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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1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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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사무 4,1ㄴ-11
    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
  • 복음
    마르 1,40-45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사무 4,1ㄴ-11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이스라엘은 크게 패배하고, 하느님의 궤도 빼앗겼다.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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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1,40-45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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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5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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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간절함이 믿음이 될 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나병 환자의 고백을 듣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이 말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 자신의 고통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나병 환자의 절박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 고백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1,41)라고 하시며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병자의 간절함과 확신에 찬 믿음을 보시고 그의 바람을 들어주십니다.

누구든지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악하고 타락한 마음으로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시련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이 초대에 응답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며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처럼 우리도 주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과 간절함을 가져야 합니다. 외적인 병의 치유를 넘어,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삶을 향한 믿음으로 주님 편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꺼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당신 은총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며 맑고 순수한 본연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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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늘이 두렵지 않은 나?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오늘 사무엘기를 읽은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계약 궤를 모신 이스라엘이 어떻게 전투에서 질 수 있는지. 첫 번째 전투에서 진 것은 계약 궤가 없었기에 졌을지라도 계약 궤와 함께 싸운 전투에서는 승리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오늘 독서 사무엘기 4장만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 엘리의 아들들이 한 짓을 보면 그것은 백성에게 아주 못된 짓을 하였을 뿐 아니라 하늘이 도무지 무섭지 않은 자들의 짓거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교만은 안하무인(眼下無人) 정도가 아니라 안하무신(眼下無神)이었으며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사무엘기 2장은 이런 엘리의 아들들에 대해 이렇게 기술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한 자들로서 주님을 알아 모시지 않았고, 백성과 관련된 사제들의 규정도 무시하였다.”

그랬기에 첫 번째 전투에서 계약의 궤 없이 나가 전투하다가 패했을 뿐 아니라, 패하고 난 뒤에도 하느님을 두려워하지도 섬기지도 모시지도 않았던 죄에 대한 통렬한 뉘우침이 없이 두 번째 전투에 계약의 궤를 모시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계약의 궤를 모신 것은 진정 주님을 중심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전투에서의 승리를 위해 이용해 먹으려는 것에 불과하고 비 올 땐 우산을 찾았다가 비 그치면 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거였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는 제가 두렵습니다. 저도 이들처럼 하늘이 두렵지 않은 나인 것은 아닌지 두려운 것입니다.

제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비를 너무 믿어서일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내 중심이 아니라 필요가 내 중심이고, 필요할 땐 주님을 이용해 먹고 필요가 없으면 내버리지는 않는지, 그 정도는 아니어도 등한시하지는 않는지 심히 두려워하며 반성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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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를 치유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

오늘 <복음>은 지난 주 금요일 <복음>과 같습니다. 그때는 병행구절인 <루카복음>이었는데, 주님공현의 측면에서 함께 보았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그때 우리는 이 나병환자의 치유 사건이 예언자 엘리사의 활동(2열왕 5,1-27)을 완성하고, 모세가 본 호렙산의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처럼(탈출 3,2), 불결한 이를 만지면서도 자신은 불결해지지 않으시면서 불결한 이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신성을 통해 예수님께서 당신이 구원자임심을 드러내는 공현사건임을 보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 받은 한 나병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치유 받은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나를 치유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는 일이고, ‘그분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나병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권능의 행사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있기에, ‘오로지 주님의 처분에 온전히 의탁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자신의 바람이 아니라, 스승님의 바람이 이루어지소서! 라는 ‘의탁’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바람에 대해 하느님께서 응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바람에 대해 우리가 응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하신 것처럼,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주인께 속한 이로서의 자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문드러지고 부스럼투성이인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바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바람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희망을 하느님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로 자신을 내어드려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의 바람이 아니라 당신의 바람이 제게서 이루어지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1,40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하시고자 한 바를 하소서.

당신께서 바라시는 것을 저도 바라게 하소서.

당신이 하시고자 한 바를 저도 하게 하소서.

저를 만지시어 고치소서.

저의 바람과 하는 일을 깨끗하게 하시어 새롭게 하소서.

저를 새롭게 하시고 당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은총에는 항상 ‘순종’이라는 브레이크가 포함되어 있다.

찬미 예수님.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께 더 큰 은총, 더 많은 축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은총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팝의 여왕이라 불렸던 휘트니 휴스턴을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신이 내린 목소리(The Voice)'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압도적인 가창력을 선물 받았습니다. 가스펠 가수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교회 성가대에서 그 재능을 꽃피웠을 때, 그녀는 세상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악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엄청난 성공과 부가 쏟아지자, 그녀의 삶에서 '절제'와 '신앙'이라는 브레이크가 고장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약과 술, 무절제한 사생활이 그녀를 덮쳤고, 결국 그녀는 호텔 욕조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은총이 그녀를 파괴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슬픈 비극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면서 동시에 까다로운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살리기 위한 안전장치입니다. 디즈니 영화 '환타지아'에 나오는 '마법사의 제자' 이야기는 이 진리를 아주 재미있고도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제자인 미키 마우스는 스승이 자리를 비운 사이, 물 긷는 일이 귀찮아 스승의 마법 모자를 쓰고 빗자루에게 주문을 겁니다.

"물 좀 길어와."

빗자루는 기계처럼 완벽하게 일을 수행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퍼다가 독에 채웁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독이 다 찼는데도 미키는 빗자루를 멈추게 하는 주문, 즉 '통제권'을 모릅니다. 물은 넘쳐 홍수가 나는데 빗자루는 계속 물을 붓습니다. 다급해진 미키가 도끼로 빗자루를 찍어버리지만, 쪼개진 빗자루 조각들이 모두 일어나 더 많은 물을 퍼 나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인공지능(AI)과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은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멈출 수 있는 겸손과 윤리적 순종이라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스승이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섣불리 휘두르는 기술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뒤, 아주 엄하게 명령하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리고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여라."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은총이 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처방전이었습니다. 모든 약에는 복용 방법과 주의 사항이 적힌 설명서가 들어있습니다. 설명서를 무시하고 약을 남용하면, 그 약은 더 이상 치료제가 아니라 독극물이 됩니다. 하느님도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며 '순종'이라는 사용 설명서를 함께 주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딱 하나 '선악과'만은 따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뱀은 유혹합니다.

"이걸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된다."

오늘날 AI도 똑같이 유혹합니다. "기술을 가지면 너희는 신처럼 전지전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선악과는 하느님이 인간을 골탕 먹이려고 만든 함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너는 주인이 아니라 피조물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인간을 보호하는 유일한 '순종의 표지'였습니다. 그 표지를 훼손하고 순종을 버리자, 에덴은 실낙원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술의 시대에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구약 성경의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일 괴력을 은총으로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단 하나의 제동 장치를 거셨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마라."

이것은 머리카락에 마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 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입니다"라는 나지르인의 서약을 지키라는 순종의 요구였습니다. 삼손이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이 브레이크를 해제했을 때, 그는 두 눈이 뽑히고 연자매를 돌리는 비참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제약이 사라진 힘은 주인을 파멸시킵니다.

피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피는 반드시 혈관이라는 좁은 통로(질서) 안에서만 흘러야 합니다. 피가 "나는 자유롭게 흐르고 싶다."라며 혈관을 터뜨리고 밖으로 나오면(불순종),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뇌출혈'이나 '내출혈'이라는 죽음이 됩니다.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고, 계명을 따르는 것은 하느님께 무언가를 뺏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인생이라는 자동차에 '브레이크'를 다는 행위입니다. 또 그런 행위를 할 때 ‘순종과 겸손’이 목표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음도 알 수 있습니다.

스포츠카 페라리는 시속 300km를 달릴 수 있는 엄청난 엔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고성능 차일수록 더 강력하고 민감한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달리는 기능만 있고 멈추는 기능이 없는 차는 차가 아니라 흉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큰 재능이나 성공, 부를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겸손과 순종이라는 고성능 브레이크도 함께 장착하셔야 합니다. 멈추라는 신호에 즉시 멈출 수 있어야 진짜 명품 인생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는 더 이상 기름을 넣어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운전자를 사랑하는 주유소 사장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은총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위해 매일 겸손과 순종을 기르는 장치를 잘 점검할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청소년 캠프에 가보면 스마트폰을 못 하게 하더군요. 프로그램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은 아주 힘들어하고 축 처져 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니? 어디 아파?”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지루해요. 재미없어요.”  

사실 우리 삶은 원래 지루합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던데, 예전에는 방학 일기가 있었습니다. 아마 제일 하기 싫고 또 힘들었던 숙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저희의 방학 일기를 읽으신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너희들 일기 읽느라 지루해서 혼났다.”  

하긴 아이들 일기 내용에 별다른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선생님께서 얼마나 지루하셨을까요? 이렇게 지루한 삶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그저 가끔 주어지는 특별한 일들이 새로운 자극이 되어 힘차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짧은 쇼츠만 보고,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것은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일상의 특별함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작은 것에 관심을 두는 것에서 창의력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지루함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사고력이 깊어지고 감정이 정리되면서 내면이 자라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타난 나병 환자를 떠올려 봅니다. 당시의 나병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져서 공동체에서 격리되어야 했고, 하느님의 저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이 치유는 육체의 회복을 넘어 사회적, 종교적 복권을 의미합니다.  

나병 환자가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라고 간청합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지에 따라 자기 병이 고쳐질 수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나병 환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서 공동체에서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율법을 위반하고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나병이라는 병에 시달리면서 겪게 된 그의 절박함과 굳은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고쳐주십니다. 사실 거리를 두고 고치실 수도 있었지만, 손을 대셔서 치유하십니다. 그의 아픔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거룩함이 나병의 부정함을 압도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손을 대어서 예수님께서 부정해졌을까요? 아닙니다. 부정해지지 않았고, 그 부정함을 넘어서 나병 환자가 깨끗해집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 힘들어하는 우리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욕심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지에 맡기는 겸손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처럼 말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지루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A. 링컨).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밀어낸 것은 우리의 규칙이었고 살려낸 것은 하느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먼저 살리시고, 그 다음에 질서를 회복시키는 길입니다. 이야기가 커질수록 사람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을 수 있습니다. 참된 치유는 알릴수록 흐려지고, 드러낼수록 하느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치유는 끝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시작입니다. 은혜를 잊은 삶의 자리에서 치유는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막혀 있던 은총의 흐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조용한 행위입니다. 치유는 우리의 생활 속에 있고, 생활은 치유가 실현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침묵 명령은 치유마저도 집착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려는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으시고, 사람이 다시 살아갈 자리를 열어 주십니다. 정결이란 흠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침묵과 기도로 돌아가십니다. 건강한 생활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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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6편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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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 전체 보기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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