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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8/25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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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2024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8월 25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8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1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여호 24,1-2ㄱ.15-17.18ㄴㄷ)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 제 2독서
    (에페 5,21-32)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는 큰 신비입니다.

  • 오늘 복음
    (요한 6,60ㄴ-69)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오늘 말씀 카드
    (여호 24,15)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여호 24,15)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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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 24,1-2ㄱ.15-17.18ㄴㄷ
오늘 제1독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 무렵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에페 5,21-32
오늘 제2독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는 큰 신비입니다.

형제 여러분,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요한 6,60ㄴ-69
오늘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8월 25일
류성태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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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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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예수님의 말씀은 듣기에 거북할까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일까요?

“제자들 가운데에서”(요한 6,66) 많은 이가 돌아갔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단순히 빵을 찾아왔던 군중이 아니라, 그래도 그들 나름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하던 이들이 돌아서서 떠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붙잡지도 않으십니다. 그래도 이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라며 남아 있겠다는 이들만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기에 거북할까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일까요? 듣기에 거북하다고 한 이들도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복음서 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떠나갑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는,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실 때 제자들은 듣기 거북해합니다. 포도밭의 일꾼들은 포도밭 주인이 후하다고 하여 화를 내고,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을 아버지가 받아주자 첫째 아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도,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따라오라는 말씀도 듣는 이에게는 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던 그 시대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씀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가는 이들에게 이것을 굳이 다시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6,65) 당신 곁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북하게 들리는 그 말씀, 따라가면 죽을 것만 같은 그 말씀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고 믿고 뛰어들 수 있는 이들만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정답은 나와있는데 우리의 대답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선택 장애 또는 결정 장애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만 해도 나이 먹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고, 결혼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늦게 떠밀려 결정하는 사람 수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즘 젊은이만이 아닙니다. 옛날에도 젊은이들은 선택의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늙은이보다 선택이 어렵습니다.

그것은 젊을수록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고 뒤집어 말하면 늙을수록 선택의 폭이 좁기에 늙을수록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자기의 선택에 안주하곤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은 아직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대통령이 되는 것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지요.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 능력에 따라 그리고 자기 욕망에 따라 하나하나 선택지를 좁혀가게 되고 그래서 선택지가 좁아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젊을수록 능력도 많고 욕망도 많기에 선택지가 많고 그만큼 선택하기 어려웠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고 욕망도 줄어지면서 선택지가 좁아지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이를 얼마간 먹은 지금의 제게 좋은 것은 이제 거의 모든 것이 정해졌고 선택의 고민이 별로 없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갈수록 죽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고 천국이냐 지옥이냐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긴 한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선택에 안심하고 안주합니다. 그리고 안심하고 안주하기에 새롭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오늘 또 그리고 새롭게 선택해야 하는데 1년 전에 또는 십 년 전에 선택해놓고 새롭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연인이었을 때나 신혼이었을 때는 사랑이 매일 새롭고 매일 뜨겁게 사랑 고백을 했는데 내 사람이 되고 십 년이 지나자 이제는 더 이상 가슴이 뛰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성무일도 초대송 때 부르는 시편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이 있지요. 매일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출전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전해져 내려오는 말입니다.

옛날 은나라 탕왕이 매일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이 글이 적힌 세숫대야로 매일 세수를 했다고 하지요. 오늘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렇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며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질문과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정답은 나와 있는데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마르틴 루터는 말씀을 강조했는데 왜 성체를 떠났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설명해 주시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싸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예수님은 성체에 대해 말씀하시기보다는 ‘말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열두 제자들에게도 너희도 떠날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이라고 믿고 실천하려는 이는 성체를 떠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는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라고 하며 말씀을 강조했는데 왜 성체를 떠났을까요? 그는 말씀을 생명으로 실천하려 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석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 이들은 말씀을 ‘해석’하려 듭니다. 말씀을 해석한다는 말은 말씀을 자기보다 낮은 수준에 두는 것입니다. 마치 의대생이 죽은 시신을 해부하듯이 말씀을 자신 뜻대로 해석하겠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이 실행하는 대로 해석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백, 수천 개의 성경의 다른 해석과 종파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성체의 역할이 사라집니다. 루터는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빼려고 했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실천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면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힘을 찾기 위해 성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말씀을 통해 늦게나마 사제 성소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응답에 힘차게 따를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 성체를 영할 때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다 주시는데 내가 뭘 드린다고 유세를 떨었던가?’라며 크게 회개하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실행하려고만 한다면 성체는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이는 마치 거울과 물의 관계와 같습니다. 거울은 말씀이고 물은 성사입니다. 거울을 보면 물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굴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로 씻으면 다시 거울을 찾습니다. 잘 씻겼나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과 성체는 마치 자전거의 두 페달처럼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말씀이 생명이 된다는 말은 말씀의 실천이 곧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십일조를 내라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 어떨까요? 순종하지 않고 해석합니다. 

‘그건 그때 당시나 그런 것이고, 또 개신교나 하는 것이지 이젠 그런 율법은 없어.’
이렇게 되니 모든 것을 주시는 성사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다 주신 분을 성사 안에서 만나면 어떨까요? 소득의 십분의 일 바치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됩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삼식이 삼촌’(2024)이란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삼식이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사람은 세 끼니를 다 먹인다고 하여 별명이 삼식이라고 붙여졌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으니 뒤에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돈은 기업가들의 모임인 청우회 회장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고 어리바리해 보이는 아들이 수장을 맡자 그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정권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다 죽게 됩니다. 삼식이 삼촌은 말합니다. 

“저는 평생 청우회를 위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사냥이 끝났다고 사냥개를 잡아 먹습니까?”

“사냥이 끝나서 잡아먹는 게 아니죠. 사냥개가 지가 사람인 줄 알더라고. 왜 자꾸 식탁 위에 올라와? 잡아먹어 달라는 거 아니에요?”

이에 비해 가나안 여인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개처럼 여깁니다. 그러니까 성사, 곧 마귀 들린 딸이 낫습니다. 개에게 주인의 말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밥을 얻어먹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하.사.시.』를 읽고 매일 하루를 살 한 문장을 공유하며 말씀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살면 결코 성체성사의 은총에서 멀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프랑스 예술가 마이클 뒤샹은 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 예술가 전시회에 말도 안 되는 작품 하나를 출품했습니다. 그것은 도자기로 만든 소변기였습니다. 소변기는 옆으로 눕혀 있었고, 그 위에 검은색 물감으로 드문드문 서명을 해두었으며, ‘샘’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독립 예술가 협회는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거절했고, 이런 작품을 출품한 뒤샹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시각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사람도 알아주지 않아서 전시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00년도 채 나지 않은 2004년, 예술가와 역사학자 500명의 투표를 통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진리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과거 우리 교회의 역사 안에서 많이 봐왔던 모습입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현대 세계는 더 눈으로 보고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인간이 모르는 것은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주님에 대해 안다고 말하지만, 아주 일부만을 알 뿐입니다. 주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리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 하시고,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른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를 대표해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과거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끌던 여호수아는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라고 말했고,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결정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세상의 관점을 가지면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는 주님의 관점을 따른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힘껏 외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생활이 단순하다. 쓸데없는 일에 마음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 레프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삶의 지향점을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를 다시금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이끌어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지켜내십니다. 주님께는 말씀이 있고 길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삶의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이 아닌 것을 버리게 됩니다. 겉모양만 화려한 미성숙한 삶을 버립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 안에 사는 삶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생명이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신적인 삶이며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통찰이며 새로워진 생활입니다.

 

말씀은 생활을 바꿉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삶입니다. 영원과 무한은 십자가와 말씀으로 본 모습을 되찾습니다. 욕심의 거품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삶을 우리가 지금 사는 것입니다.

 

넘쳐 흐르는 생명의 말씀과 함께 맞이하는 축복 가득한 주님의 날입니다. 말씀과 생활로 주님을 훔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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