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오리다.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의 설교로 많은 백성들을 부르셨으니 모든 신자들이 그 선교 열정으로 불타올라 거룩한 교회가 세상 어디서나 새로운 자녀들을 많이 얻어 기뻐하게 하소서.
2024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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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11,1-10)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 오늘 복음
(루카 10,21-24)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0,21)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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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11,1-10
오늘 제1독서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루카 10,21-24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3일
양창우 요셉 신부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소개 00:06
✚ 교황님 12월 기도지향 01:44
✚ 미사시작 02:00
✚ 강론시작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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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우리도 철부지처럼 단순하게 하느님을 따르면 어떨까요?
주일 학교 첫영성체 교리를 하다 보면 예비 신자 어른 교리 반과 사뭇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성호경과 기도 손 하는 법, 기도문을 가르쳐 주면서 외워야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기도 손을 하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서로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걸 어떻게 다 외운대요? 부담돼서 세례 못 받겠네요.”라는 말부터 꺼냅니다.
첫영성체가 끝나면 아이들은 복사단이나 전례 봉사를 하고 싶어 하고, 대부분 제단에서 봉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세례 받고 난 뒤 봉사를 권유하면 바빠서 못한다고 하거나 오히려 냉담을 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교리와 기도문과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과 어른들이 받아들이는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에서 “철부지”(루카 10,21)로 옮긴 그리스 말은 ‘매우 어린 아이’나 ‘유아’를 뜻합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지혜’와 ‘슬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생명처럼 여깁니다. 부모의 말을 계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우리도 철부지처럼 단순하게 하느님을 따르면 어떨까요? 세상살이에서 얻는 지혜와 슬기가 하느님께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때마다, 하느님을 신뢰하며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을 먼저 선택할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하루의 일과에서 기도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될 때, 감추어 있던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에게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10,21).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분은 놓치고 그자만 보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오늘 이사야서는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인지 그리고 메시아와 함께 도래할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얘기합니다.
메시아는 정의로 심판하는 분이시기에 그분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닙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보는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라고 얘기하며,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가 그런 분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고, 철부지 어린아이들만 알아본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성찰을 해야 합니다.
이 대림절에 나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인가? 다시 말해서 메시아를 보고 싶어서 애타는 사람인가? 막상 메시아가 오시면 알아보는 눈은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군부 독재 시대인 이삼십 대 때 저는 메시아가 다스리는 그런 정의로운 나라가 오기를 정말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의로운 나라가 오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되고, 그 나라가 오도록 내가 뭔가 해야 하고, 그리고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때 그러해야 했고 지금도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메시아는 빠지고 내가 그 대신 있으며, 메시아 대신 내가 심판하려 하는 잘못을 그때도 지금도 범하곤 하고, 사랑은 없고 분노만 있으며 기도가 빠진 심판의 행위만 하곤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메시아를 보는 눈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 분노만 하고 그를 위해 기도는 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분을 놓치고 그자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파괴만 하고 건설은 하지 못할 것이고, 건설하지 못하기에 황폐함만 남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대체 누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대림시기”을 시작하면서 <복음>는 예수님의 기쁨과 감사를 노래합니다. 이는 우리가 “대림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지내야 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곧 기쁨과 감사를 지녀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파견한 일흔 두 “제자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말하자”,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도를 드리십니다. 이는 마치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루카 1,47)하고, 기뻐 찬미하는 “성모님의 노래”와 같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예수님의 “마니피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대체 무엇에 감사하고 즐거워하실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20,21)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음에 드리는 찬미와 감사기도입니다. 여기서 “감사”(Έξομολο-γουμαί)의 원어의 뜻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감격스런 찬양의 고백’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대림시기”에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비록 그 뜻을 헤아려 알아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뜻의 선하심’에 의탁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루카 10,22)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지혜나 슬기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해 드러내주시기에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신다.’해서, 모두가 알게 되거나, 전부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라야 알아듣고, 또한 받아들이는 만큼만 알아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 사랑하는 이라야 알아듣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알아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게 된 제자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눈은 행복하다.”(루카 10,23)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계시를 받은 복된 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믿음과 흠숭으로 고백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에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로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0,21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주님!
미처 알아듣지도 못한 채,
당신의 ‘선하신 뜻’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드러내신 당신의 사랑에서 당신의 얼굴 뵙고,
감추신 당신의 신비에서
당신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당신의 뜻’, 그 안에 제가 달려 있으니
‘선하신 그 뜻’, 그 안에서 제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듣는 마음을 어떻게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또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셔서 펼치시려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은 명확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철부지들을 가려내셔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철부지들을 선택하셔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성모님의 유럽 발현지 중 가장 큰 두 군데는 루르드와 파티마입니다. 어른에게 나타나셨을까요? 어린이들입니다. 루르드에서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녀의 나이는 14살이었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에게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아이를 택하셨습니다. 더러운 물을 마시고 손으로 구덩이를 파서 샘물이 나에게 할 아이입니다. 어른들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어른이에요!”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자신의 뜻이 있습니다.
파티마는 어떻습니까? 루치아 10살, 프란치스코 9살, 히야친타 7살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지 못하는 어른들의 박해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수만 명이 하늘의 기적을 목격하게 하셨습니다. 어른들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랜 전쟁을 바꾼 잔 다르크도 있습니다. 그녀가 성 미카엘에게 사명을 받은 것은 13세, 전쟁에 나간 것은 16세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순종합니다. 잃을 게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종교 심리학자 스펜서(Spencer) 박사가 1,000명을 대상으로 몇 살에 하느님을 깊이 체험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548명이 20세 이전에 신비체험을 하였습니다. 337명이 20세에서 30세 사이에, 96명이 30대에, 그리고 40대에 종교체험을 한 이는 불과 15명, 50대에 신비체험을 한 사람은 4명에 불과하였습니다.
왜 어릴수록 주님을 만나기가 쉬울까요? 주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애가 되는 것은 분명 철부지로 있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들은 무엇일까요? 바로 재산과 쾌락, 권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추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추구하면 뭐가 안 좋을까요? 본인이 ‘어른’이라고 믿게 됩니다. 어른은 자신이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조언이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의 조언에 귀를 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갖은 좋지 못한 감정들입니다. 후회하고 걱정하고 우울하고 공허합니다. 한 마디로 어린이 때의 기쁨이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지는 것과 먹는 것과 강해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난을 주장하다가 가족을 다 굶겨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받는 것임을 고백하면 됩니다. 이 균형을 지켜야 합니다.
이카루스 신화는 특히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할 때 교만과 오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이카루스는 크레타섬에 미궁을 만든 뛰어난 장인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의 아들입니다. 미노스 왕의 총애를 잃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는 미궁에 갇히게 됩니다.
탈출에 대한 절박함 속에서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여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두 세트의 날개를 만들었습니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에게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게 날라는 명확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습기로 인해 날개가 손상되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밀랍이 녹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카루스는 비행의 자유와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한때 순수하고 순종적이었던 그의 마음은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력을 거스르는 기쁨과 탁 트인 하늘의 아름다움은 그를 천하무적처럼 느끼게 했고, 마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습니다.
오만이 커진 그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늘에 닿아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태양에 더 가까이 다가가자 열이 그의 날개를 묶고 있는 밀랍을 부드럽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깃털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고, 이카루스는 자신의 자존심이 가져온 결과를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의 날개는 부서졌고 그는 바다로 뛰어들어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이카리아 해에 익사했습니다.
여기에서 날개는 바로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돈과 쾌락과 명예입니다. 없어도 죽고 통제하지 못해도 죽습니다. 이것을 준 분께 순종할 수 있을 정도만 가지고 이용하여 중용을 지켜야 합니다. 버리지도 말고 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철부지의 모습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이것을 잘 통제할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십일조’였습니다. 십분의 일을 바치며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음을 스스로 되새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십분의 구를 가지면서도 하느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바치라고 하신 사랑의 규율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 아버지의 뜻
신학생 때 ‘Alter Christus’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그냥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범을 따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돈, 돈, 돈’ 하는 것이 예수님 시선일까요? 내게 잘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골탕 먹이려는 것이 예수님 시선일까요? 기도는 전혀 하지 않고 세상일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어떨까요?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시선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향해 측은하게 바라보시던 모습, 자기 적대자를 향해서도 저주보다 사랑으로 감싸안으려고 했던 모습,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그 뜨거운 사랑의 시선을 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는 세상 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긴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상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억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감사 기도를 바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세상 안에서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인정 속에서 자기를 돋보이려고만 노력합니다. 이들은 자기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뽐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뜻인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주님의 시선을 볼 수가 없었고, 주님을 알지 못해서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철부지들 같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세상의 관점으로 철부지 같은 사람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귀영화보다 주님 사랑을 더 강조했고 실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이 험한 세상을 살 수 있겠어?’라면서 철부지 취급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철부지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안에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기쁘게 주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과거의 탓,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인생은 호전한다.
- 웨인 다이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기다림 끝에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행복을 보고 행복을 만나는 행복한 대림시기입니다.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행복이 시작되었습니다.
행복의 원천이신 예수님께서는 행복을 먼저 살아가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참된 행복이 되십니다. 행복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드디어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때를 바라보고 만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미처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사람이 되시는 예수님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선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은 더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선하신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잊어버린 사랑과 행복을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시고 드려주십니다. 행복을 되찾는 철부지의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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