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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0/28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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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이 거룩한 사람들을 참사랑으로 뽑으시고, 영원한 영광을 주셨네.

하느님, 복된 사도들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를 저희에게 알려 주셨으니 거룩한 시몬과 유다의 전구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 나날이 늘어나 교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0월 28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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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에페 2,19-22)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6,12-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에페 2,19-22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6,12-19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28일
정찬웅 루카 신부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소개 00:31

✚ 미사시작 01:42

✚ 강론시작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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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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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어떤 학원 선생님이 잘 가르치고 똑똑하다고 합시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찾아다니겠습니까? 아니면 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까? 당연히 학생들이 찾아갈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명한 라삐나 스승에게는 제자들이 먼저 찾아가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제자들을 뽑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산’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기도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을 뽑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을까요? ‘산’이라는 장소를 생각해 봅니다. 산은 조용하고 한적하여 외롭게 느껴지는 곳이지만, 그렇기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시고자 산에 올라가시어 하느님을 만나셨듯이, 우리에게도 혼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곳을 찾기 힘듭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예컨대 옛날에는 가족이 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였지만, 요즘은 바쁘다는 이유로 제각각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밥을 먹습니다. 또한 카페에 가서도 함께 이야기 나누기보다는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 안의 세상만을 바라봅니다.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용히 누워 하루를 정리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이 듭니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본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까닭일까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면 고독과 외로움과 친해져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보다는 조용한 침묵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잘 결합된?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에 듣는 에페소서 독서는 에페소 교회가 예수님이라는 모퉁잇돌과 사도라는 기초 위에 세워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건물이라는 뜻으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열두 사도 명단을 보면 열두 사도는 기초로서 부실하고, 그들의 결합은 잘 이루어지기 어려운 엉성한 공동체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을 배반할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구성원이 서로 삐걱거릴만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여겨보는 것은 오늘 축일로 지내는 열혈당원 출신의 시몬과 세리 출신의 마태오 관계이고, 잘 아시듯이 이들의 출신 곧 열혈당원과 세리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지요. 그런데 출신으로만 보면 엉성하고 삐걱거릴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잘 결합된 주님의 거처로 자라난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출신으로만 보면 잘 결합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뒤 그리고 성령으로 변화된 뒤 이들은 든든한 기초가 되었고 그 위에 전체 교회는 잘 결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이질적인 이들이 그리스도라는 용광로에서 성령이라는 불에 정련되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이질적인 우리도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서로 잘 결합되어 하느님의 거처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정련돼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성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같이 이루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하고, 경쟁적이고 분열적인 개성이 조화롭고 통합적인 개성으로 바뀌어야 하며, 나만 정의롭고 너는 불의하지 않고 같이 하느님의 정의를 이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 축일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 공동체이고 오늘 에페소 말씀대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거처로 지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 특히 성령의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래서 한 번도 그리스도 공동체다운 적이 없거나, 모래 위에 세워져 서서히 무너져가는 공동체는 아닌지.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름 없는 이들의 부르심

오늘은 사도 시몬과 유다(타대오)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열두 사도를 뽑으신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2-13)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올리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는 먼저 부르시어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들이 사도로 뽑힐만한 충분한 조건들을 갖춘 자들로 보이지 않습니다. 곧 신분이나 능력이나 지위에 있어 사도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무명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뽑힌 후에도 여전히 특별한 내력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거룩한 이들이었기에 뽑힌 것이 아니라, 뽑히었기에 거룩한 이들이 된 것입니다. 거룩한 분에 의해 뽑히었고, 거룩한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 유다와 시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도 시몬이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뿐, 다른 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도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단지 타대오, 곧 “용감한 자”라고 불렸다는 사실 뿐, 다른 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도”란 모름지기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건물’이 되고, 거룩한 분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모퉁이 돌이십니다.”(에페 2,20) 

사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령스럽게도 이 “건물”(집)은 “자라납니다”. 곧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21). 그렇게 자라나면서 신령스런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집니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2,22).

참으로 신령스런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이토록, 우리 안에 당신의 신비가 살아있다니, 헤아릴 수 없이 크나 큰 분이 나보다 작아져 내 안에 들와 있는 이 사랑의 신비 앞에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경탄할 뿐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뽑으신 다음,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에 녹아, 세상에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가정’을 건설합니다. 바로 내가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 집의 건축자재요, 그 가정의 식구인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6,13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주님!
하고 싶은 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라 하신 바를 행하고
아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알려주신 바를 선포하는 
겸손함을 주소서.

이름 없이도 사랑하고
드러나지 않아도 
당신 뜻을 실행하며 이 세상에 
당신의 나라가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어렸을 때 각종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은 아이는 대개 성인이 되어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의 좋은 성적은 모험하지 않고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능력만으로 좋은 성적을 얻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데, 새로운 시도를 하면 아직 미숙하기에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길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발전이 있을 수 없게 되면서, 점점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진정한 성장을 원한다면 창의적인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실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편하고 쉬운 길만 선택하려 하면 신앙의 발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정체되는 느낌을 받게 되고, 당연히 주님 안에서의 기쁨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전에 사목했었던 신자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성당에서 정말 열심히 봉사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때 너무나 즐겁고 또 신나게 생활했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일 미사만 겨우 참석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현재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정말 열심히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했어요. 이제는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신앙도 쉬면 침체하고, 오히려 후퇴하게 됩니다. 그저 예전에 주님과 함께했던 기쁨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옛날이야기만 갖고 있게 됩니다.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께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뽑으신 열두 사도의 일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정말로 큰 기쁨을 가졌을 것이고, 예수님을 통한 큰 영광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에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됩니다. 죽음의 공포로 다락방에 숨어 있기도 합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했던 그 모든 것이 의미 없는 행동처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면서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부재에도 그냥 멈추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주님의 뜻에 집중했었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순교하면서 하느님 나라에서의 큰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신앙생활을 쉬어서는 안 됩니다. 충분히 열심히 했다는 것은 없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신앙의 발전과 함께 이 세상의 기쁨,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에서의 가장 큰 기쁨까지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작자 미상).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뽑으신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입니다.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정립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세상을 품기 위한 사랑의 준비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도를 예수님께서 뽑으십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매 순간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사랑과 봉사로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사도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각자 부르시되, 함께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구원 계획 안에서 부르고 계십니다. 역할의 차이는 있어도 사랑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믿음과 충실함이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오늘,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의 모범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부르심 안에서 사명으로 살아가는 은총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세상과 사람을 향해 걸어가는 하루 되십시오. 사도의 간택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사명을 따라 걸어가는 더 깊어지는 부르심의 시작입니다. 

 

 

 

에페소서 2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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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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