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8주일 -
21년 8월 1일 (일)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십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며, 당신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당신을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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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제1독서
탈출 16장 2-4절, 12-15절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그 무렵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화답송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우리가 이미 들어 아는 것을,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을 전하리라.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권능을, 다가올 세대에게 들려주려 하노라.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그분은 높은 구름에 명하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어, 만나를 비처럼 내려 그들에게 먹이시고 하늘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네.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천사들의 빵을 사람이 먹었네. 주님이 양식을 넉넉히 보내셨네. 당신의 오른팔이 마련하신 이 산으로, 당신의 거룩한 영토로 그들을 데려오셨네.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제2독서
에페 4장 17절, 20-24절
여러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17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20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압니다.
22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23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24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알렐루야!
복음
요한 6장 24-35절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24
군중은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영성체송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생명의 빵이십니다. 그 빵을 받아 모시는 이는 결코 배고프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8월 1일 (일)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8월 1일 (일)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8월 1일 (일)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군중이 예수님을 애타게 찾는 이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 끝자락 이방인의 땅으로 가십니다. 갈릴래아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표징을 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렇게 모여드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병자가 치유되는 기적과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은 이제 예수님을 모셔다 임금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를 알게 된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에서 카파르나움으로 가십니다. 이튿날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군중은 십육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카파르나움까지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군중이 예수님을 애타게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빵을 원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배불리 먹여 주시고, 자신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며, 그것을 확신하게 해 주는 더 많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군중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자가 되고, 시험에 합격하고, 성공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빵을 잘 만드는 메시아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빵에서 벗어나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해 봅시다. 나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입니다. 나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람을 살리는 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처럼 이웃과 세상을 사랑하는 이가 된다면, 여러분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먼저 찾아야 할 유일한 것, 양식.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의미로 알아들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좇아서 오기는 하였지만, 기적의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육체적으로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신기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기적에서 ‘표징’을 본다는 의미는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믿는 것을 넘어서서 그 기적을 보여주는 참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표징으로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표징을 보았다면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의 빵’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에 대해 물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주시는 양식임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내가 아버지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그리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을 찾고 따르게 됩니다.
요즘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부분 사람은 행동부터 하라고 합니다. 이불을 개고 집 정리부터 하면 점점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이란 유튜브 채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이것부터 하세요’에서 어떤 초대손님이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군대 제대하고 자살을 생각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제 꿈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계획하고 전역하고 제 꿈을 이루려고 하다 보니까,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노력은 별로 안 하고 꿈만 꿔 왔던 것입니다. 1년 정도 도전하다가 포기를 했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왜 살아야 하나 싶어서 좌절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뭐 해야 하나, 내일모레는 뭐 해야 하나, 이렇게 살다 보니까 죽는 게 편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때 생각나던 게 가족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죽으면 그만인데 남은 어머니 아버지 동생은 절망적일 거 아니에요. 저 하나 때문에. 그러면서 자살 생각은 접고 어떻게 살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후 6개월 동안 술만 마셨습니다. 술을 마시며 내 생각을 노트에 적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뭘 해야 좋을지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돈 벌고 싶다.’라는 결과물만 나왔습니다.
그러며 든 생각은 ‘나를 먼저 알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나는 (무엇)이다.’라는 것을 20개 정도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알게 되니까 행동에 옮길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아버지 출근하면 술 마시고, 집에 계실 때는 잠만 잤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니까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오르더라고요.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이분의 말을 정리하자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니 먼저 자신을 잘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려면 양식부터 찾아야 합니다. 양식은 부모가 주는 것입니다. 양식을 찾으면 부모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게을러지지도 못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양식은 그냥 음식이 아닙니다. 사랑이 담긴 음식입니다. 사랑이 담긴 음식 안에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뜻이 들어있습니다.
루마니아의 ‘요람’이란 국가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온전히 성장할 수 없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발육도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먹는 음식에서 표징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에서 표징을 발견한다는 말은 음식과 섞여 있는 그것을 주는 이의 ‘사랑’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발견했다면 그 사랑 안에는 반드시 그것을 주는 이의 ‘뜻’이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일반 가정에서 아이들이 받아먹는 음식에는 부모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 음식에서 표징을 본다는 말은 그 양식을 주는 이의 ‘뜻’을 알아듣는다는 뜻입니다. 그 뜻이 그 아이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모든 양식에는 그것을 주는 이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요람’이라는 보육원에서 자라는 이들은 그 ‘뜻’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며 자랐기에 걸어야 할 때 걷지 못하고 말을 해야 할 때 옹알이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 양식을 먹으며 ‘오늘은 어떤 뜻을 따라야 하는가?’라는 것을 스스로 질문하고 옹알이와 걸음마를 시작하게 됩니다. 양식이 부모님의 사랑임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버지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믿게 된다면 우리는 매일 아버지의 뜻을 묻고 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는 주인에게 양식을 먹는 한 뭐 해야 하며 살아야 할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밥을 주는 주인의 뜻을 따라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양식을 먹는 것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먹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몇 년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개들도 있습니다. 양식이 그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부모가 주는 음식은 더는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뜻대로 성장해 버렸고 놀면서 밥을 먹는 자녀에게 음식을 주며 사랑이 담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줄어들면 정체성도, 뜻도 희미해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으며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대로 살면 됩니다. 양식이 부모가 주는 것임을 믿게 된다면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내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두 개만 아침에 해치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독서가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고 기도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양식을 통해 아버지를 찾은 사람들이 자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내일 일어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주님께 묻는 것입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을 수 있을 때 그것을 죽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절로 생기는 뜻은 없습니다. 내 안에서 뭘 해야 하는지, 그 뜻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옵니다. 내 안에 있는 뜻은 그저 내가 생존하면 된다는 욕구와 그동안 타인들에 의해 주입되어온 것들뿐입니다.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욕구는 ‘양식’으로 들어옵니다. 사랑이 담긴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식은 부모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큰 사랑을 지닌 양식을 찾아야만 합니다. 양식을 먹으며 그것을 주는 이 때문에 사는 게 인간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사랑이 담긴 양식, 그것이 성체입니다. 성체를 먹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해집니다.
성체를 영하는 이들은 하루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타인에게 묻지 않습니다. 잠들기 전에 하느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뜻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2~3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며 살아갑니다.
양식을 먹는 사람은 아침에 ‘개구리 두 마리’(오늘 실천해야 할 주님 뜻)를 삼킬 힘이 있습니다. 내일 하느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명확하게 해야 할 일이 나오지 않는다면 성체를 양식으로 영한 게 아닙니다.
아기는 부모에게 양식을 먹으며 시키지 않아도 옹알이와 걸음마 연습을 합니다.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모른다면 먼저 그 뜻이 들어있는 양식을 찾으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
예전에는 모르는 곳에 갈 때 지도를 보며 길을 공부해야 했지만, 이제는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척척 안내해주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미리 찾아볼 필요가 없어 운전하는 것도 쉬워졌고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순간 저의 운전이 무척 급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 몇 초라도 빨리 가려고 ‘최단 시간 경로’를 찾고 있습니다.
우연히 제가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에서 ‘운전 습관’이라는 항목을 발견했습니다. 저의 운전 습관 점수는 100점 만점에 31점이었습니다. 고속, 급가속과 급감속으로 인해 이렇게 점수가 낮았습니다.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지난 4월부터 철저하게 교통 법규를 지키면서 운전했습니다. 차선도 자주 변경하지 않고, 과속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급감속과 급가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조금씩 올라가 94점이라는 높은 점수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운전하다 보니 조금 늦게 도착하기는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왜 앞 차는 잘 안 가는 거야?’, ‘제대로 운전 좀 하지?’라는 불평을 마음속으로 하곤 했지만, 이제는 여유를 가지면서 오히려 운전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조금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이익을 좇다 보니 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도 그런 적이 너무 많지 않을까요? 순간의 만족, 약간의 이익에 신경 쓰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빵의 기적을 목격한 후에 예수님의 권능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중요한 의미는 깨닫지 못하지요. 단순히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만을 바라보면서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빵을 먹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빵을 많게 하신 분을 보고 열광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 담긴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바로 주님의 일에 철저하게 협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을 강조하신 주님의 일에 함께하면서,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약간의 이익에 매달리기보다, 주님께서 주시는 더 큰 이익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위대한 인간은 위대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위대하게 성장할 뿐이다.
- 돈 비토 콜레오네
배신의 아이콘.
군대에서 봤던 연인이 생각납니다. 제 후임병 이야기입니다. 30개월 군 생활 동안 이 연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만났습니다. 여자 친구가 매주 면회를 와서 만났던 것이지요. 이 후임병은 제가 제대할 때까지 이렇게 사랑을 키우면서 아름다운 만남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대한 후 사회에서 우연히 이 후임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후임병 역시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자 친구가 생각나서 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군대 3년 기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사랑인데 제대 후에 한 달 만에 헤어졌다고 합니다.
군 복무 중에는 매일 볼 수가 없기에 면회 때의 만남 자체가 감사했고 그래서 상대방이 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 후에는 매일 만나다 보니 상대의 부정적 모습이 보이면서 싸움이 잦아졌고 그래서 결국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꾸준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꾸준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주님께서 이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믿음은 실천이다.
은총의 8월이 시작되었다. 매순간이 은총이며 믿음이다. 성체성사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믿음은 하느님의 힘이며 생명이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삶은 언제나 목마르다. 믿음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마음이 목마른 우리들 삶이다. 마음이 목마른 것은 마음에 있어야 할 믿음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뿐이다. 믿음은 빵이 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빵처럼 믿음을 필요로한다. 믿음은 실천이다. 주님의 빵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실천으로 우리를 살리신다.
예수님의 한 생애가 오늘도 빵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믿음은 빵을 모시는 은총이다. 목마른 우리를 위해 믿음의 빵으로 오시는 믿음의 주님이시다. 믿음은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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