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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8월 24일 (화)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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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

 

 

21년 8월 24일 (화)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갈릴래아 카나 출신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명입니다. 필립보 사도가 인도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요한 1,4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요한은 천사에게 이끌려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본다.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이끌려 온 나타나엘에게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며,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그들이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8월 2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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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묵시 21장 9ㄴ-14절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1장 45-51절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성체를 모시고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현세에서 올바로 살아 미래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24일 (화)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24일 (화)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24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되는 편견, 내 생각의 틀은 무엇일까요?

 

오늘 특별히 묵상하고 싶은 것은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 머물렀던 안드레아는 베드로를 초대합니다.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만나시자 “나를 따라라.”(요한 1,43) 하고 부르십니다. 

필립보는 곧바로 나타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이 기록한 분”, 곧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주인공인 메시아를 만났고, 그 사람이 ‘나자렛 출신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알려 줍니다. 그러자 작은 시골 마을 카나 출신인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며 얕잡아 보고 의심합니다. 

사실 나자렛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타나엘은 “와서 보시오.”라는 필립보의 초대에 응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가진 편견, 생각의 틀을 버리고 나설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처럼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집 구조는 방이 하나여서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나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묵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섬기고자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자기 생각의 틀과 편견을 뛰어넘어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 머무름으로써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가 되는 편견, 내 생각의 틀은 무엇일까요? 나의 기도는 그렇게 만들어진 나를 뛰어넘어 예수님을 만나는 기도인가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진골에서 성골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바르톨로메오가 요한 복음에서는 나타나엘인데이 나타나엘을 오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진골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신라시대에 진골과 성골 제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저도 한 번 불러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그렇게 즉시 알아보는데 그는 주님께 대단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이렇게 편견을 가진 나타나엘이지만 주님께서는 정확히 알아보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편견이란 선입견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잘못 보게 하고, 욕심이나 교만과 함께 잘못 보게 하는 것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견을 가진 사람을 거짓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주님께서는 어째서 그를 거짓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는 걸까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의 편견은 개인적인 편견이 아닙니다. 우리의 편견은 보통 개인의 인격적인 결함에 의한 편견이지만 나자렛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없고 메시아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편견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통된 편견이었지요. 

요한 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일부의 사람들이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얘기하고 있고 지도자들이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라고 단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이런 편견의 소유자가 그런데 주님을 찾아 가서 만나뵙고는 편견이 깨지고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고 마침내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제 생각에 이로써 나타나엘은 이스라엘의 진골에서 성골이 된 것입니다. 진짜 이스라엘 사람에서 이제 거룩한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거룩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느님을 알아뵙는 것이요, 거룩하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은 거룩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거룩하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능력은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도 베드로가 주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아보았을 때 주님께서 그것은 인간의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셔야 알 수 있는 거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진골에서 성골이 된 바르톨로메오 축일을 지내며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진골에서 성골이 되라는 초대와 도전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초대와 도전 앞에서 우리는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어려운데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고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요.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만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처럼 주님을 찾아 가서 뵙고 나면 바뀔 수 있습니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가서 보라고 안내하고, 주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초대하시듯 우리도 오늘 가서 보라고 서로 안내하는 자가 되고 와서 보라는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 가기만 하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나타나엘처럼 비록 편견이 있을지라도 와서 보라는 초대와 도전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런 사람 꼭 옆에 두세요.

 

오늘은 성 바로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나타나엘이라고도 불렸던 바르톨로메오는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는 인물이었습니다. 필립보는 메시아를 만났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는 예언자가 나올 수 없다며 그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하자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밑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와 거짓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를 숨기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몸을 가렸습니다. 나타나엘은 무화과나무가 거짓말의 상징임으로 자신은 모든 것에서 진실하여야 함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이 묵상을 예수님께서 마음까지 들여다보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바르톨로메오도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곁에서 배워 결국엔 피부가 다 벗겨지는 고문을 이기고 사도로서 위대한 성인이 되셨습니다.

만약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곁에 두지 않았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그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엔 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 곁에 누구를 두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를 내 곁에 두어야겠습니까? ‘나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겠습니까?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나타나엘을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며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인정해주는 사람이란 누구겠습니까?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한 독일인 부부가 서른 곳의 병원에 다니고도 절망에 빠져 벤 카슨이란 흑인 의사를 찾아옵니다. 그 부부는 요한과 슈테판이란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까지 그 수술을 성공시킨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아기를 낳고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그러면 아기들도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견디고 있었습니다. 남편도 두 명의 아기가 다 살기를 원했습니다. 벤 카슨은 수술 중 과다출혈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아기들 몸 안엔 수술 시간을 버틸 충분한 혈액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벤은 시도해보기로 합니다. 물론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흑인 아이가 멀리 독일에서 의뢰가 들어올 만큼 신경외과의 세계적 권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는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을까요? 아버지 없이 자란 벤은 공부도 아주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자녀들을 잘 키우고 싶었지만 남의 집 청소를 하고 남의 애를 봐주면서 자녀를 잘 돌볼 충분한 시간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이 바보라고 말하는 벤에게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 넌 똑똑한 아이야. 다만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이야. 넌 최고야.”

엄마가 하루에도 수백 번 이렇게 말해주는 데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그런 마음이었을 때 아무도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고 하지 않고 대학교수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두 권 이상 책을 읽을 것을 권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 때문에, 그리고 어머니가 믿어주는 것 때문에 어머니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벤은 전교 1등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인종차별이 심할 때여서 상을 받는데도 선생님들은 아버지도 없고 흑인인 벤도 하는데 백인인 너희들은 왜 못하냐며 오히려 벤 앞에서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인턴 때도 흑인이기에 그의 의견은 무시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한 번은 의사들이 모두 콘퍼런스에 갔을 때 폐엽 절제술을 해야만 하는 응급수술 환자가 들어옵니다. 어쩔 수 없이 자격도 없는 그는 수술을 진행하고 성공적으로 마칩니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의 의사 생활은 거기서 끝났겠지만 숙련된 전문의들도 후유증을 남기기 쉬운 어려운 수술을 인턴이 해낸 것에 모든 의사가 놀랍니다. 

아내의 유산으로 그는 아이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합니다. 그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33세에 존스 홉킨스 최연소 신경외과장이 됩니다. 그렇게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수술을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피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도 어머니가 도움을 줍니다. 

“샴쌍둥이 수술 때문에 걱정하니? 넌 할 수 있어.”

그때 설거지하는 어머니 모습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수도꼭지처럼 심장을 틀어막는 것입니다. 피가 돌지 않아도 뇌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시간 동안 심장을 멈추고 머리를 분리하고 피가 새는 혈관들을 막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벤이 매일 기도를 한다는 한 마디에 부모도 그 수술에 동의합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22시간이 걸린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성공시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와 걱정하는 부모에게 “어느 애부터 보시겠어요?”라고 말할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이후로도 벤 카슨은 엄청난 업적들을 이뤄내며 나이가 들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가 될 정도로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화 제목은 ‘타고난 재능: 벤 카슨 스토리’(2009)이지만 과연 타고난 재능이었을까요? 그에게 자신을 믿어주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그만큼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나를 알아준다는 말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 곧 신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준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꼭 옆에 두십시오. 벤 카슨은 10달러 지폐에 들어갈 위인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꼽았습니다. “넌 할 수 있다.”란 말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하며 그를 믿어주고 인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인정받는 만큼 성장합니다. 바르톨로메오에게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셨던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곁에는 헛된 꿈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애초부터 그런 꿈은 꾸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헛된 꿈을 꾸게 만드는 사람을 곁에 두십시오. 나를 아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하는데 우리는 물 위도 걸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물 위를 걷다가 누군가 “그런 생각은 교만한 거야.”라고 말해버리면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해주려면 나도 분명 그런 사람을 곁에 두었더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저 무화과나무 밑에서 생각이나 하던 한 사람을 알아주셔서 그를 위대한 성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누구의 기도 꺾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할 때 그건 교만한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당장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을 가까이하십시오. 내가 옆에 두는 사람이 곧 나의 믿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지난 8월 20일(금) 저녁에 아버님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급하게 병원에 가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힘들게 눈을 뜨시고 저와 눈을 마주쳐주셨고, 성호를 긋고 싶으신지 손을 움직이시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좋아보이는 모습에 좀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지만, 다음날 저녁 8시 47분에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작년 어머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시고, 16개월만에 아버님께서도 하늘나라에 가시니 서운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상에 조문해주셔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셨고, 많은 기도를 해주셨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더 열심히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새벽 묵상 글을 시작힙니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아실 것입니다. 사상을 탄압한 사건으로 실용 서적 외의 모든 책을 태우고, 유생을 구덩이에 산 채로 파묻었지요. 왜 진시황제는 책을 태우고 공부하는 유생을 죽였을까요? 
 
사람들이 독자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찌 히틀러 역시 책을 태웠고, 우리나라 군사독재 시절에도 금서가 있어서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이 강하다는 것은 인류 역사 안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더 나은 세상과 삶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꿈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지배자는 그래서 책을 태우고 읽지 못하게 했으며, 꿈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을 제거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책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을까요? 또 사람들 모두를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비극적인 종말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를 통해서 함께 성장할 기회를 찾았어야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던 지도자들은 역사 안에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소개하는 필립보를 향해 말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이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전히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나 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 마음이 열렸고, 그 열린 마음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과 권능은 우리 삶 안에서도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필립보의 말, “와서 보시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보러 갔기 때문에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열린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볼 때 비로소 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힘으로 누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 반대로 사랑으로 감싸 안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함께 할 때 주님의 사랑과 권능을 내 일상에서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기회는 새 인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 메리 엘리노어 윌킨스 프리먼

 

 

독이 되는 부모.

 

독이 되는 부모의 모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신처럼 군림하는 부모.

2. 의무를 다하지 않는 무능한 부모.

3. 아이를 조정하는 부모.

4. 잔인한 말로 상처를 주는 부모.

5.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6. 술에 중독된 부모. 
 

이러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반복적으로 잘못된 연애에 얽히거나 대인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자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훌륭하게 성장하는 자녀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바로 올바른 사회가 될 수 있는 기틀이 되지 않을까요? .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거짓이 없는 참된 신앙은 참된 열매를 맺는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요한 1,47)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를 묻게된다. 신앙과 삶은 거짓이 없는 진실함에서 출발한다. 주님께서는 거짓이 없는 바르톨로메오를 정확하게 알아보신다. 진실한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진실한 삶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거짓이 없는 사람이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란 하느님 안에서 거짓이 없는 사람의 삶이다. 거짓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다. 거짓으로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수는 없다.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진실이 무너지면 다른 가치들도 자연스레 무너진다. 거짓이 없는 참된 신앙은 참된 열매를 맺는다. 믿음은 거짓을 용기있게 내려놓는 것이다. 진실을 만나는 기쁨이다. 진실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진짜 우리 자신을 만나게하는 복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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