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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1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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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이사 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제2독서
    사도 10,34-38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복음
    마태 3,13-17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이사 42,1-4.6-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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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사도 10,34-38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말씀 요약 보기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3,13-17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의 말씀 한 줄 요약 다시 보기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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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1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주님 세례 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0:53

✚ 강론시작 16:1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첫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것도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라고 말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받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3,1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3,17)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도 듣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이마에 물을 맞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마에 바른 축성 성유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징표이며, 흰옷은 깨끗해졌다는 외적 표지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내게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을 주셨듯이 세례를 통해서 다시 영원한 생명을 향하게 하십니다.

우리 함께 그때의 마음, 세례 때의 첫 마음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그때 내가 하였던 기도와 청원과 다짐은 무엇이었는지요? 아마도 순수한 영혼의 신앙 고백이며 사랑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그때의 첫 마음을 떠올려 보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신앙과 사랑을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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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모두 의로워지고, 모두 의로워지게 하는

오늘 주님 셰레 축일로 성탄과 공현 시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러니 주님 세례에는 성탄과 공현의 신비가 같이 들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은 성탄의 신비와 같습니다. 하늘에서 고고하게 계셔야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죄 없으신 분께서 죄인들의 흙탕물 가운데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죄를 씻으시기 위해서 요르단강물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요르단강물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들어오신 것인데 이것은 즉시 흙탕물 가운데 핀 연꽃을 연상케 합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항상 깨달은 자 곧 부처를 말하는데 부처는 흙탕물 가운데 있지만 결코 그 물에 잠기지 않고 오히려 흙탕물 가운데서 아름다움과 향기를 풍기는 존재지요.

그러니 부처는 어리석은 중생들 가운데 같이 있으면서 중생들처럼 속화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교화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부처가 그런 존재라면 주님께서는 더더욱 그런 분이십니다. 당대 종교 지도자들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며, 고고한 채로 있으면서 세리와 죄인들을 깔보고 더 나아가 그들과 어울린다고 주님을 맹비난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주님께서 죄인들인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그저 어울리고자 함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이고, 우리 죄를 씻어주실 뿐 아니라 거룩해진 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요르단강물에 들어오시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주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장엄하게 선포되면서 다시 말해서 공현 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런 말을 듣고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타볼산의 변모 때도 같은 말이 하늘에서 들려왔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이 이어졌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이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은 들은 우리도 주님처럼 거룩해져야겠지요. 곧 하느님이 사랑하는 아들이 되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이 돼야겠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만 거룩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거룩함에로 초대해야겠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주님께 세례 줄 수 없다는 세례자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우리는’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당신만 의로움을 이루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같이 이루자고 초대하시는 것이며, 그러는 가운데 세례자 요한을 자연스럽게 당신과 동급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초대하신 주님께서 이제 우리도 그렇게 초대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우리가 되면서 그분과 함께 모든 의로움을 이뤄야 합니다. 여기서 모든 의로움이란 어떤 뜻일까요? 모두가 거룩하게 하는 일에 참여하는 의로움이요, 그럼으로써 모두가 하느님이 사랑하는 아들 되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 되는 의로움이 아닐까요?

 

오늘 말씀 묵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은 바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생일

오늘은 ‘주님세례축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두 번째 탄생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일입니다. 사실, 아기 예수님으로서의 탄생인 첫 번째 탄일이 그의 어머니께서 성령을 입은 것을 드러낸다면, 이제 이 두 번째 탄일은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을 입은 날입니다. 그러니 오늘이 바로 예수님의 진짜 탄생일인 셈입니다.

우리의 탄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기로 태어났을 때는 부모에게 축복이 내린 것이지만, 세례를 받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부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새 탄생’이요, 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주님의 종의 첫 번째 노래’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종’은 “내 마음에 드는 이,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을 공정하게 펴리라.”(이사 42,1)고 하십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주신 일을 선포합니다(사도 10,38).

그리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현장에 무엇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세례의 현장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의 신비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습니다. 또 하나는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첫 번째 탄생 때는 주님의 천사만 나타났을 뿐이지만, 이제 이 두 번째 탄생 때는 ‘성령’이 나타나시고 ‘성부’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창조’ 장면과 연상시켜줍니다. 창조 때 하느님의 영이 물위를 휘돌아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셨듯이, 이제 똑같은 성령께서 요르단 강물 위로 내리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짐을 알려줍니다. 비둘기 형상으로 내린 성령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 푸른 잎사귀를 물어온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물어오고 은총의 때, 곧 죄 사함이 열리고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새로운 탄생인 ‘세례’는 새로운 창조,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가리킵니다(로마 6,4). 그리고 세례를 받은 우리가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생명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생명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2코린 5,17; 로마 8,9). 그러니 이제 우리 안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살고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요!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다니 말입니다(1코린 12,13). 우리가 그리스도의 힘과 성령의 개입으로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다니 말입니다(디도 3,4-5).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옷 입듯이 입고서(갈라 3,27),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사시게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합일시키십니다. 곧 세례 받은 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곧 죽음과 부활이 새롭게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콜로 2,12)

한편, 세례 현장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라는 아버지의 선포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 2장에서 이스라엘 왕좌에 오르는 왕에게 적용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 선언은 예수님을 ‘왕’으로 축성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세우시는 당신 나라의 ‘왕’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이로써, ‘새로운 세상’인 당신의 아드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한 또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단지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온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 스스로 이토록 아름다운 구절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당신의 생명을 입었습니다. 성령의 선물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온갖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다고 스스로 설명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세례와 함께 자신을 낯추어 우리 죄인과 같이 되셨고, 마치 십자가에서 자신을 낮추시어 “반역자의 하나처럼,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이사 53,11-12)셨듯이, 저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바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의 생일인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3,17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
제가 당신 마음 안에서
탄생되었으니
당신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 마음을 옷 입었으니
당신의 영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 마음을 품었으니
당신의 향기 품게 하소서.

사랑을 입었으니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낮아지면 보이는 것들

찬미 예수님.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때 굳게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며 이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 장엄한 광경은 2천 년 전 예수님께만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던 날, 우리 영혼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영을 모시게 되었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와 눈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그 눈과 귀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까? 세례 축일이 되면 성당을 장식했던 성탄 트리를 철거합니다. 제가 이곳 조원동 본당에 온 지 벌써 4년째가 되는데, 올해 유독 성당 안팎의 구유와 트리 장식이 예쁘게 느껴져 치우기가 아깝기까지 합니다. 만약 제가 교만하다면 "신부인 내가 사목을 잘해서 봉사자들이 알아서 잘한 거야"라고 으스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을 조금만 낮추면 비로소 보입니다. 추운 날씨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전구를 달고 구유를 꾸민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이 말입니다.

하물며 인간의 노력도 낮아져야 보이는데, 하느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은 오죽하겠습니까? 겸손한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것 안에 그분의 피와 땀이 서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분의 숨결인 성령은 비둘기 모양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 이름 모를 들꽃, 심지어 우리가 마시는 물 한 모금 안에도 계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눈에 '뱀'이 씌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뱀을 바라보느라, 동산 전체에 배어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지 못했습니다. 뱀은 곧 우리 안의 '교만'입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내 안의 교만이라는 뱀을 물속에 집어넣어 질식시키는 거룩한 결단입니다.

영화 '블랙'은 헬렌 켈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주인공 소녀는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그녀에게는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사물마다 이름이 있고 창조 질서가 있음을 가르치려 하지만 소녀는 거부하며 도리어 물을 뿌립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소녀를 거칠게 분수대 물속에 처박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숨이 막히는 그 순간, 소녀의 내면에 있던 고집 센 자아, 즉 '삼구(三仇)'가 죽습니다. 물속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영혼의 눈이 열립니다.

"아, 워터(Water)!"

그녀는 물에도 이름이 있고, 꽃에도 이름이 있으며, 자신에게도 부모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의 신비입니다. 교만한 자아가 죽어야 하느님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례를 받고 나서도 자주 눈이 멉니다. 영적인 눈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꼬집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사물과 사람을 깔보느라 아래만 보고 있다. 아래만 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저 위에 있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겠는가?"

우리가 다시 눈을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잊히지 않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옛날 일본에서는 성을 쌓을 때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사람을 기둥 속에 넣는 '인주(人柱)'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천민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사무라이로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 자원하여 성의 기둥 속에 묻혔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귀족 아이들과 함께 그 성에서 훈련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귀족 아이들의 무시와 괴롭힘이 이어지자, 아이는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내면의 뱀이 "너는 여기서 못 살아, 도망쳐"라고 속삭인 것이지요. 밤몰래 짐을 싸서 도망치려던 아이의 발길이 멈춘 곳은 어느 기둥 앞이었습니다. 바로 어머니가 묻혀 있는 그 기둥이었습니다.

아이는 발을 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어머니의 희생은 헛것이 됩니다. 아이는 기둥을 끌어안고 웁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습니다. 그 후 아이가 힘들 때마다 기둥을 찾아가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어머니의 피와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의 벽돌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이 '기둥'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몸과 피가 담긴 '성체'입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사무라이가 될 기회를 얻었듯,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세례입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힘들어 도망치고 싶을 때, 우리 안의 뱀이 교만과 절망을 부추길 때, 우리는 다시 기둥 앞으로, 성체 앞으로 와야 합니다.

성체 앞에 머무르며 내 자아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나는 단 1분 1초도 숨 쉴 수 없구나."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 성체 안에만 계시던 예수님이 성당 문밖 모든 곳에 계심을 보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원수의 얼굴에서도 예수님이 그를 위해 흘리신 피를 보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본래 나병 환자를 끔찍이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회심 후 그는 말에서 내려(지위의 포기) 나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자신이 낮아져 눈높이를 맞추자 그 환자의 얼굴에서 예수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의 기억도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재래식 화장실 바닥 깊숙이 손을 뻗으셨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가져가야 할 채변 봉투가 그 더러운 바닥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낮아집니다. 낮아지면 더러움 속에서도 귀한 것을 찾아냅니다.

오래전, 인천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 자매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문 간호대를 나와 의사 남편과 결혼했고, 개원한 병원은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부와 명예가 넘쳐나자 신앙은 뒷전이 되었고, 그 자리에 교만이라는 뱀이 똬리를 틀었습니다. 친구들을 불러 명품을 자랑하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형 의료사고가 터졌습니다. 피해자는 힘 있는 사람이었고, 병원 문을 닫게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자매님은 병원이 망하는 것보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할 것이 더 두려웠다고 합니다. 용한 점집을 찾아다니며 굿을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당을 찾았지만, 본당은 창피해서 못 가고 먼 성지를 찾아다녔습니다. 미사가 끝나면 2시간씩 십자가의 길을 바쳤습니다. 처음에는 "해결해 주세요"라고 빌었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나 같은 죄인이 감히..." 하며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자가의 길 4처, 예수님과 성모님이 만나는 장면에서 벼락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사~ 랑~ 한~ 다~"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성령의 파동이었습니다. 자매님은 감실 앞에 엎드려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다니던 본당으로 가서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 것입니다. 귀한 옷만 입던 병원 원장님이 고무장갑을 끼고 변기를 닦는 모습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녀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갔을 때, 꼬여있던 문제들도 기적처럼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리얼 스틸'을 보면, 고철 로봇 '아톰'은 음성 인식 장치가 고장 나자 주인의 동작을 눈으로 보고 따라 하며 챔피언과 싸웁니다. 듣지 못하면 봐야 합니다. 보려면 주인을 주시해야 합니다. 버려진 로봇이 주인을 만나 링 위에 섰듯, 우리도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보고 듣게 됩니다.

교만해지면 세례는 힘을 잃습니다. 동굴 속 물고기의 눈이 퇴화하듯, 사용하지 않는 은총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영화 '아바타'의 인사말처럼, 하루에도 수백 번 주님을 향해 고백하십시오.

"I see you (저는 당신을 봅니다)."

낮아져야 높이 볼 수 있다는 의로움을 오늘 예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요르단 강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 겸손의 물에 우리의 교만을 씻어냅시다. 프랑스의 로랑 수사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며 하느님의 현존을 연습했듯, 우리도 일상의 작고 낮은 자리에서 주님을 찾읍시다.

우리가 낮아지면, 세상은 하느님의 '진리와 은총'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정원임이 보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죄를 짓지 않고, 미소 지으며 주님을 찬미하는 참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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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던 어떤 사람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커다란 실패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전 재산의 절반을 잃을 정도의 큰 실패였습니다. 이 아픔은 위로받고 싶어서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업에 실패해도 재산이 절반이 남았으니 대단하네.”  

이 말이 자기를 놀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자 이렇게 말합니다.  

“사고로 눈이 한쪽만 보이는 사람은 행복할까?”  

“한쪽만 보이니 불행하겠지.”  

“그러면 두 눈이 다 안 보이던 사람이 한쪽 눈을 보게 되면 불행할까?”  

“아니지. 행복할 것 같아. 한쪽 눈이라도 보게 되었으니까.”  

“똑같이 한쪽 눈만 보이는데 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할까?”  

그렇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만을 보는 사람과 자기가 잃은 것만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과 하느님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먼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 틈에 서서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이를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여시겠다는 결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 역시 주님의 이 뜻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뜻에 맞지 않아 보여도, 하느님의 더 큰 뜻을 위해 순명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례를 주었으며, 하느님께서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일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하게 따르는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삶을 견디지 못하게 된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다시 살기 시작하는구나(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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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요르단 강가에서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우리 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부르시지 않고, 우리 현실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주님 세례는 사람의 길을 부정하지 않고, 그 길을 완성의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사건입니다.

주님 세례에서 가장 먼저 선포되는 것은 사명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전에 이미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주님 세례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 세례 축일은 곧 우리 자신의 세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성탄 시기의 마침표이자, 일상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또한 주님 세례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세례의 순간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구원은 삼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관계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부의 음성, 성자의 순명, 성령의 머무름은 사랑이 본질적으로 자기 나눔임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랑은 말로 증명되는 사랑이 아니라, 함께 내려가며 함께 살아 주는 깊은 사랑입니다.

주님 세례는 사랑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구원의 첫 순간입니다. 주님 세례는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사랑받는 존재로 다시 부르는 사건입니다. 우리 모두의 세례를 진심으로 기억하며 새롭게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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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3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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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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