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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8월 7일 (토)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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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

 

 

21년 8월 7일 (토)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모세는 백성에게,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약한 탓에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것이라며,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8월 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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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신명 6장 4-13절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10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을 너희에게 주시려고, 너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이 있고, 

11 
너희가 채우지 않았는데도 이미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들과, 너희가 파지 않았는데도 이미 파인 저수 동굴들과, 너희가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밭이 있다. 거기에서 너희가 마음껏 먹게 될 때, 

12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시옵니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시옵니다. 찬양하올 주님 불렀을 때, 저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었나이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 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 당신의 메시아에게 자애를 베푸신다. 저의 힘이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17장 14ㄴ-20절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7일 (토)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7일 (토)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7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이유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애원합니다. 그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가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여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라며 제자들의 불완전한 믿음을 상기시키시고, 나아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란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온전히 의존하는가?’ 아니면 ‘내 힘으로 하려 하는가?’의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실까? 여기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는 기도하고 시험을 보면 이상하게도 아는 문제가 나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게 이탈리아에서도 통할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첫 학기 첫 시험에 대비하여 45분 공부하고 15분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공부하였지만, 시험이 다가오자 불안감은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 제가 이 나이에 여기 로마까지 와서, 지은 지 400년도 넘는 건물 안에 갇혀 이게 뭐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친구 신부들은 지금 본당 신부로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저는 뭔가요. 이 나이에 시험 공부를 하려니 정말 죽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점차 편안해지며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왔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이곳으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유학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책임지십시오. 당신은 전능하신 분이시니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공부할 터이니 함께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난 뒤 시험 준비를 하였더니 꼭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지금 하느님의 힘에 온전히 의탁합니까? 아니면 내 힘으로만 하고자 합니까? .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쉐마 이스라엘 : 이스라엘은 들어라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오늘 신명기는 그 유명한 <쉐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은 들어라>이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을 이어 매일 모든 가정에서 읽는 말씀으로서 제일 중요한 계명이자 모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교육입니다. 

옛날 저의 집의 경우 저의 아버지가 집에서 신앙 교육을 시켰는데 매일 아침 여섯 시면 모두 일어나 조과와 교리 공부를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저녁 여섯 시도 마찬가지로 만과와 교리 공부를 하고 저녁 먹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식의 신앙 교육을 모든 가정에서 시키라는 것이 <쉐마 이스라엘>이고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어디서나 이 말씀대로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들은 매우 성사적입니다. 이 명령을 마음에 새기라고 한 다음 모든 시간과 모든 곳에서 이 말씀을 상기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우선 시간적으로 <언제나>입니다. 다음 공간적으로 <어디서나>입니다. 

그래서 언제고 기회만 되면 이 말씀을 듣게 하고, 손과 이마에도 그 표지를 붙이고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이 말씀을 써 놓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손과 이마에도 이 말씀을 붙이고 다니고, 집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보도록 문설주와 대문에도 적으라고 하니 이 말씀과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이 말씀에 힌트를 얻어 저는 수도원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름 아닌 화장실에도 성경 말씀이나 프란치스코의 말을 적어 놓은 거지요. 그랬더니 어떻게 화장실에 불경하게도 성경 말씀과 사부님 말씀을 적어 놓냐고 고루하게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장실에서 일 볼 때 거기서도 주님을 만나고, 거기서도 주님의 말씀을 읽는다면 그 일이 결코 속되지 않고 오히려 거룩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제가 처음 본당에 보좌 신부로 갔을 때 마침 첫 영성체 할 때였고, 그래서 제가 그 많은 아이들 찰고를 하게 되었는데 일일이 다 찰고를 할 수 없어서 전체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제일 중요한 질문, 하느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다 계시다고 모두 잘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그러면 화장실에도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두 패로 갈려 웅성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계시다면 우리가 어디서고 언제고 만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 일에서 주님을 만난다면 그 일은 어떤 일이건 성사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포르치운쿨라 행진 때 저와 같이 행진을 한 분들은 늘 묵주를 손에 들고 행진을 하였고 길거리에서 이런 분들을 자주 봅니다. 묵주를 들고 실제 기도를 하건말건 저는 이것이 모든 일을 성사화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어떻게 해서라도 주님 말씀을 늘 상기하라는 가르침을 오늘 신명기의 <쉐마 이스라엘>로부터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두려움 총량의 법칙: 세상에서 기죽지 않으려면

 

거룩한 변모 후에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의 믿음만으로는 쫓아내지 못하는 마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이 세상을 야단치시며 마귀에게 호통을 치시자 마귀가 나가고 아이가 나았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본에는 나와 있지만, 이번 성경에서 빠진 구절은 “그런 것은 기도와 단식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라고 마무리 지으십니다. 믿음을 키우는 것은 ‘기도와 단식’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것은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야단치신다는 것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마귀에게 호통은 치시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에 기가 죽는다면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는 마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짓누르듯 ‘두려움’으로 우리를 종살이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들의 위협에 꼼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지렁이처럼 밟아버리십니다. 

제가 보좌 신부 할 때도 본인 스스로 마귀 들렸다고 찾아온 자매가 있었습니다. 비를 홀딱 맞고 들어온 그 여인은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자신 안의 마귀가 이 성당에 들어가서 보좌 신부와 이야기 해 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성당에 혼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잠실에 사신다고 하셨나요?”

이렇게 제가 물으니 눈빛이 변하고 갈라지는 남자 목소리로 “내가 언제 잠실에 산다고 했어요. 목동에 산다고 했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순간 번개가 치는 것처럼 무서웠습니다. 

신학생 때 - 저는 마귀인 것으로 확신하는데 - 제가 혼자 기도하니 그놈이 귀에 대고 거친 숨소리를 냈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이놈이 나를 두렵게 만들어서 기도하지 못하게 하려는 구나!’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기도를 더 하고 그놈을 무시했더니 그날만 그러고 다시는 그런 소리를 내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기억을 살려서 저도 그 여자에게 “당신은 한 번 들으면 다 기억합니까?”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쪽 기운이 빠지며 “그건 아니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후부터는 온순해졌습니다. 마귀들이 우리를 짓누르려 하지만 정작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십니다. 내가 마귀나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께서 사신다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어디서 나올까요? 나의 모든 두려움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에서 나옵니다. 두려움도 총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 두려움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데 다 써버리면 마귀나 세상을 두려워할 어떤 두려움도 남지 않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친구와 둘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곳 조폭이 이쪽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떤 형님을 면회하기 위해 와서 우리 옆에 앉아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조폭들이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몰랐습니다. 보스는 아무 데나 술을 따르고 그러면 아래 조직원은 그것을 받아서 머리를 포장마차 밖으로 내밀고 마시고는 술잔을 놓았습니다. 

그 아래 조직원은 키도 작고 몸도 왜소하여 어디 그런 일을 할 것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모습을 보며 저는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었는데 그 조직원이 기분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밖으로 나와 집으로 갈 때 우리를 불러세웠습니다. 포장마차 안에서는 설설 기던 그 사람이 부르니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도 이 지역의 조폭인 줄 알며 담배를 권했습니다. 저는 담배를 태우지 못했지만, 담배를 태우며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 조직원은 자신의 모든 두려움을 조직 보스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힘을 믿고 밖으로 나오면 누구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모든 두려움을 봉헌한 이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두렵지 않으니 하느님의 힘을 입을 수 없고 그래서 마귀도, 세상도 두렵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의 모든 두려움을 봉헌하여 이 세상에서는 당당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의 모든 두려움을 봉헌하는 것이 ‘기도와 단식’을 통해 이뤄집니다.

전에 저희 본당에 계셨던 신부님이 미국에서 사목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귀가 들려 날뛰고 있다고 신자들이 신부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신부님은 그때 약간은 먹고 놀고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신자들이 불러서 가기는 하였는데 그 마귀가 “어이, 신부. 너나 잘 살아. 네가 뭐 하고 사는지 내가 다 말해볼까?”라고 하며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기분이 상하고 기가 죽었지만, 그것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사람을 가운데 두고 신자들을 빙 둘러앉게 한 다음 묵주기도를 바치게 했습니다. 처음에 비웃던 그 마귀가 1단 할 때는 땀을 흘리고, 2단 할 때는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3단 할 때는 괴로운 소리를 내고, 4단 할 때는 마지막 발악을 하더니, 5단 할 때 소리를 지르고 나갔다고 합니다. 

기도와 단식, 이것이 믿음이고 우리가 주님께 모든 두려움을 바친다는 표지입니다. 이렇게 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고 그러면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내가 기도할 시간을 빼앗기거나 육체의 유혹에 넘어가지나 않을까 하는 것에 둡시다. 나의 두려움을 주는 쪽이 내가 속한 쪽입니다. 그러면 두려움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이제 그분에게 속하게 됨을 믿게 되고 그러면 그분을 이길 수 없는 세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저희 형이 저에게 어떻게 사람들 많은 데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비법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이렇게 세 번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내 두려움을 다 소진하면 사람들 앞에서 느낄 두려움이 남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산을 옮길 정도로 힘이 있는 믿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계산해 보면, 가톨릭의 역사는 자그마치 2,000년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가톨릭이 가장 순수했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즉,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전체가 사랑의 실천에 온 힘을 기울였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순수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처음 박해를 받았던 300년 동안의 시간은 정말로 순수하게 주님의 뜻을 따른 시기였다고 합니다.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고, 가장 소중한 주님의 뜻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똘똘 뭉쳤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해 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순수하게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련되는 순간만이 주님을 따르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갖은 방해로 가득해서 어렵고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았던 때가 주님과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렵고 힘든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자기에게 벗어나기만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만 지나면 더 열심히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고통과 시련의 시간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병자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불 속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또한 어떤 사람도 고치지 못하기에 절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충분히 포기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기보다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예수님으로부터 커다란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산을 옮길 정도로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은 모두 다릅니다. 그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함께하십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만이 아닌, 기쁘고 행복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함께하십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함께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주님과의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새로운 시간 속에는 새로운 마음을 담아야 한다.

- 성 아우구스티노

 

 

바보, 멍청이 짓도 괜찮습니다.

 

얼마 전, ‘바보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보, 멍청이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음이 역사의 원동력이었음을 말합니다. 
 
바보짓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바보, 멍청이 짓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바보, 멍청이가 늘 역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틀려도 괜찮습니다. 
 
틀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보, 멍청이 짓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중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믿음은 진심을 회복하는 치유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마태 17, 17) 

믿음으로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모순을 보게된다. 그래서 믿음은 가장 좋은 주님의 은총이다. 우리를 살리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믿음은 삶의 결단을 요구한다. 

주님을 위한 삶의 결단이다. 주님을 위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믿음은 부질없는 자아에 묶여있지 않다. 비뚤어진 이기심을 버리고 참을 수 없는 교만을 비우게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주님께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진심을 회복하는 치유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치유는 신뢰와 의탁으로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바꾸어주신다. 주님의 뜻에 동의하는 믿음이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믿음이다. 거기에 온전함과 평화가 있다. 주님의 뜻을 온전히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다. 은총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기도로 응답하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진심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 사랑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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