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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9/14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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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하느님, 외아드님의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저희가 지상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깨닫고 천상에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202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9월 14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9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민수 21,4ㄴ-9)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오늘 복음
    (요한 3,13-17)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78,7)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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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21,4ㄴ-9
오늘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요한 3,13-17
오늘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14일
송영욱 프란치스코 신부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2

✚ 강론시작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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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십자가는 우리의 영광이고 구원이다.

십자가를 곳곳에 두고 살다 보니 무덤덤하여졌습니다. 길거리를 다녀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십자가를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성당이나 수도원 안에는 거의 방마다 십자가가 있고, 어떤 경우는 장식품처럼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나 이스라엘 사람이 현대에 와서 이 모습을 보면 몹시 놀라고, 어쩌면 눈을 뜨고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고통을 뜻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수치를 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형의 여러 방법 가운데서도 십자가형은 특수한 형벌로 여겨졌고, 유다인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자체를 하느님께 저주받은 표지로 여겼기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실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사건을 ‘현양’이라고 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이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시고 모든 이를 당신께 모으시는 때입니다. 그분께서 높이 들어 올려지는 그때가,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때입니다.

수치를 피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눈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의 방법으로 하느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온 세상을 정복하시고 모든 통치자를 굴복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까지 끌어안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어디까지 가시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의 영광이고 구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세상 어느 임금에게도 바치지 않을 깊은 경배를 드립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현양하면서 살지 않는.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현양하면서 살지는 않는. 이것이 오늘 이 축일을 지내며 묵상하고 제가 여러분과 나누려는 주제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게 된 것은 어제의 일이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즘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한 교구 신부님과 프란치스칸 영성을 공부하는데 어제는 프란치스코에 대한 그 신부님의 감탄에 저도 같이 감탄을 연발하면서 뭔가 허무함이랄까 공허함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대단한데 나는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저는 이렇게 저를 위안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프란치스코를 사랑한다. 나는 프란치스코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비록 앞줄에서 프란치스코를 따르진 못할지라도 따르고 있다. 사실 이렇게라도 프란치스코를 따른다면 이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적어도 악마를 따르지 않고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참 묘하다고 할까 교묘하다고 할까. 저의 겸손이기도 하지만 합리화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어떤 때는 겸손으로 기울다가 어떤 때는 합리화로 기운다는 말이고, 그래서 이런 것이 인간이지, 하다가도 이래선 안 되지, 하곤 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를 높이 찬양하면서도 잘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길은 주님만 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따라가긴 하지만 따랄 갈 수 있는 만큼만 간다. 이런 식입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 축일을 지내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를 현양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임을 현양합니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승리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으시다면 그것이 패배이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헛수고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명백한 승리입니다. 어떻게 죽음으로 죽음을 이깁니까? 제 생각에 치달으면 이깁니다. 

죽음 끝까지 가면 이깁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깁니다. 둘째로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임을 현양합니다.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을 능력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은 사랑으로만 견딜 수 있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그 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곧 사랑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라야 참사랑이고, 참사랑이라야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묵상하고 거룩한 십자가를 현양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수녀님들(올리베따노회)의 날입니다. 수녀님들께 있어서 ‘십자가’는 ‘스위스 캄 성 십자가 수녀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영성적 모태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십자가’에서 세 가지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첫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선 ‘죄인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라야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는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하기보다 의인임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지는 일은 억울하고 원망스런 일이 되고 맙니다. 부당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십자가를 피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이라 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용서해야 할 존재’이기에 앞서,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비록 죄가 없다할지라도,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죄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쓸 줄을 아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곡해 받고, 누명쓰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를 ‘용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를 ‘위하여’ 자신이 뒤집어써 주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구원되기를 ‘위하여 자신을 건네 주는 일’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죽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죽음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일이요, 남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일이 아니라 물러나는 일입니다. 승리하는 일이 아니라 패배당하는 일이요,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이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게 당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는, 틀려서가 아니라 옳으면서도 지는 일이요, 힘 있으면서도 눌리는 일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곳’입니다. 그것을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요, 그가 구원되기를 희망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일이요,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그분을 향하여 자신을 바치는 봉헌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승리요, 구원이 됩니다. 곧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죽이고 진정으로 참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덧붙임>, 여기에 한 가지 의미를 제 자신이 덧붙여 본다면, ‘십자가’는 ‘벌어지는 일을 수락하는 일’이라고 여겨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는 우리의 삶은 그 어떤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내가 만들지 않아도, 아니, 만들지 않은 일들이 마구 벌어져 다그쳐옵니다. 

오히려 만들고 조작하고 계획했던 일들은 무색하리만큼 우리를 비켜갑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휩싸고 돕니다. 이제 그것들을 ‘사랑으로’ 마주하고 끌어안고 응답하는 일이 제게는 ‘십자가’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서] 58장 7절에 나오는 ‘성소식별’의 기준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무력함이지만, 구원을 이루는 전능함이 됩니다. 낮아짐으로써 진정 높아지고, 패배이지만 사랑의 승리가 됩니다. 지면서도 쳐부수고, 승리의 깃발이 되고, 영광의 월계관이 됩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표상이요, 완전한 승리의 표상이요, 현양이며 영광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삶의 의미가 되고, 우리 삶을 전환시키는 혁명이 됩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 사랑’이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갈라 6,14)

오늘, ‘십자가’를 드높여 이 고귀한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3,13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주님!
당신은 패배하셨지만 
악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죽으셨지만 죽음을 넘어 
다시 살아나셨고, 

추락하셨지만 
드높이 들어 올려 지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내려갈 줄을 알게 하소서.

하여, 당신과 함께
올라가게 하소서.

하여, 제 안에 숨겨져 있는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저 사람, 되게 잘 살아요.

아는 지인들과 함께 어느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낯선 자매님 한 분이 지인 중의 한 분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십니다. 지인은 갑작스러운 인사에 깜짝 놀란 뒤에, 잠시 밖으로 나가서 대화를 나누시더군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오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 본당 신자인데요. 되게 잘 살아요. 그런데 요즘 냉담 중이세요.” 
 
혼란이 왔습니다. ‘냉담 중인데 왜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지인의 기준은 부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자매님은 큰 부자인가 봅니다. 건물도 몇 채 가지고 있고, 지금 하는 사업도 잘 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자면 잘 사는 것일까요? 
 
현재 냉담 중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형편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아주 안 좋아서 이혼을 이야기하고 있고, 자녀들도 각종 문제를 일으켜서 복잡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부자라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되게 잘 살아요.” 
 
돈, 명예, 권력이 잘 사는 기준이 되는 세상입니다. 돈, 명예, 권력이 세상의 꼭대기에 높이 세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들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들을 아무리 높여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들어 올려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 올려지신 것은 우리처럼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춰서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들어 올리려는 삶만 산다면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기준, 즉 사랑의 기준으로 들어 올리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 희생, 봉사, 나눔 등으로만 진정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모습을 가지고서 잘 산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있는 모든 이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저 사람, 되게 잘 살아요.”.

 

오늘의 명언

우리는 이 땅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큰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성녀 데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아름다운 것이 정녕 무엇인지를 모르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로 삶의 숭고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새로운 이름은 십자가입니다. 사랑을 되찾아 주시는 십자가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의 주소는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사랑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로 말씀하십니다. 거짓을 벗어버리는 진실한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심판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시는 구원의 완성인 사랑의 선택이 십자가입니다. 우리를 위해 수난과 죽음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의 들어 올려지는 십자가에서 제 멋대로 살아온 우리들이 우리들이 가야 할 삶의 길을 봅니다. 

사람의 가장 소중한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십자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일은 자신보다 십자가를 높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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