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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13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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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안토니오를 뛰어난 설교자요 곤경 속의 전구자로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그의 도움으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13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코린 4,7-15)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5,27-32)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2코린 4,7-15
오늘 제1독서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5,27-32
오늘 복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13일
양금주 토마스 신부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25

✚ 강론시작 08:3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죄의 무서움을 기억하자.

마태오 복음서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계명을 선포하실 때의 의도를 바탕으로 계명을 다시 풀이하시면서 법의 문자보다는 그 정신과 목적을 상기시키시고 인간을 위한 가치를 옹호하십니다.

어제 복음에서 ‘살인하지 마라.’라는 계명을 새롭게 밝혀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간음해서는 안 된다.”(마태 5,27)라는 계명을 새롭게 읽으십니다. 

죄는 행동에 앞서 마음에서 먼저 동의가 이루어지지요. 죄를 짓기로 마음먹고 나서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회 예절에서 “말과 행위”에 앞서 “생각”으로 지은 죄를 고백합니다.

실정법은 행동의 결과를 따지지만, 신앙의 법은 마음과 의도를 더 중요시합니다. 훌륭한 심리학자이기도 하신 예수님께서는 행동에 앞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간음을 단죄하시면서 죄의 겉모습에 매이시지 않고 그 뿌리를 보십니다.

뿌리를 잘라 내지 않으면 죄의 나무는 계속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 간음으로 이끄는 유혹은 흔히 자신의 쾌락만을 좇아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정결한 마음에 깃든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유롭게 합니다. 

죄짓게 하는 눈이나 손을 잘라 버리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죄의 무서움을 기억하고 계명에 대하여 더욱 진지한 태도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새롭게 풀이하시면서 외적인 행위보다 내적 상태, 곧 순수한 마음과 진실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시대의 현실 안에서 전통을 본뜻과 본목적에 맞추어 해석하는 ‘창의적 충실성’은 지금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의 정신력과 하느님의 힘

독서를 묵상하면서 오늘은 우리 정신력과 하느님 힘과의 관계를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 중에서 정신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만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으니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곧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옛날에 서양 사람들과 축구하면서 체력은 그들에게 밀려도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곤 했는데 저도 그런 체험을 제법 했습니다.

저는 공부 기질이 아니고 그래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에 비해 성적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 비결은 강의를 들을 때 정신 집중하여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정신만 차리면 정신일도(精神一途)하여 집중력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나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정신력을 영역하면 Spiritual strength 또는 Power of spirit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spirit은 주님의 Spirit과 비교하면 그 힘에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집중력이란 그 한계가 있는 힘을 한순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기에 그때는 그 힘이 세지만 그때가 지나고 나면 힘은 빠지기 마련입니다. 쉽게 말해서 집중력이란 100의 힘을 한순간 어디에 집중해서 쓰는 것이기에 그 순간 자기가 가진 힘을 100% 다 쓰고 나면 다 쓴 건전지처럼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건전지처럼 힘을 계속 충전해야 하는데 하느님의 힘 곧 주님 성령으로 그 힘을 충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성령으로 충전하기 위해 성령의 상대인 우리의 정신이 필요한데 그것을 프란치스코는 기도와 헌신의 정신 또는 영이라고 하고, 이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끄지 말라고 권고하였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에게도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나의 주교 안토니오 형제에게 프란치스코 형제가 인사합니다. 수도 규칙에 담겨 있는 대로 신학 연구로 거룩한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면, 그대가 형제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의 마음에 듭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제 생각에 이 말씀은 오늘 코리토 2서의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물을 지녀야 하는데 나의 정신이 기도와 헌신의 정신이 아니고 육의 정신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성령 대신 악령이나 더러운 영을 받아들일 것이고, 반대로 나의 정신이 기도와 헌신의 정신이면 성령을 모셔 들일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축일을 지내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에게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새로운 의로움

오늘은 ‘여섯 개의 대당명제’ 중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간음’과 ‘이혼’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음욕을 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눈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혼’이 불륜을 불러오는 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간음과 불륜의 뿌리를 잘라버리라고 하십니다. 사도 야고보는 <서간>에서 말합니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 1,15)

그러기에, 응징 받아야 할 대상은 육신의 지체 자체가 아니라, 의지와 의지를 부추기는 자발적인 욕구입니다. 그러니 죄의 뿌리를 뽑는 데는 옛 율법의 계명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고, 죄를 짓게 하는 내면의 지체를 잘라내는 일이 필요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또 네 오른 손이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마태 5,29) 

이는 자신의 지체를 잘라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를 ‘뿌리’에서부터 잘라내라는 강력한 말씀입니다. 죄를 불러오는 ‘마음의 눈과 손’을 잘라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곧 ‘내면의 눈’을 뽑아내고, ‘손’을 잘라내는 일입니다. ‘눈’은 죄를 불러오는 통로요, ‘손’을 죄를 행하는 도구의 표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다.”(마태 6,22)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그러니,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자신의 몸을 단련하어 복종”(1코린 9,27)시켜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나쁜 욕망들을 죽이는 것’(콜로 3,5)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나쁜 욕망들을 “그리스도의 바위로 치는 것”(1코린 10,4)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쁜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둠이 아니라 ‘빛’을 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빛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빛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곧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을 비추어 주고 있는 ‘빛’을 바라보면서 ‘빛’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따라서 영적 투쟁은 어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바라보면서 ‘빛의 조명’으로 ‘정화’와 ‘일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으로부터 부터 영적 음료를 마시며, ‘의로움의 길’을 갑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5,29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은 것이 낫다.

 

주님!
겉으로는 가려진 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제 마음속을 들여다봅니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듯”(마태 6,22), 
마음의 눈이 맑아지게 하소서. 

마음속 떠도는 
그릇된 생각들을 잘라버리고,
마음속 깊게 새겨진 
사랑의 법을 보게 하소서.  

제 마음 항상 
당신을 향하게 하시고, 
제 행실이 당신의 빛을 받아 
밝게 빛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아마 ‘나이키’라는 스포츠 업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어디일까요? 아디다스? 뉴발란스? 아니면 다른 신발업체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우선 나이키 제품이 어떤 목적을 가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 제품들은 건강과 레저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건강에 투자해야 할 고객들이 그 시간에 정신적인 즐거움을 위해 게임만 한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나이키 제품이 팔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 상대는 스마트폰 게임이라고 말합니다. 게임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육체 활동에 필요한 운동화의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톨릭의 경쟁 상대는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 불교? 이슬람교? 아닙니다.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죄’입니다. 선을 행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욕심과 이기심이 우리의 경쟁 상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경쟁 상대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그마한 죄라도 철저하게 멈출 수 있어야 주님의 적들을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그마한 죄도 멈추기를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죄를 멈춰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당시의 율법보다도 더 엄격한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라는 율법 조항만 지킬 것이 아니라,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도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라 하십니다. 오른눈이 죄짓게 하면 빼어 던지고, 오른손이 죄짓게 하면 잘라 던지라고 하십니다. 너무한 말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적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외적으로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 가장 은밀한 감정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웃 관계와 부부 생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편에 서서 죄를 멀리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확실하게 구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사시는 모습을 먼저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주님처럼 죄를 멀리하고 사랑의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유일한 탈출구는, 그 길을 통과하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음욕은 사랑이 아닙니다. 욕망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본질로 인도하십니다. 외적 행위만이 아니라 내적 상태도 중요합니다.

관계의 존엄성과 인격의 존중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마음 전체를 하느님께 향하는 마음의 순결이 중요합니다. 육체적 욕망이 아닌 하느님 사랑에 뿌리내린 진정한 사랑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죄에 대해 단호하게 끊고 돌아서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혼인은 완성된 사랑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사랑의 여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소중한 인격을 우리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대상화시켜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음욕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소유와 방탕한 소비의 충동입니다.

우리 안의 욕망을 정직하게 비추어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시선이 하느님을 만나는 아름다운 존중입니다.

상대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존중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 길이 관계의 순결을 지키는 길임을 믿습니다.

 

 

 

필리 2장 15.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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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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