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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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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사무 8,4-7.10-22ㄱ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복음
    마르 2,1-12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사무 8,4-7.10-22ㄱ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여러분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무렵

4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5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6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10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11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12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13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14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15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16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17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18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19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20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 사무엘은 백성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대로 주님께 아뢰었다.

22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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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2,1-1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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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6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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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치유는 함께 믿을 때 시작된다.

발 디딜 틈 없이 예수님을 에워싼 군중 가운데 네 사람이 어떤 중풍 병자를 들것에 눕혀 데려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벗겨서 그를 내려보냅니다. 이는 병을 낫게 하려는 간절함을 넘어, ‘예수님께 보이기만 하면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중풍 병자를 위하여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랑에 담긴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시면서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과 함께 영혼도 낫게 해 주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중풍 병자와 같이 일어서기도 힘든 순간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들것에 싣고 지붕을 벗겨서라도 우리를 주님께 데려다줄 믿음의 친구들, 곧 신앙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군가에게 믿음의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그리스도의 벗이 되어 주십시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배려하며 참된 우정을 실천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불신 속에서 편을 가르며 살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과 함께 은총의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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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인간을 하느님처럼 믿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네 임금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조릅니다 만군의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는 사무엘에게 이는 개탄스럽고, 그래서 결코 들어줘서는 아니 되는 요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의외로 들어주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만군의 하느님을 배척했으며, 그래서 전투에서 두 번 패배한 바 있고 실은 이때 만군의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을 자기들의 지배자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때 이스라엘만 그런 것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그런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그러고 훨씬 더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우리도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도 새로운 지도자를 뽑을 때마다 실망하거나 희망을 겁니다.

그때마다 저는 실망하지 말라고 하고 특히 희망을 거는 분에게 희망을 그리 크게 걸지 말라고 합니다. 저의 인간적인 지론도 그렇고 신앙적인 지론도 그런데 사람을 하느님처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처럼 인간이 해줄 거라고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시다시피 인간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체험을 바탕으로 믿기로 선택했음을 여러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그런데 하느님처럼 믿는 것은 하느님만 믿어야 하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믿어야 하며 그것은 믿어주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고 믿어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하느님처럼 믿음을 주고 믿음이 가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그 정도로서 곧 그 이상이 아닌 존재로서 믿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기대와 희망을 언제나 배신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50의 선과 50의 악을 지닌 존재로 믿으면 잘 믿는 것이고, 50의 능력과 50의 불능의 존재라고 믿으면 잘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데도 어떤 인간은 정의로운 지도자일 것이라고 믿고, 어떤 인간은 우리를 잘 살게 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뽑는데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며 지금 대통령도 그럴 것이기에 크게 믿을 것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만 믿을 수 있는 분인데 왜 인간은 하느님 대신 인간을 자기의 지도자로 삼으려고 하고 하느님은 배척하는 겁니까? 그것은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고, 오히려 우리가 절대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믿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하거나 아예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인간을 우리 지도자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건대 인간을 하느님처럼 희망을 걸고 믿지 말 것이고, 오직 하느님에게만 희망을 걸고 믿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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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십자가는 우리의 들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선언되었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죄의 용서’를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사실 앞에, 율법학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말합니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유다인은 예로부터 죄의 용서를 하느님의 고유 권한으로 여겼습니다(탈출 37,4;이사 43,25;44,22). 그러니 결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

그리고 그 증거로 중풍병자를 치유하십니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마르 2,11-12)

이는 ‘죄를 용서 받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치유 받은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지니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상처는 제거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치유 받았음을 보여주는 표지’인 까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라는 상처를 ‘하느님 백성의 표지’로 지니고 다녔듯이, 우리는 당신의 자녀라는 표시로 영광의 그 상처를 지니고 다닙니다. 야곱이 ‘엉덩이뼈의 상처’를 ‘축복의 표지’로 지니고 다녔듯이, 우리도 그 상처를 축복의 표시로 지니고 다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를 ‘축복의 표지요, 구원의 표지요, 당신 자녀의 표지’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치유 받았다고 해서, ‘들것’을 버리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들것’에 매여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상처’도 그렇습니다. 치유 받았다고 해서, ‘상처’를 굳이 없앨 필요도, 매여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는 기꺼이 ‘들것’을 들고 다니듯, ‘상처’도 기꺼이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들것’에 아픈 형제들을 태워, 들고 하느님의 집으로 데려가고 가야 할 일입니다. 마치 내 형제들이 나를 ‘들것’에 태워 예수님께 데려왔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들것’ 위에 인류를 태워 아버지께로 들고 가셨듯이 말입니다. 십자가라는 ‘들것’ 위에서 ‘상처’를 받으시고 바로 그 ‘상처’의 보혈로 우리를 화해시키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들것’입니다. 그 ‘들것’ 위에는 ‘상처’가 새겨져 있습니다. ‘사랑의 표지, 용서의 표지’입니다. 그러니 진정, ‘상처’에서 흐르는 용서의 피를 마실 때라야, 우리는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구원의 표지로 지니게 됩니다. 용서야말로 진정한 치유를 가져오는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2,11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주님!
들것에서
일어나게 하소서.

일어나 들것을
들고 가게 하소서.

이제는 들것 위에
당신의 사랑을
들고 다니게 하소서.

당신 십자가에서
사랑을 드러내듯
저를 일으키신
그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상이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당신이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고치시며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의 반응, 즉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움'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가끔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도대체 쟤는 뭐지?"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사람, 예측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묘한 두려움을 주는 사람.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아우슈비츠의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 굶어 죽어가는 아사 감방에서 들려온 것은 저주가 아니라 기도 소리였습니다. 나치 간수는 훗날 증언했습니다. "그 신부가 나를 쳐다볼 때, 나는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맑고 위엄 있는 눈빛이 무서웠다." 총을 든 군인이 굶어 죽어가는 신부의 눈빛을 무서워했습니다. 이것이 '품격'이 주는 공포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두려움, 특히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용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차원이 다른 생명'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루마불' 같은 보드게임을 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이들은 장난감 지폐 몇 장을 잃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 게임 안에서는 그 종잇조각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곁에서 보는 아버지는 웃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는 진짜 돈이 들어있는 '실제 통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게임 머니는 그저 놀이 도구일 뿐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우리에게 '진짜 통장'을 쥐여주시는 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의 목숨, 돈, 명예라는 '게임 머니'가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을 잃을까 봐 벌벌 떱니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 이 세상의 삶은 잠시 거쳐 가는 보드게임이구나. 나에게는 죽음도 앗아가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Zoe)이 이미 내 안에 있구나."

이 '진짜 생명'을 맛본 사람은 '가짜 생명(생존)'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시선과 위협으로부터 그토록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신(게임 머니)을 빼앗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당신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진짜 통장)이 건재함을 아셨기에 피식 웃으실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내 안에서 죽음이 '마침표'가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나가는 '문'으로 바뀝니다. 마치 딱딱한 껍질 속의 씨앗이 껍질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껍질이 깨져야(죽음) 비로소 싹이 트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체험으로 확 들어올 때, 우리는 세상을 경악하게 만드는 '경외감'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 '생명의 배짱'을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8장을 보면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이 법정은 명확합니다. 빌라도는 '죽일 권한(게임의 룰)'을 가진 판사고, 예수님은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피고인입니다. 세상의 공식대로라면 예수님은 울며 매달려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법정의 공기는 기이하게 흐릅니다. 칼을 찬 빌라도는 안절부절못하며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합니다. 반면 묶여 있는 예수님은 태산처럼 고요합니다. 화가 난 빌라도가 소리칩니다.

"나에게 말을 안 할 셈이냐? 나에게는 너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때 예수님은 서늘할 정도로 차분하게 대답하십니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다면 그대는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다."

이 순간, 빌라도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낍니다. 빌라도는 고작 예수님의 '육신의 껍질'을 깰 수 있을 뿐이지만, 예수님은 그 너머의 생명을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세상의 권력은 무력해집니다. 이 거룩한 생명력은 사도들에게도 이어집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필리피 감옥에 갇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옷이 찢기고 매를 맞고, 발에는 무거운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상식적으로 그곳에서 들려야 할 소리는 신음이나 원망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밤중에 그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비명이 아니라 찬미가가 울려 퍼집니다. 간수는 이 비상식적인 평화에 압도당합니다. 갑자기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렸을 때,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 알고 자결하려 합니다. 그때 바오로가 외칩니다.

"우리는 여기 있다. 스스로 해치지 마라!"

간수는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 칼을 든 채 맨손의 죄수 앞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떱니다.

"선생님들,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이 주는 고통보다 내 안의 생명력이 더 클 때, 세상의 폭력은 우리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쿠오 바디스』에 나오는 원형 경기장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사자들이 달려드는데도 서로 손을 잡고 평온하게 찬미가를 부르는 신자들을 보며, 피를 보고 싶어 했던 로마 관중들은 침묵에 빠졌고 나중에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세상은 나를 보고 '뭐지?'라고 반응하는가, 아니면 '너도 똑같구나'라고 반응하는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바로 그런 사람,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그 '자유인'을 경외하게 됩니다. 부디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예상과 반대로 가십시오. 성령께서 주신 진짜 생명을 믿고, 껍질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며 거룩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십시오. 그것이 성령 받은 사람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적'입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클라우드와 그룹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우리나라 IT 기업 ‘가비아’가 직장인들의 휴가 신청 시간대와 관련해 흥미로운 보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회사 인트라넷 사용자를 분석했더니, 오전 9시에 휴가를 신청한 직장인이 가장 많았고(12.8%), 그리고 오전 10시 신청자가 뒤를 이었습니다(11.2%).  

왜 이렇게 출근하자마자 휴가를 신청했을까요? 그만큼 회사 다니는 것이 힘들고 피곤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곧바로 신청한 것입니다. 이제 막 출근했는데, 곧바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인 것이지요. 삶은 쉽지가 않습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는,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하게 일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의 강도를 느끼게 되면서 이제는 집에 가야 행복할 것만 같게 된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처음 지녔던 그 열정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열정을 내려놓고 대신 편하고 쉬운 길만 찾고 있습니다. 회사만 그럴까요? 신앙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신앙을 가질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앙생활 할 것처럼 다짐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편하고 쉬운 길만 찾으려 합니다. 이 길이 기쁘고 행복한 길이 아닌 나를 힘들게 하는 짐으로 여기게 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열정을…. 그 열정을 통해 지금 자리의 행복도 결정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열정 넘치는 네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으로 붐벼서 예수님 계신 곳으로 중풍 병자를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서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습니다. 남의 집 지붕을 뜯어내는 행위는 분명 파격적이고 무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남의 시선을 뛰어넘는 간절함과 열정적인 믿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병자 개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그를 데려온 ‘동료의 믿음’을 보십니다. 이는 전구의 힘과 공동체 신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 혼자의 믿음이 부족할 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공동체의 믿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열정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믿음이 그런 열정을 갖추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함께 열정으로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적인 믿음이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더 힘든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편하고 쉬운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백 권의 책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더 크다(벤저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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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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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2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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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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