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8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여호 24,14-29)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 오늘 복음
(마태 19,13-15)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여호 24,14-29
오늘 제1독서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그 무렵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4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그리고 너희 조상이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겨라.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또한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이 땅에 사는 아모리족을 우리 앞에서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19 그러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주님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으로서, 너희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20 너희가 주님을 저버리고 낯선 신들을 섬기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선을 베푸신 뒤에라도, 돌아서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망시켜 버리실 것이다.”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3 “그러면 이제 너희 가운데에 있는 낯선 신들을 치워 버리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마음을 기울여라.” 하자,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25 그날 여호수아는 스켐에서 백성과 계약을 맺고 그들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웠다.
26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모두 하느님의 율법서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주님의 성소에 있는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
27 그러고 나서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은 너희가 너희 하느님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28 여호수아는 백성을 저마다 상속 재산으로 받은 땅으로 돌려보냈다.
29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열 살이었다.
마태 19,13-15
오늘 복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8월 16일
전승환 세례자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9:34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
최근 청년들이 혼인을 기피하거나, 결혼하고도 자녀를 가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배우자는 사랑하지만, 아이는 싫어합니다. 반대로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도 있습니다. 부부의 삶의 방식을 잘 알지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서 하느님 말씀이 신앙인에게 어떤 방향을 보여 주는지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19장은 초반부터 혼인과 이혼, 혼인과 독신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은 언제나 하느님 나라와의 관계에서 찾게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 복음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며 그 일관된 흐름을 이어갑니다.
그러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마태 19,14)이란 어떤 이들을 가리킬까요? 이러한 측면에서, 어린이는 완전한 의존 상태에 놓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린이 자체로 죄 없음을 상징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위의 어린이들이 마냥 순수한 천사인 것만은 아닌 이유이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는 단순함과 순종, 순응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이고 은총이며 선물입니다. 이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순종과 순응으로, 그리고 그들처럼 경탄과 감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부부에게 자녀 출산 문제는 사회, 경제 문제로만 여겨질 일은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그분 창조 사업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이 문제에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선택을 앞둔 우리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택권이 당신에게 있다는 말씀이며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종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지 종은 주인을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 않습니다. 원래는 그렇고 인간 세계에서는 그렇고 권력의 세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의 하느님께서는 종인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권력 곧 힘에 따라 선택권이 있지 않고 사랑에 따라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선택권을 자기가 갖지만 사랑은 선택권을 너에게 줍니다.
권력은 선택권을 자기가 가지며 너를 종으로 만들고 관계를 주종관계로 만들지만 사랑은 선택권을 너에게 주며 너를 주인으로 만들고 관계를 연인관계로 만듭니다.
권력은 선택권을 자기가 갖고 너에게 의무를 주지만 사랑은 선택권을 너에게 주며 너에게 자유를 줍니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우리에게 선택권과 자유를 주시며 우리의 선택을 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를 존엄한 사람 곧 자유를 가진 존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고, 그럼으로써 존엄한 사람의 자유로운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순종을 받고 싶으시지 복종을 받고 싶으시지 않습니다.
아무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시는데 오늘 여호수아기에서는 앞에서 한 얘기와 그 결이 약간 다릅니다. 우선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말이고, 하느님과 우상 사이에서 누굴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미루지 말고 오늘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얘기로 하면 선택 장애와 결정 장애가 있는 자식에게 이제 선택하고 결정하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할지 혼자 살지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하는 자식에게, 결혼할지 수도원에 갈지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제는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왜 이런 촉구를 하는 것입니까? 행복이든 불행이든 무조건 양자택일하라는 말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행복을 선택하라는 말이고, 행복을 위해 우상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하라는 말이지요.
사실 우리는 이미 신앙인이고 하느님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한 줄 알았는데 하느님을 매일 새롭게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선택한 셈이 됩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행복과 축복을 걷어찹니다. 이런 우리에게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그리고 영원히 축복받은 아들들, 내 말을 듣고 여러분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우리는 큰 것을 약속했고 우리에게는 더 큰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약속한 것을 지키고 약속된 것을 갈망합시다. 쾌락은 일시적이고 형벌은 끝이 없습니다. 고통은 짧고 영광은 영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2첼라노 191)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어린이처럼 어린이가 되어라.
오늘 <복음>은 어린이를 데리고 와서 축복해주기를 청하는 사람들을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줍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작심하시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벌어진 상황에 따라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부자청년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두 이야기를 다 같이 ‘하느님 나라’에 관련하여 이끌어갑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앞장(18장)에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친구로 여기건만 제자들은 그들을 업신여기며, 그들이 예수님께 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이처럼, “하느님 나라”가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성경에서 무력하고 힘없는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어 돌보아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되는 무능하고 약한 이를 표상하며, 동시에 사회에서 미천하고 버려진 이, 천대받고 소외된 이를 대변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복음의 뒷 장면에서 자기주장을 하는 부자청년(19,16-22)과 자신들의 성과에 목소리를 높이는 제자들(19,27)과 대조를 이룹니다.
사실,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어린이들이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복음화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되게 해 주고, ‘작은 자’ 되게 하고, 복음화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가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에게 다가가면, 우리가 그들에게 시혜를 베풀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복음화 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단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나 혹은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가난한 교회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단지 ‘어린이에게 다가가라’ 혹은 ‘어린이를 돌보라’고 하지 않으시고 ‘어린이처럼 되어라’ 곧 ‘어린이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9,14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주님!
어린이같이
아래에 있어
모두를 받아들이는
바다가 되게 하소서.
아래에 있기에
떠받들고
존경하게 하소서.
어린이처럼
이해하지 못해도
신뢰로 받아들이고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진정 약하기에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떤 사람이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몸은 내가 알아? 전혀 아프지 않은데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거야?”라면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프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야지.”라고 해야 할까요?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합니다. 자기 몸이지만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사람은 정밀 검사로 암을 발견할 수 있었고, 초기에 암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프지 않다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크게 위험할 뻔했습니다.
자기 행동의 변화는 3가지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인식, 인정, 수정’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변화됩니다. 앞선 경우도 이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종합검진을 통해 인식하고, 병원의 검사 결과를 인정한 후에 치료를 통해 수정한 것입니다. 만약 인식의 과정이 없었다면 인정과 수정의 결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식했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불러오는 수정의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종종 이 과정을 무시하면서 입으로만 변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 없이는 어떤 변화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계실 때,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려와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율법 교사들이 아이들이 축복하는 것은 흔한 풍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으면서 이런 요청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아이들을 축복하는 것은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가르침과 위대한 기적만을 예수님의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꾸짖는 것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린이나 약자,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자들처럼 자기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거리를 두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는 주님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뜻을 받아들이며(인정),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수정).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지혜로운 마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울 여유를 가진다 (조시 산타야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어린이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선은 이런 마음을 지닌 이들을 향합니다. 존재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근본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힘으로 서지 못하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이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막는 모든 장애를 단호히 거부하십니다. 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나누는 사랑입니다.
가치의 중심을 힘 있는 자에서 힘 없는 자로 옮기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세상의 중심을 바꾸는 사랑은 힘과 성취가 아닌 약자의 자리에서 외치는 참된 정의입니다.
약자는 다루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귀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어린이들 마음 안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약자를 품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문턱을 밟게 됩니다. 오늘은, 사랑이 스스로 피어나도록 조용히 놓아두는 날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흘러들어와 머무는 가장 맑은 날 되십시오.
여호수아기 24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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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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