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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1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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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1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사무 3,1-10.19-20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복음
    마르 1,29-39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사무 3,1-10.19-2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그 무렵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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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1,29-39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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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4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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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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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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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도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조용한 곳을 찾습니다. 그 내용이 중요하다면 더더욱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장소를 찾습니다. 그곳에서 서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으며, 특별한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기도가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면, 그분과 대화하기 위한 조용하고 특별한 공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버스 안에서, 때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과 깊고 진지하게 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분만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 장소가 성당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성당을 찾아 성체 앞에서 조배하는 시간은 은총의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과 대화하시려고 한적한 곳이나 외딴곳을 찾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뜻을 물으시고, 그 뜻을 실천하시고자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 고요한 장소는 그저 피신처가 아니라, 아버지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시는 장소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자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아무 말 없이 그저 머물러 있어도 괜찮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고요한 가운데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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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알고 싶고 듣고 싶나이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서약식에 자주 듣는 오늘 사무엘기를 묵상하면서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얘기와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는 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처음 사무엘에게 들려왔을 때 그는 몇 살 소년이었을까요? 몇 살 소년이었기에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였을까요? 저는 집안 분위기로 보아 아주 일찍 하느님 얘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러니 하느님 존재를 막연하게나마 들어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하느님 존재를 적극 긍정도 적극 부정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계신가보다 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느님을 아직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느님에 관해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어머니 한나에게 들어 알았을 것이고, 사제인 스승 엘리에게 들어서 알았을 테지만 사무엘이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다른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한 그가 이제 알아야 한다면 그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하느님을 전부 다 알아야 하고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하느님을 전부 다 알고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기의 이어지는 말의 뜻을 잘 알아야 들어야 합니다. 사무엘기는 사무엘이 아직 주님을 알지 못했다고 한 다음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하느님께 대해 들은 말은 있고 들어 알고는 있지만 하느님 말씀을 직접 들은 적은 아직 없었다는 뜻입니다. 얘기를 들어서 아는 것은 아직 내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을 내가 직접 들어서 알아야 다시 말해서 체험적으로 알아야 아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하느님을 제가 어렴풋이 안 것은 사춘기를 겪은 20세 무렵이고, 체험적으로 하느님을 안 것은 군 생활을 통해 제 사제 성소를 포기하고 절망 상태에서 지내다가 복음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난 25세 무렵입니다. 이렇게 체험적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기 전의 저는 절망 상태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기 전에는 제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었기에 하느님을 알고자 그리니까 하느님을 체험하고자 별놈의 짓을 다 했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 절망이었기에 하느님을 아는 것이 절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절망이 저를 절실하게 하였기에 한 번만이라도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으며, 그 간절함을 주님께서 보시고 복음을 통해 말씀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 후에도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아 하느님 말씀 듣지 못했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 말씀 귀가 어둡긴 해도 사무엘과 같은 자세는 되어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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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기도, 치유, 선포 : 예수님 삶의 세 박자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곧 ‘기도생활’과 ‘활동생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활동생활’은 다시 말씀의 선포활동과 치유구마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의 3중 직무’, 곧 예언직과 사제직(성화직)과 봉사직(왕직)으로 관련지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데, <첫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장면이요, <둘째 장면>은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시며 아버지와 친교를 이루시는 기도하시는 장면이요, <셋째 장면>은 이웃 고을로 가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31)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치유를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자 치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치 산고의 아픔이 다해야 아기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탄생하면 산고의 아픔은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곧 치유가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치유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34)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코 믿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도 마귀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아는 것에 앞서, 믿고 사랑해야 할 일입니다. 진정 믿을 때라야 진정 알게 되고, 아는 바를 믿고 사랑하며 또 믿고 사랑하는 바를 실천할 때 진정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교와 일치’에 당신 삶의 중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도와 활동의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곧 ‘기도’는 활동이 되고 활동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곁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라고 알려줍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기쁜 소식”, 곧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선포하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시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마르 16,15).

오늘 우리는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고, 먼저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총과 사랑을 입은 이들로서, 예수님의 이 사랑을 우리의 소명으로 받은 이들임을 명심하고, 예수님 삶, 곧 이 3중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1,38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제 뼈 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가 새벽에 매일 기도하는 이유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온 고을 사람들이 환호하며 당신을 붙잡는데도 "다른 고을로 가자"며 매정하게 떠나십니다.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Good Thing)'이고 보람된 일인데, 왜 굳이 그 성공의 자리를 떠나 낯선 고생길을 자처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묻기 전에, 우리가 왜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부터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식물학자이자 '땅콩 박사'로 위인전에 등장하는 조지 워싱턴 카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천재적인 재능으로 당대 최고의 농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그를 스카우트하려 했습니다. 에디슨은 카버에게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연봉 10만 달러(현재 가치로 수십억 원)를 제안했습니다.

"금액은 당신 마음대로 쓰시오. 최첨단 연구실을 줄 테니 나와 함께 일합시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입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삶, 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 이것은 분명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Good Thing)'입니다. 하지만 카버 박사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리고 대신 그가 선택한 곳은 앨라배마의 가난한 흑인 학교인 터스키기 연구소였습니다. 그곳은 월급은커녕 실험 장비도 제대로 없어 쓰레기장을 뒤져 병을 주워 써야 하는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좋은 꽃길'을 버리고 '옳은 가시밭길'을 가게 했을까요? 비밀은 그의 새벽에 있었습니다. 카버 박사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적인 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숲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며, 남들이 잠든 그 고요한 시간에 하느님은 나에게 그날의 계획과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만약 내가 에디슨에게 갔다면 돈은 많이 벌었겠지만, 내 동족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나는 내 백성을 살리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새벽마다 확인했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낡은 양복을 입고 지냈지만, 땅콩 하나로 300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며 남부의 경제를 살려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는 명성에 부를 더할 수 있었으나, 그 둘을 다 마다하고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서 행복과 명예를 찾았다."

'좋은 일'보다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영혼이 얼마나 기쁜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좋은 것(Good)은 위대한 것(Great)의 적이다."

수많은 사람과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엉망이어서가 아닙니다. 적당히 '좋은 상태'에 만족하고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됐어", "사람들이 좋아하잖아"라는 안도감이 하느님이 주신 위대한 사명으로 나가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의 환호(Good)를 뿌리치고 떠나신 것은, 인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명(Right)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기에 예수님께는 더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영혼들은 하나같이 이 '좋은 유혹'을 이겨내고 '옳은 행복'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버리고 고생길을 택한 이들은 불행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하와이의 쾌적한 본당을 버리고 나병 환자들의 섬 몰로카이로 들어간 성 다미안 신부님을 보십시오. 결국 그도 나병에 걸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향의 형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형님, 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제 몸은 썩어가지만 제 마음은 천국을 맛보고 있습니다."

건강한 육체라는 '좋은 것'을 포기하고 병든 형제들과 하나 되는 '옳은 일'을 택했을 때, 그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렇다면, 눈앞의 달콤한 '좋은 일'을 뿌리치고 고독한 '옳은 일'을 선택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왜 우리는 기도를 해야만 할까요? 예수님은 그 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힘은 '새벽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귀를 멀게 하기 전에, 성공의 달콤함이 마음을 무디게 하기 전에, 주님은 새벽같이 일어나 하느님 아버지와 독대하셨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좋은 일'보다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맛보았던 그 행복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편안하고 좋은 것만 찾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면, 고생스러워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영혼을 얼마나 춤추게 하는지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사람들은 "기도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환자를 더 돌보는 게 효율적이고 좋은 일 아닙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단호했습니다. 그녀와 수녀들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이상 성체 조배를 했습니다.

"우리는 사회복지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 있는 관상 수도자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의 사랑을 충전하지 않고 일만 했다면, 그들은 금방 지쳐서 짜증 내는 노동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새벽 기도가 있었기에 그들은 50년 넘게 미소를 잃지 않고 옳은 일을 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이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라고 압박했습니다. 그것이 피를 덜 흘리는 '좋은 일'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내 지혜가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압도적인 확신을 가지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 곳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벽마다 하느님의 뜻을 물었기에 그는 '적당한 타협'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노예 해방'이라는 옳은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좋은 일'은 무엇입니까? "이 정도면 됐어,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라는 안락함이 혹시 하느님이 부르시는 '위대한 사명'과 그 안에서 누릴 참된 행복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락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벽 4시의 숲으로 나가야 합니다. 몸은 편하지만 영혼이 시들어가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못 떠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새벽'이 필요합니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좋습니다. 세상의 소음을 끄고 하느님과 단둘이 만나는 '외딴곳'을 마련하십시오.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이유는 의무감 때문이 아닙니다. 좋은 일보다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찾아오는 그 벅찬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을 아는 사람은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어렸을 때 재미있던 것 중 하나는 만화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놀다가도 오후 6시가 되면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집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먼저 와서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니 초조하고 짜증도 납니다. 잠시 형이 자리를 비우면 그 틈을 타서 얼른 채널을 돌리지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오시면 이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채널 돌려라.”  

당시 거실은 가족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을 같이 보며 시끌벅적했고, 과일이나 과자 등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집에서도 채널 전쟁이 없다고 합니다. 식사할 때도 대화 없이 서로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고 합니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대화도 없습니다. 심지어 할 말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고 하더군요. 입이 대화의 출구가 아니라, 손이 대화의 출구가 되었습니다. 같이 있어도 외롭습니다.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어렵고 힘들어도 함께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만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멈추지 않고 해야 합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당시 열병은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위중한 상태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이 모습은 아주 의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에서는 병자를 부정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시몬의 장모는 치유를 받은 뒤에 무엇을 했을까요? 휴식을 취했을까요? 아닙니다. ‘시중을 들었다’라고 전해 줍니다. 구원받은 이는 즉시 봉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치유의 목적은 봉사이다.’라고 말합니다. 고해성사나 기도를 통해 치유받고 위로받는 이유는, 다시 시중(봉사)을 들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나 혼자 편안해지는 것은 신앙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밀려드는 환자들과 군중의 환호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외딴곳’에서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쁠수록 기도의 자리를 마련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요구에 휩쓸려서 살게 됩니다. 익숙하고 편안하고 칭찬받는 자리에 머물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되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봉사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트레이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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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예수님의 하루가 우리의 하루를 비추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하루는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은총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다시 흐르게 만드는 힘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하십니다. 고통 속에 갇힌 우리를 하느님 나라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사랑의 행위, 그것이 치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십니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치유는 관계적 소속감을 회복시키는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결코 뒤로 미루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일상은 거룩해지고, 우리의 삶은 하느님 나라의 자리가 됩니다.

예수님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기도 없는 헌신은 소모가 되고, 헌신 없는 기도는 공허해집니다. 예수님의 하루는 일상 속에서 사람을 살리고, 기도로 방향을 분별하며, 사랑의 사명으로 다시 이어집니다. 사랑이 길이 되고, 삶이 사명이 되는 하루, 그 하루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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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권 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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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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