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하느님, 모든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되기를 바라시니 수확할 밭에 일꾼들을 많이 보내시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백성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사로 힘을 얻어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9주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2,1-5)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제 2독서
(로마 10,9-18)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오늘 복음
(마태 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이사 2,1-5
오늘 제1독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로마 10,9-18
오늘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마태 28,16-20
오늘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19일
조정래 시몬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6:4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
어릴 때는 겨울이 참 좋았습니다. 눈이 오면 눈사람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고, 긴 겨울 방학도 있고,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좋았던 까닭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기쁜 날’이기 때문이 아닌, 산타 할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이날은 꼭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얼굴을 보고 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밤이 되고, 어느덧 밤 열한 시가 넘었습니다. 슬슬 잠은 오고, 부모님은 빨리 안 자면 산타 할아버지가 안 온다고 하셨지만 저는 꼭 얼굴을 보고 잘 거라고 떼썼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지쳐 잠이 들었고, 제가 걸어 놓은 양말에는 가지고 싶던 장난감 대신에 학용품이 들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일에서 설레어 합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가던 날이 기억나십니까? 아니면 수학여행 갈 때는 어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때,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나를 닮은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등 우리 삶 곳곳에 설렘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설렘이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느끼는 설렘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선포해야 할까요? 만약에 우리가 로또에 당첨되어서 내일 당첨금을 타러 간다면 잠이 오겠습니까? 어릴 때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나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릴 때처럼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기다려질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듣고 실천하며 선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복음의 사랑만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잘 아시다시피 오늘 전교주일에 읽은 마태오복음은 주님께서 열한 제자 곧 사도들을 모든 민족에게 파견하시는 내용인데 앞서 열두 제자를 처음 파견하실 때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만을 찾아가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태오복음의 관점은 이런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런 다음 모든 민족에게입니다. 부활과 성령 체험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후에는 모든 민족에게입니다.
이것은 파견 곧 전교의 확장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곧 나와 집안을 가지런히 한 뒤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는 것과 같은 확장 이론입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집안도 엉망이면서 정치한다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거지요.
사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전교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전교하려고 들지도 않겠지만 전교하려 해도 누가 그에게 전교되겠습니까? 행복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야 뭔 말을 해도 설득력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다 전교하지 않고,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 말해도 그것으로 전교되지 않습니다 복음으로 행복한 사람만이 전교도 할 수 있고 그의 전교로 전교도 되는 법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복음으로 행복한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복음으로 행복한 것이 전교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행복한 것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나만 행복한 것이 미안한 사람, 나는 행복한데 불행한 다른 사람이 너무 불쌍해 안타까운 사람, 그것도 난 복음으로 행복한데 남은 그렇지 않아 안타까운 사람, 그런 사람만이 나처럼 복음을 믿어 행복해 보라고 권유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랑이고, 복음의 사랑만큼 전교가 확장되는 것임을 성찰하고 다짐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분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복음화 시키는 일이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입니다. ‘전교’ 혹은 ‘복음화’라는 말을 떠올릴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곧 ‘전교’ 혹은 ‘복음화’를 교회의 대형화와 거대화처럼, 몸집 부풀리기로 알아들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왜냐하면, 복음화는 커져가고 중심이 되어가고 힘을 길러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나누어지고 쪼개져서 번져가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적으로 물리적으로 늘려가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이미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진정한 내면화와 성숙, 신앙의 실천도 포괄적 의미에서 복음화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미 신자가 된 우리 역시 여전히 복음화의 대상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 우리 자신의 ‘새로운 복음화’, ‘자기 복음화’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을 이사야의 환시를 통해 보여주면서 우리를 초대합니다.
“야곱의 집안아 , 자,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가자!”(이사 2,5)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전파되어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10,13)라고 하면서, 선포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나갔다.”(로마 10,17-18)
<복음>은 스승을 잃고 슬픔에 빠져 아직도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신원과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절망하고 의심에 떨어져 있는 제자들에게 꾸짖고 책망할 만도 한데, 오히려 ‘새로운 신원’과 ‘사명’을 주십니다. 그만큼 당신께서는 언제나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시고, 더 믿고, 더 희망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항상 우리의 사랑보다 더 크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전권선언”이요, 두 번째 부분은 “전도명령”이요, 세 번째 부분은 “현존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고 전권을 선언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이 지니신 권능으로 가르치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후, 이 모든 권한으로 세상을 통치하심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전권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새로운 사명’과 함께 ‘새로운 신원’을 부여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이는 제자들에게 있어, 두 가지 의미의 어마어마한 사실이었습니다. 곧 제자들의 ‘새로운 신원’과 ‘새로운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단지 복음의 선포자로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새로운 신원인 ‘스승으로의 사명’을 주어 파견하십니다. 곧 “모든 민족”, 유다민족이나 이방민족이나 우방이나 적국이나 구별 없이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복음을 선포하라는 새로운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 곧 ‘제자로 삼는 사명’을 구체적으로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마태 28,19) 제자로 삼는 일이요, <또 하나>는 “주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마태 28,20) 제자로 삼는 일입니다. 곧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요, 그리하여 자신들의 제자가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제자로 삼는 일’입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일”이요, 그것을 “지키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먼저 제자가 되고, 동시에 스승이 되는 일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당신께서는 언제나 제자들과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는 ‘항상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당신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계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당신의 동행에 대한 약속’이요, ‘항상 우리와 함께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당신이 부여하신 사명을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복음화 시키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자신 역시 복음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곧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제자 되는 길이 됩니다. 그러니 먼저 참된 제자가 되는 이가 참된 스승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전교주일”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이 그리스도인의 매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매력을 발산한다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교종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주님!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가르침을 배워 익히고
지키는 자 되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께 뿌리박고
살아가게 하소서.
무엇을 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하고
어디에 있더라도
당신께 눈을 떼지 않는
당신께 속한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의 숨결이 되어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이것’으로 불렸다면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저는 자주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스승이 되라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왠지 선교와 스승이 된다는 것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한을 받으신 당신께서 우리가 스승이 되려고 할 때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선교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주지 않고,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자녀를 보고만 있는다면 그건 사랑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하늘 공동체에 속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직행 티켓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선교해야 할지는 잘 모릅니다. 예전처럼 선교하다 순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가두선교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집을 방문하면 다들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오늘 복음에서 ‘스승’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옮깁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의 스승님!”이라고 불렸던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완성은 ‘스승님!’이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나이만 조금 들으면 여기저기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존경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선생님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배울 것이 없는데 어떻게 스승님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스승이라 불려도 될 만한 사람을 새로 찾아냈습니다. 바로 ‘박진영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입니다. 이는 장관급이라고 합니다. 왜 대통령이 박진영을 장관급에 앉혔을까요?
박진영 씨의 재산은 수천억에 달합니다. 얼굴이 못생겨서 처음에 가수를 하겠다고 할 때 단 한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실력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견디어 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고 작곡가인 김형석 씨에게 음악 프로듀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방시혁 씨와 함께 JYP를 세웠고 정지훈 씨를 키워내면서 회사를 성공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성공은 했는데,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한 거예요. 지금까지 성공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이젠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향해 달려가기로 했습니다.”
누가 존경받을까요? 바로 ‘덕’이 있는 사람이 존경받습니다. 가수 비 씨의 어머니가 아플 때 박진영 씨는 모든 일정을 접고 그의 집에 와서 어머니를 업고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정지훈 씨는 어머니를 살린 것이 박진영 씨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유명해지면 가장 밑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해야 한다고 ‘겸손’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몸 관리는 철저하다 못해 처절합니다. 하루 한 끼 먹으며 운동은 2시간씩 합니다.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후배에게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60이 되어서도 젊었을 때보다 더 춤을 잘 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대부분 연예인들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그냥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지만, 박진영 씨처럼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스승’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진영 씨는 진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존경받는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G.O.D.의 김태우 씨는 박진영 씨에게 많이 혼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2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김태우 씨가 유명해져서 술에 취하고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자 인기보다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듣고 싶으셨던 칭호는 무엇이었을까요? ‘스승’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사랑이었고 가장 큰 선교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납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현인도 스승과 같은 말입니다. 바로 ‘워런 버핏’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는 주식으로 세계 제1의 부자였던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사랑받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가르침을 통해서입니다. 그도 스승이 되고자 했습니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그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게 된다면 이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스승이 되라고 하시며, 그것이 이 세상에서 달성하고 와야 할 가장 큰 목표이자 사랑의 실천이라고 하십니다.
스승이 되려면 ‘지-덕-체’의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지(智)는 지식이고 지혜이고 실력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가르칠 것도 없습니다. 덕(德)은 겸손함입니다. 교만하면 제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제자를 이용해 자기를 채우려 합니다. 체(體)는 건강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였습니다. 제 몸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서 누구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선교는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의 스승이기도 하셨습니다.”라는 말씀을 들으면 부모님은 얼마나 기쁘실까요? 낳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 길렀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표도 스승이어야 합니다.
한국 가톨릭의 위대한 스승이 계셨습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많은 비신자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몸을 혹사해서 일찍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지덕체의 완전함으로 톤즈 아이들이게 참 스승이셨고,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이 생겼습니다.
성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스승이 됩시다. 가톨릭 스승이 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스승이 되기 위해 어떤 실력을 연마하고 있습니까? 또 어떤 덕을 닦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습니까? 매일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이것이 안 된 상태에서 아무리 선교하려고 해봐야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하늘에 오르실 때 500명이 넘는 제자들이 그분을 바라보았듯이, 우리도 수많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주님께 갈 수 있어야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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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세상 안에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은 세 가지라고 말하는 어느 작가의 말이 기억납니다. 그 세 가지는 소소한 기쁨, 특별한 기쁨, 깊은 기쁨입니다. 이 세 가지 기쁨이 삶을 바로 세우고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며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는 데 공감합니다.
먼저 소소한 기쁨은 일상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현재의 경험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찾아내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득 찾아오는(알아채는) 기쁨으로 자기를 지탱하며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특별한 기쁨은 오래 지속되며,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사건, 상황 지향적인 기쁨입니다. 세례, 첫영성체, 입학식, 졸업식, 첫 월급, 결혼, 첫 아이, 첫 손주 등 강도가 센 기쁨입니다.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에 특별합니다.
마지막으로 깊은 기쁨입니다. 힘든 과정을 거치고 많은 대가를 치른 뒤에 얻어낸 기쁨입니다. 그래서 이 기쁨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실패나 거절의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들을 만들어가야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삶 안에 기쁨 자체가 아예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남과의 비교와 남 탓으로 기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데 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기쁨이 없을까요? 자기 의지만 있으면 그 기쁨을 누구보다도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리게 됩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일명 전교 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선교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8-19).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유언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는 제자들이지만, 그중에 더러는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말씀은 완벽한 믿음을 갖춘 사람만이 따르는 것이 아닌 부족하고 나약한 이들 역시 따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따름으로 인해 그 안에서 진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우리 기쁨의 원천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언제나 함께 있겠다면서 가장 큰 힘과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기쁨은 선택이다(에픽테토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복음화란 복음을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내는 우리의 삶입니다. 복음화는 교회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란 모든 민족이 각자의 문화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느님 나라의 생명과 사랑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입니다. 모든 민족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복음화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하는 과정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이 각 민족의 고유한 인간 경험 속에 현존하는 일입니다.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 안에서 새로운 인간을 빚어가는 창조적 사건입니다. 복음화는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민족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참된 복음화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를 완성하는 해방의 사건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민족과 문화 안에 스며들어 구원과 일치,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십니다.
복음화는 서로 형제가 되는 인류 가족을 이루는 여정입니다. 오늘의 복음화는 먼 나라가 아니라, 내 마음의 경계를 먼저 허무는 일입니다. 복음화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 속에, 손길 속에, 그리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복음화의 시작점임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로마서 10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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