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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8월 22일 (일)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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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1주일 -

 

 

21년 8월 22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라며, 그와 그의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남자는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큰 신비를 이루는데, 자신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한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8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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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여호 24장 1-2ㄱ절, 15-17절, 18ㄴㄷ절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 무렵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그의 뼈를 고스란히 지켜 주시니, 뼈마디 하나도 꺾이지 않으리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악인은 악행으로 죽음을 맞고, 의인을 미워하는 자 죗값을 받으리라.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에페 5장 21-32절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는 큰 신비입니다.

 

형제 여러분,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6장 60ㄴ-69절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큰 신비입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하신 예수님께 시몬 베드로처럼 고백합시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님, 이 성찬례로 충만한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주님의 자비로 치유를 받고 힘을 얻어 모든 일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22일 (일)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22일 (일)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22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아니 죽기까지 하라고요?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투덜거립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던 사람을 치유해 주신 기적을 보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까지 그분을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41)이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살 수 있다.’(요한 6,53 참조)고 하시자 많은 이가 투덜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을 먹는다.’고 하실 때 ‘씹어 먹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셨기에, 그들은 ‘우리가 식인종인가?’라고 듣기 거북해하며 더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 말은 ‘걸려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내 가르침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 이 가르침 때문에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분처럼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보여 주실 뿐 아니라, 사랑은 고통이 함께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은 사랑의 길이지만, 영광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신 그 길은 부활하신 뒤에도 끝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지극한 사랑의 길입니다. 

이 십자가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아니 죽기까지 하라고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래. 나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했고, 부활한 다음에도 갈릴래아에 가서 다시 시작했단다. 너는 어떻게 할래?” .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체를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점: 육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 부재.

 

오늘 복음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시자 말씀이 너무 어렵다며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영적인 인간이 아니라 육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당신을 떠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성체성사의 본래 의미를 알게 되면 육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살아오던 삶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도 바쳐야 하고 사람도 판단할 수 없으며 육체도 절제하여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체는 육체를 파괴하려고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까지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육체를 사랑한다면 성체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해할 수 없다고 떠나버릴 것입니다. 오늘 유다인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그들은 계속 육체를 배 불리는 빵만 원했던 것입니다. 

성체와 육체의 관계를 따지자면 떠오르는 상징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동상입니다.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는 꿈을 꾸고서 마음이 불안하여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는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입니다. 그래서 현자들을 모아 그의 꿈을 맞추고 해석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다니엘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죽기 직전 하느님께서는 환시로 그 꿈을 알려주십니다. 그 꿈은 이렇습니다. 머리는 황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허벅지는 구리이고, 종아리는 철, 그리고 발은 철과 흙이 섞인 동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산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을 때려서 동상이 무너져 가루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금으로 된 머리는 바로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네부카드네자르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올 나라들은 은과 같고 동과 같고 철과 같습니다. 그러나그 나라들을 지탱하는 발은 철과 흙이 섞여 있어서 매우 약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순으로 그 금속의 상징을 볼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돌이 무엇인지는 모르는데 그 나라들을 모조리 허물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돌은 산처럼 커집니다. 그 돌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어떠한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영원히 성장할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허물어져야 하늘나라가 세워질까요? 육체의 나라입니다. 동상은 육욕이 지배하는 나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돌의 역할을 하러 하늘에서 떨어져 나오신 분이 누구이시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발을 당신 피로 씻어주심으로써 우리 육체가 다 허물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당신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러나 내가 무너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를 허물러 오시는 그리스도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라고 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성체성사의 제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성체가 그 사람 안에 들어가면 하느님께서 겸손하게 나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식처럼 여겨집니다.

교황님이 오셔서 나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시고 발바닥에 입을 맞추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리시자 이젠 도망치지 않습니다. 이전의 육적인 삶을 완전히 벗고 그리스도만을 위한 삶을 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체라는 돌로 내 육체를 허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내 육체의 모든 욕구가 허물어질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영하려는 이는 그 성체가 내 안에서 무엇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날라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영적인 나라로 만들기 위해 육체적인 나라를 허물러 날라오는 돌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헐크’라는 푸른 괴물의 이야기를 TV나 영화로 보아왔습니다. 성격은 괴팍해도 약해빠진 본래의 브루스 배너라는 박사가 죽지 않으면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박사는 자신이 사라지고 헐크가 날뛰는 것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헐크의 최대 적은 자기 자신인 배너 박사입니다. 헐크가 열이 받을수록 배너 박사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헐크가 나타나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나를 죽이고 내 안의 거인을 깨워 이 세상에서 하시려는 일을 방해하는 브루스 배너 박사에게 열이 받아야 합니다. 그럴 줄 알아야 친구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인 발을 때리는 돌이 성체입니다. 성체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내 안의 우상인 나 자신을 허물어 당신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오시는 성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모십시다. 내가 죽어야 나도 살고 이웃도 살 수 있음을 모른다면 성체는 영원히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육에 대한 적대감도 없고 분노도 없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어떤 분이 답답한 마음에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나쁜 사람 되기 참 쉬운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정치 이야기가 나왔고, 어느 정당이 싫다고 말했더니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같이 있던 사람들도 자신을 나쁜 사람 보듯이 보더라는 것입니다. 
 
이분의 말씀에 큰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사회를 보면 아군 적군으로 나눠서 사는 커다란 전쟁터처럼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나눠진 그 모습에서 함께 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신의 자유와 의지를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자유와 의지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름이 있기에 함께 사는 것이지, 다름이 없다면 무엇 하러 함께 살겠습니까? 그냥 자기 맘 편하게 혼자 사는 것이 낫겠지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서도 있었음을 오늘 복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자기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귀영화하고는 정반대의 길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지금 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 마귀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만 했습니다. 
 
말씀이 듣기 거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그 말씀을 따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을 제외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결코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께 이런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서 올바른 삶,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 아버지(조남중 베드로)께서 어제 오후 8시 47분에 하느님의 품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제 아버지의 천상영복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장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가족장으로 조용히 진행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기도로만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참, 장례를 치루기 때문에, 새벽 묵상 글은 내일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소중한 선물

 

많은 사람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보물을 가지고 있었지요. 배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노인에게는 아무런 보물이 없었습니다. 
 
밤늦게 태풍이 밀려왔습니다. 이 태풍으로 인해 배는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보물을 챙길 시간이 없었습니다. 겨우 목숨만 건졌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무도 없는 무인도였습니다. 
 
이곳에서 노인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로 구조가 되기 전까지 생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야 내 보물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보물은 머리와 마음에 저장한 지식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잃거나 빼앗기지 않을 보물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영적인 성장은 하느님 말씀을 듣는 참된 겸손이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 6, 63) 

계절의 변화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하느님께서 주신 삶이다. 생명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향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신뢰한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삶이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적인 자녀로 재창조하신다. 우리가 누군지를 제대로 알게하여 주신다. 우리의 가난함을 보게하신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영적인 사랑의 관계이다. 영적인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새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영적인 삶이 아름다운 열매이다. 생명은 하느님의 영(靈)을 향해야 한다. 하느님을 알게 하여 주시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여주시는 영이시다. 생명의 주체는 하느님의 영이시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라야 할 우리들이다. 

주님의 뜻인 주님과 함께 해야 할 우리들 삶이다. 완전하고 온전하신 주님 사랑을 받아들여 할 영적인 삶이다. 영적인 성장은 하느님 말씀을 듣는 참된 겸손이다. 들판의 벼가 정성껏 영글어간다.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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