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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9/07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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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당신은 어질고 용서하시는 분,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나이다.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으시어 생생한 믿음으로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2024년 9월 7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9월 7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9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코린 4,6ㄴ-15)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6,1-5)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오늘 말씀 카드
    (1코린 4,6)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1코린 4,6)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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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1코린 4,6ㄴ-15
오늘 제1독서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두고 이미 임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임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임금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명예를 누리고 우리는 멸시를 받습니다. 

11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12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13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14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15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루카 6,1-5
오늘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7일
박성준 모세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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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사도의 힘

코린토 신자들은 바오로 편과 아폴로 편으로 갈라졌지만, 바오로와 아폴로는 편을 가르고 세력을 모으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로서 힘과 영예를 가진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을 교회의 기초라고 생각하지만, 바오로 자신은 하느님께서 사도들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1코린 4,9)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사도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오직 그가 멸시와 박해를 받았던 것, 중상을 받아도 그것을 반박하며 스스로 정당함을 밝혔던 것이 아니라 모욕을 견디었던 것,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무슨 자랑거리일까요?

사도는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이 약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음과 약함은, 코린토 1서 1장에서 하느님의 속성으로 일컬어졌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키시거나 지혜로 사람들을 논박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인간은 자신의 힘과 하느님의 힘, 자신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를 겨루어 보고, 자신의 힘과 지혜를 다 써 보고 나서야 하느님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힘과 지혜가 아니라 십자가의 약함과 어리석음으로 인간에게 도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신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하느님을 선포하는 사도는 약하고 어리석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리석음과 약함으로 경쟁합니다. 누구보다 약하고 누구보다 어리석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도의 힘입니다. 그런 사도에게서,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아버지가 필요해

오늘 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을 질타하는 내용입니다.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책성 질문을 하면서 자기가 벌어서 부자가 된 양 우쭐거리고 자랑하는 신자들을 질타합니다. 그러면서 사도들 자신은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다.”라고 하며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신자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자녀로 생각하며 타이르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옛날 우리 부모들이 자신은 못 먹고 못 쓰며 자식을 서울로 보냈는데 자식들은 그 돈으로 마치 부잣집 자식처럼 행세한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아무튼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복음을 통해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이는 신자들이 세속적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영적으로 겸손해지게 하기 위함이지요.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은 그저 자식들 배부르게 하고 학교에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식이 자기 인생을 겸허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인생 길잡이 하는 거지요. 

그리고 세속 아버지가 자녀의 참 행복을 위해 이러해야 한다면 영적인 아버지는 더더욱 그래야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코린토 신자와 달리 영적인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바오로 사도와 같은 영적인 아버지가 이 땅에서 필요하고,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영적 아버지를 필요로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다른 누구보다 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야말로 영적으로 교만하기에 영적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저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없이 컸고 그것이 어렸을 때는 작지 않은 콤플렉스였습니다. 

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곧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 듣지 않기 위해 저는 늘 아버지를 대신할 ‘제 안의 아버지’를 두고 살았습니다. 제가 저도 되고 제가 저의 아버지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아니면 아버지의 교만 유전자가 제게도 있기 때문인지 저는 인간적으로 교만하고 영적으로는 더 교만합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필요한데 문제는 제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면 저는 여러 사람의 영적 동반이라는 것을 해주면서 영적 아버지 소리를 듣는데 저는 누구의 영적 동반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여러 말 가운데서 아버지가 되었다는 말이 유독 제 마음에 와닿았고 마음을 찌르는데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가기 위해서는 저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 사는 동안 영적 아버지가 필요함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앞 장면에서는 단식논쟁을 통해 새로운 시대인 ‘당신의 때’를 알리시고, 오늘 <복음>의 안식일 노동을 통해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곧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라고 밝히면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라는 ‘밀밭’을 가로질러 가시고, 제자들은 “밀 이삭”을 뜯어 비벼먹습니다. 이는 그들을 교회의 사도적 활동에 참여시킴을 암시해줍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 밀밭의 일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이 트집을 잡습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안식일에 소경을 고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사실, 그들이 트집 잡은 것은 밭의 이삭을 뜯어먹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비는 ‘노동’을 했다고 해서 트집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의 정신을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제사 빵을 먹었던 일’을 말씀하십니다. 

곧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알았지만 다윗이 제사 빵을 주었던 것처럼, 이제 당신께서는 배고픈 제자들에게 아직 빵이 되지 않은 ‘밀’을 먹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안식일의 본질이 율법의 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사실, <탈출기>의 ‘계약의 책’에서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라.~그래야 계집종의 자식과 몸 붙여 사는 사람도 숨을 돌릴 것이 아니냐?”(탈출 23,12)

이처럼,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주어진 날입니다. 하느님을 위하여 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쉬는 것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오히려 “해야만 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혹 “해야만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잘 보아야 할 일입니다.

<마태복음>의 병렬구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 않았을 것이다.”(마태 12,7)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자비로운 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일’이 바로 안식일 계명의 근본정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복음>의 병렬구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마르 2,27).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6,5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이 날을 새롭게 하시고, 
저희를 새롭게 하소서.

거룩함을 입었으니, 
거룩한 일을 행하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이가 되게 하소서.

이 날은 저희를 위하여 마련하신 날,

새 마음, 새 살이 돋게 하고, 
당신이 주 하느님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예언자’라는 책의 작가로 유명한 칼릴 지브란은 ‘우리의 불안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공감되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공부만이 아니라 취미 등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라는 불안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제할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자기의 통제로 아이가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큰 질병 중 하나가 마음의 병입니다. 이 마음의 병 한 가운데에는 늘 불안이 있습니다. 단순히 미래에 관한 생각, 걱정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가족과 또 만나는 이웃을 통제하려는 욕심에서 마음의 병이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잠도 줄이는 등 더 나 자신을 채찍질했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미래는 나의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결국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을 더 의미 있게 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 저절로 미래의 ‘나’가 바뀌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하려고 해서 굳이 불안 속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통제가 필요한 유일한 시간은 지금. 바로 ‘현재’뿐입니다. 
 
바리사이 몇이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사이를 비롯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불안했습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미래가 불안해집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고, 군중이 모이는 것을 싫어했던 로마는 군대를 보내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지금’이었습니다. 지금 자기들과 함께하는 예수님을 알아야 했고, 지금 예수님 뜻에 맞춰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불안으로 통제를 계속해서 합니다. 자기를 통제하고, 가족을 통제하고, 이웃을 통제하고…. 이렇게 불안으로 통제하려고 할 때, 지금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떠올려야 합니다. 분명히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지금에 충실한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오늘의 명언

내면의 불씨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만나는 순간, 그 불꽃은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되살린 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소중한 가을의 시작입니다. 안식일은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평화로운 가르침이 안식일입니다. 개개인을 속박하고 규제하는 억압이 아니라 안식일은 화합이며 관계의 진실한 대안입니다. 

어떤 규정이든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현시대에 맞지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흘러가서는 안됩니다. 사랑과 연민을 없애는 안식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바르게 사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것이 안식일의 참된 규정입니다. 

안식일이란 그래서 얽매임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도움을 주고 베푸는 위기의 진실한 치유입니다. 세속적인 이해 관계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기르듯 지혜롭게 그릇된 견해를 극복하는 것이 안식일이 나가야 할 방향입니다. 

안식일은 참된 생활을 지향합니다.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이 깨어있는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복음의 삶을 위하여 해야할 일을 하며 복음으로 나아가는 안식일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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