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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30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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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2024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30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예레 14,22)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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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예레 14,17ㄴ-22
오늘 제1독서

 

주님,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17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18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19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 

20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21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22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려 줄 수 있습니까?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마태 13,36-43
오늘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30일
한용희 대건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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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하느님을 왜 믿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3-14).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 부활로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가 왜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를 잊은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여 보았다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많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인들에 대한 심판은 마지막 날에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이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1독서는 우리가 마지막 날에 하느님을 ‘의인’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 줍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죄로 넘어질 때마다 우리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하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는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회개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마지막 날에 ‘의인’으로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성찰’과 ‘고해성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를 이 신비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줍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구별과 차별을 하는 것이 가라지다.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보면 가라지가 꼭 밀 가운데 섞여 있는데, 그 가라지들을 우리가 뽑으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가라지를 잘 솎아낼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오늘 저는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까 합니다. 

지금 나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를 밀이라고 생각하는가? 가라지라고 생각하는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기를 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라지입니다. 자기를 가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밀이고 다른 사람을 가라지라고 생각하고 솎아내려는 사람이 실은 가라지입니다. 

오늘은 이 짧은 묵상 나누기만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난 토요일 저의 나눔이었습니다. 오늘의 나눔은 이것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구별과 차별하는 것이 가라지입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구별하지 않는 것, 특히 차별하지 않는 것이 밀입니다. 

불교에서 구별은 부처가 할 짓이 아니고, 그러니 깨닫지 못한 자가 하는 짓입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은 이 구별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악이라는 것 또는 가라지라는 것은 선에서 시작되지요. 

이것이 선이라고 하는 순간은 이것이 아닌 것이 악이잖습니까? 

이것만이 선이라고 하는 순간 이것이 아닌 것이 악이잖습니까? 

양단의 개념이란 것이 다 이렇습니다. 

흑백논리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을 백이 아니면 다 흑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고, 그 이전에 흑과 백을 나누고 구별하는 것 자체가 나쁩니다. 

구별이 이렇게 나쁘면 차별은 더 나쁩니다. 구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일 뿐인데 악한 것이라고 하고, 오늘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아내려 하는 것처럼 악한 것이기에 없애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늦잠을 잔 관계로 여기까지만 나누기 하려고 하는데 위의 나눔에서 악이란 죄의 악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선)를 파괴하는 죄악까지 괜찮다고 하거나 그런 죄악을 우리가 없애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는 이것 하나로 결정된다.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지막 때에 밀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늘에서 별처럼 빛날 것이지만, 가라지는 불붙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안타깝지만, 진리입니다. 지옥이 없다느니, 상태를 말한다느니 하며 진리를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지옥에 어떻게 가지 않아야 하는지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힌트가 있습니다. 가라지는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을 죄짓게 할까요? 그들을 이용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란 소설은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인간이 평가하는 기준과는 다를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프랑스의 루앙시를 프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을 때 몇 명의 귀족, 정치인, 부자, 종교인이 함께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중에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창녀 한 명도 끼어 있었는데 조금 뚱뚱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눈을 가졌고 자신이 가진 음식을 일행과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도 지녔습니다. 무엇보다 프러시아의 시민이 될 수는 없다는 애국자 중 하나였습니다. 

일행은 토트 시에 잠깐 머물게 됐는데 그 젊은 창녀에게 눈독을 들인 프러시아군 장교가 그녀와 잠자리하지 않으면 그들을 통과시켜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러나 프러시아가 싫어 탈출한 애국자가 프러시아군 장교와 잠자리할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여관방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일행도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녀 주제에. 한 번 자 주면 되지.’

그래서 그녀가 장교의 말을 들어줄 수 있도록 설득하였습니다. 심지어 함께 탈출하는 수녀들까지도 그녀를 설득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위대한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창녀는 장교와 하룻밤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행은 창녀를 벌레 보듯 합니다. 음식도 챙겨올 시간이 없었던 그녀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애국심에 가득 차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혁명가를 크게 부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밀과 같았던 이들이 가라지로 드러났고 비곗덩어리로 불리며 쭉정이인 줄 알았던 창녀만이 밀로 드러났습니다. 창녀는 다른 이들을 이용하지 않았고 죄짓게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녀를 죄짓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창녀를 죄짓게 한 이유는 자기들 이익 때문입니다. 무슨 이익을 얻었을까요? 자신들은 몸 파는 사람이 아니라는 교만함과 육체의 자유와 자신들이 가진 소유를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신이 되려고 하는 것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진짜 신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죄가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하느님 없이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 ‘하느님처럼 되기를’ 원하였다.”(CCC 398)

하느님께서 주시는 살과 피, 곧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 없이 신이 되는 방법은 타인을 죄에 빠뜨리며 이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돈을 통해서 내가 주님이 되고, 육욕을 통해 내가 창조자가 되며, 교만을 통해 내가 심판자가 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 소설 ‘고양이’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개와 고양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개는 주인을 통해 신이 되려 하고 고양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되려 합니다. 누구나 신이 되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피조물로서 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나를 본래 신으로 여겨 신 없이 신이 되려는 방향 두 개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름도 넣어졌고 액셀러레이터도 밟혔습니다. 이제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 내가 신이 되려고 하거나, 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거나! ‘착한 뜻’은 결국 나 스스로가 아니라 내가 ‘신을 통하여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고통의 시간을 모두 기억할까요? 대니엘 카니먼과 그의 동료들은 하나의 실험을 했습니다. 이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차가운 물 속에 손을 담그고 버티게 했습니다. 이때 A 집단은 1분 동안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있게 했고, B 집단은 1분에 30초 더 얼음물에 손을 담그게 했습니다. 그러나 B 집단은 1분 30초 뒤, 30초 동안 따뜻한 물에 손을 담글 수 있게 했습니다. 정리하면, A 집단은 1분 동안 찬물에, B 집단은 1분 30초 동안 찬물에 그리고 30초를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근 것입니다. 
 
이 중 어느 집단이 더 고통을 호소했을까요? 얼음물에 1분 30초 담근 B 집단이 더 오랫동안 찬물에 있었으니 괴로웠을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실제로는 A 집단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괴로웠는가보다 최후의 경험이 중요했습니다. B 집단은 따뜻한 물 30초가 괴로움을 한껏 낮춰준 것이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힘들다는 분을 종종 만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고통과 시련의 무게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 무엇인가를 해야 했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기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했습니다. 고통과 시련 안에서 나올 수 없다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해서 좋은 기억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이 역시도 지나갈 하나의 과거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밭의 가라지 비유 말씀을 설명해 주십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안에 가라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을 만나면 힘이 들고 또 큰 아픔과 상처를 겪게 됩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라지 같은 저 사람 때문에 도저히 못 살겠어!’라면서 포기하고 좌절해야 할까요? 가라지에 눌려서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세상 종말 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울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좌절하는 삶이 아니라 어떻게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의인이 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은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에겐 여전히,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남아 있다.

- 존 딜런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종말은 끝없는 욕심과 교만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제어 장치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결정하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가라지의 마지막 모습을 봅니다. 물이 바다를 향하듯이 좋은 씨도 악한 가라지도 모두 하느님께로 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아십니다. 인격의 반성은 그래서 생활의 반성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좋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관망만 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섭리하시고 생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태울 것은 태우시고 흐를 것은 흐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종말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믿음을 갖고서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삶을 망치는 악한 가라지의 모습은 태워버리고 하늘 나라의 자녀로 천사들과 함께 사는 삶이길 바라십니다. 

새로운 그림을 새로운 삶을 그려나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살아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미 참 생명이 있습니다. 좋은 삶을 위한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들지 않는 새로운 시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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