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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
2021년 11월 11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성 마르티노 주교는 316년 무렵 헝가리 판노니아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한 그는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신비 체험을 했습니다.
어느 날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는데, 그날 밤 꿈속에 그 외투 차림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곧바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그는 나중에 사제가 되었으며, 370년 무렵에는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이며 복음 전파에 전념하였습니다.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마르티노 주교는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는 세상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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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지혜 7장 22-30절, 8장 1절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화답송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당신의 진실 대대로 이어지고, 당신이 세우신 땅 굳게 서 있나이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법규대로 오늘까지 서 있나이다. 만물이 당신을 섬기나이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이 목숨 살려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 법규로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복음
루카 17장 20-25절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일치의 성사로 힘을 얻은 저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복된 마르티노 주교를 본받아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봉헌하게 하소서.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1월 11일 (목)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1월 11일 (목)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되는 순간
불교에서 선승들이 주고받는 문답을 ‘선문답’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깨친 스승에게 제자가 질문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 대화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두 사람 각자의 혼잣말 같기도 합니다. 질문을 통하여 진리를 깨치지 못한 이를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선문답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시기를 여쭈어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기가 아니라 그 “모습”에 대하여 답을 하십니다.
“여기”, “저기”, “우리 가운데”라고 공간을 이야기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하여 설명하시며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볼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데, 과연 어디에 있는가?’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들을 되뇌어 봅니다. 그리고 고민해 봅니다. “우리 가운데”, “우리”는 누구를 말하고 있을까요?
나는 어떤 사람들을 ‘우리’라고 말하고 있나요? 너무 쉽게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하느님, 우리 성당, 우리 공동체, 우리 가족, 우리 부모님, 우리 친구 ……. ‘나’를 포함한 ‘우리’이기는 하지만, ‘나’라는 말을 대신하여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째서 일까요?
어쩌면 나와 너,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요! 나만을 생각하던 그 삶의 공간이 ‘우리’를 먼저 생각하여 행동하는 공간으로 바뀔 때 그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닐까요!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왕이 되시는 이유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주제입니다. 찾아다닐 필요가 없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명령이고 그 명령에 따르면 그 나라가 곧 하느님 나라입니다.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 눈에 보이게 명령하고 지시할 수도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면 그 지배는 불완전합니다.
아이는 보통 부모님의 나라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을 때는 아이는 부모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기에 부담스러우면 자기를 지배할 누군가를 만들어냅니다.
『벼랑 끝, 상담』에 이와 같은 예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민서는 이혼한 엄마에게서 키워졌는데 엄마는 술과 담배에 찌든 밤을 지내는 생활을 하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결국, 민서는 아동보호센터에 넘겨졌고 그곳에서는 고등학생 언니들의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경찰 조사에 의해 다시 엄마에게 키워졌지만, 엄마는 여전히 민서를 보살펴 줄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민서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동보호센터에서 혼나지 않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엄마에게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민서를 도와준 것은 한 친구였습니다. 진짜 사람은 아니고 환시로 자신만 보이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친한 친구인 척하면서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처음엔 귀로만 들리던 음성이었는데 눈으로도 그 아이를 보게 되었고 이젠 그 아이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최고야 원장은 민서의 역할을 하고 민서는 자기에게 거짓말을 종용하는 환시의 아이 역할을 하며 역할놀이를 하였습니다. 최 원장은 민서의 말에 따라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연극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난 민서는 자신이 보는 환시의 아이가 착한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삼자 측면에서 보니 그 아이는 자신을 망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말을 무시하게 되었고 점차 환시도 사라지고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외부에서 눈에 보이게 나에게 명령하는 대상은 끊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그 명령이 내 신의 판단을 거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환시들을 보며 결국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존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를 만들어내고 인정받기 위해 비밀 요원을 만들어내 그들에게 조종당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자신의 허상임을 알고 무시하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갑니다. 이처럼 외부 조종자는 내부 조종자보다 힘이 약합니다.
가장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는 내부 조종자는 ‘나’입니다. 내가 ‘나’라고 믿는 대상이 실제로는 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면 그것은 완전히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자신이 개인지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옵니다. 22세의 의대생이었던 스티븐 D.는 약물중독으로 거의 완벽한 개의 경지까지 갔었습니다.
개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실제로 꿈을 깨고 나니 개의 모든 감각, 특별히 후각이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 것입니다. 모든 향수의 냄새를 다 구별하게 되었고, 환자들을 눈을 감고 냄새로 다 구별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간 길을 다시 냄새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3주 동안 이 일을 겪고 나서 약물을 끊었고 나중에 신경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나’라고 믿는 대상입니다. 그 대상이 내 안에 들어오는 방법은 ‘감사’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감사를 하면 그 대상은 점점 ‘나’가 되어갑니다. 부모에게 감사할 때 부모가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를 받으려면 필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탈출기에서 잠깐 살펴보자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산 위에 서 있고 여호수아가 아말렉족속과 전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전에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바위에서 흘러나온 물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나는 진리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고 물은 은총으로서 사랑입니다. 이 사랑과 진리가 그 사람 안에 들어가면 그 사람 안에서 여호수아, 곧 예수께서 자아를 몰아내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이것이 가나안 정복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미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나의 ‘나’가 되어있는 자아를 밀어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 준 나보다 훨씬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나에게 살과 피를 양식으로 내어주는 부모처럼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 당신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예를 다시 보겠습니다. 10살을 갓 넘은 성녀는 20살 난 청년인 알렉산더에게 겁탈당하려는 것에 저항하다가 수십 차례 칼에 찔려 사망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무려 20시간 동안의 큰 임종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머니를 위로하고 가족을 걱정했습니다.
종부성사를 주시는 신부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강도에게 하듯이 너도 살인자를 용서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예, 신부님 그를 용서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그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겠어요. 그 사람도 저와 같이 낙원에 머물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아름다운 부인이 서 계신 것이 보여요.”하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더는 30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완강하게 저항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고레띠는 그의 꿈에 나타나 그에게 백합꽃을 전해주었고 그 환시를 본 후 알렉산더도 회개하였습니다. 형을 다 마치고 나와서는 먼저 고레띠의 어머니 아쑨따를 찾아가 무릎을 꿇게 사죄를 청했습니다. 어머니는 “마리아 고레띠가 너를 용서했으니 나도 너를 용서한다.”라고 하며 함께 영성체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이후 카푸친 수도원의 정원사로 나머지 생에 대해 속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릇된 길을 가는 모든 젊은이에게 청합니다. 나처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게으름에서 도망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내가 찌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의 양식이 되어 줄 때 그 사람은 내 안에서 주인이 됩니다. 그 사람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마리아 고레띠의 나라입니다. 그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슴까지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나를 당신의 나라로 만드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해 피를 흘려 이웃을 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 주인이 마음 안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사는 방법은 살과 피로 먹히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좋은 인연이란 ‘만드는 것’이지,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 과학자 로건 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인연이란 ‘만드는 것’이지,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좋은 인연이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무엇보다 나의 노력으로 좋은 인연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내 안에 좋은 인연이 이미 있습니다.
친한 동창 신부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인데 신부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초등학교 때에도 첫영성체를 같이 했던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같이 놀지도 않았고, 대화도 함께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좋은 인연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친구와는 지금도 자주 만나고, 전화도 자주 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소중한 인연이 되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든 것입니다.
종종 좋은 인연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남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모든 결정 사항이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안에 이미 좋은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에 관한 관심이 최대 관심사였고 거의 민족적인 관심사였습니다.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호칭 밑에 다윗의 왕권이 꼭 재건되리라는 예언이 성경에 나와 있고, 또 그 약속을 그들이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왕국인 언제 재건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었습니다. 더욱이 외세의 침략을 받는 상태였기에 더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혜성처럼 나타나 외세를 무력으로 물리치고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민족적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주님께서는 세속적으로 우렁찬 팡파르와 더불어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적으로 온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평상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때 하느님 나라는 다가옵니다.
좋은 인연이 우리 마음 안에 이미 있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도 우리 안에 이미 있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한 나의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 각자의 노력도 정말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 뜻에 맞춰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보화를 찾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위한 작은 배려와 생각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 거야.
- 영화 ‘곰돌이 푸’ 중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의 균형
제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유다인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던 유다인과 전쟁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려운 상황에 대한 절망감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뭐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더 큰 절망으로 이끌었던 것은 막연한 낙관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수용소에서 곧 풀려날 것이라고 턱없이 낙관한 사람들은 수용소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낙담도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 낙담은 사람을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반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분히 훗날을 대비했던 수용자들은 끝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자신의 균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21)
흐트러진 일상을 다시 바로잡는 마음의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마음이 있다. 우리들 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그 가운데 가장 좋은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우리들 마음이다.
진실한 마음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진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본질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느끼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기쁨이다. 오늘 우리들 마음은 어떠한가. 마음의 회복이 간절히 필요한 우리들 관계이다. 인간관계의 문제도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들 마음을 온통 바꾸어 놓는다. 복음은 마음 중심으로 돌아가는 참된 행복이다. 마음이 깊으면 사랑도 깊어진다. 길을 되찾는 것도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 사랑이 있던 자리에 마음도 자라난다. 사랑과 마음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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