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9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콜로 1,9-14)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콜로 1,9-14
오늘 제1독서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 관한
9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10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11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루카 5,1-11
오늘 복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9월 4일
한정식 야고보 신부
✚ 교황님 9월 기도지향 00:20
✚ 미사시작 00:42
✚ 강론시작 06:44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어떻게 이런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 주위에 모인 많은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특별한 분이심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물을 씻으면서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분 말씀에서 권위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베드로는 어부로서 고기를 잡아 보았기에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를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5)라고 하면서 겸손하게 예수님의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5,5)라는 베드로의 말대로, 그는 지난밤에 겪은 실패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깊이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실패를 체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좋지 않지만, 우리를 겸손으로 이끌어 다른 사람에게 열린 마음을 지니게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는 이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께 순명하였고, 이 순명으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자세로 예를 갖추었고, 예수님의 호칭도 ‘스승님’에서 ‘주님’으로 바뀝니다. 그뿐만 아니라 죄인인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게 됩니다.
겸손은 더 큰 겸손으로 이끕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를 사도로 삼으십니다. 하느님과 생명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님 초대를 받아들여 사람들을 하느님과 생명으로 이끄는 새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스승인가? 주님인가?
오늘 예수님께 대한 호칭이 달라집니다. 처음 스승이라고 불렀던 베드로가 고기잡이 기적 후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렇게 호칭이 달라진 것이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실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부를 이유가 베드로에게 없습니다. 전날 자기 장모의 열병이 예수님에 의해 치유되지 않았다면.
이 기적적인 치유를 자기 눈으로 봤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승이라는 호칭은 남다른 사람이라는 뜻이고,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존중해야 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따라나설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제자로서 스승을 따를 수도 있는 거지만, 그 정도의 스승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냥 스승으로 예우해 주는 정도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정도는 아닌.
그래서 장모를 고쳐 주는 정도가 아닌 더 직접적인 체험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고기잡이 기적을 체험케 했을 겁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고기가 안 잡힌 적은 처음입니다.
그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제일가는 고기잡이입니다. 고기 잡는 능력으로 보면 최고입니다. 그리고 밤새 고기를 잡았으니 노력도 다한 겁니다.
인간의 힘은 두 가지 곧 능력과 노력이고, 능력도 있고 노력도 다했으면 잡히는 것이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한 마리도 안 잡힌 것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베드로가 못 잡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못 잡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못 잡고 예수님에 의해 잡게 하기 위함이며, 예수님께 대해 신 체험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도 종종 쓰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힘으로 되던 것이 안 되는 체험이고, 우리의 한계 체험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체험한 다음 무한하신 하느님을 체험케 하시는 방법입니다.
유한성을 깨닫고, 무한하신 하느님을 체험할 때 오늘 베드로처럼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그동안 잘난 줄 알고 살았다고 자신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돼야 주님을 따르게 되고, 특히 나의 주인님이 되어야 따르게 됩니다.
주님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종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종인 자기는 주인님 곁을 떠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잖습니까? 오늘 우리는 자문해 봅시다. 예수님이 내게 스승인가 주님이신가? 아니 스승도 못 되고 거지발싸개 정도밖에 못 되시는 것은 아닌가?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변화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앎을 버릴 때 찾아온다.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의 배에 타시어 군중을 가르치시고 난 다음,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그러자 시몬이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일이 다 끝났는데도 굳이 다시 그물을 치는 일은 귀찮기도 한 일이었지만, 사실, ‘그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부로서의 자신의 앎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고기가 없다는 것을 이미 밤새도록 확인한 그곳에 다시 그물을 친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하여 확인한 앎을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프로였던 베드로는 자신의 ‘앎’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1코린 3,18)
그렇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주님을 만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끌어올린 그물에서 많은 고기와 함께 자신의 앎에 대한 한계도 깨달았고, 무엇보다도 많은 죄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그는 그물을 치기 전에는 예수님을 어떤 한 분 ‘스승’(5,5)으로 만났을 뿐이었지만, 그물을 치고 난 다음에는 오직 한 분 ‘주님’(5,8)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인격적인 변화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앎’을 버릴 때 찾아들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되는 객체가 될 때에 우리의 변화는 찾아오게 됩니다. 곧 진정한 변화는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되는 존재가 될 때 찾아들게 됩니다.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응답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변화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요, 회개 역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수락에 의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앎’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수용할 때 생겨나는 은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앎’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나의 배’가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주님의 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항해하는 주님의 배’일뿐인 까닭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5,5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과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과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에 의해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재정이 걱정되면 하느님 부르심이 아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의 무대는 겐네사렛 호숫가입니다. 그곳에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그 실패와 절망의 순간, 예수님께서 그의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는 시몬에게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내 이성과 경험을 넘어서는 분의 지혜를 신뢰하고, 나 자신을 그 말씀에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기적을 체험하는 유일한 문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순종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탈을 쓴 거짓 목자에게 바치는 맹목적인 순종은, 오히려 우리를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종교들의 실상을 보십시오. 결국 재산도 버리고 몸도 버리고 가정도 망가집니다. 참된 진리를 따르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일하는 사람은 먹을 자격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시몬의 순종은 무엇이 달랐을까요? 그 결과는 ‘가득 찬 그물’이었습니다.
여기, 시몬 베드로처럼 참된 순종으로 빈 그물을 가득 채운 두 명의 위인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개신교의 성자로 불리는 조지 뮬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 가톨릭 교회의 위대한 성인,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입니다.
19세기 영국 브리스톨에서 고아들의 아버지가 된 조지 뮬러(George Müller, 1805-1898)는, 회심한 후 가난한 고아들을 돌보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비상식적인 결심을 합니다.
‘절대로 사람에게 돈을 구걸하지 않겠다. 오직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만 청하겠다.’
어느 날 아침, 그가 돌보던 300명의 아이들이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고아원의 식량 창고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는 대신, 아이들을 식탁에 앉히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 저희가 먹게 될 음식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제빵사가 밤새 잠을 설치다 ‘뮬러의 고아원에 빵을 가져다주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빵을 구워왔고, 잠시 후에는 우유 배달부가 마차가 고장 나 우유가 상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이와 똑같은 기적이 이탈리아 토리노에서도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St. Joseph Benedict Cottolengo, 1786-1842) 신부님은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작은 신의 섭리 집’이라는 거대한 자선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예산을 세우지 않고, 은행에 저축하지 않는다. 오직 그날그날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에만 의지한다.’
어느 날 저녁, 수천 명의 식구들을 먹일 돈이 단 한 푼도 없었습니다. 재정 담당 수녀가 불안에 떨며 신부님께 보고하자, 코톨렌고 성인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보시오, 저기 하느님의 은행가가 오고 있지 않소?”
창밖에는 웬 낯선 신사가 마차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금화가 가득 든 봉투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제 마음에 ‘코톨렌고 신부님께 가라’는 강한 목소리가 들려 찾아왔습니다.”
조지 뮬러와 코톨렌고 성인. 그들은 자신의 모든 계획과 상식을 버리고,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말씀 하나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빈 그릇을 평생토록 기적으로 채워주시어, 수만 명의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순종의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사명으로 부르시면서, 동시에 생계의 걱정 속에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일하는 소에게 재갈을 물리지 않으시는 분이며, 당신의 일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삯을 먼저 챙겨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유학을 떠날 때, 교구가 저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먼저 마련해주고 보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일에 파견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성 요셉 대성당은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기적의 순례지입니다. 이 거대한 성당을 지은 사람은 유명한 건축가도, 부유한 후원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글도 겨우 읽을 줄 알았던 평범한 평수사, 성 안드레 베세트(St. André Bessette, 1845-1937)였습니다.
그는 평생 수도원 문지기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가장 낮은 자리에 순종하며,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위해 성 요셉께 전구를 청했습니다. 수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를 ‘몬트리올의 기적가’라 불렀습니다. 그는 성 요셉을 위한 성당을 짓고 싶었지만,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덕 위에 작은 요셉 성인상을 세워두고, 면도하며 모은 5센트 동전들을 그 앞에 놓았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순수한 믿음에 감동한 사람들의 후원이 답지했고, 마침내 몽루아얄 언덕 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성 요셉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을 때, 그것이 하느님 뜻이지 걱정스러우면 내 뜻일 가능성이 큽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시며 당신 능력을 먼저 보여주십니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빠른 결과를 얻고 싶은 조급함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예전에 어느 작가에게 한 젊은이가 다가가 글 잘 쓰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작가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예요.”
글 쓰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서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감 가는 내용입니다. 저 역시 25년째 새벽 묵상 글을 쓰면서 이제야 글 좀 쓴다는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재주에 따라 성취 속도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얼마나 버티냐에 따라 결국 역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시간대가 있다고 합니다. 가수 에일 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뉴욕의 시간이 캘리포니아보다 세 시간 빠르다고 해서, 캘리포니아가 뒤처진 것은 아니에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진행하는 것보다 더 큰 재능이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여기에 모든 것을 역전시킬 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느님 뜻을 실천한다면 결국 그 나라에 합당한 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십니다. 배는 단순히 어업의 도구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배가 예수님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주님의 일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시몬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두 배에 가득 찰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히면서, 주님 말씀을 따랐을 때의 넘치는 결실을 보여줍니다. 이때 베드로는 엎드려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주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죄 많은 인간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시몬 베드로는 많은 부족함이 있었고, 죄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결과,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커다란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의 뜻을 따른다면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길을 걸어가려면 자기가 어디로 걸어가는지 알아야 한다(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 말씀은 먼저 다가오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의 노력보다 앞서는 은총이 먼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머뭇거림 없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잡고 있는 집착과 안일함을 내려놓는 비움입니다.
이 비움은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고 하느님 중심의 새로운 관계 안에 우리를 세웁니다. 신앙은 단순히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어 스승을 따라 걷는 여정이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길입니다. 그 길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신뢰의 길입니다.
내려놓음 속에서 더 큰 삶을 얻고, 따름 속에서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물질적 풍요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개인은 홀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에 응답하며 함께 걸을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따름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더 큰 생명과 새로운 길을 얻는 지혜의 시작입니다. 집착이 아니라 더 큰 가치와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참된 선택입니다. 오늘이 바로 선택의 날입니다.
루카복음 5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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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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