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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8월 3일 (화)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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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

 

 

21년 8월 3일 (화)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미르얌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자, 주님께서는 진노하시며 미르얌을 악성 피부병에 걸리게 하십니다.

 

 

✠ 오늘 복음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다가 파도에 시달리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라고 소리를 질러 댑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8월 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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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민수 12장 1-13절

 

모세는 다른 예언자와 다르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그를 비방하느냐?.

 

그 무렵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가 아내로 맞아들인 그 에티오피아 여자 때문에 모세를 비방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주님께서 이 말을 들으셨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 


주님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르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셋은 만남의 천막으로 나오너라.” 그들 셋이 나오자, 


주님께서 구름 기둥 속에 내려오시어 천막 어귀에 서시고, 아론과 미르얌을 부르셨다. 그 둘이 나와 서자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님이 환시 속에서 나 자신을 그에게 알리고 꿈속에서 그에게 말할 것이다.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환시나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며 떠나가셨다. 

10 
구름이 천막 위에서 물러가자, 미르얌이 악성 피부병에 걸려 눈처럼 하얗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론이 몸을 돌려 미르얌을 보자, 과연 그 여자는 악성 피부병에 걸려 있었다. 

11 
아론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아, 나의 주인님,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여 저지른 죄의 값을 우리에게 지우지 마십시오. 

12 
미르얌을, 살이 반은 뭉그러진 채 모태에서 죽어 나온 아이처럼 저렇게 놓아두지 말아 주십시오.” 

13 
그러자 모세가 주님께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 죄악을 제가 알고 있사오며, 제 잘못이 언제나 제 앞에 있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잘못을 저지르고, 당신 눈앞에서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판결을 내리셔도 당신은 의로우시고, 심판을 내리셔도 당신은 떳떳하시리이다. 보소서, 저는 죄 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제 어미가 저를 배었나이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스승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14장 22-36절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물에빠져들기시작하자, “주님, 저를구해주십시오.” 하고소리를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35 
그러자 그곳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 주변 모든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병든 이들을 모두 그분께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3일 (화)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3일 (화)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3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왜 마음이 둘로 갈라졌느냐?

 

“유령이다!” 두려워 소리 지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얼른 나서서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물에 빠집니다. 왜 물에 빠지게 될까요? 성경은 베드로가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져 물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오너라.” 하시는 말씀을 듣고 배에서 내려 예수님께 향하던 베드로의 눈은 오로지 예수님만을 향하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과 함께 물결이 일어 그의 뺨을 때리는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이 아닌 거센 바람 쪽으로 눈을 돌렸을 것입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아, 내가 물 위를 걷고 있네…….’ 하며 예수님을 잊습니다. 갑자기 발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살려 주십니다. 물론 한마디 하시지요.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물 위를 걷던 베드로 사도가 거센 바람을 보고 물에 빠진 것처럼, ‘나도 사제로 살면서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보는 순간 유혹에 빠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내 안도의 한숨이 쉬어집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베드로 사도가 소리친 순간, 예수님께서는 바로 손을 잡아 구해 주셨습니다. ‘나도 예수님께 구해 달라고 소리치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물론 한 말씀 듣겠지만, 매달리기만 하면 그분께서 살려 주실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그 한 말씀은 “왜 의심하였느냐?”입니다. 이 말씀은 “왜 마음이 둘로 갈라졌느냐?”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삶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안심하지 말고 의심하라는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약하고 그래서 의심을 하는 베드로 사도가 남 얘기가 아니고 나라는 생각을 우리는 다 할 것입니다. 믿음이 강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없고 우리는 모두 믿으면서도 의심을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베드로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약하다고 하시고 그래서 의심을 한다고 꾸짖으시는데 우리도 믿음이 없지는 않고 약할 뿐이고 그래서 의심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이 약한 것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꾸짖음을 듣더라도 너무 자신에 대해 실망하거나 기죽거나 하지 말고 겸손하게 믿음이 없음을 인정하고 오늘 베드로처럼 믿음을 강화하는 도전이랄까 모험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베드로 사도가 왜 쓸데없이 그리고 무모하게 물 위를 걸으려고 하는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걷는 얘기는 다른 복음에는 없습니다. 이 얘기는 오늘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얘기인데 이 얘기를 마태오복음은 왜 집어넣고 베드로 사도는 가만이 있으면 편히 목적지까지 갈 터인데 국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왜 물 위를 걷고자 한 것일까요? 

그것은 객기나 무모함의 표현이 아니라 믿음의 시험을 하고자 한 것이고 믿음의 담금질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안주를 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도전을 마태오복음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 하는 겁니다. 

체력이 저절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단련을 통해 강화되는 것처럼 믿음도 시련이 없으면 단련되지 않고 강화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보지 않으면 바다에 빠지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그러니 풍파와 주님 사이에서 주님을 놓치지 않고 바라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고 풍파와 주님 사이에서 주님을 거듭 선택하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물에 빠지면 하느님이 구해주시나 내버려두시나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의심하며 시험하려 들지 말고 닥치는 시련 중에서 나의 믿음을 의심하며 시험해야겠습니다. 

나의 믿음에 안심하지 말고 의심하고 시험하라는 가르침을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평범해 지려는 마음을 참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물 위를 걷는 베드로’입니다. 여기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보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가 더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며 자신도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만일까요? 배 위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교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다 할 수 있고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삶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우리도 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보통 의사들처럼 살았다면 그 큰 믿음은 어떻게 드러날 수 있었을까요? 혹은 마더 데레사 성녀께서 평범한 수녀님으로 남기를 원했다면 지금 사랑의 선교회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2센트만 가지고 커다란 병원을 지으려 했습니다. 평범한 성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함을 거부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닮아가려 하는 우리 삶도 배 위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하기 위해 물에 빠져 창피를 당하는 두려움을 무릅쓸 수 있어야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평범함을 넘어서는 일이 ‘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님 옷자락 술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은 것처럼 나중에는 베드로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이 낫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병을 고치겠다고 무작정 안수를 주었다가 병이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다고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걷다가 두려움을 느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저는 이것 때문에 성당 내에서도 치유의 미사나 기도회가 많이 열려야 하고 사제들도 할 수 있다고 믿고 기름을 바르고 안수를 해 주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치유되지 않아서 받을 수 있는 창피를 이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때의 일입니다. 일본의 해군 장교 ‘가와가미 기이치’는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와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군인들을 보면 “저것들 때문에 우리가 패전했다.”라고 손가락질하며 노려보는 사람들 때문에 매일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고통의 시절을 보내다가 급기야 그는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어 마치 식물인간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인 ‘호치라’ 씨의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호치라 씨는 기이치 씨에게 물었습니다. 

“기이치 선생, 낫고 싶으세요?”

“예, 낫고 싶죠.”

“그럼 제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요?”

“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저를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매일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했던 기이치 장교는 갑자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니 입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루에 일만 번씩 하셔야 합니다. 감사하려는 마음만이 당신의 마비된 몸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병석에서 자신 병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감사라는 말을 되뇌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사의 말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분노와 적개심이 사라지고 마음도 평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굴도 평화로워지고 표현도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를 대하는 가족들도 게이치 씨의 변화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막내아들이 감나무에 홍시가 발갛게 익은 것을 보고 ‘저 홍시를 아버지께 갖다 드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들은 잘 익은 홍시 두 개를 따서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감 드세요.”

그때 아버지 기이치 씨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앗, 이럴 수가!”

신기하게도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던 손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아들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손에서 일어난 이 기적은 그 이후 팔, 다리, 몸 구석구석까지 이어졌습니다. 경직되었던 그의 몸은 마치 마법이 풀리듯 감사의 주문으로 풀리고 있었습니다.

기이치 씨가 베드로였다면 호치라 씨는 예수님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호치라 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는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신이 하는 것은 그도 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낫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말을 기이치 씨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그도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군인 장교가 그런 말을 믿다니요. 그러나 믿었고 물 위를 걸었고 드디어 의사처럼 건강해졌습니다. 

이렇듯 믿으면 평범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늘의 사람처럼 살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겠지만 믿음이 그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들고 하늘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특별한 사람이 됩니다. 

두 발로 걷는 개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본인이 인간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연습을 하여 두 발로 걷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평범함을 넘어서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임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 사람이 그럴 수 없다고 비웃는 사람들의 모습과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배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사람들입니다. 

믿는다면 평범함을 거부하십시오. 믿으면 저절로 평범함에서 벗어납니다. 평범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참지 마십시오. 골을 넣고 항상 성호를 긋고 하느님께 감사를 표하는 메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가 예상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더는 제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은 겸손 없이는 불가능 해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한,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황제가 진시황제입니다. 진시황제는 스스로 ‘하늘 아래 최초의 황제’라 칭하면서 자신의 왕조가 1만 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 예언했답니다. 그러면서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사상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했습니다. 이를 분서갱유라고 하지요. 
 
무엇보다 그는 불로장생을 꿈꾸었고, 그래서 ‘진사’라는 붉은 광석에서 얻은 붉은 알약을 불로장생약으로 알고 복용했습니다.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지만 진시황제의 통치는 불과 10년뿐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나라는 그가 죽은 후 4년간 내전을 겪다가 한나라에 권력을 빼앗기고 맙니다. 
 
진시황제가 먹은 불로장생약은 액체 상태의 수은이 추출되는 일종의 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종 질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엄청난 고통 속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가 생각한 대로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예언도 하나같이 틀렸고, 그거 하고자 했던 것 역시 모두 엉터리였습니다. 자신은 대단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그 착각이 많은 이에게 아픔과 상처만을 전달할 뿐이었습니다. 
 
역사의 한 장면을 보면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겸손이 답이었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자만이 아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겸손하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이 목격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 14,28)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만나자 두려움이 생겨서 물속에 빠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구해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31)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믿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역부족과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절망에 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베드로가 물 위를 잠시라도 걸을 수 있도록 합니다. 불가능이 가능케 하는 능력으로 바뀝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믿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은 겸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앞서 진시황제의 교만이 그를 절망으로 이끌었듯이,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께서 가시는 방향과 정반대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믿음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이란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리의 기도를 요구하시는 하느님

 

사제가 되고 나서 사람들이 제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안수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새 사제라서 그럴 것으로 생각하며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자매님이 겉으로 봐도 아픈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안수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혹시 새 사제의 안수를 받고서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느님이 기도해주시니 곧바로 나을 거야.” 
 
아파하는 이 아이보다도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었을 저인데, 저를 향해 ‘하느님’이라는 호칭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엄청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죄인인 내가 감히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제는 기도해주는 사람이다.’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기도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를 해줄 분입니다. 죄인인 저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더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부족한 우리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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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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