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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0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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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요한 5,5-1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성령과 물과 피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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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5,12-16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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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9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2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연민이 삶이 될 때

수원교구에는 ‘성 라자로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의 초대 원장은 ‘한센인(나병 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경재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은 평생을 한센인들의 치료와 복지를 위하여 애쓰셨습니다.

한센인들에게 의식주 문제만을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시고, 자립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다양한 기술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시며, 한센병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려고 힘쓰셨습니다. 한센인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전 세계를 다니셨고, 그 과정에서 ‘국제 거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과 신부님의 삶을 함께 묵상해 봅니다. 복음 속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만나 뵙자 온몸과 온 마음으로 간절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절박함을 외면하시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카 5,1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깨끗해지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세가 정한 예물을 바쳐 세상에 증거가 되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이경재 신부님의 마음도 나병 환자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같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눈에 보이는 깨끗함만이 아니라 영혼의 깨끗함, 또한 그 영혼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 마음의 눈도 열어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나병 환자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영혼의 순수함을 잃어 가는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는 말씀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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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의 은총을 주실 때 믿기로 선택하는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제게는 믿음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지론이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지론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 제가 이발소에 가서 이발하던 때였습니다. 여느 때처럼 면도사가 목 부분을 면도할 때 전에는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문득 내가 이 여자를 어떻게 믿고 내 목을 맡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욱하는 생각에 그 날카로운 면도칼로 내 목을 찌를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저의 목을 면도사들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고민했습니다. 나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그만하라고 할까? 다음부터는 믿지 못하는 표시로 더 이상 면도를 맡기지 말까? 그리고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믿기로 하겠다고. 사람을 하느님처럼 믿지는 않지만 믿어주겠다고.

사실 우리는 어떤 믿음이건 믿는 것입니다. 사기꾼이라고 믿건 좋은 사람이라고 믿건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믿음이건 긍정적인 믿음이건 믿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믿음의 소유자는 누구든 안 좋은 쪽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누구든 좋은 쪽으로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나환자를 보면 주님을 믿기로 선택하고 주님께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나환자가 어떻게 사람에게 다가옵니까? 주님이 아니라면 누가 다가오겠습니까? 그는 주님을 믿어야겠다고 선택하고 나온 것입니다. 다른 인간은 내쳐도 주님만은 환대하실 것이라고 믿은 것이고, 다른 인간은 고쳐주지 못해도 주님만은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믿음에 선택이라는 부분이 있다면 믿음에 은총이라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환자가 주님을 그렇게 믿게 된 데는 그의 선택도 있었지만 주님께서 믿음을 주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표현도 있고, 믿음을 주는 사람 또는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환자가 다가간 것은 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믿음을 주셨고 그래서 주님께는 믿음이 가기에 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믿게 해주신 것이고, 주님께서 이렇게 믿게 해주실 때 나환자는 그 은총을 걷어차지 않고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믿음의 은총을 주실 때 믿기로 선택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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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오늘도 ‘주님 공현’은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치유를 통해 예언자 ‘엘리사의 활동’을 완성함으로써,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곧 <2열왕기>(5,1-27)에는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을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씻게 하여 나병을 낫게 함으로써 야훼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드러내셨듯이,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병을 직접 치유하심으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나병환자는 <민수기>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고(민수 5,2-4),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지,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엎드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면서 깨끗하게 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의 복음’의 차이를 극렬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곧 구약의 율법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규정을 제시할 뿐, 그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불결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께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병들었고 죄인이기에, 감싸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카 5,13)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레위 13,45-46), 나병환자가 집 안에 들어서면 그 집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부정함을 입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물며 부정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십니다. 예수님의 “손”은 구원의 힘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체적 접촉은 우정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만져서 부정을 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병환자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부정을 피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져 깨끗하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불결함에 더럽혀지지 않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곧 당신의 신성을 드러냅니다. 마치, 호렙산의 불꽃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탈출 3,2), 성모님께 아기를 낳으면서도 동정성을 잃지 않게 하신 것처럼, 불결한 이를 만지면서도 자신은 불결해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결한 이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당신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오, 사랑이신 구원자이십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뜻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카 5,13)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5,13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
불순함으로 제 온 몸이
부스럼투성입니다.

죄와 상처로 속이 문드러지고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불결하기에
저는 망설이지만
당신은 오히려 불결하기에
다가오라 하십니다.

죄인이기에 저는 숨지만
당신은 오히려
용서받을 대상이라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가 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한 바를 이루소서.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제게서 이루소서.

당신이 원하니까
제가 원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헌금으로도 선교할 수 있다.

찬미 예수님.
주님 공현의 기쁨을 누리고 계신지요? 오늘은 조금 민감할 수 있는, 하지만 우리 신앙의 가장 정직한 부분을 건드려볼까 합니다. 바로 '돈' 이야기입니다.

성당에서 헌금 이야기를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니,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라면서 왜 자꾸 돈을 달라고 하느냐"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종교를 빙자해 돈을 갈취하는 사이비가 하도 많으니, 그런 거부감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깨끗이 고쳐주신 뒤,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아주 엄중하게 명령하십니다.

"사제에게 가서 너의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예수님은 왜 치유받은 사람에게 굳이 돈(예물)을 쓰게 하셨을까요? 사제들 밥벌이를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그 '예물'이 치유가 진짜라는 것을 세상에 입증하는 법적인 '증거(Martyrion)'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만 "감사합니다"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존 수단인 물질을 내어놓는 행위는, 내 영혼에 일어난 은총이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영수증'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의 고수들은 이 '봉헌'을 통해 자신이 누구의 파트너인지를 세상에 증명했습니다.

거대한 굴착기 회사 르투어노 테크놀로지의 창업자 R.G. 르투어노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평생 수입의 90%를 봉헌하고 10%로만 산 '거꾸로 십일조'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부자여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30대 초반,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실패한 정비공이었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 본당 목사님을 찾아가 눈물로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돈 버는 일에만 매달리는 게 너무 속물 같습니다. 사업을 다 접고 선교사가 되어야 할까요?"

그때 목사님은 그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느님에게는 설교하는 선교사도 필요하지만, 사업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업가도 필요하네."

이 말에 그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 사업이 곧 나의 선교구나. 하느님이 나의 CEO구나.' 그날 그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원했습니다.

"주님, 제가 빚을 갚고 일어서게 해주신다면, 수입의 90%를 주님께 드리고 저는 10%로만 살겠습니다. 주님을 제 사업의 대주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사업이 일어섰을 때, 그는 평생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다 망한다"고 걱정하자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삽으로 퍼서 하느님께 드리는데, 하느님은 포크레인으로 퍼서 제게 다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하느님 포크레인이 제 삽보다 훨씬 큽니다."

현대에도 이런 파격적인 증거자들은 존재합니다.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유명한 릭 워렌 목사도 엄청난 인세 수입으로 돈방석에 앉았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가 타락할 것이라며 눈을 흘겼습니다. 기독교를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고 비난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그때 릭 워렌은 아내와 상의하여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르투어노처럼 수입의 90%를 헌금하고 10%로만 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지난 25년 동안 받았던 사례비를 전액 반납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세속 언론과 대중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과감한 봉헌은 백 마디 설교보다 더 강력하게 "저 목사가 믿는 신은 돈이 아니라 예수구나"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수많은 사람을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받았다, 은총 입었다"라고 말하면서 지갑은 꽉 닫고 있다면,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비웃을 것입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성보다 보이는 물질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의 과감한 봉헌이 필요합니다. 성녀 캐서린 드렉셀의 삶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녀는 미국 금융 재벌의 상속녀로, 현재 가치로 약 5천억 원이 넘는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그녀는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5천억 원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기부만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던 흑인과 인디언들을 위해 자신의 유산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전역에 145개의 선교 본부와 12개의 인디언 학교, 50개의 흑인 학교를 세웠습니다. 특히 뉴올리언스에 있는 미국 유일의 흑인 가톨릭 대학교인 '제이비어 대학교(Xavier University)'도 그녀가 설립했습니다. 그녀가 97세로 선종했을 때, 그 어마어마했던 개인 재산은 '0원'이었습니다. 그녀의 빈 통장은 그녀가 '세상의 상속녀'가 아닌 '하느님의 딸'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었습니다.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너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억만장자였던 그는 C.S. 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교만이 가장 큰 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998년 회사를 매각하고 "억만장자의 빈곤 서약"을 실천했습니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중단하고 재산의 대부분을 가톨릭 교육 재단에 헌납한 뒤, 자신은 검소한 생활비만 남겼습니다. 억만장자가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선택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가 믿는 가톨릭 신앙의 진정성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 나오는 주인공 바베트를 닮았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거금을 몽땅 털어 마을 사람들에게 천국 같은 한 끼를 대접하고 빈털터리가 된 그녀. "이제 가난해서 어쩌냐"는 걱정에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던 그녀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을 '소비'나 '지출'이 아니라 '작품'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봉헌금과 교무금, 감사헌금은 교회의 유지비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받은 은총이 진짜입니다"라고 세상과 하느님 앞에 제출하는 증거물입니다. 우리는 봉헌으로도 선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못 하는 일이기에 그들을 놀라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약으로 유명한 콜게이트의 창업자 윌리엄 콜게이트는 16세 때 집을 떠나며 뱃사공에게 들은 조언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면 반드시 그 돈의 주인인 하느님께 십일조를 드리게. 그러면 자네는 성공할 걸세."

그는 사업이 번창할수록 십일조를 20%, 30%, 나중에는 50%까지 늘려나갔습니다. 그는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잠시 맡기신 것"이라는 청지기 정신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의 기업이 200년 넘게 장수하는 비결을 그의 투명한 봉헌에서 찾았습니다. 은총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즉시 바치십시오. 감동이 식기 전에, 계산기가 작동하기 전에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가 깨끗해진 몸으로 사제에게 예물을 바쳤듯이, 루카 복음 19장의 자캐오를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체험한 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외쳤습니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했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구원이 임했다는 증거는 '마음의 평화'보다 '지갑의 열림'으로 먼저 나타났습니다. 헌금은 내 인생의 주인이 '돈'에서 '예수님'으로 바뀌었다는 독립선언문입니다. 우리는 돈을 걷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봉헌하는 종교입니다. 우리의 봉헌이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거룩한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하느님께 드릴 감사헌금을 준비하며 내 믿음의 증거를 마련해 봅시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심장병 발병률을 조사하던 미국 정부는 펜실베니아 주의 로제토 마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과체중이고, 담배를 즐기고 있으며, 육식을 아주 즐기는 마을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심장병 발병률은 어떨까요? 엄청나게 높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지역의 심장병 발병률은 아주 낮았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 이유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이 지역의 건강 이유는 식습관이나 운동이 아닌, 사회적지지, 친밀한 유대감,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사회적지지, 친밀한 유대감,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그래도 실천하기 쉬운 방법인 식습관 개선, 운동 등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건강을 위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강조하셨던 사랑의 삶, 그래서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하는 삶, 사랑의 삶이 너무 힘들다면서, 다른 것만 하려고 합니다. 더 힘든 길을 걷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나병 환자를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선 ‘온몸에 나병이 걸린’(루카 5,12)이라는 표현을 볼 때, 그의 상태는 매우 위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 나병은 단순히 피부병이 아닌 하느님의 저주로 여겨졌으며,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불가능을 뚫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의 의지에 자신을 맡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카 5,14)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접촉한 사람도 부정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음에도 직접 손을 대십니다. 오랫동안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회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의지에 자신을 맡기기보다, 주님의 능력 자체를 의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의심 안에서는 굳은 믿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 한 가지는 주님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도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넘어서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을 때, 굳은 믿음으로 주님의 의지에 우리를 온전하게 맡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성 아오스딩).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인격이 존중될 때 치유는 시작되고, 치유가 이루어질 때 인격은 다시 빛납니다. 나병 환자는 자신의 상처와 부정함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있는 그대로의 연약함을 하느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완전함이 아니라 정직함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치유는 언제나 존재 전체를 향합니다. 치유는 조건이 아니라 신뢰의 열매입니다. 육체의 회복을 넘어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징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상처 입은 이들이 다시 존엄을 얻는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병의 제거 이전에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불러 주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의 간절함과 주님의 자비가 마주칠 때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 안에서 치유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치유는 관계적 사건입니다. 손을 내미신 그분의 자비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부정한 이가 아니라 다시 불린 소중한 자녀가 됩니다. 인격을 존중할 때, 치유는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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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5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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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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