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사무 1,9-20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기에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 복음
마르 1,21ㄴ-28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사무 1,9-20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기에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그 무렵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1,21ㄴ-28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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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더 아는 만큼, 더 믿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시라고 고백하면서도, 과연 자신 있게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아직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고백합니다. 더러운 영조차도 주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세상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에서 유혹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주님을 올바로 알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주님을 아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믿는 데서 시작되지만, 믿음은 앎을 통하여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알아 가면서 더 믿게 되고, 믿으니까 더 알고 싶어지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정말 그분을 인격적으로 알고 신뢰하며 사랑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삶 안에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 가면 좋겠습니다. 그 앎을 통하여 신앙이 좀 더 성숙해지며, 이로써 세상 속에서 자신 있게 주님을 증언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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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권위 있는 말씀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행적은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일’이었고, 그것은 일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에 벌이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첫 번째 행적은 ‘안식일 법’을 어기는 사고를 친 사건이었습니다.
<복음>은 먼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고 네 제자들을 부르신 다음, 가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음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습니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마르 1,22). 그런데 회당에 있던 ‘더러운 영에 들린 이’가 소리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1,25)
그러자 악마는 그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구체적으로 증거 하는 이 ‘첫 번째 행적’으로 ‘악마의 혀 놀림을 중지시키는 일’과 ‘악마에 사로잡힌 이에게서 악마를 쫓아내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실, 인간은 악마의 혀에 속아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악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첫 번째 행적’은 하와를 속였던 악마의 그 혀 놀림을 중지시키고, ‘본래로 돌려놓는 일’에 해당합니다. 곧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구원의 표징’이요, ‘구원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께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라고 밝히지만,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 신원에 대한 정보를 안다는 것이지 신앙고백은 아닌 것입다. 오히려 그들의 ‘앎’은 예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결정적인 때가 오기까지는 제지당하게 되고, ‘메시아 비밀사상’에 가두어지게 됩니다.
사실, 악마를 쫓아내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구마자들도 그러한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구마와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마르 1,27)
그렇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악마가 추방된 사건’이라기보다 그분의 “권위”였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말씀이 이루어지는 권위’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놀라워했던 것은 그분의 ‘권위 있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구마치유는 ‘권위 있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직접 스스로 명령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실 뿐, 다른 누구의 이름에 의탁하지 않으심으로써 당신이 바로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우리도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힘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를 교란시키고 분열시키는 온갖 거짓의 혀 놀림이 멈추게 되고, 어둠을 몰아내주시기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1,24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님!
진리를 알게 하소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며 받드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고
새로 나게 하소서.
관계 맺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악마는 사랑 빠진 신학박사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몹시 놀랍니다.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회당에 있던 더러운 영, 즉 마귀도 예수님을 정확히 알아봤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지식으로만 따지면 마귀는 신학 박사입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고 교리를 꿰뚫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마귀에게는 지식은 있지만, 결정적으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권위가 아니라, 사람을 베는 칼이 될 뿐입니다.
요즘 어른들의 권위, 교사의 권위 등이 사라진다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올까요? 여기 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그 답을 줍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 톰슨이라는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개학 날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모두 똑같이 사랑한단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맨 앞줄에 앉은 테디 스토다드라는 아이는 꾀죄죄하고 멍한 눈빛을 하고 있어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테디의 시험지에 붉은 펜으로 가차 없이 X표를 긋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아이들이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선생님 책상에 쌓아놓았습니다. 그 틈에 테디의 선물도 있었습니다. 식료품 가게의 누런 봉투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볼품없는 포장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그 포장을 뜯자, 알이 몇 개 빠진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반쯤 비어 있는 향수병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그때 톰슨 선생님은 웃음을 멈추게 하고, 팔찌를 차며 "참 예쁘다"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향수를 손목에 뿌렸습니다. 방과 후,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 테디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선생님에게서 돌아가신 우리 엄마 냄새가 났어요."
그 향수는 테디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껴둔 유품이었던 것입니다. 테디가 돌아간 뒤, 선생님은 책상에 엎드려 한 시간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국어와 산수를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아이들을, 특히 테디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가르치자 테디의 눈빛이 살아났고, 훗날 그는 뛰어난 의사가 되어 톰슨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결혼식 때 선생님을 어머니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권위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얻어집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많이 알면, 높은 자리에 오르면 권위가 생긴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권위는 교탁 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을 보십시오. 그는 시를 그래프와 점수로 분석하는 교과서의 서문을 "쓰레기"라며 찢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탁 위로 뛰어 올라가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외쳤습니다.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아나?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거야.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학교 측은 그를 "학생들을 선동한다"며 파면했지만, 짐을 싸서 떠나는 그를 향해 아이들은 책상 위로 올라가 외쳤습니다. '오 캡틴! 나의 캡틴!'
교장의 고함과 징계라는 '제도적 권위'는 아이들을 앉히지 못했지만, 키팅이 보여준 자유와 사랑의 가르침은 아이들을 스스로 일어서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권위입니다. 만약 지식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냉정하게 말해 그것은 '인공지능(AI)'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챗GPT에게 "우울할 때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물어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심리학 이론과 위로의 명언을 1초 만에 쏟아냅니다. 완벽한 답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AI에게서 위로받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함께 울어줄 '심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없는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습니다. 반면, 말주변이 없고 서툴러도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 흘려주는 친구에게서 우리는 치유를 받습니다. 권위는 정답을 아는 지능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는 공감 능력에서 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분석하는 평론가입니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당시 날카로운 논쟁으로 이단을 공격하던 신학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한 통의 식초보다 한 숟가락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는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권위는 날선 논리(식초)가 아니라, 따뜻한 사랑(꿀)에서 나옵니다.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오의 일화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느 날 악마가 안토니오에게 나타나 비아냥거렸습니다.
"안토니오야, 네가 단식을 한다고? 나는 아예 먹지 않는다. 네가 잠을 안 자고 철야 기도를 한다고? 나는 아예 잠이라는 것을 모르는 존재다. 수행 능력으로 치면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때 안토니오 성인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렇다. 하지만 네게는 없는 것이 나에게는 있다. 나는 순종하고 사랑하기에 겸손하지만, 너는 교만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능력이 부족해서 악마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말라버렸기에 악마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신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성령, 곧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가득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이 채워져야 마귀를 쫓아내는 권위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지적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내 안에 그 사람을 향한 '꿀 한 방울'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사랑하려는 목적으로 수고하고 고생하십시오. 그 땀방울이 여러분의 말에 예수님의 권위를 실어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요즘에 운전할 때 거의 모두가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교통 지도를 펼쳐서 길을 찾거나, 아니면 출발 전에 지도를 펴고 길을 미리 살펴보고 목적지를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길을 잘 안내해주고, 심지어 도착 시각까지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내비게이션 안내를 제대로 따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도를 잘못 봐서 엉뚱한 곳으로 갈 때도 있고, 아는 길로 가겠다고 그 안내를 무시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안내를 따르지 않으면 내비게이션은 어떻게 말할까요?
“이 바보야. 운전 똑바로 못해? 내가 너 때문에 환장하겠다. 정신 좀 차려!!!”
혹시 이런 말을 내비게이션에게 들은 적이 있을까요? 절대 없습니다. 그저 “경로를 재탐색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다시 길을 가르쳐줍니다.
하느님의 부르심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판단만을 내세워 하느님 뜻과 정반대로 나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혼내거나 경고의 메시지를 주시지 않습니다. 다시 가장 빠르고 편안한 길로 안내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안내해 주시는 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주님께 주도권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를 지르며 말합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
더러운 영이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전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고대 근동의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상대방의 정체를 아는 것은 그 대상을 지배하거나 무력화할 힘을 가진다고 여겼었거든요. 즉,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하면서 영적인 주도권을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도권을 잡히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1,25)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이렇게 말씀만으로도 더러운 영을 제압하십니다. 실제로 더러운 영은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가게 됩니다. 결국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로 주님께 주도권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잡으려는 주도권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악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주도권을 드리면 그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이 드린 유일한 기도가 ‘감사합니다’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 삶의 방향이 되셨습니다. 말씀은 삶에서 태어나 삶으로 드러납니다. 새로운 가르침은 무언가를 더 아는 데 있지 않고, 다르게 살 용기를 우리에게 건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위는 말의 무게가 아니라, 말씀을 함께 살아내는 동행에서 비롯됩니다. 그분의 말씀은 현실을 움직이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자체가 이미 치유이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의 나라를 현실로 발생시키는 그분의 존재 자체에서 나옵니다. 참된 권위는 힘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처럼 삶의 중심에 머물 때 저절로 회복되는 사랑의 질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근원적으로 재정렬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통해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며 무엇이 사람을 얽매는 왜곡인지를 분별함으로써, 삶의 질서는 다시 세워집니다. 가르침의 권위는 언제나 삶에서 나옵니다. 말과 삶이 일치할 때, 가르침은 설명이 아니라 존재의 힘이 됩니다.
삶이 곧 가르침이었기에 그분의 말씀은 새로웠습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삶이 실제로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권위 있는 말씀이 삶이 되어 오셨기에, 우리는 그 삶 앞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내어놓게 됩니다. 내어놓음이 곧, 말씀이 삶이 되는 새로운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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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살로니카1서 2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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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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