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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8월 27일 (금)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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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녀 모니카 기념일 -

 

 

21년 8월 27일 (금) 성녀 모니카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성녀 모니카 기념일 (Memorial of Saint Monica)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인 모니카 성녀는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현재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심 깊은 모니카 성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했습니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했습니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하시며,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8월 2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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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1테살 4장 1-8절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곧 여러분이 불륜을 멀리하고, 


저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하게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인들처럼 색욕으로 아내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로 형제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고 또 엄숙히 경고한 바와 같이, 주님은 이 모든 일에 보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무시하는 자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아, 악을 미워하여라. 그분은 당신께 충실한 이들의 목숨을 지키시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해 주신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25장 1-13절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모니카를 기리며 받아 모신 이 거룩하신 성체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비추시고 불타오르게 하시어 저희가 언제나 거룩한 열망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27일 (금)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27일 (금)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27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나는 가장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것을 하느님께 드리고 있는가?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회의 가장 위대한 학자요 4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하고,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지기도 하였던 성인은 37세에 사제가 되고, 5년 뒤에는 히포의 주교가 됩니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훌륭한 주교이며 학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끊임없이 눈물과 인내로 기도한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한 사제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공부가 부족하여 수도 성소를 포기하고 혼인 성소를 선택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는 그에게 “오 남매를 낳아 아들 둘, 딸 둘은 하느님께 봉헌하고 아들 하나는 데리고 사세요.”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혼인하여 아들 셋, 딸 둘을 낳습니다.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 “너희는 신학교, 수녀원에 가거라!” 하고, 장남에게는 “너는 내가 데리고 살 아들”이라며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남이 신학교를 가겠다고 합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입니다. 신학교에 가지 말라는 온갖 설득에도 장남은 신학교로 떠납니다. 입학식 날 어머니는 성모 동산에 올라 6시간을 엉엉 웁니다. 

한 달 동안 계속 울며 다니던 어느 날, 다른 사제의 어머니에게서 “그렇게 울면 아들한테 안 좋아!”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에 정신을 번쩍 차린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날마다 새벽부터 묵주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장남은 사제품을 받습니다. 

아들이 사제품을 받던 날, 어머니는 아들 사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이상하십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장 아끼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내어놓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제는 날마다 아침 기도 시간에 자문합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것을 하느님께 드리고 있는가?”.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육신은 잠을 자도 사랑은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마태오 복음 23장은 주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24장은 주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자들 입장에서 23장은 그래서는 결코 안 된다는 가르침이고, 24장은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주인을 깨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슬기로움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제는 종의 슬기로움과 깨어 있음에 대한 가르침이고 오늘은 동정녀의 슬기로움과 깨어 있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종의 슬기로움과 동정녀의 슬기로움 사이에 종의 깨어 있음과 동정녀의 깨어 있음 사이에 차이점은 뭘까요? 

무슨 차이가 있기에 깨어 있음에 대한 비유를 두 번이나 이어서 할까요? 그 차이가 없다면 중복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 차이를 따지기 전이고 그래서 그 차이가 뭔지 모를지라도 막연하지만 저에게 드는 느낌은 종의 기다림보다는 동정녀의 기다림이 더 높은 차원이랄까 고상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종이 되시겠습니까? 정배가 되시겠습니까? 정배가 되고 싶지 종이 되고 싶지 않으시겠지요. 그것은 신분적으로 종과 정배는 차이이고, 의무와 사랑의 차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의무와 충성의 관계라면 신랑과 정배의 관계는 사랑과 자유의 관계지요. 

그러니 깨어 있는 것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정배의 모든 촉각이 깨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관심 정도가 아니라 촉각까지 신랑에게 가 있고, 설혹 잠을 자더라도 촉각이 깨어 있을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질러자는 것이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감각이 사랑하는 이에게 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동정녀에게는 육신이 잠을 자도 사랑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깨어 있다는 것이 오늘 제가 하는 강론의 결론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꾸준한 기도 : 하느님을 닮는 것과 흉내 내는 것의 차이

 

오늘 복음은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다섯 처녀는 등잔의 기름을 간직하였지만 또다른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때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

알텐데 왜 모른다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현명한 처녀들은 그리스도를 닮으려던 사람들’이고 ‘미련한 처녀들은 그리스도를 흉내 내려던 사람들’입니다. 나를 닮으려는 사람은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나를 흉내 내는 사람에겐 모욕감을 느낍니다. 적어도 나와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흉내 낸다고 해봅시다. 전에 고등학생들이 ‘관짝 밈’을 올렸을 때 흑인 비하 논란이 일었습니다. 흑인들이 춘 춤을 따라 하기 위해 얼굴도 검게 칠했기 때문입니다. 방송인 ‘샘 오취리’ 씨는 SNS에 그런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흑인이 한 것이기에 몸까지 검게 칠한 것은 데 이것이 흑인으로서는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오취리 씨도 어느 방송에 나와 눈을 찢으며 동양인 비하식의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왜 남의 행동이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모욕이 될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변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고등학생들이 흑인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흑인을 비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마음이 없으면서 그런 모습을 취했다면 그런 흉내는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을 키워준 부모의 약해진 모습을 흉내 냈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더 못 할 짓이 됩니다. 로보트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통해 자신은 학교 선생님은 자기 아버지가 아닌 사업가인 친구 아버지를 닮기로 해서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친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물론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기쁘기는 하겠지만 아들을 키운 ‘보람’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닮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자녀들을 위해 피땀을 흘린 유일한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자신을 교통사고에서 구하려다 다리를 다쳐 평생 절뚝이며 살아야 했던 어머니 앞에서 자녀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아이들 앞에서 자기 어머니가 아니라며 어머니를 절뚝이며 흉내 내야 할까요? 그러면 어머니 마음을 찢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름’이 흉내 내는 것과 닮는 것의 어떤 차이를 내는 것일까요? 기름은 당신을 닮기를 바라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이요, 선물입니다. 사실 흉내만 내고 닮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선물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타이나 차트랜드와 존 바흐는 이런 실험을 합니다. 우선 두 명씩 짝을 지어 12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그 사진을 묘사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실험 참가자의 짝은 실험 조교였습니다. 한 그룹은 실험 조교가 실험자가 하는 행동을 일일이 따라 하였습니다. 다른 그룹은 그냥 평소대로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사진 설명이 끝난 후, 대화가 얼마나 순조로웠는지 또 자신의 파트너는 마음에 들었는지를 설문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교가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한 경우 조교에 대한 호감도가 따라 하지 않은 경우보다 더 높았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대화도 더 순조로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한 것조차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설명해주는 것이 성령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는 자기 뜻을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줍니다. 개에게 밥을 줄 때 그 개가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양식을 주면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성장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렇든 ‘선물’에는 ‘닮기를 바라는 뜻’이 들어있고, 그 선물을 받고 자신을 닮아가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요? 성령을 받는 기도를 열심히 할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계속 닮으려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가 차려주는 밥을 열심히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자녀는 부모가 차려준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닮거나 흉내 내려는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오는 ‘양식’인 ‘성령’을 어떤 자세로 받느냐에 의해 구별됩니다. 기도를 싫어하거나 규칙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선물을 받아 하느님의 뜻대로 닮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미련한 다섯 처녀가 그런 여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양식’과 같습니다. 양식을 계속 먹으면 그 사랑에 감사해서 그 감사가 그것을 주는 부모를 닮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고 심지어 걸음걸이, 말투까지도 부모를 닮게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렇기에 계속 부모를 닮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 양식을 꾸준히 받아먹을 것입니다. 만약 밖에서 먹고 살다가 정 배가 고플 때만 집에 들어와 밥을 먹는다는 말은 더는 부모를 닮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통해 맺은 열매를 지니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 기쁨이 아닌 우울함, 평화가 아닌 걱정, 절제가 아닌 방탕, 온유함이 아닌 분노, 겸손이 아닌 교만을 지니고 가지만 주님은 또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

창조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만큼 고통이 따랐다면 자기가 만들고 싶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자녀가 식사를 규칙적으로 할 때는 아직 나를 닮게 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모는 더는 변화시킬 힘을 지니지 못합니다. 흉내가 되지 않도록, 우리 본성을 바꿔주는 성령님을 꾸준히 모시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현명한 처녀가 되는 길입니다. 규칙적인 기도습관.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분명히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 애가 혹시 천재 아닐까?

 

성지에 종종 어린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옵니다. 이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이 나이 때의 저와 비교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잘 읽고 말도 잘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나름 정확한 논리를 세워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못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형편없는 저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모든 어른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렸을 때의 자기보다 나은 자녀를 보며 대부분의 부모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애가 혹시 천재 아닐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발전합니다. 배우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훨씬 많은 지금 이 세상에서 성장하는 아이가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서도 지금의 아이보다 더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하면서 진짜의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진짜의 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담아서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준비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어떤 분이 이 비유 말씀을 듣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치사하게 같이 사는 동료인데 기름을 꿔주지 않을 수가 있지요? 기름이 부족한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꿔줘서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드는 것은 나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구원도 결국 나의 노력과 정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준비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 오실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혼인 잔치에 신랑이 반드시 참석하는 것처럼 분명히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목록을 점검하며 기다리는 처녀들처럼, 나 자신을 주님 뜻에 맞는 모습으로 성장시키면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준비도 하지 않았고, 다른 슬기로운 처녀들의 도움만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준비 없이도 힘들고, 개인의 노력과 정성 없이도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처녀의 모습이 아닌, 슬기로운 처녀의 모습으로 나 자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우리 삶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 제임스 라이언

 

 

안전비결

 

1937년에 완공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는 총 길이 2,789m로 당시에 가장 긴 다리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석양이 질 때 다리가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자랑이었지요. 그런데 당시에 이 금문교를 건설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금문교 아래의 물살이 강하고 또 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건설 중 많은 사고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처음 1년 동안 무려 23명의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습니다. 그런데도 4년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고를 막기 위해 만든 안전 그물망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 그물망 덕분에 19명의 노동자의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떨어져도 자신을 받아 줄 그물망이 있다는 생각에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어서 공사 기간이 20% 이상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더 힘차게 삶을 살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바로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따라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힘차게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기도와 기다림이 우리를 키운다.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태 25,13)

열매는 그냥 익어가지 않는다. 돌보심과 기다림의 기도가 있었다. 어머니 앞에 우리모두는 특별하다. 성녀 모니카가 없었다면 성 아우구스티노도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께로 이끄는 성녀 모니카! 성 아우구스티노 어머니가 있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한 사랑의 뜨거운 순교자들이다. 뜨거운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기도와 사랑이 필요한 우리들 삶이다. 어머니를 통해 자식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 

기도와 기다림이 우리를 키운다. 신앙의 모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오늘이다. 어머니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셨듯이 신앙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장 큰 은총의 관계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이다. 

고민과 방황을 기도로 함께하는 성녀 모니카가 있다. 서두르지 않는다. 하느님의 열매가 맺힌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있어야 할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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