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오셨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알렐루야.
하느님, 언제나 새로운 자녀들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니 하느님의 종들이 신앙으로 받은 성사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21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2,14.22-33)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28,8-15)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사도 2,14.22-33
오늘 제1독서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마태 .28,8-15
오늘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21일
김경태 마르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10:51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진리와 거짓 사이
오늘 복음에는 놀라운 부활 사건과 이를 둘러싼 서로 다른 두 반응이 나옵니다. 한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의 기쁨과 믿음의 증언이고, 다른 한쪽은 진리를 왜곡하려는 수석 사제들과 군사들의 음모입니다. 이들의 서로 다른 반응을 묵상하면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8).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28,7)라는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두렵다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신비이면서 희망과 기쁨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몸소 나타나시어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시고 위로를 건네실 뿐만 아니라,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28,10)라고 하시며 이제 그들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졌음을 알려 주십니다.
반면에 경비병 몇 사람은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습니]다”(28,11).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기보다는 감추려고 군사들에게 돈을 주며 제자들한테서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맞았다고 말하기를 지시합니다. 경비병들은 불의와 부정에 굴복하여 진리를 왜곡하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데 함께합니다.
이 두 장면은 진리와 거짓 사이의 대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세상은 종종 하느님의 진리를 외면하고 가리려고 거짓을 앞세우지만 그 진리는 주춤하기는 해도 절대로 멈추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의 거짓으로 흔들릴 때가 있겠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진리를 선택하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소의 재발견
어제 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두 제자 얘기를 들었습니다. 먼저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을 보고 제자들에게 알리고, 다음에 제자들이 와서 같은 빈 무덤을 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빈 무덤인 것만 확인하고 또 막달라 마리아가 한 말이 사실인 것을 믿지만 무덤에 없는 자기들 스승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오늘 그 예수님을 찾아 나섰고 결국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상황이 다 끝난 것이라고 보기에 찾지 않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했기에 사랑할 일이 남았던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막달라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래서 주님 부활을 목격한 첫 증인이 되는데 주님은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가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나타나 여러분들이 죽인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부활 증언을 합니다.
그러므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라는 것이 아니었고, 예루살렘에서 부활을 증언하려면 갈릴래아에서 뭔가를 하고 오라고 하신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새로운 성소 발견 또는 성소의 재발견, 이것이 아닐까요? 오늘 너무 늦게 일어나 여기서 나눔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데 ‘성소의 재발견,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또 우리의 성소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묵상하는 우리입니다.
어제 부활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못 드렸네요. 오늘이라도 부활 인사 드립니다. 부활의 기쁨을 늘 간직하고 또 이웃에게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고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제자들을 극심한 두려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스승의 죽음이라는 당혹스런 사실 앞에서, 믿음의 흔들림과 의혹과 허탈감으로 절망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신들도 붙잡혀 죽게 될까 봐 불안에 떨어야 했고,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는 그 깊은 어두움 속에서도 사랑이 두려움보다 컸습니다. 그 사랑은 그리움이 되어 이른 새벽 스승의 무덤을 찾아가게 했고, 천사를 만나 놀랍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마태 28,7)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면서 ‘평안하냐?’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천사를 통해 사명을 주었건만, 굳이 열절하신 사랑으로 직접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나 여기 있노라.”(이사 58,9;66,1) 하시며, 이미 찾아와 우리 앞에 계십니다.
항상 우리를 향하고 계셔서,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십니다. 그러니, 우리를 찾으시는 당신 앞에, 항상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당신 면전에 있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시어, 막달레나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당신 부활을 선포하는 첫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달아나버린 제자들을 말입니다. 이미 그들을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내 형제에게로 가라” 바로 이것이 당신께서 부활하시어 첫 사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제들 안에서 예수님을 뵈올 것입니다. 척박한 땅 갈릴래야,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바로 이 땅, 바로 여기,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께서는 형제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형제를 사랑할 때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서 피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형제를 사랑하게 하소서. 형제들 안에서 당신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8,10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
그분을 뵙는 일,
이보다 기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신,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그 보고 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고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주시는.
그 보고 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은 우리가 가는 길로 마주 오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무덤에서 천사를 보고 두려워하면서도 기뻐하며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가는 여인들에게 ‘마주 오시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평안하냐?”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마주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인들의 길을 긍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그분께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사들을 보았던 경비병들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많은 돈을 받고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라는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기뻐 복음을 전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아직 기회가 있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래아로 가기만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기회가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뵈올 기회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속합니까?
그렇다면 ‘갈릴래아’란 장소로의 이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지리적인 장소의 이동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도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여인들의 상태로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두려워서 감히 그분께 다가올 생각도 못하고 미심쩍어하였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반면 여인들은 이미 천사들의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보고는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마지막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만나면 두려워 도망을 칠 것입니다. 갈릴래아는 사해와는 다르게 물을 받아들이면 다시 내보내어 흐르는 호수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가득합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부활에 대해 확신하며 그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는 이들이었습니다. 이 수준이 되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실까요? 왜냐하면 부활 체험은 하나의 ‘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부활로 합당한 이들에게 보상을 주십니다. 아무에게나 나타나신다면, 잘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상을 주시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상태를 긍정하실 수 없으십니다.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현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많은 분들이 보셨을 영화 ‘기생충’입니다. 이 영화에서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은 부유한 박 사장 집에 차례로 위장 취업합니다. 처음에는 아들 기우가 명문대생으로 속여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딸 기정은 미술 치료사로, 아버지 기택은 운전기사로, 어머니 충숙은 가사도우미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 가족은 의심 없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며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박 사장 가족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사람에 대한 깊은 경계심이나 분별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기택 가족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나름의 '호의'와 '보상'(일자리와 신뢰)을 베풉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기택 가족은 이 '쉽게 얻은 상' 앞에서 감사하고 성실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대담하게 거짓을 꾸미고 박 사장 가족을 기만하며 그들의 공간을 잠식해 들어갑니다. 박 사장 가족의 무분별한 신뢰와 호의는 기택 가족의 양심을 일깨우기보다는, 그들의 탐욕과 기생적인 본성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국, 겉으로 보이던 평화는 깨지고 끔찍한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선한 의도였을지 모르는 '상'이,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주어졌을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은 비단 현대 사회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다윗 왕과 그의 아들 압살롬의 관계입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를 욕보인 이복형 암논을 살해하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다윗 왕은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를 용서하고 다시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진심으로 회개하기는커녕, 아버지의 관용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세력을 키워 반역을 일으킵니다. 다윗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성급하고 무분별한 '용서'와 '복권'이라는 상은, 압살롬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죄악과 비극(반역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 되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영혼에게 주어진 과분한 '상'은 때로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상태가 ‘갈릴래아’와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다윗의 삶은 이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처음 그는 평범한 목동이었습니다. 이 일에 충실하기 위해 배운 돌팔매질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조금씩 믿음을 성장시켜서 사울의 부하로 있으면서도 충실하여 결국 왕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나 밧세바와 죄를 지으며 그는 다시 하느님의 총애를 잃습니다. 예언자 나탄을 시켜 하느님은 그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갓 태어난 아들이 죽는 비극, 아들에게 쫓겨나고 쫓기는 비극을 오랫동안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죄의 상태에서 바로 용서가 주어졌다면 그는 하느님께 기생충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갈릴래아란 받아들이는 은총에 대한 효과가 발생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믿는 만큼 성실히 살며 복음을 전하려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제가 하.사.시.를 읽고도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신학교에서 성체를 영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은총은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요행을 바라지 말고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싶다면, 열심히 믿음을 키워가고 그 믿음을 전하는 연습을 해 나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될 것이다.
세계 곳곳이 전쟁 중입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팔레스티나, 그리고 크고 작은 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의 필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면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외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생명의 가치를 소홀하게 여기고 진정한 정의가 펼쳐지지 않는다면 평화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위대한 종교는 두려움이나 분열을 가르치지 않고 화합과 일치 그리고 관용을 가르칩니다. 특히 두려움을 조장하는 종교 그리고 그런 사람은 사랑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은 관계를 마비시키고 서로 간의 신뢰를 위협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원수까지 사랑하면서 폭력의 근원을 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면서도 두려움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단순히 국가 간의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힘으로 억압하고 또 일치를 방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말만 옳다면서 남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시 예수님께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정의는 사랑에서 나오고 그때 평화도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다양한 부류를 오늘 복음에서 보게 됩니다.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여자들이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경비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수석 사제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신앙으로 받아들였던 여자들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갈망하던 여자들에게만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에 반해 경비병과 수석 사제들은 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수석 사제들은 경비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라고 거짓말하라고 합니다. 세상의 힘으로 경비병을 매수했고, 그리고 경비병들은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을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거짓과 욕심과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모두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을 통해 진리 안에 머물 수 있게 되며, 주님을 만나 큰 기쁨 속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이 그대에게 손짓하거든 따르십시오. 그 길이 가파르고 험난하다 하여도, 사랑의 날개가 일렁이거든 몸을 내맡기십시오.
- 칼릴 지브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평안하냐?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짙어지는 연두빛의 소중한 봄날입니다. 감격하고 감사해야 할 새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부활의 기쁨을 기쁘게 맛보길 바라십니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활은 평안을 드러냅니다. 평안은 무너뜨릴 수 없는 일상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실천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두려움을 맡겨드립니다. 오늘 이 순간이 가장 좋은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로 일상을 밝히십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바로 가장 좋은 행복이십니다.
행복은 부활의 일상 안에 있습니다. 부활의 길은 다시 만나는 일상의 행복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소중하고 특별한 주님의 선물입니다.
무조건적인 평안입니다. 더 없는 평안을 축하하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의 평안을 기쁘게 나누는 행복한 오늘 되십시오.
마태오복음 28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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