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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8/16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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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2024년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8월 16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8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에제 16,1-15.60.63)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 오늘 복음
    (마태 19,3-12)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19,6)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마태 19,6)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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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 16,1-15.60.63
오늘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에게 자기가 저지른 역겨운 짓들을 알려 주어라. 


너는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예루살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혈통과 태생으로 말하자면, 너는 가나안 땅 출신이다. 너의 아버지는 아모리 남자고 너의 어머니는 히타이트 여자다. 


네가 태어난 일을 말하자면, 네가 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고, 물로 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고 포대기로 싸 주지 않았다. 


너를 애처롭게 보아서, 동정심으로 이런 일을 하나라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네가 나던 날, 너를 싫어하여 들판에 던져 버렸다. 


그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살아남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너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서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젖가슴은 또렷이 드러나고 털도 다 자랐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벌거벗은 알몸뚱이였다.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11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두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12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 주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13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아마포 옷과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고운 곡식 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었다. 너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왕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4 
네 아름다움 때문에 너의 명성이 민족들에게 퍼져 나갔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던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5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 

60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63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마태 19,3-12
오늘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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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하느님의 심판은 절망적이지 않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게 베푸신 은혜들을 낱낱이 늘어놓지만, 그 맥락은 예루살렘의 죄악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에제키엘서 16장 1절부터 15절까지 읽고 그다음에 60절로 가는데, 15절부터 59절까지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상기시키면서 심판을 선고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그 긴 고발과 심판 선고를 앞두고,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에제 16,60)라고 하시며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15절부터 59절까지 볼 때, 예루살렘이 지은 죄는 많고도 큽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처벌도 분명히 선포됩니다. 예루살렘은 멸망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멸망은 다른 어떤 데서 오는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을 배반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심판을 선고하시고 실제로 치시기 전에, 당신께서 예루살렘에게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기, 아무도 돌보지 않고 던져 버린 아기를 하느님께서 살려 주시고, 계약을 맺어 아내로 맞으시며 귀하게 꾸며 주셨습니다. 생명을 지킨 것부터 먹고 입고 왕비가 된 것까지 모두 하느님께서 하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심판은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약을 깨뜨렸어도 하느님 편에서는 그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 당신께서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십니다. 

지금이 비록 심판의 때라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피투성이를 살려 주시고 알몸을 덮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하느님께서는 심판과 함께 이미 용서를 약속하시고, 한번 맺으신 사랑의 관계를 끊어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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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핑계를 발견하는가? 사명이 아니라 꿈으로 살기에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모세의 법을 우선시하여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면 절대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누구는 핑계를 찾고, 누구는 핑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누구는 꿈을 살고 누구는 사명을 살기 때문입니다. 

아래 이야기는 ‘세이노의 가르침: 가난한 사람들은 선량한가?’를 짧게 편집해서 올린 글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상황에서 가장에게 그런 평가를 어떻게 내릴 수 있는가?’라고 인상 찌푸리며 불평할 수 있지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쓴 세이노의 생각도 들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인 1990년 봄, 서울 천호동의 반지하 셋방에서 살던 엄 모 씨(40세)와 부인(38세), 그리고 아들(8세), 딸(6세) 모두가 연탄불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한 일이 있었다. 엄 씨 가족은 4년 전부터 이 셋방에서 보증금 50만 원 월세 9만 원을 내고 살아왔는데 집주인이 집을 수리하여야 하므로 방을 비워 달라고 해 이사 갈 집을 물색했으나 오른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 것이었다. 

서울에서 고교를 나온 엄 씨가 처음 택한 직업은 군에서 배운 운전이었다. 그는 결혼 후 서너 군데 직장에서 차를 몰았으며 모 국회의원의 자가용 운전사로 월 60만 원을 받고 일하다 차를 망가뜨린 실수 때문에 그만두었고 몇 개월 전부터 친구가 경기도 부천에서 하는 부동산 소개업을 도와줬으나 벌이는 한 달에 삼십만 원 선에 불과했고 일정치 않았다. 

엄 씨는 2남 1녀의 맏이였다. 그래서 서울 변두리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을 늘 괴롭게 여겼지만 죽기 며칠 전에도 노모에게 생활비로 15만 원을 부쳤다. 부인은 집에서 자수 미싱을 하며 생계를 꾸렸으나 죽기 얼마 전 전세 목돈을 만들고자 재봉틀마저 팔았다. 그러나 이때 받은 76만 원은 옮겨 갈 방을 구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어린 아들은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가 미싱을 팔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TV 소리가 잘 들렸기 때문이다. 방 안도 참 깨끗해졌다.” 

명성교회 신자였던 엄 씨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주님께서 현숙한 처녀를 어머님 눈에 띄게 하셔서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 가지, 다만 한 가지 나에게 물질의 축복, 남들처럼 돈 잘 버는 재주만은 주지 않으셨다. …

 

집을 비워 달라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고민에 빠져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

 

집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는 무능한 가장. 이런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불평 한마디 해 본 적 없이 늘 쾌활한 아내, 당신은 정녕 천사이리라.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께 혼난다는 말을 종알거리는 아이들, 너희도 정녕 천사이리라. … 전세금 마련을 위해 추진했던 일들이 모두 제대로 안 돼 이젠 방법이 없다. 나 혼자 세상을 떠나려고 했지만. …

 

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떨어진 처자식의 앞날이 얼마나 고생스러울 것인가. …

아버지 때부터 시작되어 오고 있는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지게 될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도 없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내 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

 

정치하는 자들, 특히 경제 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 이상 조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서 없는 자들의 절망과 좌절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엄 씨는 죽기 전 장례비용이라고 적은 봉투에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9장과 1만 원권 지폐 10장 등 1백만 원을 담아 방안 책상 위에 놓아두었으며 부동산 소개일을 하면서 고객을 태우고 다니고자 월부로 산 프레스토 승용차를 팔아 장례 비용에 보태 달라고까지 했다(당시의 거의 모든 신문 기사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당시 어느 경제학 교수는 모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잘못된 분배 구조가 고쳐지지 않으면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다. …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참과 혼란은 비인간적 이기심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제도 개혁들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우리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다시는 가난하기 때문에 죽는 일이 없도록 다 함께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정한 제도 개혁이면 반대하지 않으며, 집주인이라고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느냐고? 그렇다. 


첫째, 나는 ‘듣기 좋은 멋진 말’을 하는 그 교수가 세를 놓고 있는 집이 있다면 당연히 시세에 따라 세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둘째,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못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임대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기에 셋집의 수는 대폭 줄게 되고 임대 가격은 대폭 올라 버리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더욱 살기 힘들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증명된 바 있다. 

셋째, 거의 모든 기자, 소설가, 방송작가, 교수, 종교인 등이 자살한 엄씨를 ‘착하고 효자인 데다가 가족도 사랑하였고 성실하였으나, 가난하였기에 갑자기 오른 집세 때문에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자살한 사람’으로 묘사하였지만 실제 상황을 좀 더 파악하여야 한다. 그는 군 제대 후 무려 15년 이상 운전을 하였음에도 저축이 없었다. 국회의원 자가용 기사를 하면서는 월 60만 원의 봉급을 받았는데 1990년 당시는 근로자 최저임금이 16만 5천6백 원이었고 월급 100만 원 이상을 받은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5~6%에 불과하였음에 비추어 볼 때 적은 봉급은 결코 아니었다. 

넷째, 그는 친구가 하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나가면서 고객 접대용이라는 명분으로 프레스토 승용차를 월부로 샀지만 집은 천호동이었고 일터는 부천이었다. 그 먼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였다는 것은 그의 처지로 볼 때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게다가 차를 월부로 산 것을 보면 신차였다는 말이며 프레스토보다 더 싼 차들도 있었는데 월부로 그 차를 구입하였다. 보증금 50만 원 월세 9만 원짜리 사글세 집에서 사는 처지에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을까? 

다섯 째, 1990년은 이미 산업계에서 3D 업종 전체에 대한 근로 기피 현상이 나타나 일당 3~4만 원에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가 다른 일을 하고자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잘 알지도 못하는 복덕방 사무실에 나간 이유가 도대체 뭘까? 돈도 잘 벌고 편해 보였기 때문 아닐까? 

능력과 지혜가 필요했던 사람은 우선은 그 자신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자기에게 물려진 원인은 그의 소비생활과 일하는 태도 때문이지 피할 수 없는 유전인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는 그를 ‘착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여기기보다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소비생활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절망을 초대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정말 있는 자들은 말을 막 하는 것 같습니다. 

빌 게이츠도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자기 잘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노동 착취를 당해봐야지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그러나 세이노는 가난으로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최하층민으로 몇 년간 살면서 자금을 모아 1,000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가정환경이나 정치인들 탓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합리화, 곧 핑계는 너무도 무서운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죄를 짓고 게을러서 안 되는 것들을 합리화하며 그런 삶에 자신과 자녀들까지 고착시킵니다. 이렇게 여러 핑계를 대며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사명을 쫓은 것이 아니라 꿈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결혼하는 것도 꿈이고 자녀를 낳는 것도, 재산을 얼마 모으겠다는 것도 꿈입니다. 꿈은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스스로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은 다릅니다. 사명은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꿈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셨다면 전능하신 분께서 그 일이 이뤄지도록 모든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능력과 자비를 믿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황소를 훔친 도둑이 경찰서에 끌려와 말했습니다. 

“저는 고삐를 하나 훔쳤을 뿐입니다. 고삐를 들고 오니까 소가 따라 오더군요. 소까지 훔칠 생각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경찰서장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자네 손을 잡아왔을 뿐이네. 손만 오지 자네는 왜 따라왔나. 우리는 자네를 형무소에 넣지 않겠네. 자네 손만 집어넣을 걸세.”
                                           
- 최승호의 [황금털 사자] 중에서 -

성인들은 핑계를 대지 않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핑계가 있더라도 결국 죄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핑계는 사명을 찾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뜻만 이루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사명을 찾아 삶의 의미로 삼는다면 결코 핑계 대고 무너지는 일은 없습니다. 꿈을 좇지 말고 사명을 삽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책에 관한 관심은 많은데, 영화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장에 가본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동창 신부가 어떤 영화를 말하면서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이제까지 제 모습을 보면 극장에 가서 잠들고 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워낙 관심이 없는 분야인 SF 소설이고, 도대체 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동창에게 이 점을 이야기하니 배경지식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배경지식을 알아야 창작자의 의도도 이해되고 감동도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알면 보이고, 보이면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에 관심이 없어서 배경지식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또 관심이 없어서 대충 읽으니 더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창의 이 말을 떠올리며 주님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려면, 성경 안의 배경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배경지식이 있어야 주님의 의도가 이해되면서 지금 삶 안에서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고 또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막연하게만 자기 필요를 청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모르니 불평불만만 늘어날 뿐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 
 
사실 이혼에 관한 율법은 십계명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신명기(24,1-4)에 이유만 닿기만 하면 여자를 내몰 수 있었고 그때 이혼장을 써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 결혼을 일종의 매매 계약으로 여깁니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되었고, 여자는 재산 소유권과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이혼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일까요? 아닙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남녀 결합의 근본이념에도 어긋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혼인법을 없애고 하느님의 원래 뜻으로 되돌리기 위해 혼인의 불가해소성, 즉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의도를 모르니, 과거의 잘못된 관습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도 잘못된 관습만을 따르면서 정작 주님의 의도인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아는 데 집중하는 우리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더 큰 감동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솔직하고 숨김없이, 재치있게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접촉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 커트 보니것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 멋대로 살 수 없는 약속의 삶입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혼인은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은 혼인을 축복하십니다. 너무나 쉽게 이 사실을 망각하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무관한 것은 없습니다. 축복에 기대어 고개를 넘듯이 함께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만만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현실과 역사는 순간 순간이 모여 사랑으로 이루어 집니다. 

혼인의 현실도 하느님을 모실 빈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혼인도 자라나고 사랑도 함께 성장합니다. 혼인다워지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감사와 변명을 멈추는 정직한 마음입니다. 모든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혼인의 가치는 끝까지 충실하려 노력하는 노력의 가치입니다. 서로를 위한 혼인의 축복에 감사하는 오늘 되십시오. 혼인은 마음을 경작하듯 마음을 가다듬는 가장 치열한 마음의 수행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셨기에 하느님께서 무르익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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