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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8/13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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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2024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8월 13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8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에제 2,8─3,4)
    그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시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 오늘 복음
    (마태 18,1-5.10.12-1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오늘 말씀 카드
    (에제 3,1)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에제 3,1)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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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 2,8─3,4
오늘 제1독서

 

그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시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8,1-5.10.12-14
오늘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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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24년 8월 13일
한산동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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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일이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날까요?

마태오 복음서 18장은 교회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읽은 어린이에 관한 말씀 다음에는 그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고, 그다음에 다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말씀 다음에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의 문제는, 나 혼자만 죄를 짓지 않고 나 혼자만 구원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백 마리 가운데 나를 포함한 아흔아홉 마리가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잘 돌아갔다고 하여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은 에제키엘에게도, 동족에게 가서 경고하라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그가 경고를 하지 않는다면 악인이 죽은 책임을 그에게 묻겠다고 하십니다.

오래전 일이 떠오릅니다. 어떤 신부님과 꽤 먼 길을 가던 중에, 작은 휴게소 같은 가게에 들렀습니다. 가게에 있던 자매님은 자기가 오래전부터 냉담 중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그 자매님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결국 고해성사를 보게 하였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솔직히 신부님이 너무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성사를 보아도 내일부터 다시 냉담을 할 텐데 괜히 마음에 걸리는 일을 더 만드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일이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날까요? 그 일을 저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 자매님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혹시 그 뒤에 또다시 냉담하였다 하더라도, 그날의 기억은 이 자매님을 계속 교회로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신부님의 모습에서 저는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를 보았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린이스런 회개와 어른 스런 회개

오늘 주님께서는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라고, 그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린이스러운 회개’와 ‘어른스러운 회개’를 묵상해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린이는 철부지 어린이가 아닐 것입니다.

철부지 어린이는 보통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늘 자기중심적이고 배려할 줄 모르며 처신이 미성숙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스러운 회개는 이런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어울리는 어린이요 회개일 터인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첫째로 단순함입니다. 복잡하지 않은 것이고, 복잡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키지 않은 것이고, 여러 가지 또는 상반된 가치와 욕심이 얽히고설키거나 충돌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복잡한 이유가 그 반대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하고, 하고 싶은 것이 이것저것 많아서 복잡하고, 이 말도 솔깃하고 저 말도 솔깃하여 복잡하고, 이것이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여 복잡하고, 육적인 욕망과 영적인 갈망이 같이 있어 복잡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어린이에게는 선입관이나 편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백지처럼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고, 한 마디로 때가 묻지 않아 영혼이 깨끗하며, 그래서 얘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세 번째로 어린이는 약하고 겸손합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의 약함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 힘에 의지하지 않고 부모나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며, 도움의 손길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도움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이유로 어린이는 단순하게 믿고 잘 믿으며 그 결과로 여러 가능성에 다 열려 있으며 신앙 면에서도 하늘나라의 문이 열려 있으며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렸을 때는 어른이 하라는 대로, 교회가 가르쳐주는 대로 아무 의심 없이 하느님을 믿었다가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 때가 묻어서 하느님을 믿지 않다가 더 나이 먹으면 다시 단순해지고 겸손해져 하느님을 다시 믿는 회개를 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른스러운 회개도 또한 해야 합니다. 앞서 봤듯이 철부지 어린이는 자기밖에 모르고 매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남의 사정이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남을 고려하거나 배려할 줄을 모릅니다. 한 마디로 미 성숙하여 남을 위한 여백이 없고, 사랑의 기초가 아직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죽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어린이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작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작은 생명도 죽이지 못하고 살리려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자기를 낮춘다는 말은 자기를 비운다는 말과 같고 자신을 죽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면 자신을 죽이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선택의 기준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죽으면 정말 행복할까요?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지내던 37세의 뇌 과학자였던 질 볼트 테일러는 샤워 도중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갑자기 어지러워 비틀거리다가 욕실 벽을 손으로 짚습니다. 그런데 어디부터가 자기 손이고 어디까지가 욕실 벽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 이유는 언어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영역인 좌뇌 쪽에 출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까 이번엔 자기가 누군지 내 이름이 뭔지 어떤 사람인지조차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례로 시끄러웠던 그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고요하고 조용해집니다. 나와 세상을 구분하기 물리적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냥 엄청난 우주의 에너지 자체만을 느낍니다. 모든 것과 하나가 된 거 같은 기분을 그녀는 이런 느낌을 마치 요술 램프에서 빠져나온 지니가 된 거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테일러는 이런 경험을 두고 “나의 정신적 에너지가 행복이 넘치는 침묵의 바다를 거대한 고래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라고 표현합니다. 

좌뇌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재잘거림을 통해서 우리를 삶에서 뒤처지지 않게 해줍니다. 자뇌의 언어 중추가 나는 누구누구,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느끼게 합니다. 이때 우뇌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인류라는 가족의 평등한 존재로 여기고 국적 인종 종교 이런 인간들이 많은 경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린이들의 뇌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어린이들은 좌뇌가 덜 활성화되어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출처: 하버드대 뇌과학자의 깨달음, 심리학 고양이, 유튜브] 

그렇다면 자아, 곧 나가 죽으면 모두가 참 행복을 느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아가 강하면 어쨌거나 세상에서 자기만을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관계의 친밀함에서 오는 행복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힘들어 스스로 관계를 위해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자아를 죽이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 애덤 지먼은 자기가 죽었다고 말하는 48세 환자 그레이엄과 만납니다. 그레이엄은 이미 본인이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표정은 짓지 못합니다. 사실 이는 그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무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니콜라스의 부모님은 항상 마약에 절어 있었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에 니콜라스 엄마와 양아버지는 자주 싸웠으며 어느 날 어머니가 부엌에서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니콜라스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선어 걸음 다가갔어요. 정상적으로 걷다가 갑자기 꿈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졌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그 후로 니콜라스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까지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태로 살게 됩니다. 현실은 안개가 자욱하고 꿈 같거나 시각적으로 왜곡된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히 내 생각인데 내 생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내 감정이지만 마치 남의 감정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출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된, 소위 '걷는 시체 증후군'으로 불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정신질환, 심리학 고양이, 유튜브] 

이런 경우는 자아가 사라져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실 자아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를 감추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맺기 위해 현실에서 반응하고 느껴야 할 주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아를 죽여나가는 방향은 세상을 끊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어린이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자아가 지나치게 강해지지 못하는 환경이 자기를 밀어 넣습니다. 바로 부모라는 존재의 품입니다. 그 품 안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기, 배고파요!”라고 말할 때 그 아기가 자기일 수 있습니다. 왜 제3자로 자기를 표현할까요?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믿어야 합니다. 아이가 자기를 부모와 함께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 영감은 돈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색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러운 노인이었지만, 자신이 죽었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회개하여 모든 사람을 잘 받아들이는 존재가 됩니다. 그는 살았지만, 죽었다고 믿고 살게 되었기에 착해졌습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되기 위해 자아를 잊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는 이 행복이 지속되는 나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렇게 변화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7월부터 계속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7월 15일부터 27일까지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순례를 다녀왔고, 지난 8월 2일부터 4일까지는 제가 소속되어 있는 연수지구 유소년 연합 캠프가 있었습니다(제가 연수지구 유소년 지도신부라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8월 5일부터 9일까지는 서품 동기 은경축 기념 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 모든 날짜도 길지만 제가 없는 시간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시간, 그리고 다녀와서 밀려 있는 일을 하느라 정신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밀린 일도 어느 정도 정리하면서 어제는 푹 쉬려고 했습니다. 월요일 새벽 미사를 마치고 곧바로 침대로 들어가서 하루 종일 잠만 자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피곤하니까 잠을 자야 해.’라고 머리에서 말하는데, 점점 정신이 맑아지면서 해야 할 일이 떠올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온종일 책 읽으며 공부하고, 또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피곤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 힘이 나는 것입니다. 사실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번아웃이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새로운 변화를 계속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냥 세속적인 과거의 습관적인 모습에 갇혀 있는 삶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당시의 어린이는 아직 인간으로 보기에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무시했고,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이나, 병자들을 행해서도 거리를 두는 것이 당시 사회의 풍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회 풍조를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고,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변화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세상이 원하는 변화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변화이고, 이 변화에 맞춰서 살아가는 모습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때 더욱 힘차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하늘 나라에서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변화는 자기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변화는 사랑의 완성을 따르게 됩니다. 더 큰 영광을 위한다면 무엇을 따라야 할까요? .

 

오늘의 명언

우리 시대는 존재의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관심하다. 오직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고민할 뿐이다.

- C. S. 루이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납니다. 드러내는 익숙한 신앙이 아닌 성찰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만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고 회개하는 그만큼 우리 인격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를 사랑하고 회개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낮아지는 것이 곧 높아지는 것입니다. 낮추는 힘이 곧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힘이 됩니다. 결코 오만과 교만으로는 볼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진정한 삶의 기쁨입니다. 

희생으로 지나 온 길에서 자신을 낮추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복음을 나르고 실천하는 이들은 자신을 낮추는 회개하는 이들입니다. 낮추는 이들이 자신을 돌보고 이웃을 진정 돌보는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복음에서 언급하는 어린이의 정체성은 주님을 필요로하며 주님과 함께하며 하늘 나라를 드러내는 이들입니다. 낮추면 주님께 맡기게 되고 맡기면 어느새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신비가 됩니다. 

낮춤은 낮춤으로 피어나고 닮아가지만 올림은 올림으로 너무 높아서 낮아지시는 주님과 함께 머물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는 낮아지고 낮추면서 완성되는 사랑의 만남입니다. 자신을 낮추면 오늘은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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