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외아드님을 낳으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저희에게 어머니로 주셨으니 사랑이 넘치는 마리아의 협력으로 나날이 풍요로워지는 하느님의 교회가 자녀들의 성덕으로 기뻐하며 모든 백성을 품 안에 모으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9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3,9-15.20)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 - 오늘 복음
(요한 19,25-34)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창세 3,9-15.20
오늘 제1독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요한 19,25-34
오늘 복음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9일
임성환 바오로 신부
✚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08:24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예수님 마음 속 깊은 사랑
오늘 복음은 십자가 위에서 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예수님 마음속 깊은 사랑을 여러 차원에서 보여 줍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는 말씀으로 요한에게 주신 ‘어머니’는 실제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성모님을 “여인이시여”(19,26) 하고 부르시며 당신만의 어머니로 독점하시지 않고 모든 제자에게 가닿는 모성의 보편성을 드러내십니다. 요한이 어머니를 “자기 집에”(19,27) 모셨다는 구절의 그리스 말은 ‘자신의 것들’을 뜻하는데,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께서 요한을 통하여 인류에게 맡기신 소중한 유산이심을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모범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셨다.”(19,30)라는 구절을 그리스 말로 읽어 보면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을 뜻하지 않고 당신의 ‘영’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셨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19,34)은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와 세례성사 위에 세우신 교회를 뜻합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 옆구리에서 새로운 하와인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 위에서 드러나는 교회의 탄생은 어제 우리가 기념한 성령 강림과 역사적 교회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한 죄수의 죽음을 확인하려던 군인의 창끝을 통하여, 마리아를 본보기로 삼아 새로운 인류를, 곧 성자의 신부인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 교회의 어머니를 기념하는 오늘, 성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처럼 그분의 충실한 자녀로 살아갈 다짐을 새롭게 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교회적인 모성을 살아야 할 우리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한 거대한 축일을 지내고 우리 교회는 여지없이 마리아 축일을 또 지냅니다. 성모 마리는 교회의 어머니시라는 축일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모든 축일과 관련하여 우리가 늘 알아야 하는 것은 마리아 축일을 지내는 것이 마리아를 들어 높이자는 것만 아니고 성모 마리아를 교회 구성원 모두가 본받자는 것인데 이번에는 마리아처럼 교회적인 모성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적인 모성이란 어떤 것입니까?
마리아처럼 교회를 낳고 키우고 살리는 어머니들이 되는 것인데 마리아처럼 교회를 낳고 키우고 살리는 것이란 성령으로 주님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신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하느님의 자녀들을 낳아 교회에 주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으로 잉태하는 바로 이것 때문에 성령 강림 대축일 바로 다음 날 이 축일을 지내는 것일 겁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냄으로써 성령의 정배가 되고 성령으로 잉태해야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을 낳을 수 있고 키울 수 있으며 살릴 수 있습니다.
이 점이 가정 공동체건 수도공동체건 본당 공동체건 요즘 우리 공동체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요즘 우리 가정들이 자녀를 낳긴 낳았는데 하느님 자녀로 낳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세상이 그런 세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세상 탓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세상 탓만 한다면 신앙의 부모로서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부모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 내 자녀가 하느님 자녀가 아닌 것은 내가 교회적인 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교회적인 부모가 아닌 것은 성령의 정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탓을 돌려야 합니다.
ㅡ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자녀를 잉태하고 키우지 않은 탓을 나에게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부모들이 교회적인 부모가 아닌 것에 우리 수도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의 책임과 탓도 큽니다.
우리 수도자들과 성직자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적인 모성의 본을 마리아처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성(Spirituality)을 산다고 하는 수도자들이 성령(Holy Spirit)의 정배들이 되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축일을 지내며 가정의 부모들이건 수도자들이건 성직자들이건 교회적인 모성을 지니지 못한 우리 자신을 각기 반성하는 한편 교회적 모성을 마리아에게서 본받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제 우리는 ‘성령강림대축일’을 끝으로 ‘부활시기’를 마치고, ‘연중시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념일’을 지내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는 새롭게 탄생된 교회를 어머니의 보호 아래 맡기신 까닭입니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이미 교부시대 때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모님을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라고 하였고, 성 레오 대교종은 “교회의 지체들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오로 6세 교종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을 반포(1964년)하시면서, 성모님께 이 호칭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보호의 원천은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마리아와 우리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만들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곧 예수님의 명으로 마리아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수님의 고통과 믿음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듯이,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에서도 성모님의 고통과 믿음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면서 예수님의 공통과 믿음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시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깊이 참여하십니다.
그토록, 성모님께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요 패배로 보이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속에서도 승리를 보고 계십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꿋꿋이 서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 받으시고 화해를 이루시며, 동시에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밑에서’ 고통을 받으시며 화해를 이루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깊이 참여하시며, 아버지의 뜻의 완성에 협조하십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계시는 성모님을 만납니다. 우리도 언제나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할 일입니다. 불신과 불목을 떨치고 신뢰로 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일, 그만큼 위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와 의탁입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그분의 현존에서 사랑을 배우는 일입니다. 곧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9,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주님!
당신께서는 휘장을 찢으시고
가로막힌 모든 것을 치우셨습니다.
남김없이 쏟아 부은 물과 피로
우리의 영혼을 씻으셨습니다.
온 누리를 새로 지으시고
아버지의 향기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사랑의 옥합 당신 몸을 부수어
사랑의 향유로
온 세상을 기름칠하셨습니다.
오늘,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 사랑에 제 영혼이 뛰놀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캐나다 심리학자 스티븐 아노키가 진행한 연구가 있습니다. 성인 140명에게 긍정의 뉴스, 부정의 뉴스를 따로 읽게 한 것입니다. 긍정의 좋은 뉴스를 읽은 사람은 대의를 위해 노력할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부정의 나쁜 뉴스를 읽은 사람은 어떠했을까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이 좋을까요? 아니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삶이 좋을까요? 당연히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고 보아야 할 뉴스는 부정의 나쁜 뉴스가 아닌, 긍정의 좋은 뉴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부정의 나쁜 뉴스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실제로 뉴스를 보면,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부정의 나쁜 뉴스가 세상을 더 어렵고 힘든 곳으로 만들고 맙니다. 부정의 나쁜 뉴스 하나를 상쇄하기 위해서, 필요한 긍정의 좋은 뉴스는 3개라고 합니다. 나쁜 뉴스 하나, 좋은 뉴스 하나면 전과 똑같은 상태로 만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나쁜 상태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긍정의 좋은 뉴스가 3배 이상 많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더욱더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는 긍정의 좋은 뉴스가 가득해야 합니다. 이 뉴스는 특별한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부터가 긍정의 좋은 뉴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힘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셨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성모님께서 성령 강림 이후 어머니로서 교회를 돌보셨고, 여기서 성모님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된 선물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에게는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셨지요. 십자가 죽음을 앞둔 그 시점을 떠올려봅니다. 모든 이가 슬픔으로 가득한 상황이었고, 부정적 생각으로 어떤 희망도 품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희망의 선물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제정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부정의 나쁜 뉴스가 가득합니다. 이런 상황을 긍정의 좋은 뉴스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성모님이셨습니다.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긍정의 좋은 뉴스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그게 건강에 유익하니까 (볼테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고통은 끝이 아니고 어머니로 태어나는 사랑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십니다.
어머니와 자녀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마리아는 모든 제자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말보다는 행동과 기도로 삶을 증언하십니다.
성숙한 신앙의 열매는 십자가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른 이의 성장을 도와주십니다. 어머니는 사랑으로 품고 기도로 봉헌하십니다.
하느님을 높이고 자신의 자리를 바로 아는 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참된 믿음은 교회와 함께하는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앙과 사랑이 만나고 인내와 기도가 만납니다. 제자들은 도망쳤지만 어머니는 십자가 곁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하느님께 내어맡긴 교회의 어머니는 우리 삶의 본보기가 되십니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교회의 여정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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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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