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요나 4,1-11)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오늘 복음
(루카 11,1-4)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요나 4,1-11
오늘 제1독서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1 요나는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2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였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5 요나는 그 성읍에서 나와 성읍 동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하였다.
6 주 하느님께서는 아주까리 하나를 마련하시어 요나 위로 자라오르게 하셨다. 그러자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7 그런데 이튿날 동이 틀 무렵, 하느님께서 벌레 하나를 마련하시어 아주까리를 쏠게 하시니, 아주까리가 시들어 버렸다.
8 해가 떠오르자 하느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 거기에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9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11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루카 11,1-4
오늘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8일
박민웅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4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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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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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요나의 기도와 주님의 기도
오늘 독서와 복음에 두 가지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는 독서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입니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요나 4,2-3). 요나는 하느님께 투정 부리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죽는 것이 낫다고 한탄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왜 제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가지신 것이 없으셨지만 모든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셨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목숨까지 내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백 데나리온의 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고, 그것도 한 아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이 없으신 가운데에서도 나눔으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시면서도 부유하시고, 머리 둘 곳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면서도 늘 유쾌하시고 다른 이에게 온유하신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어느 때라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청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요나의 기도’와 ‘주님의 기도’, 이 둘은 ‘기도’라는 말에서는 같지만, 기도의 지향점은 다릅니다. 요나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기도는 주님을 향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회개, 동정심 없는 나부터
오늘 요나는 화를 냅니다. 첫째로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니 화를 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자기 말대로 회개하였는데도 화를 내고, 그것도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느님께 화를 내니 말입니다. 간댕이가 부은 것 아닙니까? 그리고 화낼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압니다. 니네베의 회개가 자기가 원한 것이었으면 화내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오히려 기뻐했을 겁니다. 니네베의 회개는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었지 요나가 원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요나는 니네베가 회개치 않아 천벌 곧 하느님의 벌을 받길 원했지요. 참 무섭습니다. 미워하면 그가 회개하길 원하지 않고 천벌을 받길 원합니다. 미워하는 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지옥 가게 되길 원하지요.
그러므로 누구의 회개를 원한다면 나는 그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사실 누가 잘못하면 저는 그를 미워하고 분노하기만 했지 그가 회개하길 바라며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영혼을 불쌍하게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불쌍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뿐이지 오늘 요나서의 주님 같으려면, 다시 말해서 미움이나 분노의 불순물이 전혀 없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그런 완전한 사랑의 동정심이 있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을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데 이런 주님께 대해 요나는 이렇게 불평하고 화를 냅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그러우시고 분노에 더디신 것이 자기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라면 고맙겠는데 니네베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은 불만이고, 그래서 이런 하느님 자비에 대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작 회개해야 할 것은 요나와 저입니다. 동정심 없는 곧 무정한 저를 회개해야 하고, 내게 그늘을 주던 아주까리 잎 때문에 행복하고, 그것이 말라 죽으니 화나고 행복하지 않은 저를 회개해야 합니다.
나만 용서받고, 나만 구원받고, 동정심 없이 나만 행복하려는 내가 같이 용서받고 같이 행복한 내가 되기로 결심하며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걷는 길
기도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처음 시작부터가 충격입니다. 하느님을 “압바”라는 친밀함으로 부르시며,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곧 인간인 저희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원과 지위로 들어 올리십니다. 저희가 하느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하시어, 당신과 함께 아들인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시편작가의 노래를 실현하십니다.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시편 82,2)
우리는 이 특전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충격은 그냥 “압바”가 아니라, “우리 압바”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곧 ‘우리’는 ‘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우리’라는 말에는 시제가 없습니다. 곧 과거의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포함하여 미래의 하느님의 자녀들까지를 포함하여 “우리”라는 형제 가족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로서의 삶의 원리가 이 기도로 주어집니다. 곧 자녀로서의 삶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름 아닌 ‘자녀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로지 아빠 아버지께 속해 있는 아들, 딸로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길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기도의 열쇠말은 “아빠” 입니다. 기도는 “아빠”를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기도는 “아빠”, 아버지이신 그분의 현존 앞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말해줍니다. 곧 그분을 대면하고 있는 면전에서 벌어집니다.
이로써,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곧 인간인 저희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원과 지위로 들어 올리십니다. 저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시어, 당신과 함께 아들인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십니다. 하여, 우리를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를 하느님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특전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을 통하여 받았습니다. 동시에, 그에 따른 우리의 소명도 부여받았습니다. 곧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이로서 걸 맞는 자녀로서의 삶이 소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게 하는 일이요, 자신이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나라를 이루는 일이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생명의 빵으로 선사하신 당신 아드님을 “양식”으로 삼는 일이요, 당신의 아드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며,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용서”하는 일을 하는 것이요, 그 어떤 시련이나 “유혹과 악”에서도 아버지를 신뢰하며 아버지께 의탁하는 일이요, 그러기에, “유혹과 악”에 빠지지 않게 구해달라고 아버지께 청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아빠 아버지”께 속해 있는 아들, 딸로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녀의 길’을 걸어갑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4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제 마음을
드리게 하시고
당신께 속한 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2022년 12월 거의 몇 시간 차이로, 차례로 세상을 떠나신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갑내기인 이 부부는 2022년 7월에 100세 생일, 그리고 결혼 8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오하이오주 해밀턴에 사는 허버트와 준 말리코트 부부입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80년 동안 단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하십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그 비결을 묻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잠들기 전 매일 반드시 키스합니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잠시 떨어져 시간을 갖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대화했습니다.”
키스하면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이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싸울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노부부의 고백을 통해 ‘친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친밀감을 잃지 않도록 삶 안에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친밀감이 계속 대화를 나눌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이야기하지요. 이 관계는 친밀감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만 그럴까요?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친밀감이 있어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평생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연중행사 식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마지못해서 주일 미사 참석하는 사람이 과연 주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제자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루카 11,1). 당시 유다교에서는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고유한 기도를 가르쳐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제자 공동체로 남들에게 보이길 바랐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루카 11,2)라고 시작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여기서 핵심이 ‘아버지’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 때문에 감히 사용하지 않았던 호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친밀하게 부르는 표현을 쓰십니다. 기도의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친밀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하느님과의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날 수 있으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의 생존(양식), 관계(용서), 그리고 영적 성장(유혹에서의 보호)에 필요한 은총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친밀감’을 형성하는 노력보다, 먼 곳에서 우리를 보시는 분 아니면 자기 부탁을 다 들어주는 분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은 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빅토르 위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루카복음 1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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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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