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사무 24,3-21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 복음
마르 3,13-19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사무 24,3-21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3,13-19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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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평범한 하루가 사명이 되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사도’라 이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마귀들을 쫓아낼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함께하시며, 권한을 주시면서 파견하신 까닭은 아버지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곧 구원 사명을 완수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특별히 사제나 수도자에게만 주어지는 소명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부름을 받습니다. 저마다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흠 없기 때문에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 사랑과 은총으로 채워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 하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배우고, 세상에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는 삶 속에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하며, 그분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사랑과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절망과 두려움에 갇힌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를 전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마음을 다하여 응답하고, 그 응답을 세상에서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께까지 치고 올라가야!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저는 다윗과 비교하면서 사울을 보겠습니다. 물론 사울과 비교하며 다윗을 보기도 하겠습니다. 첫째는 하느님께로 치고 올라가는 것 문제입니다. 인간 간의 문제가 있을 때 하느님께까지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미성숙하고 그래서 인간적인 차원에 머물 때 우리는 하느님께까지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하느님 안에 머물지 못하며 그러기에 계속 관심과 시선이 문제로 삼는 그 인간을 향하게 되고 쫓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은 사울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하느님께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고작 개나 쫓고 벼룩이나 쫓으면 되겠습니까? 자기가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이라는 거룩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하느님 뜻을 찾지 시시하게 그리고 초라하게 인간의 뒤나 쫓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그러므로 어제 말씀드렸듯이 화가 나더라도 인간에게 화를 내지 말고 그 화를 하느님께까지 가지고 올라가 기도하는 것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고 하느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다윗은 훌륭합니다. 임금이고 나이 많은 사울보다 성숙합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사울이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이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자기를 중심으로 나를 죽이려는 자나 적대자로 보지 않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이로 보고 있습니다. 사울은 밑에서 노는데 다윗은 위에서 노는 것이며 그래서 고상하고 성숙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또 다른 측면에서 보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어제 사울은 한 가지 약속 곧 “주님이 살아계시는 한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사울은 요나탄에게 약속했지요. 그런데 어제 그리 약속했는데 오늘 다윗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을 죽여야겠다고 했을 때 주님께서 그 안에서 살아계시지 않게 됐고, 반대로 주님께서 살아계시지 않을 때 사울은 다시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든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윗보다 사울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기보다 사울처럼 많이 합니다.
시선을 하느님께 두고 하느님 안에 머물기도 하다가 이내 인간에게 시선을 돌리고, 하느님 안에 머물기에 하느님께서도 내 안에 살아계시다가도 인간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이내 죽어계시고는 하잖습니까? 이런 우리 자신에 얼마나 깨어있어야 하는지, 살아계신 하느님께 얼마나 정신 차리고 깨어있어야 하는지 명심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마르 3,13)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원하신다’는 것은 성경에서 ‘사랑하신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가까이’라는 말은 [교회법](573조 1항)에서 ‘축성생활자’를 지칭할 때, 표현한 말마디입니다. 곧 “축성생활은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는 신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성소는 이토록 당신이 원하신 것이요, 사랑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분께 나아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른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응답한 이의 삶이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이는 대통령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대통령이 부여한 일을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하느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복음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이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열 두 부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을 갱신하고, 신약의 새로운 백성을 선포하십니다.
‘세우다’란 말의 원어의 뜻은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새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만들어지고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둘을 “사도”라 부르십니다. 그러니 결국, 이 “열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곧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제자’(μαθετεσ)라는 의미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다니는 “사도”(αποστολοσ)라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자요 사도인 공동체에 어떻게 속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선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 입니다. 곧 제자와 사도의 신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지내되, 누구와 함께 지내느냐?’ 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지낸다.’는 것은 ‘물들어 간다. 섞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곧 악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악에 물들고 선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선에 물들어가듯,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 하느님이 되어 갑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되어 간다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 나르는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가? 나 자신인가? 예수님인가?”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3,14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분명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고
당신 뜻 안에 살게 하소서.
당신 뜻의 실천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고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사실과 의견 그리고 해석의 경계를 구분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학으로 증명된 것은 모두 사실일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과학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에 우려를 보냅니다.
커피를 생각해 보세요. 커피가 몸에 좋다는 말이 많습니다. 당뇨, 파킨슨, 알츠하이머, 간질환, 뇌졸중 등 질병 위험감소에 좋다고 합니다. 또한 풍부한 항산화 성분으로 세포 손상을 막고 노화를 방지한다고 합니다. 집중력 향상과 피로 해소 효과도 있고,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해서 운동 능력도 향상됩니다. 우울감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거의 만병통치약입니다. 그러나 밝혀진 나쁜 점도 많습니다. 불면증을 가져올 수 있으며, 카페인이 있어서 민감한 사람을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위산 분비를 촉진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철분 흡수를 방해해서 영양소 흡수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독이나 금단 현상도 있습니다.
좋은 점, 나쁜 점 모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적당히’는 과연 과학적일까요? 실험과 연구로 얻은 결과도 결코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에 절대적인 믿음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것에 참 진리가 있지 않습니다. 참 진리는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주님에게만 둬야 합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과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보면 산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산은 단순히 지리적인 위치가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과 계시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장소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이스라엘 백성을 형성했듯이, 산 위에서 ‘새로운 이스라엘(교회)’을 형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제자들의 자질이나 능력이 뛰어나서 뽑힌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의 주도권은 철저히 예수님의 자유로운 의지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공로보다 무상으로 주어지는 은총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즉, 엘리트들의 모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셔서 부르신 부족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지내게 하시고, 또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면서 변화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엘리트 의식을 갖습니다. 자기의 특별한 능력과 재주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내세우는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비교하면 너무나 보잘것없지 않습니까?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시는 무상의 은총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행복에 책임을 질 것. 그리고 그 행복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말 것(로이 T.베넷).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를 앞세워 보내시기보다 먼저 곁에 머무르라 부르십니다. 주님과 함께 머무는 이 시간은 삶으로 익어 가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사도의 삶은 멀리 나아가는 데서 시작되지 않고, 주님 곁에 머무는 데서 탄생합니다.
살아 있는 관계 안에서 사람은 변화됩니다. 참된 변화는 앞서 나아가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머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따로 떼어 놓인 행위가 아니라, 삶 한가운데서 함께 살아내는 생활입니다.
파견은 바깥세상을 향한 이동이기 전에 내면의 중심을 되찾는 여정입니다. 중심이 바로 설 때, 삶 전체가 이미 사명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머무는 이 순간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가장 깊은 기도가 됩니다. 참된 가르침은 말을 앞세우지 않고, 스승과 함께 살아낸 삶 속에서 기쁨으로 전해집니다. 사명보다 관계가 먼저입니다. 관계에서 태어난 사명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명 그 자체가 되어 가는 사람을 빚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삶의 중심을 조용히 당신께로 옮기십니다. 주님 곁에 머무는 이 시간이, 이미 우리 삶의 가장 좋은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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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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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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