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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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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2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사무 1,1-4.11-12.19.23-2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 쓰러졌는가?

그 무렵

1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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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3,20-21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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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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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4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01

✚ 강론시작 08:1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흔들리는 말들 속에서 중심 잡기

소문이라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소문이 퍼지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무슨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예수님께 치유를 받고 위로받은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냈을 리는 없습니다.

마귀 우두머리에게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킨다며 선동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병자를 치유한다며 평소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당시 지도자라는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소문은 예수님의 친척들이 듣기에 거북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나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천 년 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도 소문만을 믿어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고집과 지나친 신념이 우리를 편견에 빠뜨립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고 하고, 그 안에 있는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편견에 갇혀 단죄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향할 때,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어떤 소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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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윗과 사울을 통해 배우는 것

살다 보면 그를 화나게 할 의도 없이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한 얘기인데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사람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화를 내고 상처받는 사람이 있고 말한 나는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를 때가 있지요.

그것은 그가 내가 한 말과 어떤 연관이 있기 때문이고, 뒤집어 얘기하면 어떤 식으로든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고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왜 반응하겠습니까?

내가 말한 것이 바로 그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거나 전에 받은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는데 나의 말이나 행위가 그 덧나 있는 상처를 건드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이 한 것으로 인해 원수지간이 될 수 있는데도,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고 원수로 여기며 복수하려고 드는데도, 전혀 상처받지도 않고 원수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다윗은 어찌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오늘 어찌 오히려 슬퍼할 수 있는 겁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어제 말씀드렸듯이 사울은 다윗을 보고 있지만 다윗은 하느님께 치고 올라가 하느님으로부터 사울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세상을 보면 부질없어 보이듯 하늘에서 보면 아웅다웅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법이지요. 높이 나는 새가 산과 강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괜히 싸우지 않습니다. 이미 행복한데 괜히 싸울 이유가 없고 싸워서 자기 행복을 자기가 깰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누가 나에게 원수가 되는 것은 그가 한 일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거나 사울에게 다윗처럼 그의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이 무슨 짓을 해도 하느님 때문에 자기는 너무 행복하기에 싸울 이유도 원수로 여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죽자사자 덤비는 사울이 가련할 뿐이고, 그래서 오늘 허망하게 사울이 죽자 슬퍼합니다. 한 나라의 임금인 그가 채신머리도 없이 싸우자는 것이 가련했고,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이가 그러다 죽은 것이 그렇게 슬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영적인 권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원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해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럴 수 있는 사람 곧 하느님으로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오늘 사울과 다윗을 통해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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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에게 미치신 분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절로 되어 있는 짧은 본문입니다.

<첫 번째 절>(20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들어가고 섞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배추벌레가 배추를 먹으면서 배추색깔로 변해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절>(21절)에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여기에서, “붙잡다”(krateo)라는 말은 ‘손에 쥐다, 제지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친척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러 나섰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자신들의 손에 쥐고 조정하고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당신을 꼭 붙들고 반박을 하자”(마르 8,32 참조),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마르 8,33)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려고 붙잡는 이는 그가 비록 제자라 하더라도, 혹은 친척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의 행위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신 것이지, ‘나를 붙잡으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뿐, 붙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자기의 뜻으로 예수님을 붙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서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요한 20,17)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예수님께 붙들린 사람’,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앙드레 루프), 곧 우리가 하느님을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제지하시도록 승복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제지는 우리의 굴복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붙드셨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매달려 있는 이들인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 ‘붙들려서’ 사로잡혀 따라가고 있는 이들입니다.

사실,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선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뒤 구절에서 율법학자들과 사람들은 그분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마르 3,22),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마르 3,30)고 말합니다. 또 나중에, 사도 바오로도에게 총독 페스투스는 “바오로, 당신은 미쳤구려.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치고 말았군.”(사도 26,24)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런 맥락에서, 그분의 제자들도 ‘미친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치신 분’ 이십니다. 아버지께 사로잡힌, ‘아버지께 미치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내가 배신하고 무관심할 때마저도, 언제나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진정,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오늘도 저를 미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3,21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주님!
당신께 사로잡힌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잡히게 하소서.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사로잡혀 살게 하소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에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조정에 승복하여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제가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또 아무런 문제 없이 신부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많은 갈등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음이 미친 듯이 요동칠 때, 바다에 가서 하염없이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곤 했었지요. 잠시도 쉬지 않고 몸부림치는 파도의 모습에, 저도 저렇게 몸부림쳐야 함을 깨닫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태풍이 온다고 하면, 피해를 줄이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태풍은 왜 와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태풍은 필연적인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풍으로 바다를 뒤집어 휘젓기에 생태계가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청소도 하고, 순환도 되고, 이를 위해 커다란 바람이 바닷속 저 아래까지 힘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태풍이 없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 때, 몸부림쳐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 아닌, 실제 도움이 되는 움직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움직여야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편하고 쉬운 일상 안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과 시련 가운데에서 주님을 만나고 진하게 체험했다는 분을 많이 보게 됩니다. 분명히 어렵고 힘든 상황인데도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몸부림치면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따르려는 마음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편하고 쉬운 길이 행복의 길인 것처럼 보이고, 주님과 함께하고 그 뜻을 따르려는 것보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삶이 지혜로운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길이 진짜 행복의 길이 아님을,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십니다.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마르 3,20)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정도로 커다란 열정으로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열정입니까? 예수님 자기를 위한 열정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열정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열정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할 가족조차 방해하고 있음을 “붙잡으러 나섰다.”(마르 3,21)라는 표현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미쳤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합니다.  

가족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자기의 좁은 생각과 선입견으로, 하느님의 일을 미친 짓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그런 좁은 식견으로 하느님의 일을 잘못 판단하고,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몸부림치며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만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알베르 카뮤).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랑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오해받는 날을 아프게 반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따르라 부르셨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한 만큼만 선택하여 따릅니다. 삶의 진실성은 말의 설득력에 있지 않고, 삶 안에서 끝까지 견뎌내는 충실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불렸던 예수님께서 오히려 우리를 살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해를 애써 풀려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드러내거나 변호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끌려다닐수록 복음은 방향을 잃고, 하느님의 뜻에 머무를수록 시간은 침묵의 증언자가 됩니다.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 한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담아내기에는 우리의 마음은 너무 협소합니다. ‘미쳤다’는 말은 예수님의 삶을 이해한 표현이 아니라, 더 이상 이해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행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삶을 움직이던 자비의 근원을 우리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은 오해받으셨습니다. 그분처럼 살 수 없도록 너무 정상적이 되어버린 시대의 역설 속에서, 끝까지 사랑하는 쪽이 진정한 복음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충실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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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0편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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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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