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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2월 8일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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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동정 마리아 대축일 -

 

 

2021년 12월 8일 (수)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성모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 생겨났습니다.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이러한 믿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이러한 요청을 허락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고 하십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마리아는 천사에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합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2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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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창세 3장 9-15절, 20절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에페 1장 3-6절, 11-12절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1장 26-38절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고백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처럼,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하느님의 좋으신 뜻에 우리 자신을 내맡깁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 하느님, 특별한 은총으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받아 모신 성체로 저희 죄의 상처를 낫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2월 8일 (수)
동정 마리아 대축일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2월 8일 (수)
동정 마리아 대축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분의 신앙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분께 몸을 마련해 주시는 데에는 한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이 필요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으로부터 당신 아들의 어머니로 삼을 이스라엘의 딸을 선택하셨는데, 그녀는 갈릴래아 나자렛의 한 젊은 여인으로 다윗 집안의 요셉과 약혼한 처녀인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시간이 흘러 4세기 무렵이 되자, 신자들 사이에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참인간이요 참하느님’이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이신 아드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구원을 받으신 분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낳으실 어머니께서 원죄에 물들었다면 태어나는 아들 또한 죄의 세력에 물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라고 응답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분께 하느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예.”라고 답하는 삶을 살았기에, 하느님의 계획에 “예.”라는 응답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마리아 축일을 지내는 오늘, 우리도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분의 뜻에 기꺼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머니 되는 특혜가 부러우면 우리도 어머니가.

 

이 축일의 깊은 뜻은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선재(先在)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육화하시는 계획도 미리 정해졌고 따라서 어머니 되실 분도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 중에 괜찮은 인간 예수를 그리스도 삼으신 것이 아닌 것처럼 여인 중에 참한 여인을 뽑아 예수님의 어머니 삼은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육화하시고 마리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태어나신 것인데 이 그리스도의 어머니께서 원죄 없으셔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이 축일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상이 제가 예전 강론 때 정리한 바 있는 성모무염시태 축일의 교리적인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측면에서 의미를 보겠습니다. 곧 성모님만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원죄 없으셨다는데 이것은 성모님만의 특혜가 아닌가 하는 관점입니다. 

누구만의 특혜라고 하면 우리는 예민해지고 특히 요즘 정의와 사랑보다 공정을 더 중시하는 젊은이들은 더 그러겠지요. 

그러니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미안하게도 '아니'가 아니고 특혜입니다. 성모 마리아께만 주어진 특혜 맞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만 주어졌지만 마리아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있는데 그것은 대통령이 모두를 위한 사람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고, 그러므로 그 특혜는 개인적으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마리아에게 주어진 특혜는 모든 이를 위한 특혜, 오늘 서간의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고 하듯 모든 영적인 복의 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주어진 특혜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이를 구원할 그리스도를 낳아야 할 사람이고 그래서 낳은 당신의 아들을 사유화할 수 없습니다. 

여드레만에 성전에서 봉헌할 때 예수를 당신 아들이 아닌 공적인 아들로 봉헌하셨으며 그래서 시므온은 이 아들이 많은 사람들을 일으키기도 하고 쓰러트리기도 할 것이며 그래서 마리아는 꿰찔리는 고통을 겪을 거라고 예언하였지요.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할 때 거기서 아들을 잃었을 때, 왜 부모의 속을 썩이냐고 나무라자 아들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나무람을 들었을 때, 이때 다시 마리아는 아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내어드려야 했지요. 

그리고 공생활 중 한번 아들을 찾아가 어머니가 왔다고 했을 때, 예수께서 당신을 둘러싼 제자들과 모두를 가리키며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라고 할 때 또 다시 독점적인 어머니 특권을 모두에게 내어줬지요. 

이처럼 마리아는 아들을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게 내어드렸으며 그럼으로써 아들이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게 했지요. 

언젠가 한 여인이 당신을 배었고 당신에게 젖을 물린 어머니를 복되다고 하며 부러워하자 예수께서는 그 여인도 마리아처럼 당신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특혜가 부러우면 우리도 그분의 어머니가 되면 되고 또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마리아처럼 해야 한다는 것, 곧 내 아들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내줘야 하고, 내 아들의 어머니만 되겠다는 것도 포기해야 하며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함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하느님을 생각 않으면 세상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인사한 말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은총은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겨지지 않으면 가득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이 피를 흘리기 이전부터 이미 은총으로 충만하셨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피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성모 마리아를 깨끗이 하실 수 있으셨다면 그리스도께서 굳이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피 없이 유일하게 깨끗하시어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고 죄짓기 이전의 하와의 상태처럼 주님과 함께 거니는 분이십니다. 

성모님이 원죄가 없으셔야 하는 이유는 만약 그 인성을 예수님이 물려받으시면 예수님도 원죄에 물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우리 죄를 위한 흠 없는 제물이 되게 하시기 위해 하느님은 그리스도께 당신 몸을 주실 새 하와인 성모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계획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이전인 세상 창조 이전부터 계획돼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되어 죄에 물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께서 원죄가 없으신 특징은 어디서 드러날까요? 바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순종에서 드러납니다. 하와는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했고 그 후손들도 원죄를 입어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지만 성모 마리아만큼은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종의 중간에 성모님께서 하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기도의 단계에서는 ‘묵상’이라고 합니다. 지금 성모 마리아께서는 천사가 일러준 하느님의 말을 깊이 묵상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묵상하셨습니다. “이 인사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 묵상이 없으면 순종이 나오지 않습니다. 순종이 나오지 않으면 주님 종의 자격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묵상의 소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나오는 감정이 ‘감사’입니다. 저희 어머니에게 물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께서 “저 나병 환자들도 사는데, 넌 왜 못 사니?”라고 하신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불만에서 감사로 나를 이끕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나와야 보답하고 싶어 주님 뜻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자아에 순종하게 되어 망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상태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원죄로 주어져 있습니다.

‘박화영’(2017)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박화영의 집에 모인 가출 소년 소녀들은 모두는 매일 라면을 먹고, 매번 담배를 피우고 동갑인 화영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화영에게는 단짝인 무명 연예인 친구 은미정이 있습니다. 미정은 화영을 엄마라 부르며 갖은 일을 다 시켜 먹습니다. 화영도 미정이 만큼은 아껴주고 싶습니다. 그녀는 모든 아이에게 이용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엄마라고 불리고픈 화영은 특별히 미정의 남자친구인 영재에게 심한 구타와 모욕을 당하며 미정의 엄마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미정과 영재가 저지른 살인사건까지 자신이 다 도맡아주지만, 결론은 미정은 끝까지 화영이를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는 박화영. 이런 인물은 왜 탄생한 걸까요?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영은 어른들만 보면 대듭니다. 엄마가 돈을 안 부쳐줄 때는 새 남자와 사는 엄마에게 욕을 퍼부으며 돈을 달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모든 친구에게 이용만 당하고 교도소까지 갔다 온 화영은 또 가출한 소녀들을 자신의 집에 재워주고 라면을 끓여주며 계속 엄마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러며 말합니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번 봤냐!”

부모와 관계가 안 좋은데 다른 이들과 관계가 좋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먼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줄 수 있는 분은 사랑으로 나를 낳고 창조하신 분입니다. 문제는 그분이 나와 함께 있다고 믿고 그분의 사랑을 묵상할 때 사랑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와 함께 산다고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묵상해야 합니다. 부모의 굳은살을 보아야 하고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묵상하지 않고 함께 살기만 하면 사춘기 아이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사귀어도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기만 할 뿐, 진정한 관계는 맺어질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자신도 부모가 되고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이웃들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애완견’과 ‘반려견’의 차이를 아십니까? 애완견은 주인이 장난감처럼 여기는 개라는 뜻이고, 반려견은 주인이 사랑하는 개라는 뜻입니다. 박화영은 친구들에게 애완견이었습니다. 왜 애완견이 되느냐면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화영이가 자신들이 아니면 갈 곳이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그녀를 묵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박화영이 어머니를 이용할 뿐 묵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묵상하지 못하면 이웃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묵상하는 이는 언제라도 떠날 사람이 되기에 사람들이 붙잡으려고 묵상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나무 뒤에 숨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내 죄를 피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용만 할 뿐입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주님의 뜻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묵상하면 감사하고 감사하면 그분께 순종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신 것과 같습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 찾아보시러 가시는 길은 묵상한 자의 발걸음입니다. 이용당하지 않고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아 그 사람에게 당당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상으로 말씀을 잉태한 이의 모습이고, 이 모습이 성모님처럼 원죄 없는 이의 모습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을 묵상하면 세상도 나를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르면서 주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고 있나요?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암벽을 오를 때 온 힘과 정신을 다 기울이지 않고 절반 정도만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위험을 겪을 수 있고, 암벽을 제대로 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환자를 수술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온 힘과 정신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환자가 큰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부차적인 것에 오히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을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모님께서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우리 모두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자렛은 구약성경에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보잘것없는 촌락이었고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도 도외시된 촌락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예언자도 배출시키지 못한 곳, 이곳에서는 하느님 운운할 필요도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배출될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하느님의 심부름꾼 대천사 가브리엘이 연약한 10대 소녀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그들의 인생 자체가 치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결혼해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녀 잉태의 소식을 듣습니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불미스럽고 치욕스러운 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치욕스러운 것을 하느님은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을 완수하는 데 사용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약속을 보증하는 표로 하느님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은 하지만 부도덕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때 당사자의 온전한 자기 포기와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과 완전한 겸손이 요구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기준을 따랐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르면서 주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고 있나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교묘하게 속이는 것보다는 서투르더라도 성실한 것이 좋다.

- 한비자

 

 

나의 성실함은 어떠합니까?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똑똑한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똑같이 놀았는데 이 친구는 늘 좋은 성적을 받는 것입니다. IQ도 150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우는 것도 잘하고, 뭐든 응용력이 뛰어났습니다. 
 
이 친구가 지금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창 모임에 참석하지도 않고, 소문에 의하면 아주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당시에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똑똑함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끈기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실함을 가지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기의 머리와 잔재주를 믿는 사람은 그러한 변화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성실함은 어떠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루카 1,28)

 

은총과 기쁨 사이에 우리의 시작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에서 출발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출발하신다. 시작을 알아야 끝을 알 수 있다. 모든 여정에서 만나게되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때를 놓치시는 법이 없다. 앞서가시며 먼저 길을 여신다. 죄를 없이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사랑 받는 가장 큰 기쁨의 오늘을 만난다. 담아야 할 받아들여야 할 것은 오직 사랑이다. 

하느님 사랑만이 원죄에 물들지 않는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삶다운 삶으로 안내하신다. 죄를 없이 하시는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큰 진리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그 사랑을 품고 그 사랑으로 돌아가는 오늘이다. 살다가 보면 그 사랑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원죄도 당해낼 수 없는 그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 탄생하실 것이다. 하느님을 향하는 공동체는 하느님의 힘으로 자라나고 보호받는 것이다.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는 그 잉태가 가장 좋으신 사랑임을 믿는다.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 사랑에서 다시금 첫마음 첫결심을 만나며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시작이 사랑이면 마침도 사랑이 되는 놀라운 신비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랑을 위해 기도하는 아침의 시작이 가득한 은총임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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