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5/10/11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0. 11.
반응형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0월 11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11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요엘 4,12-21
오늘 제1독서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민족들은 일어나 여호사팟 골짜기로 올라가라. 내가 사방의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려고 거기에 자리를 잡으리라. 

13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 와서 밟아라. 포도 확이 가득 찼다. 확마다 넘쳐흐른다. 그들의 악이 크다. 

14 거대한 무리가 ‘결판의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결판의 골짜기’에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15 해와 달은 어두워지고 별들은 제 빛을 거두어들인다. 

16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피난처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새가 되어 주신다. 

17 그때에 너희는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사는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 되고 다시는 이방인들이 이곳을 지나가지 못하리라. 

18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 

19 이집트는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량한 광야가 되리라. 그들이 유다의 자손들을 폭행하고 그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유다에는 영원히, 예루살렘에는 대대로 사람들이 살리라. 

21 나는 그들의 피를 되갚아 주고 어떤 죄도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으리라. 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1,27-28
오늘 복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11일
이동철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5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말씀으로 채우고 말하기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계속 지켜보던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동을 지켜보며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와!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저런 아들이 있어서 틀림없이 기쁠 거야!’ 

보통 어머니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잘되어서 나중에 부양받기를 바란다거나 자녀 덕에 사회에서 어깨에 힘주고 대접받으며 다닐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8).

오늘 복음을 읽고, ‘그렇다면 성모님께서는 행복하시지 않았다는 말씀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가 당신을 낳으신 성모님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실 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성모님께서도 “하느님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생각하[신]”(41항)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나의 생각을 하느님 말씀으로 채우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행복 갈아타기

오늘 주님께서는 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실천하지 않고 듣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하느님 말씀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듣기만 해도 행복하잖습니까?  

사실 하느님 말씀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의 식당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가 계신데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십니다. 처신하시는 것을 보면 아주 자존심도 있고 지혜로우며 다정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신부라는 것을 모르십니다. 아니 제가 신부라는 것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부가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도 모르시고 하느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시지요.  

이 할머니가 그래서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제가 아들이나 며느리 손주 얘기를 여쭐 때 피하는 것을 보면 자손들로 인해 행복한 것 같지는 않고 그래서 이럴 때 하느님이라도 아시면 얼마나 좋고 행복할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행복 갈아타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행복 갈아타기’란 말을 만들어 썼습니다. ‘행복 갈아타기’란 이제까지 이런 행복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턴 다른 행복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행복 열차를 갈아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갈아탈 다른 행복이 천상 행복이요, 오늘 말씀으로 치면 육신의 아들을 잘 둔 어머니의 행복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은 또는 영적으로 낳은 아들을 가진 영적 어머니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영적 어머니는 하느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낳기까지 해야 하는데 말씀의 실천이 바로 낳는 것입니다. 임신뿐 아니라 출산까지 해야 완전히 어머니 되는 것이며, 하느님 말씀을 실천할 때 완전한 영적 어머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아직 배 속에 있으면 사람들이 볼 수 없고 출산을 해야지만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듯이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님도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할 때 그것으로 사람들이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을 보고, 그런 다음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을 통해 그리스도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오늘 우리는 아주 짧은 오늘 얘기에서 ‘행복 갈아타기’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받고, 하느님 말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가르침을 받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어떤 행복이 참된 행복일까요?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행복선언’을 들려줍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고 모욕하는 자들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제압하셨습니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너무도 감동을 받아 탄성을 올립니다.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루카 11,27)

그러자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여기서, 여인의 행복선언과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사뭇 다릅니다. 이처럼, 모두 ‘행복’을 찾지만, 각자가 찾는 행복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행복이 참된 행복일까요? 

사실,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 마리아처럼 특별한 은총을 받은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특별한 은총은 예수님을 낳아서 젖을 먹인 데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온전한 믿음으로 그렇게 잉태하였음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고백합니다.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십니다.”(루가 1,45)

성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말합니다.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잉태한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었던 점에 있어서 더욱 복됩니다.’

참으로 성모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으셨기에 말씀을 잉태하시고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다.”(루가 8,21) 

이처럼, ‘행복’은 말씀을 믿고 지키면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경청한 바를 믿는 일’, 그리고 ‘믿는 바를 지키고 실행하는 일’ 입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일’, 그것을 우리는 성모님에게서 배웁니다. 곧 ‘귀담아 듣는 것, 마음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곧 ‘말씀하시는 분의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 ‘마음의 귀를 경작하여 믿음으로 듣는 일’입니다. 그것은 말씀보다 앞서 ‘말씀하시는 분을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분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믿음의 능력으로 말씀이 성취되고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진정 참된 행복을 바란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바를 믿음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곧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5-6)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
들은 말씀을 
잉태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잉태하게 하소서.

하여, 말씀을 품은 
감실이 되게 하소서.

주님! 품은 말씀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사랑으로 지키게 하소서.

주님! 말씀을 
경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다름 아닌,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경작하게 하소서.

오늘 저를 경작하여 
당신 말씀을 이루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우리는 종종 어린이를 보면,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묻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첫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돌잔치에서의 중심 행사로 ‘돌잡이’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돌상 위에 여러 가지 물건을 올려놓고 아기가 무엇을 잡는지에 따라 아이의 장래 직업이나 재능을 점쳐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궁금해합니다. 
  
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는 삼촌이 공부하고 있는 세 살짜리 조카에게 묻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조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구슬 아이스크림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삼촌은 약간 실망했습니다.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조카가 겨우 구슬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겠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삼촌처럼 의과 대학에 가면 어때? 그러면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어 보람 있게 살 수 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카는 단호하게 “싫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의사가 되면 아프고 슬픈 표정을 계속 봐야 하잖아. 구슬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아저씨는 정말 행복할 거야. 구슬 아이스크림을 받은 아이들은 좋아서 모두 환하게 웃거든. 나는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게 좋아.”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을 약간 각색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과연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면서 찡그리고 화난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 
 
이 여인의 외침은 당시 유대 사회의 배경에서 볼 때, 훌륭한 아들을 낳고 기른 어머니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 개인에 대한 칭찬을 넘어, 그분을 잉태하고 길러내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축복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혈연적, 육체적 관계를 통해 예수님과 맺어진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으십니다. 성모님께서 복되시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행복의 기준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참된 행복은 세상의 기준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의지적인 믿음에 있습니다. 이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과연 사람들에게도 이 행복을 나눠주고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어떤 것도 홀로 좋거나 아름다울 수 없다(랄프 왈드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찬미와 기대 속에서, 우리에게 참된 행복의 길을 조용히 일깨워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은 세상의 칭찬이나 눈에 보이는 결실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된 삶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행복의 사람입니다.

행복의 근원은 말씀에 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마음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사랑으로 응답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 안에 머무는 행복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것이 행복의 본질입니다. 단순한 혈연적 관계가 아닌 말씀의 일치에서 오는 하느님 중심의 행복입니다.

말씀의 행복이며 믿음의 행복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 또한 말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은 날마다의 선택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참된 실천입니다.

 

 

 

루카복음 11장 25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오늘 성경 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251011_오늘성경구절이미지.jpg
0.63MB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