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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21년 7월 29일 (목)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는 형제간으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열렬히 환대하였으며, 마르타는 정성껏 시중을 들고,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을 경건하게 들었습니다.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요한 사도는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하십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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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예수님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네.
제1독서
1요한 4장 7-16절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화답송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알렐루야!
복음
요한 11장 19-27절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영성체송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외아드님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복된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를 본받아 온갖 덧없는 일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다가 천상에서 영원히 주님을 뵈옵고 기뻐하게 하소서.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7월 29일 (목)
팔로티회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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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7월 29일 (목)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마르타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기 싫다고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해야만 하는 일이 행복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옥과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달라도 지옥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참아 내며 견디는 가운데 그 나름의 의미와 행복, 재미를 찾아낼 때입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입니다. 요한 복음은 라자로의 죽음에 관한 예수님과 마르타의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복음 대신 오늘 선택할 수 있는 루카 복음은 두 성녀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 줍니다.
루카 복음에서 마르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이 있기에 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이 쌓입니다. 동생 마리아를 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 같아 보여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마르타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분의 말씀을 더 듣고, 그분께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마르타도 충분히 자신이 바라던 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생각에 늘 남과 비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의 협조자로, 교회의 협조자로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고 바라는 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소임과 역할이 부담과 짐으로 다가올 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왜 이 일을 시작하였는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고자 이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는지, 또한 지금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였으면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오늘 하루 죽음을 걱정했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을 잃었다.
오늘은 본래 마르타 기념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인 마리아와 오빠인 라자로도 함께 기념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쨌거나 마르타는 마리아와 라자로와 함께 이해되어야 하는 인물이기에 잘 된 것 같습니다.
마르타는 라자로의 죽음에 대해 예수님께 탓을 돌리는 듯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치유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치유자를 넘어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었다면 오빠의 죽음에 그토록 고통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슬퍼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죽음에 잡혀있었던 것이 나쁜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주관자라는 믿음까지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생존의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슬퍼하며 시간을 허비한 것입니다.
물론 생존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돈도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소득에 따른 행복도를 조사한 연구에서 일정 소득 이상이 되면 소득은 더는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소득이 연봉 7만 5000달러, 한화로 약 8500만 원까지는 소득과 함께 행복도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말은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온 신경이 돈에만 쏠린다는 것이고, 생존에 대한 걱정이 없을 때 돈은 더 이상 행복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도 분명 사랑을 실천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자기 자신이 아닌 신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더라도 자기의 생존이 아닌 타인의 생존까지 신경 써 줄 수 있으려면 돈이 아니라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태석 신부님이 의사로서 생존을 위해 살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그분의 삶은 의미와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모기가 피를 빨아 먹기 위해 다니는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을 생존을 위해 살지 맙시다. 일단 오늘 죽어도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치 있는 일이 보입니다. 아니 가치 있는 일을 찾는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삶의 의미는 죽음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백종원 씨는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장사에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호프집을 인수해 장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장사의 맛을 조금씩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육군 간부식당 관리 장교로 군 생활을 마치게 되고 1993년 전역한 후 그는 다시 요식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그때 요식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잘하고 있던 백종원에게 들어온 또 다른 사업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한때 인기를 끌었던 목조주택 사업이었습니다. 100% 성공을 확신한 그는 그 사업에 모든 것을 겁니다. 하지만 1997년 IMF가 터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던 것입니다. 그는 17억의 빚을 지게 되고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한국에서 자살하면 여러 사람에게 아픔과 피해를 줄 것 같아서 홍콩으로 건너갔습니다. 죽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먹었는데 아이템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 음식의 ‘맛’ 하나가 죽음에 관한 생각을 몰아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2년 동안 하루 4시간만 자며 쌈밥집과 포장마차를 함께 운영했습니다. 부를 누려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이자를 감당하기 시작하니까 행복했다고 합니다. 이후 1998년 한신포차, 2005년 새마을 식당, 2006년 빽다방과 홍콩반점 등 여러 사업을 성공시키며 빚을 청산하고 지금은 요식업계 최정상에 올라 있습니다.
물론 문어발식으로 주위 소상공인들을 힘들게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이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홍콩에서 맛보았던 그 음식 때문에 이런 삶의 가치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철학은 “맛있는 음식을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자.”입니다. 또 한국의 요식업을 세계화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는 구독자 5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 채널은 적자라고 합니다. 자신의 요리 비법을 온 세상에 공개하면서도 그것으로 돈을 벌지는 않는 것입니다. 만약 생존만을 위했다면 이런 비법을 공개하지 않고 사업 아이템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의미와 가치는 ‘나눔’에 의해 실현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생존의 문제는 극복되어야 합니다.
생존과 가치, 혹은 의미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 살지 말아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생존을 위해 살면 가치 있는 삶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생존과 무관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를 생명이요, 부활로 믿으면 됩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자유이지만 일단 믿으면 그분이 존재하시던, 존재하시지 않던 삶은 가치에 집중하게 되고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코끼리에 쫓겨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가 나무에 걸려 있는 칡덩굴을 잡고 매달렸습니다. 그 아래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고, 우물 속에는 큰 뱀 세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검은 쥐와 흰쥐는 매달려 있는 이 칡덩굴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데, 입 주위로 끈적한 액체들이 떨어졌습니다. 맛을 보니 꿀이었습니다. 칡덩굴 사이에 있는 벌집에서는 꿀이 한두 방울씩 그 사람의 입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죽음에 직면한 처지를 잊고 그 꿀을 받아먹었습니다.
밤낮으로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세속-육신-마귀의 뱀 세 마리는 더욱 나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우리 위에서는 성령의 꿀이 떨어집니다. 그 맛을 보면 죽음에 대한 모든 공포를 잊게 됩니다.
생존을 위해 사나, 오늘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사나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 오히려 내일이 없다고 사는 사람의 삶이 더 물질적으로도 윤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활이요, 생명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해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아낌없이 나누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삶은 죽음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수록 커집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이란
예전에 한 신문사에서 취재를 왔습니다. 저의 애장 도서를 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가장 중요하고 추천하고 싶은 ‘성경’이 있었지만, 이 신문사가 가톨릭계 신문사가 아니어서 감명 깊게 읽었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소개했습니다. 사실 이 책 말고도 추천할 책은 너무나 많았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 생각나는 책이었고 그래서 말을 했던 것이지요.
솔직히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것을 아셔서인지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내 마음에 따라, 내 환경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되어주는 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책 추천이 가장 힘듭니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르고, 또 내 환경과 상대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매 순간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주님을 한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내가 청하는 것을 주시는 주님, 무조건 내 죄만 용서해주시는 주님, 무조건 사랑만 주시는 주님 등으로 나한테만 맞는 주님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내 생각의 틀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내 생각을 뛰어넘는 분, 그래서 어떤 모습이든 모두 받아들이고 굳게 믿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성녀 마르타 기념일인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마르타의 굳은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인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뒤에 나타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솔직히 화가 나고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까지 행하신 기적들을 봤을 때, 예수님께서 계신다면 분명히 오빠인 라자로를 무덤에 묻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라자로와 마르타, 마리아 남매를 얼마나 예뻐하셨습니까? 정말로 예뻐하고 사랑한다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완전히 죽었다’라고 판정을 하는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되어서야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고 원망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보여줍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이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슬픔과 아픔을 주는 상황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내가 원하는 상황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황 안에서도 주님의 뜻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 영화 ‘은교’ 중에서
라자로의 부활.
감동하는 사람이 되세요.
다음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할까요?
1. 지식은 많지만,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
2. 지식은 없지만,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은 감동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감동받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지 않습니까? 따라서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사람은 더 많은 기억을 하고 있고, 이 기억을 바탕으로 일을 잘하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감동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이 감동을 커다란 곳에서만 찾으려 합니다. 특히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만 찾으려고 하니 감동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봐도 감동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얼마 전, 하늘을 봤다가 너무나 파란 하늘에 깜짝 놀랐습니다. 미세 먼지, 황사로 잘 볼 수 없는 파란 하늘을 이날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산책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것입니다. 만약 하늘을 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두루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감동의 물결이 넘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참된 믿음이란 조건이 없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 26)
믿음의 가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이고 자유이다. 그래서 믿음은 집착이 아니라 감사와 자유이다. 믿음에는 마음의 실천이 뒤따른다.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마음이다. 오히려 시련과 아픔속에서 탄생하는 믿음이다.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언제나 먼저 우리 삶의 자리로 오시는 하느님이시다. 믿음은 믿음의 길을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믿음 없는 평화와 기쁨은 있을 수 없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우리 삶에 맞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온 믿음이기에 서로를 살린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 또한 믿음이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또한 믿음으로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된 믿음이란 조건이 없다. 하느님께 온전히 이 모든 것을 내어맡기는 것이다.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는 진실로 예수님을 믿었다. 믿음의 음성(音聲)이 구원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믿음으로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이시다. 겨자씨 한 알 만 한 믿음이라도 있길 기도드린다. 영적인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다.
성장과 성숙이 필요한 믿음이다. 생명력있는 믿음이란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이다. 라자로의 죽음도 믿음을 꺾을 수 없는 그런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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