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13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로마 1,1-7)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29-32)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로마 1,1-7
오늘 제1독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루카 11,29-32
오늘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13일
세베로 이사악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2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주님께 내 마음의 안경알을 맡겨 드리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고 하시면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어 그들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핵심을 ‘회개하라.’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할 수 있을까요? 저는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은 ‘깨끗한 안경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안경알에 먼지가 묻으면 세상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똑같은 물체들이고 책이며 사람들인데 먼지 때문에 흐려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도 먼지가 있다면 우리의 눈 또한 그만큼 세상을 흐리게 볼 것입니다. 그러나 안경알을 닦듯 우리 마음의 먼지를 닦는다면 세상을 깨끗하게 볼 것입니다.
그러면 안경알은 누가 닦습니까? 안경 주인이 닦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누가 닦습니까? 우리 마음의 주인이 닦습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나 자신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 세상을 만드신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닦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려면,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해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하루 안경알을 깨끗이 해 보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주님께 내 마음의 안경알을 맡겨 드리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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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놀라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악한 세대”라는 말은 <마태오복음>에 비추어 보면,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그들의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루카 11,16 참조).
사실,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했건만, 막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 달려왔건만, 막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지역에서는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신 지혜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시험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말하실 뿐입니다. 곧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고 외치는 회개의 때가 왔다는 것과 그가 바다에 빠져 고래 배속에서 사흘째 날에 다시 밖으로 나온 일, 곧 사람의 아들이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표징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1)
사실, 요나와 솔로몬은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소생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솔로몬의 번영과 지혜는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곧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표징을 볼 줄 아는 눈, 곧 ‘믿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사실 믿음으로 보면, 모두가 신비요 사랑이요 자비요 기적입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활동이요 현존입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을 보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불가사의한 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크나 큰 사랑과 그 자비를 선포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9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신앙인의 관계 손절 대상 1순위
얼마 전에 제가 성당 앞길에 서 있는데, 성당도 안 다니시는 어떤 분이 대뜸 성당은 왜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곧 예비자 교리가 시작한다는 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료 급식은 하나의 표징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이 표징을 요구한다면 그 사람과는 더는 대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이 이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표징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를 나무라십니다. 그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믿지 않는 하나의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표징을 받을 자격이 된 이들은 먼저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러 온 남방여왕이나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이 그들을 단죄할 것이라 하십니다.
세상엔 정말 많은 믿을만한 표징이 있습니다. 세계 도처 어디를 가나 썩지 않는 성인들이나 성체 기적들이 널렸습니다. 예를 들면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성녀는 몸이 썩지 않고 내장도 그대로 있습니다. 란치아노의 성체성혈 기적은 UN에서까지 조사를 해서 기적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래도 안 믿습니다. 믿기 싫으니까요.
이런 예는 수없이 많고, 심지어 신자들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제가 어떤 자매의 병자성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남편의 외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암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의아해했습니다. 만약 남편의 외도가 행복해 보이지 않고 불쌍해 보였다면?
어떤 자매는 남편이 외도하는데, 매일 한 시간씩 성체조배를 1년 동안 했더니 남편이 불쌍해 보이더랍니다. ‘그게 뭐라고 자녀들과 아내,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욕을 먹어가면서 그렇게 죄를 지을까?’ 하고요.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상 아닐까요?
죄가 행복으로 보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느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도 표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줄었을 때 저는 조금 더 죄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분명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나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강론할 때 아이들이 귀에 안 들어오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아이들의 행복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우선 죄가 고통임을 알려줄 예언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하.사.시.’가 그런 예언자였습니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해서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 책이 하.사.시.입니다. 먼저 이 설교를 듣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든 다윗 임금은 자신의 죄를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나탄 예언자가 찾아와 부자의 탐욕에 대한 비유를 들려주자, 다윗은 크게 분노하며 “주님을 두고 살아 있는 한, 그런 짓을 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라고 외칩니다. 바로 그 순간, 나탄은 다윗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선언합니다. “그자가 바로 임금님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까맣게 잊은 채, 다른 사람의 죄(그것도 비유 속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불같이 의로운 심판관 행세를 했습니다. 자신의 거대한 죄를 ‘필요에 의한 선택’ 혹은 ‘왕의 권리’로 여겼기에 가능했던 위선이었습니다. 설교는 이 위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표징도 받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입니다.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에 빠지고, 쾌락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공허하고 죄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오랜 습관의 사슬을 끊어낼 의지력이 없었습니다. “내일은 꼭 끊어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그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주교를 만납니다. 그는 처음에는 주교의 뛰어난 웅변술에 끌렸지만, 점차 그의 설교를 통해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결단하지 못하고 정원에서 괴로워하던 어느 날, 어디선가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하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이를 하느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로마서 13장 13-14절,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그만두십시오.”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의 마음을 꿰뚫는 빛이 되었고, 그는 마침내 오랜 죄의 삶을 청산하고 회개합니다.
자신의 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씀을 먼저 접하려고 하지 않는 자가 표징을 요구할 때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자가 찾는 표징은 믿지 않는 핑계일 뿐입니다. 거기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도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느님의 가르침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찾았습니다. 절대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 어른을 공경해서 모르는 어른에게도 인사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지금 여쭤보니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하신 줄도 모릅니다.
저는 그래서 성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별히 ‘하.사.시.’의 말씀에 무관심한 이들은 일단 마음적으로 가까이하려 하지 않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이들이라 나의 말도 먹히지 않고, 나의 사랑도 온전한 표징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을 정할 때 우선 그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말이나 하느님 말씀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는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며 표징만 보여달라는 이들은 우선은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이들을 ‘악하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기꺼이 가까이 가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단점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그리고 이 단점을 남에게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단점이 진짜 단점일까요? 단순히 사람들과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 단점이라면 솔직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눈이 처졌습니다. 저의 형제 모두가 처진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유전적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놀림의 이유가 되면서, 처진 눈을 가리기 위해 두꺼운 안경테를 쓰기고 하고, 일부러 눈을 부릅떠서 쌍꺼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눈이 가려졌을까요? 처진 눈이 과연 지금은 올라갔을까요? 그냥 힘만 쓴 것이었습니다.
인도의 18세 소년인 라리프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얼굴 털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체 곳곳에 털이 자라는 희귀병인 과 다모증을 앓고 있습니다. 처음 만나 사람들은 그의 엄청나게 많은 털을 무서워하고, 사람들로부터 털을 제거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외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면서 깎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단점이라 할지언정 이를 숨길수록 상대에게 솔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과 정체성에 대한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을 향해 ‘악한 세대’라고 지적하면서, 진정한 표징은 ‘요나 예언자의 표징’뿐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믿음을 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를 숨기려고만 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죄를 모두 숨기고 있을 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위선자’라면서 심하게 꾸짖으셨지요. 자기 죄를 숨기면서 짐짓 겉으로면 경건한 척했던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군중도 죄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겁도 났을 것입니다. 이분이 정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면 자기의 모든 죄가 드러나지 않을까? 그래서 예수님의 권능과 정체성을 환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표징’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에 따라 촉발된 회개의 메시지를 예표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밤이 어두운 장막 뒤에는 미소 짓고 있는 새벽이 있다(칼릴 지브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표징을 찾지만, 하느님께서는 회개를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일상 속에서 다시 깨어나는 하느님 현존이 가장 살아있는 우리 믿음의 표징입니다. 사람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징은 외적인 기적이 아니라, 내적인 회심의 뚜렷한 표징입니다.
참된 신앙은 보이지 않아도 신뢰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표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회심한 우리의 마음이 곧 하늘의 표징입니다. 이 표징은 하느님의 구원이 우리의 약함과 회개를 통하여 드러난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부활은 고통을 통과한 사랑의 참된 표징입니다.
요나의 표징은 하느님의 계시가 우리의 역사 안에서 육화되고 완성된 사건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적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일입니다.
마음의 변화 없는 기적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회개가 표징을 완성하듯 회개 자체가 곧 예수님께서 바라시던 표징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 시간이 기적만을 바라는 요행이 아니라 회개한 우리 마음 안에 가득 깃든 사랑이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마음의 날입니다.
로마서 1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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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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