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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8월 10일 (화)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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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

 

 

21년 8월 10일 (화)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라우렌시오 성인은 스페인의 우에스카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가운데 수석 부제였던 라우렌시오의 임무는 교회의 재산을 관리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로마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하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남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들을 박해자들 앞에 데려갔습니다. 

“이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이에 분노한 박해자들은 라우렌시오 부제를 불살라 처형했습니다. 258년 무렵이었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가난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임을 일깨워 준 성인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인다며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8월 1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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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복된 라우렌시오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고, 순교의 고난을 받아들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뻐하며 올라갔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2코린 9장 6ㄴ-10절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6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들을 내려다보리라.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12장 24-26절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으리라.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거룩한 양식을 가득히 받고 간절히 비오니 복된 라우렌시오 축일에 저희가 주님을 섬기며 드리는 이 제사로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얻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10일 (화)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10일 (화)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10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무엇인가?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라벤나’에 ‘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십자가형 건물의 벽과 천장은 모두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곳에 낯선 그림이 하나 있었습니다. 창문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네 복음서가 놓인 열린 서가가 있고, 반대편에는 성인으로 보이는 사람 앞에 장작불이 피워져 있으며, 그 위에 큰 석쇠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궁금증은 점점 커져 이를 계기로 성화에 대하여 공부하게 되었고, 어떤 성인을 그릴 때 그와 관련된 대표적 일화나 그의 순교 장면을 묘사하여 그 성인을 나타내고 교육에 이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파하고 칼에 목이 잘려 순교하였기에 손에 성경과 칼을 쥐고 있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식스토 2세 교황을 도와 일하였던 부제들 가운데 수석 부제로, 교회 재산을 관리하고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는 교황을 체포하여 참수한 뒤, 교회 재산을 관리하는 라우렌시오 부제에게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는 3일 뒤에 주겠다고 한 뒤, 교회의 모든 보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3일 뒤 많은 가난한 이들을 데리고 황제에게 가서 “보시오,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에 격분한 황제는 라우렌시오 부제를 석쇠에 구워 죽이는 형벌을 내립니다. 순교의 순간, 그가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 하였다는 말이 전설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그의 상징물은 석쇠입니다.

오늘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도 질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당의 보물은 무엇인가? 나의 가장 큰 보물은 무엇인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이 우리를 구원합니다”(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에서).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자기 그릇만큼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를 많이 뿌린다고 꼭 많이 거두는 것은 아니고, 농사를 어떻게 잘 짓느냐에 따라 많이 또는 적게 거둘 수 있지만 씨를 적게 뿌리고 많이 거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지요. 

그러므로 현명한 농삿꾼은 많이 거두기 위해 많이 뿌립니다. 같은 논리로 오늘 전례와 독서는 선행에 대해 얘기하는데 이늘 오늘 축일을 지내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그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 성인 교회 재산보다 가난한 이들을 더 보물로 여겼고, 그래서 교회의 재산을 아낌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로마 교회를 성장케 했고 그래서 그의 축일을 기념이 아닌 축일로 지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 모범인 라우렌시오 성인에 비추어 우리는 씨를 얼마나 뿌리고 어떻게 뿌리는지 성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렇게 성찰할 때 라우렌시오 성인만큼 우리가 씨를 뿌리지 못함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왜 씨를 많이 뿌리지 못하느냐 그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까?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아서입니까? 내가 받지 않아서입니까? 

결론처럼 얘기하면 가진 것도 가진 것을 주려는 마음도 내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받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넘치게 주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지 않음은 하느님께 바라지 않고 내가 애써 얻으려 하기 때문이거나 하느님 것을 받아 나누려 하지 않고 내것을 내가 움켜쥐고 있으려 하기 때문이며, 하느님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을 사랑하며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보면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없이 사는 사람이 있고, 주거니 받거니를 많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 몇 푼에 벌벌 떠는 사람이 있고, 손이 큰 사람도 있는데 손이 큰만큼 주는 것도 많이 주지만 받는 것도 많이 받지요. 이는 주님께서 너희가 되어 주는 그 되로 받을 거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되가 있습니다. 그릇이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릇의 크고 작음이 선천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활발히 사랑을 하면서 그릇을 키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지요. 

작은 선행일지라도 선행을 하여 선이 내 안에 차는 기쁨을 맛보게 되고, 그것이 다른 물질적 선들을 소유한 것보다 더 기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선을 움켜쥐고 있기보다 그 선을 줌으로써 선으로 나를 채우는 다시 말해서 외적인 선보다 내적인 선을 소유하는 기쁨을 더 확대할 겁니다. 

이것은 가진 것은 없지만 선이 가득할 때의 기쁨과 행복을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마음이 악으로 가득했을 때의 그 고통과 불행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니 이 기쁨과 행복을 라우렌시오 성인에게서 배우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존재 소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 : 창조의 도구로 쓰이는 것

 

오늘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당시 교황청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황제가 재산을 다 가져오라고 했을 때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자신은 뜨거운 석쇠에 순교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밀알은 필연적으로 썩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생명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에서 창조자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르단강 계곡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곧고 훌륭히 자랐고 다른 하나는 볼품없었습니다. 두 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드디어 다 자란 두 나무는 잘려져 각자 필요한 곳으로 갔습니다. 곧고 잘 자란 나무는 정말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매일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볼품없었던 나무는 말 먹이통으로 쓰였습니다. 매일 더러운 음식을 받아내야만 하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밤에 한 아이가 구유 위에 놓였습니다. 아기가 놓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였습니다. 성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뻤습니다. 그 아기가 성인이 되었고 성전에서 이 성전이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영광을 받던 나무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자기 소원대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로마 군사들이 쳐들어와 성전을 완전히 허물어버렸습니다. 그 나무는 불타서 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구유를 들고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싼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이 지어졌고 그 볼품없는 구유는 성당 제단 밑에 모셔졌습니다. 2천 년이 흘렀지만, 그 볼품없었던 나무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이 지은 성전엔 하느님 법이 없었습니다. 공경을 받는 것을 즐기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여전히 피조물로 남은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소멸합니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해서입니다. 모든 존재는 쓰레기가 되어가고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구도 소멸할 것이고 태양도 소멸할 것입니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이고 지금 50억 년을 살았으니 이제 50억 년 남은 것입니다. 모든 별이 그렇듯 지구도 소멸해 가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의 열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다 빠져나가면 부스러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인간 때문에 먼저 사라질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갑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건물은 허물어지고 기계는 낡고 사람은 땅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땅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따라서 피조물의 위치에 있다면 누구든 소멸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모셨던 나무는 자신을 소멸하여 누군가에게 포근함을 선사하였습니다. 나를 죽여 타인에게 생명과 행복을 주는 일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창조자의 속성입니다. 사랑하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모기처럼 살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창조자의 것입니다. 사랑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해봅시다. 자동차는 가만히 놓아두면 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기름을 넣고 고치며 잘 사용하면 그 차는 아주 오래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협력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삽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농부는 그 삽을 소멸하도록 내버려 둘까요, 아니면 잘 보존할까요? 당연히 하나의 피조물이지만 자신의 창조 활동에 협조하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 활동을 하는 한 그 삽은 보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피조물과 창조자입니다. 모기와 예수입니다. 생존하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와 있는 자입니다. 사랑하면 그 본성상 창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존재하는 한 창조는 영원히 지속하고 그 창조가 지속하는 한 그 창조를 위해 쓰이는 도구들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창조’는 나의 에너지를 내어주는 것이기에 곧 ‘나의 죽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미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창조의 협력자가 됩시다. 어차피 다 죽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투자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영원히 살 수도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밀알과 같은 삶

 

남들이 보기에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던 형제님도 그렇지 않을까 싶더군요. 
 
이분은 전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지 옷도 낡은 체육복 차림이었고 머리는 산발이었습니다. 딱 봐도 ‘예술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분은 글을 쓰는 작가였습니다. 지금까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진 책을 쓰지 못했지만, 매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분과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돈은 없지만 즐겁게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지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인 싸움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또 대단한 명예나 부를 쫓지도 않습니다. 단지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매일 기쁘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걱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글만 써서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말한답니다. 혀를 차며 사람 구실을 못 하는 것처럼 말한답니다. 남에게 해도 끼치지 않는데, 그러면서도 자기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남들은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고백하시더군요. 
 
세상의 기준이 곧 행복의 기준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의 기준이 행복의 기준이 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예수님 스스로가 당신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성인성녀들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밀알과 같은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기희생을 통해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이를 위해 세상의 기준처럼 자기 사랑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이 부분은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배경을 이루는 셈족의 언어 관습에 따르면, ‘미워하다’가 ‘사랑하다’와 관련해서 쓰일 때에는 흔히 ‘덜 사랑하다’, ‘지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다’를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보다 주님의 기준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주님의 기준이 곧 행복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최고의 행복이란 나의 결함을 살펴 바르게 잡는 일이다.

- 괴테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주님

 

현재는 신학교 입학 후 군대 기간까지 포함해서 거의 10년이 되어야 사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아주 빨리 사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세례를 받고 주교품까지 받는데 최단 시간을 기록한 인물이 있더군요. 그 시간이 딱 일주일이었습니다. 바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멘토였던 성 암브로시오 성인이십니다. 
 
밀라노 지역의 집정관으로 왔다가 아리우스 이단과 가톨릭교회의 대립을 해결했고 이를 통해 비산자였던 그가 주교품까지 일사천리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원후 374년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교회의 틀이 완성되기 전이어서, 당시의 필요 때문에 암브로시오 성인께서 나타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활동은 늘 그때 가장 적합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이 역시 주님의 커다란 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도 주님께서는 활동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십자가의 걸림돌은 바로 우리자신이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하느님께서는 저마다 밀알 하나를 주셨다. 하나의 실천이 생명에 이르는 많은 열매가 된다. 신앙은 열매이며 신앙은 우리 자아의 죽음이다. 죽지않고서는 섬길 수 없고 죽지않고서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없다. 

십자가의 걸림돌은 바로 우리자신이다. 열매가 되는 십자가의 여정을 멈출 수는 없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뜨겁게 바라본다. 성체를 쪼개며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뜨겁게 만난다. 하느님을 향한 모든 죽음은 성 라우렌시오같이 뜨겁다. 뜨거운 밀알의 죽음이 곧 풍성한 열매가 된다.

열매는 눈물처럼 뜨겁다. 열매로 나가는 삶이 복음의 삶이다. 하나의 밀알도 하나의 열매도 모두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의 것이기에 내어드려야 한다. 죽는 밀알에서 하늘을 본다. 죽지않고서는 하늘을 보여줄 수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밀알이다. 죽음을 배우는 십자가이다. 이와같이 신앙은 밀알처럼 죽지 않고서는 결코 풍요로울 수 없는 십자가의 선물이다.

열매를 맺고 싶다. 열매를 맺는 길을 보여주신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다. 이것이 행복과 기쁨 그리고 자유의 열매이다. 열매를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시다. 열매를 맺는 하루가 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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