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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25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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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을 지켜 주시니 남북으로 갈라진 저희 민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평화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한데 모여 기쁘게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25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신명 30,1-5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2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3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4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5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차지하였던 땅으로 너희를 들어가게 하시어,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들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

 

 

 

에페 4,29―5,2
오늘 제2독서

서로 용서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8,19ㄴ-22
오늘 복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25일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 미사시작 00:19

✚ 강론시작 12:3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마음 모아 기도하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마음을 모아”(마태 18,19) 청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이며 기쁨인지요!  

우리가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청하면 “하늘에 계신”(18,19) 분께서 응답하십니다. 이렇게 땅과 하늘을 잇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기’와 ‘마음을 모아 청하기’입니다. 

우리는 가끔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보다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모이지는 않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것은 개인 기도만큼 중요합니다.  

‘마음을 모아’로 옮긴 그리스 말은 교향곡의 어원으로, 여러 악기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면서 화음을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동 기도에서 마음을 모으려면 분열이 없어야 하겠지요. 형제에게 미움을 품고 기도한다면 마음을 모아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공동체 안에 계시면서 당신 성령을 통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고 그분께 마음을 열기만 하면 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간청하며 기도하는 이날, 긴 세월 갈라져 살아온 우리 민족을 다시 불러 모아 조화를 이루어 ‘함께’ 살게 해 주시도록 간절히 청합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마음 모아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휴는 하느님을 믿을까?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그리스도교 신자일까? 요즘 전쟁 중요 당사자들 가운데 이 두 사람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자인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엄밀히 볼 때 그들은 신자이면서 신자가 아닙니다. 껍데기는 신자인데 속은 신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고 우리는 어떻습니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 남과 북이 실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오늘, 이러한 오늘을 사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의 또 하나 정체성이 오늘 얘기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시는 분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에페소서에서 바오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하면서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이 두 말씀을 합치면 이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본받는 자녀들이라면 흩어진 자녀들을 모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흩어진 사람을 어떻게 모아들일까 그것인데 이에 대해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마음을 모아”와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모으기만 하면 모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모으지 못하기에 모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아들여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얘기입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모으자는 것에 마음이 모이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그리스도교인이고 하느님의 자녀입니까? 부모를 중심으로 모여야 자녀들이고 형제들인데 부모를 따로 찾아뵙고 따로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이 무슨 자녀이고 형제입니까?  

모아들이는 것에 마음이 모이지 않으니 모아들이기 위해 같이 기도하지 않지요. 같이 기도할 수 없는 우리가 어떻게 모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남북의 통일과 화해와 일치를 위해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니, 이것만 잘해도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해주십니다.  

저는 프란치스칸만이라도 이런 기도를 같이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프란치스칸 기도문들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도문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나눔을 마치겠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통하여 화해와 참 평화의 이치를 깨우치신 하느님, 남북 간의 대립의 벽을 실감하고 있는 저희로 하여금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고 대립의 문화를 공존의 문화로 바꾸어 가도록 도와주소서.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 저희 민족이 갈라지기 이전으로 돌아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일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저희 마음을 열어주시어 저희가 누리고 있는 신앙과 가진 바를 북녘의 형제들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북녘의 형제들에게도 아버지이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북녘의 형제들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북녘의 형제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 서로 잘못한 것을 서로 용서케 하시고, 그 용서를 보시고 저희를 용서하시며, 그들을 외면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형제를 악으로 보는 악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서로 마음을 모아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1953년 7월 23일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70여년이 넘었습니다. 분단은 길어지고 그 아픔이 깊어만 갑니다.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의 열망도 깊어만 갑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참 평화’를 위하여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주셨고, 우리를 평화의 일꾼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라고 하셨으니, 참된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우선,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마음을 모아”(마태 18,19) 기도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일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바로 “이 땅”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친교와 화해의 장소라는 말씀입니다. 먼 훗날이 아니라, 평화로운 새로운 새 땅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서로 마음을 모으라는 호소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곳, 이 땅 한반도에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적대감과 대립을 몰아내고, 편견과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와 용서, 일치와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평화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쏟읍시다.”(로마 14,19)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주영 주교님은 작년(2024년) ‘기도의 날 담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화가 없는 한반도의 상황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이렇게 오랜 시간 소통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우방적인 충돌을 방지하고자 하였던 9,19 군사합의는 무력화 되었으며,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의 여파까지 ‘냉전적 대결’을 부추기는 형국인데, 이와 같은 정세 속에서 남북관계도 최악의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도무지 회복할 수 없는 파탄 상태에 가까워진 지금, 우리의 도움이신 주님께 지혜를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맡겨진 이 하나 되게 하는 사랑의 사명에서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집단도 결코 제외되지 않습니다.”(1989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 

하오니, 주님!
‘진실한 마음과 시선으로 끊어진 대화를 준비하며, 일방적이 아닌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상호존중으로 새로이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통합과 평화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8,22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주님!
일곱 번이 아니라 
이제는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희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광장 없이는 일치도 없다.

찬미 예수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분단 70년이 넘는 세월은 우리 민족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습니다.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은 바로 그 분단의 비극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고전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묵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 사는 철학과 학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유명한 언론인이었으나 해방 후 월북하여 북에서 고위 간부가 되었습니다. 이명준은 남한 사회를 '개인의 밀실'만 있고 진정한 소통과 연대가 이루어지는 '광장'은 없는 곳이라 비판합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 윤애와의 관계에서도, 부패하고 불의가 만연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남한 경찰의 혹독한 조사와 학대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남한 사회에 대한 환멸은 극에 달합니다. 그는 마침내 '혁명과 이념의 광장'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월북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북한의 현실은 또 다른 절망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개인의 자유와 사유가 억압된 채, 오직 당의 구호와 집단주의만이 강요되는 '닫힌 광장'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연인 은혜를 만나 잠시 사랑의 기쁨을 느끼지만, 북한 사회 역시 그가 꿈꾸던 이상향이 아님을 깨닫고 깊이 좌절합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명준은 인민군 장교로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그는 남과 북, 양쪽 체제가 이념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한 폭력을 자행하는지를 똑똑히 목격합니다. 부상당한 그가 간호장교가 된 은혜를 다시 만나지만, 그녀는 그의 눈앞에서 폭격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가 된 이명준은 포로송환 과정에서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남한은 '부패한 밀실'이었고, 북한은 '가짜 광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과 북의 이념 대립에 환멸을 느끼며, 제3국인 '중립국'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를 태우고 인도로 향하던 배 위에서 이명준은 깨닫습니다. 자신이 찾던 진정한 '광장', 즉 이념을 넘어선 인간적인 사랑과 연대의 공간은 남에도, 북에도, 그리고 중립국이라는 제3의 공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는 죽은 연인 은혜와 그녀가 낳았을지도 모를 자신의 딸, 그리고 푸른 바다를 바라봅니다. 결국 그는 두 마리의 갈매기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기도할 때 두 사람 이상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희망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두 마음이 같은 것을 희망하면 분명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치의 광장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명준은 남과 북에 각각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져서 그 사랑이 이루어질 광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 언제일까요? ‘하나’가 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남녀가 하나 되는 시간을 영원히 지속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순간일 뿐입니다. 무언가 관계를 하나로 이어줄 광장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북의 분열은 그것 자체로 같은 민족 안에 갈라져도 살아갈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새겨줍니다. 그런 것이 남북한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일치로 나아가는데 분명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이런 분리된 광장에서 누구와도 일치를 이룰 수 없는 이명준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성지순례 하면서 느낀 것은 이 성지순례를 순례하는 분들이 일치의 광장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성지순례의 성패는 많은 곳을 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성지순례 하면서 친구를 사귀고 하나로 일치한 사람이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친했던 사람과도 사이가 틀어진 사람입니다. 성지순례가 일치의 광장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일치의 광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하나 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몇 년 전, 어느 본당으로 강의 갔다가 아주 곤란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급하게 강의 장소로 가고 있었는데, 중요한 무엇인가를 두고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강의 원고였습니다. 물론 강의 때 원고를 잘 보지 않지만, 원고가 없으면 때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에 원고를 반드시 손에 들고 강의합니다. 그런데 이 강의 원고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강의 시작 1시간 전에 강의 장소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에 곧바로 편의점으로 가서 펜과 노트를 샀습니다. 그리고 근처 카페로 가서 강의 내용을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아무런 문제 없이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 뜻밖의 상황은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당황스럽고 힘듦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때 그냥 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편한 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든 길은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행동하는 것이 됩니다. 무엇이 변화를 불러올까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족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나라입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그 기도의 필요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서로 적대시하면서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함께해야 한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아무런 노력 없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 뜻은 뒤 이어 나오는 용서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라면서 무한한 용서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을 보내며 바치는 우리의 기도는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면서 단정하면서 하는 기도를 통해서는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하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함께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에게 물어보라. 난 지금 무엇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었는가를 (잭 캔필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끝없는 용서로부터 시작됩니다. 용서야말로 진정한 화해와 일치로 향하는 문입니다. 계산하지 말고 끊임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상대의 잘못보다 더 큰 사랑을 품는 것이 용서입니다. 진정한 일치는 총이 아닌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용서받은 존재임을 체험합니다.

용서는 상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참된 해방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입니다. 이제 그 사실을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일치를 위한 기도는 서로의 상처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랑의 제사입니다. 사랑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용서로 화해하고 사랑으로 하나되어 하느님 안에서 민족의 새날을 엽니다.

오늘, 하나되는 사랑의 기도를 간절히 바칩니다. 용서로 과거를 넘고 사랑으로 내일을 여는 그 길이 화해이며 그 목표가 바로 일치입니다.

 

 

 

마태오복음 18장 20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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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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