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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
21년 8월 5일 (목)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시비하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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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제1독서
민수 20장 1-13절
바위에서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그 무렵
1
이스라엘 자손들, 곧 온 공동체는 친 광야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백성은 카데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미르얌이 죽어 거기에 묻혔다.
2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갔다.
3
백성은 모세와 시비하면서 말하였다. “아, 우리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5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
6
모세와 아론은 공동체 앞을 떠나 만남의 천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너의 형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불러 모아라. 그런 다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이렇게 너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님 앞에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10
모세가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은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11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3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과 시비한 므리바의 물이다. 주님께서는 이 물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다.
화답송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어서 와 주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환성 올리세. 감사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세. 노래하며 그분께 환성 올리세.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어서 와 엎드려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로세.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나를 시험하였고,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았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복음
마태 16장 13-23절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영성체송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5일 (목)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5일 (목)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5일 (목)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예수님 따라 걷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신앙 고백이 이루어진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사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유다인들이 사는 가장 북쪽 지역입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 사건을 기점으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일정을 바꾸시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는 수난 여행을 시작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거짓 신이나 생명이 없는 우상들과 달리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 신앙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복음서에 두 번 나오는데, 이때의 교회는 건축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새롭게 불러 모으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교회’(Ecclesia)라는 말은 ‘밖으로’(ex)라는 단어와 ‘모으다’(clein)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불러 밖으로, 곧 당신에게로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 속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라고 파견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목숨을 다하는 애끊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부활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이 말씀은 ‘떠나라!’가 아니라 ‘내 뒤로 물러가라!’입니다. 예수님 뒤로 물러나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수난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돌대가리는 아닌지, 걸림돌은 아닌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오늘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시 불평을 터트립니다. 전에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이들은 하느님께 기도하면 될 것을 모세에게 또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에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을 하느님께 전하고 하느님께서는 바위를 쳐 물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 왜 바위를 쳐 물을 주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생각게 되는데 이내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위는 도저히 물이 나올 수 없는 곳이니 물은 모세나 자연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것임을 백성들로 하여금 분명히 알고 확고히 믿게 하기 위함이지요.
사실 샘 구멍을 쳐서 물이 나올지라도 하느님께서 물을 주시는 것이지만 그 경우 우리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라 샘이 물을 준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처럼 바위에서 물이 나오면 물을 주신 것은 하느님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비슷한 맥락으로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당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제자들에게 묻고, 이에 베드로 사도가 정확히 알고 대답하자 그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결코 알 수 있는 것인데 알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표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치 학교에서 꼴찌만 하는 친구가 풀어오라고 숙제로 내준 아주 어려운 문제를 풀어 가지고 오면 선생님이 그것은 네 머리로, 막말로 하면, 너같은 돌대가리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네가 푼 것이 아니라 누가 가르쳐 줘서 푼 거라고 함과 같지요.
그렇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돌대가리인 우리가 아는 것은 돌에서 물이 나오는 것처럼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지요.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정체는 악령들만 아는 것이었지요. 다시 말해서 영적인 존재만 아는 것이었지요.
그 외에 우리 인간에게 주님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주님의 세례 때와 내일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타볼산 위의 주님 변모 때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할 때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머리로 다 알 수 없는 것은 주님의 정체 뿐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신비이고, 하느님의 계획도 신비이고 섭리도 신비이며 주님의 십자가도 신비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전서 1장 23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걸림돌이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그리스도께는 그 신비를 모르는 베드로와 우리가 걸림돌이기에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이렇게 일갈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하느님의 일을 사람의 일처럼 생각하는 걸림돌이 아닌지, 아니 그보다 더 하느님의 일은 아예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돌대가리는 아닌지 성찰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은총의 잔디가 아무리 좋아도 교만의 잡풀을 뽑지 않으면?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알아봅니다. 이때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힘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니 교만해지지 마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아기가 부모가 없다면 자신이 인간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베드로는 교만해져서 구원자는 수난을 당해야 한다는 말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의견을 제시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내 생각이 하나의 의견입니다. 이것을 스스로 믿는다면 하느님 앞에서 사탄이 되어버립니다. 사탄도 그랬고 뱀을 믿었던 첫 조상들도 그랬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이래라저래라 의견을 드릴 수 있도록 교만해지면 안 될 것입니다. 옹기가 옹기장이에게 자신을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어떻게 따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만 성장시키다가는 이러한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증가할수록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하면 죄가 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순종’합니다.
한 번은 레오날드 우드(Leonard Wood) 경이 프랑스 왕을 방문했습니다. 왕은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으므로 다음 날 만찬에 초대한다는 기별을 보냈습니다. 레오날드 경은 다음 날 궁전으로 갔고, 한 홀에서 왕을 만났습니다. 프랑스 왕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갑게 그를 맞으며 말했습니다.
“레오날드 경, 나는 이곳에서 당신을 보게 되리라고는 정말 기대도 못 했소.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레오날드 경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초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었소. 하지만 경은 나의 초대에 아무런 응답도 보내지 않았잖소.”
비로소 사태를 이해한 레오날드 우드 경은 정중히 대답했습니다.
“왕의 초대에는 결코 가타부타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순종만 있을 뿐이죠.”
우리도 주님 앞에서 항상 이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왜 불순종했을까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감사의 봉헌’을 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불순종하게 되고 그러면 신앙은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순종할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감사하지 못하게 될까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언제 가장 감사하게 될까요? 추수철입니다. 열매를 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주님께서 주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돈과 배부름과 명예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하기 위해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감사가 나오지 않고 그러면 불순종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1918년, 미국 미네소타주 보베이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Eric Enstrom)입니다.
어느 날 아주 백발이 성성하고 세상사에 몹시 지쳐 보이는 야위고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보잘것없는 신발 먼지떨이를 팔러 왔습니다. 그 노인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몹시 시장했든지 미안하지만 차 한 잔 얻어 마시자 해서 빵과 스프를 조금 주었더니 테이블에 앉아 소박한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사인 엔스트롬 씨는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기도를 드리는 초라한 그 노인이 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엔스트롬 씨는 그 노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노인은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구나. 그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비록 그 노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사진을 보고 엔스트롬 씨의 딸, 로다 앤스트롬 나이버그도 큰 감동을 하여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감사기도’ 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유화작품 ‘은혜(The Grace)’입니다. 삶에 지친 노인이 빵 한 조각과 스프를 가지고도 감사기도를 드리는 이 이미지는 2002년 미네소타 주 사진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기도와 감사는 둘이 아닙니다. 사진작가는 가난한 노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잔디밭의 교만을 뽑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순종도 둘이 아닙니다. 하루에 어느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동안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사람 앞에서 당당한 것이 교만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교만한 것입니다.
제가 사는 영성관 앞쪽은 성지 땅입니다. 성지 땅이 워낙 넓어서 관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잔디밭에 잡풀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사무장님이 열심히 잔디를 깎았지만, 며칠 뒤엔 여전히 잡풀이 함께 올라와 있었습니다.
우리 영성도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교만의 잡풀이 믿음의 잔디를 뒤덮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전부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잔디와 함께 자라는 교만의 잡풀을 뽑는 시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물론이요,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도 기도가 없었기에 사탄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음을 기억합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개막했습니다. 인천에 살았던 저는 당연히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못했습니다. 평범한 외야플라이를 놓치고, 땅볼 타구를 가랑이 사이로 흘려보내고, 투수 앞 평범한 땅볼인데도 이상한 쪽으로 던져서 타자와 주자 모두를 살려주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결과는 15승 65패라는 프로야구 역대 최저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3년, 꼴찌팀 삼미가 2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30승을 올린 장명부 투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그마치 427이닝을 던졌습니다. 현재 규정 이닝이 144이닝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혹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뒤 장명부 투수의 성적은 시원찮았습니다.
야구를 딱 한 해만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미래가 없는 것처럼 미련하게 야구를 했다고 장명부 선수 본인이 생전에 후회했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많은 이가 지금 한순간만을 살 것처럼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 시간도 만만치 않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만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 등으로 말했지만,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정답을 이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답을 말하는 베드로를 보고서 이제는 말해줘도 되겠다 싶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해 이야기해줍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밀을 미리 말씀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한순간만을 바라보며 살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래를 보지 않으려는 베드로의 말은 예수님의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의 걸림돌인 사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한순간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모든 시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 탈무드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될 것은 꼭 있습니다.
어느 노작가의 자기 체험이 담긴 글을 읽었습니다. 50년 전, 이 노작가가 20대일 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불안한 감정이 밀려 들어와 죽을 것 같은 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혼자서 전철을 타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도 ‘마음 편히 먹으라’라는 말뿐, 어떤 조치도 없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이 증상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50년 전 당시에는 전혀 병명도 모른 상태에서 힘들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가는 자기에게 다가온 공황장애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첫째,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
둘째, 마음의 힘이라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
셋째, 나쁜 일이 생기거나 일이 잘 안 풀리는 시기가 이어져도,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이 별안간 찾아오기 위해 필요한 전단계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꼭 있습니다. 무조건 거부하고 피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대로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태 16,15)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대로 알고 계시지만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지금 여기 이곳에 함께 하시며 마음을 열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마음을 열어 뜨겁게 타오르게 하신다. 그리하여 삶 전체를 바꾸어 주신다. 살아계신 주님께 우리자신을 맡긴다. 구체적인 삶의 변화이다. 좋은 열매를 맺게하신다. 사라지지 않을 참된 사랑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썩어있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올바로 되돌려놓으시는 참된 구원자시다. 오늘도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따를수록 가까워지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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