 믿으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의사도 손 놓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어머니의 단순성은 한편으로는 믿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입니다. 

아무튼, 즈카르야는 합리적인 의심이 깨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말문이 막히는 고통을 겪은 다음 구원을 체험하고 찬미하는데 우리도 즈카르야와 다르지 않다면 말문이 열리는 그 날을 고대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즈카르야의 노래’ 부를 자격; 내 자녀가 세례자 요한이 된다면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가?

 

오늘 복음은 즈카르야가 요한을 낳고 입이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입니다. 즈카르야의 찬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루카 1,68)

그리고 자기 아들이 메시아의 예언자가 될 것을 기뻐합니다. 메시아의 예언자가 되는 운명은 실로 세상에서 가난하고 박해받고 고통과 십자가의 삶인데 아버지가 이런 삶을 살게 될 아들을 두고 기뻐하는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자녀가 세례자 요한의 삶을 살겠다고 할 때 기뻐 주님을 찬미할 수 없다면 아직은 즈카르야처럼 혀가 묶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예언자입니다. 메시아의 예언자가 되는 기쁨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우리는 예언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언자는 누군가의 말을 전해서 그 사람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언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아 예언하는 대상을 위해 살도록 가르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엘리야는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입니다. 엘리야는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께 돌렸습니다. 바알이 아닌 하느님을 위해 살도록 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만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욕망을 손에 쥐는 순간 욕망의 대상은 저만큼 물러난다. 대상은 허상이 되고 다시 욕망만 남는다. 그리고 욕망이 남아있기에 한 인간은 또 살아간다.”라고도 했습니다. 인간은 어떤 대상에게서 나오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며 사는 존재란 뜻입니다. 

우리는 ‘타자(他者: 나 외의 다른 이)의 욕망을 충족시켜 타자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을 이해 해야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자신 안에서 생존 욕구 외에 어떤 다른 욕구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물론 생존 욕구도 창조자에게서 주어진 것입니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는 절대 두 발로 서서 걷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 발로 걷게 된 것은 두 발로 걷고 싶은 마음을 타자, 곧 부모에게서 그 욕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의 ‘뜻’을 따라주면서 우리는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의 뜻을 따라주는 것은 누군가에게 ‘영광’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따라주는 자녀는 부모에게 영광을 올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모기나 기생충과 같은 것들은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그러니 타자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동물은 인간으로 말하면 자아와 자기 자신이 곧 하나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자아와 자기 자신이 다릅니다. 

자기 자신으로서는 자아가 타자입니다. 그것도 모른 채 타자인 자아의 뜻을 따라 자아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다면 절대 모기나 기생충과 같은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났었더라도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영광을 돌리려는 대상과 한 몸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뜻을 따라 그 영광을 위해 살아 그 사람과 한 몸이 되고 그 사람의 세상에 속하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예언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예언자에 의해 어떤 세상에 속하게 되어있는데, 빛과 어둠 두 세상밖에 없습니다. 

영화 ‘저스티스리그: 스나이더컷’(2021)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의 히어로들이 우주의 악당 다크사이드와의 싸움에 관한 내용입니다. 허황한 내용 같지만 사실 이런 영웅 장르들 안에도 우리 삶이 반영이 안 된다면 아무도 그런 영화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다크사이드가 지구를 침공하자 영웅들이 뭉칩니다. 여기에서 대장은 배트맨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을 감당하기에 지구의 영웅들은 턱없이 힘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희망인 죽은 배트맨을 살려내려고 합니다. 지구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허락되지 않은 일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슈퍼맨은 살아나고 싸움에서 이겨 일단은 다크사이드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미래의 일을 보여주는데 지구는 다크사이드에 의해 황폐해졌고 슈퍼맨이 배트맨과 자신의 옛 동료들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왜 슈퍼맨은 다크사이드편에 서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슈퍼맨의 아기를 가진 아내 루이스 레인이 배트맨의 방치로 고통스럽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슈퍼맨에게 지구를 지켜야 하는 어쩌면 가장 큰 원인은 루이스 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구인들은 자신의 아내와 아기가 죽는 것을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때 그를 위로해 준 것이 다크사이드였습니다. 슈퍼맨은 다크사이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더는 ‘누군가를 위해’, 곧 누군가에게 영광을 주려는 대상이 사라졌고 다만 원한만 쌓이게 되었기 때문에 그 복수심이 다크사이드편에 서게 만든 것입니다. 

이때 또 하나의 반전은 배트맨의 부모를 죽인 영원한 원수, 곧 조커가 배트맨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배트맨은 슈퍼맨도 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적이었던 조커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지구를 지켜내야만 한다는 ‘뜻’ 때문에 원수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갈라지게 되는 이유는 슈퍼맨이 더는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사라진 데 있고, 배트맨과 조커가 친구가 되는 데는 지구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 누군가가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복수심을 위해 살아갈 수도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주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됩니까? 어둠의 세력이 됩니다. 하지만 조커도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뜻에 합류한다면 빛으로 나오게 됩니다. 조커에게 배트맨은 빛으로 나아오는 예언자였고, 슈퍼맨에게 다크사이드는 어둠으로 가는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는 곧 그 세계의 문입니다. 

빛이건, 어둠이건 우리를 그 빛과 어둠의 세상에 머물게 만드는 것은 바로 빛과 어둠에서 오는 ‘뜻’에 의해서입니다. 어둠은 피조물로서 피조물은 피조물을 희생시키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아건, 부모건, 선생이건, 다크사이드건 상관없습니다. 피조물에서 오는 모든 뜻은 피조물을 파괴합니다. 세상을 보존하려는 뜻은 세상을 만든 창조자에게서만 옵니다. 이것이 빛의 세상입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전까지는 누구도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이 있지 않으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어차피 그 율법을 가지고 내려온 모세도 인간입니다. 모세가 가지고 온 율법을 지킴은 곧 모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결국엔 피조물에 영광을 돌리고 피조물을 위해 사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에서 빛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빛 자체이신 분이 당신을 위하고 당신께 영광을 드리며 살라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름은 모세의 십계명을 따름과 다릅니다. 조커가 빛으로 나아오게 되는 이유는 배트맨의 뜻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알지 못하는 지구를 지켜내야 한다는 창조자의 뜻입니다. 인간의 뜻이 아무리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해도 그 인간을 위해서 살면 그 사랑은 이기적인 것에 머뭅니다. 히틀러도 아리아인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히틀러에게 영광을 돌리며 수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부모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고 합시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좋은 가르침을 준 부모를 살해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게 만든 그 사람은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나에게 뜻을 준 이가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준 사람이고 그 사람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게 인간입니다. 따라서 부모가 가르쳐주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부모의 세상 안에서만 통용됩니다. 집단 이기주의만 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자는 오로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라고 태어나셔야만 우리가 그분을 삶의 이유로 삼으면서 작은 벌레 하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뜻을 따라주는 존재가 곧 나의 삶의 의미이고 한 몸이 되며 그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참 삶의 의미요 하느님 나라인 그리스도의 예언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빛의 세상에 있는 것이고 빛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은 다른 사람도 당신을 사랑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예언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녀가 그리스도의 예언자가 되어야만 주님을 찬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어떤 피조물의 영광을 위해 산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구원에서 제외됩니다. 오직 빛의 예언자,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에 다다릅니다. 이것을 이해해야만 우리도 혀가 풀려 즈카르야의 노래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즈카르야의 노래를 부르려면 주님의 예언자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시작할까요?

 

매사에 긍정적이고 얼굴에 늘 웃음을 머금고 있는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밝게 웃으며 일하는 형제님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도 즐거워했지요. 그래서 한 후배가 선배인 이 형제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배님은 늘 행복하시죠? 걱정이 하나도 없으실 것 같아요.” 
 
이 말에 형제님은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라고 대답하십니다. 얼마 전에 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셨는데,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자신의 불행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은 수치상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는 커다란 불행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면서 힘차게 살아가고, 누구는 자그마한 불행에도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외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불행을 불행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변화된 우리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이를 즈카르야가 불렀던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십니다. 잘못을 벌하시기도 하지만, 그 잘못을 용서하시고 은혜까지 내려 주십니다. 즈카르야는 믿지 않은 탓으로 벙어리가 되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가 되자 혀가 풀렸고 성령까지 받아 예언의 노래를 오늘 복음과 같이 부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노래의 시작을 우리는 유의 깊게 바라봐야 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성경을 보면 많은 찬미의 노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래가 즈카르야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시작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찬미와 감사가 우리 모든 기도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시작할까요? 찬미와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의 기도로 더 많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오늘 밤, 주님께서 이 땅에 강생하십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기도가 찬미와 감사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찬미와 감사를 통해 우리는 새 하늘 새 땅을 희망하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많은 사람이 재능의 부족보다 결심의 부족으로 실패한다.

- 빌리 선데이

 

 

내가 다 망쳤어!

 

자수성가로 엄청난 성공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시애틀을 통째로 사고도 남을 만큼 큰돈을 벌었지만, 그는 이러한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I blew it! (내가 다 망쳤어)" 
 
그가 이런 유언을 남긴 이유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떠날 당시의 유산이 약 1,50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서 생각해 보니 회사 일에만 빠져 정작 가족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손자들의 이름도 잘 외우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병석에 누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이 성공이 아닌 실패라는 의미로 "I blew it! (내가 다 망쳤어)"라고 외쳤던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를 얻고서도 스스로 실패했다는 슬픈 유언과 함께 세상을 떠난 남자, 그는 바로 미국 최대의 마트인 '월마트'의 창업자인 '샘 월튼'입니다. 
 
지금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는 몇 명이나 되는지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평화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루카 1,79)

 

참된 삶을 가리키는 평화가 있다. 길이 뚫리듯 우리 삶을 깨우쳐주시는 힘찬 평화가 있다. 평화의 길 거기엔 언제나 주님이 계신다. 우리 자신이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평화를 체험하는 평화의 진실한 사랑이다. 

평화가 우리를 업고 간다. 평화가 우리를 따뜻이 안아준다. 평화가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끄신다. 참된 평화는 사람이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평화이다. 십자가의 무게를 받쳐주고 있는 평화이다. 

하느님의 성탄으로 평화는 계속 되고있다. 평화는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다. 평화를 지키시기 위해 평화로 이 땅에 오신다. 평화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맞아들이고 나누는 것이다. 

우리 눈 앞에 있는 성탄! 우리를 살리는 평화이다. 성탄의 결정체는 다름아닌 평화이다. 평화에 기대어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늘을 떠나 사람으로 오시는 평화이시다. 

평화는 떠남이요 평화는 불가능을 허무는 가능이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장 좋은 평화가 오셨다.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가장 기쁜 소식 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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