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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0/17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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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노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들의 신앙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시니 순교로 불멸의 월계관을 받은 복된 이냐시오를 본받아 저희도 굳센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0월 17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로마 4,1-8)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 오늘 복음
    (루카 12,1-7)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로마 4,1-8
오늘 제1독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형제 여러분, 

1 혈육으로 우리 선조인 아브라함이 찾아 얻은 것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보수로 여겨집니다. 

5 그러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6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7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2,1-7
오늘 복음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17일
최문기 마티아 신부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1

✚ 강론시작 07:2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우리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합니까?

어릴 때 우리나라의 무서운 전설을 다룬 드라마인 “전설의 고향”을 보며 귀신을 무서워하였습니다. 특히나 저는 ‘내 다리 내놔’ 편을 보고 나서는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저를 잡아갈까 봐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집 안에 화장실이 있지 않고 집 밖에 있어서 밤에 화장실에 가기도 꽤나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는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를 무서워하였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보이는 존재가, 특히 사람이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저에게 하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더 무섭습니다.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볼 때면 사람이 정말 무섭게 느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4-5)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경외’, 곧 두려워함은 성령 칠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무서운 분이셔서, 우리가 죽은 뒤에 심판하시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경외란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분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합니까? 사람입니까? 하느님입니까? 하느님을 왜 두려워합니까?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비교 불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주님의 벗!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어제까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위선자라고 나무라신 주님께서 오늘은 제자들을 당신의 벗이라고 부르시며 제자들이 당신의 벗으로서 취해야 할 태도를 알려 주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은 조심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하시는데 왜 그리 해야 하나 하면 하나는 제자들이 주님의 벗들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사랑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주님의 벗들이라면 주님의 벗답게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자 주님의 벗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벗이라는 고귀한 자의식과 하느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벗이라면, 그러니까 위선자들의 벗이 아니라 주님의 벗이라면 먼저 자기의 고귀함에 대한 자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하고, 그렇기에 박해자나 적대자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그들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잘 아시듯 주님의 벗이라는 자의식과 자부심은 교만과는 다릅니다. 교만이 남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가지고 남을 깔보는 것이라면 자부심은 나를 소중히 여기기에 남과의 비교 대상으로 자기를 함부로 내놓지 않는 것이며 요즘 말로 비교 불가인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주님의 벗이고 하느님 사랑의 고귀한 대상인데 어쩌자고 나를 하찮은 인간의 비교 대상으로 내놓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여길까 전전긍긍하고 더 나아가 두려워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보물을 싸구려를 파는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보물은 보물답게 있어야 하고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몇 푼에 팔리는 참새보다 귀한 존재이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하느님 사랑 안의 존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사랑은 두려움 없는 자유를 가져다준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히 세우시기 위하여 두 가지를 교육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루가 12,1)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로부터 장차 어떤 핍박을 당하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한 분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12,2-7)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내용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그분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해야 할 분은 육신을 핍박하고 죽일 수 있는 이가 아니라, 죽은 뒤의 권한까지 가지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이를 <히브리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히브 5,7)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아버지 하느님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 <시편>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께 대한 두려움은 순결하고 영원히 남는다.”(시편 18,10)

그래서 <집회서>에서는 말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이 주님을 사랑함의 시작이며, 주님에 대한 사랑의 시작은 믿음이다.”(집회 25,1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 외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그 참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루카 12,7) 

그렇습니다. 우리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쳐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께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8-19)

이를 잘 보여준 분이 바로 내일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입니다. 그는 처형당하기 위해 로마로 끌려가면서도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밀알이다. 맹수들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깨끗한 빵이 되리라”

이처럼, 사랑은 두려움 없는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7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박해를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께 
희망을 두고
주님이신 당신께 
믿음을 두게 하소서.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신 
당신의 사랑으로 
제 두려움을 몰아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언제 두려움이 사라지는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과 마주합니다. 미래, 실패,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까지. 이 두려움은 마치 우리를 옭아매는 사슬과 같아서, 우리를 위선적으로 만들고 거짓말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두려움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고,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머리카락까지도 모두 세어 놓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루카 12,6-7)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보호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찮은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는데, 하물며 그분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언제 두려움이 사라지는가?"

그 답은 바로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 생깁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우리 안에 싹트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중요한 관계는 '믿음의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결혼을 예로 들어 봅시다. 배우자를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결혼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안 믿으려는 사람은 결혼해서도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시달립니다. 아무리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리 충실한 모습을 보아도, 결국은 불신과 두려움에 갇혀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위선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약해 보일까 봐, 세상에 잡아먹힐까 봐, 혹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마치 멧돼지가 발에 가시가 박혀도 절뚝거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글에서는 약하게 보이면 바로 사냥감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런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보호를 믿기로 결심하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위장하고 두려움에 갇혀 살았습니다.

여기, 아버지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에 평생 위선적이고 경쟁적인 삶을 살았던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 교수의 책 '삼십년 만의 휴식'에 나오는 실제 상담 사례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늘 불안과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끊임없이 남들과 경쟁하며 이기려 했고,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을 혹사했습니다.

그의 불행의 근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평생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사랑이나 인정의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늘 비판과 냉대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 노력이 사회적인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지독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두려움이 그를 위선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늘 비난받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그는 마침내 이 두려움의 실체를 직면했습니다. 이무석 교수는 그에게 아버지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더 이상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 역시도 사랑받지 못했던 불쌍한 존재였음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 '결심'은 그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무석 교수는 그의 꿈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한 뒤 그가 꾼 꿈에서, 예전에는 늘 엄하고 거대했던 아버지가 소파 위에 있는 작은 강아지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 상징적인 꿈은 그가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결심과 함께 그의 내면에서 '믿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의 인정을 구하지 않아도 자신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어 30년 만에 비로소 '휴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위선적인 삶은 막을 내렸고, 그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언제 두려움이 사라지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한 근원적인 필요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기로 결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위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참된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의 큰형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적 밤마다 극심한 가위눌림이라는 어둠의 세력에 시달렸던 형님은, 스스로 강해지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이제는 주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성호를 긋고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렸고,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보호가 임하며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어둠의 세력과 싸우며 강한 척 살지 않아도 되는, 참된 평화를 얻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 옵니다. 그런데 믿음은 믿기로 결심할 때 생깁니다.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닙니다. 그냥 주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하기로 결심하면 됩니다. 그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참된 믿음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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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예전에 해외로 성지순례 갔다가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신자들과 함께 해외 성지순례 중이었는데, 가이드가 신자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례지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분명히 확인했는데,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이어서 다른 순례팀에 휩쓸려 가신 것 같다고 합니다. 연세가 꽤 있으신 분이어서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와 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그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너무 쉽게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드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분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일행을 잃어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마침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십니다. 
 
현명하신 분이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당황해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시거든요. 그래서 서로 길을 엇갈려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찾으러 오겠지.’라는 믿음에 자리를 지켜 주시니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길을 잃었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시 멈춰야 합니다. 그래야 엉뚱한 곳에 가지 않고 제대로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게 됩니다. 멈춰서 우리의 안내자이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는 주님보다 다른 것에 믿음을 둔다는 것이지요.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1.2) 
 
예수님께서는 이제 잘못된 종교 지도자를 따라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십니다. 먼저 누룩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하고 그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이 바로 이 누룩과 같다는 것입니다. 위선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생각이나 행동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 사람의 신앙과 삶 전체를 부패시키고 본질을 잃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12,4.5) 
 
세상의 권력자들은 기껏해야 우리의 육체적 생명을 앗아갈 뿐,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모두 알고 계시며 깊은 사랑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에 신뢰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길을 잃어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서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자부심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스티브 룬드퀴스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세상은 우리를 잊을지라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를 결코 한순간도 잊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가장 따뜻한 시선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오늘 만납니다. 소외된 이들, 가장 작은 이들이 하느님께 가장 가까운 소중한 사람임을 다시 일깨워 주십니다. 모든 인격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며,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의 평가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인격을 수단이 아닌 존재로, 평가가 아닌 기억으로, 비교가 아닌 존중으로 마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중한 인격과 타인의 존엄을 사랑과 신뢰 안에서 다시 만나는 소중한 오늘입니다.

소중한 인격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가장 빛나는 하느님의 가장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소중함이 이끌어가는 삶은 사랑의 참된 여정입니다. 소중함의 여정 위에 우리가 있습니다.

 

 

 

루카복음 12장 6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루카 12,6) by 피어나네 말씀카드 말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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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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