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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28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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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2024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28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7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열왕 4,42-44)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제 2독서
    (에페 4,1-6)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오늘 복음
    (요한 6,1-15)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오늘 말씀 카드
    (2열왕 4,44)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2열왕 4,44)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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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왕 4,42-44
오늘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에페 4,1-6
오늘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요한 6,1-15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28일
김정하 야누아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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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이가 가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장정만도 오천 명’쯤 되는 인원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바알 살리사에서 온 사람이 가져온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 자루를 바라보며 엘리사의 시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의 판단과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며, 이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는 음식으로 빵의 기적을 이루셨고,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는 십자가 죽음으로 부활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믿음과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 영혼에 생명을 나누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미사 때 선포된 하느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는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봉헌하고, 그분께 감사드립시다. 더불어 가족과 이웃에게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 주는 “생명의 빵”이 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소용없는 것을 소중히 쓰시는

빵의 기적 얘기는 네 복음에 다 나오는 얘깁니다. 그런데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점이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비교할 때 조금 더 다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공관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공관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역할을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데 비해 요한복음에서는 필립보와 안드레아 사도가 특별히 거명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안드레아 사도의 언급입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한복음은 의도적으로 아이를 등장시키고 안드레아 사도는 다른 곳에서처럼 사람을 주님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복음 다른 곳에서 그리스 사람들을 주님께 연결시키지요. 그렇지만 안드레아 사도는 반신반의하는 거 같습니다. 이 작은 아이의 이 적은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 이 적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고 묻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겠다고 생각했으면 아예 아이를 데려오지 않았을 텐데 자기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주님께 가면 어떤 가능성과 소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나 소용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아이를 데려온 것입니다. 

우리도 안드레아 사도처럼 반신반의의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반신반의의 우리 믿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 것입니다. 반신반의란 적어도 완전 불신보다는 반만큼 믿은 것이기 때문이고, 인간에게는 완전 불신이지만 주님께는 믿음을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보면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고 그래서 믿을 수 없지만 하느님께는 뭣이든 소용이 있기에 하느님께는 믿음을 둘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무도 없고 아무 가진 것이 없어도 창조하실 수 있으시기에 주님께서는 안드레아와 아이를 빵의 기적의 협력자와 도구로 삼으시고, 인간의 눈에는 소용없을 그 적은 빵과 고기를 아주 소중하게 쓰십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소용없을 것이 하느님께는 소용이 있고 소중합니다. 그래서 아무것 없이 창조하실 수 있고 인간의 아무 도움 없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만 나든 남이든 인간의 협력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능력이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여기 아이와 엄마가 있습니다. 혼자서 요리를 다 할 수 있는데 자녀에게 요리를 가르치려고 이것 한번 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엄마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랑을 아이가 배우고 사랑 실천의 기쁨을 아이가 알게 되도록 혼자서 해도 되는데 아이와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데 오늘 우리의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가진 것 없어도 빵의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믿게 하시기보다 가진 것 없어도 두려움 없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사랑을 가르치시고 당신 사랑을 더 느끼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가진 것 없고 소용없는 저희를 소중하다고 하시고 당신 사랑과 은총의 도구와 협력자로 쓰시는 주님, 오늘 특별히 감사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살려면 반응하라.

오늘은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많은 숫자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양인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특별히 감사로 아버지께 당신의 존재를 어필하셨습니다. 이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감사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가르는 시발점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저절로 가지게 된 것을 잃어가기 때문에 짜증만 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창조론을 믿는 우리는 다 잃어도 모든 것을 받은 것이기에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게 됩니다. 

제가 몸에서 촌충이 나온 것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평택 장에 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약을 파는 아저씨가 저를 부르더니 약을 하나 먹고 자리에 앉아 있으라 했습니다. 어느 정도 있으니 엉덩이가 간지러웠습니다. 다시 나오라고 해서 팬티를 내려보라고 했는데 이내 길고 흰 촌충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저씨는 그것을 발로 밟았는데 그 안에 새끼들이 수없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내 몸에 저렇게 많은 벌레가 살며 피를 빨아먹고 있었는데도 왜 난 저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까?’

본래 혼자 살아남으려 하는 자는 더 큰 존재에게 발각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본인이 잡아먹힙니다. 진화론은 이와 같습니다. 반응을 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의 세상을 지배하는 신은 파괴의 신입니다. 영화 ‘더 사일런스’(2019)에 외계 종족들이 쳐들어왔는데 그것들은 눈은 없지만, 청각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소리를 내면 바로 죽임을 당합니다. 본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형수들을 많이 본 박효진 장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형수들은 결국엔 똑같이 두려움에 떨거나 오줌을 지렸다고 합니다.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우리는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SBS 꼬꼬무 37화에서 ‘임신 거부증’에 걸린 한 엄마가 신생아 둘을 냉동실에 넣어 죽인 사건이 나왔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엄마는 임신을 거부하였고 태아들도 그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태아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몸을 길쭉하게 늘여 배가 많이 나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마치 기생충처럼 어머니 뱃속에 머물다 나왔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두 영아를 살해하였습니다. 

사실 한 몸에 기생충도 있을 수 있고 태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둘이 다른 것은 하나는 엄마가 주는 모든 것에 반응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존재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는 하늘에 반응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가 믿는 하늘은 더 사일런스에 나오는 외계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아는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자신도 미소 짓고 엄마가 기분이 좋으면 자기도 몸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진짜 소멸의 세상에서 생성의 세상으로 넘어오는 반응은 ‘감사’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의 선악과처럼 감사의 반응을 실현할 도구는 십일조입니다. 이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나는 나 스스로 존재하는 자, 그러나 소멸의 법칙에 속한 자가 됩니다. 이 버튼은 그냥 반응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기가 처음에 엄마, 아빠라고 했을 때 부모는 그동안 한 모든 고생을 잊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받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녀 베르나데트는 140년이 지났는데도 몸이 전혀 썩지 않고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남아있고 지금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성모님께 순종하여 그러한 생명을 지금도 얻고 있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순종도 없습니다. 이런 현대의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 주님께 반응하는 이에게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살려면 반응하십시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하는 마음

언젠가 뉴스에서 본 인상 깊은 장면이 있습니다. 
 
2020년 10월, 미국 플로리다주에 살던 70대 노인이 자기 반려견과 함께 호숫가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물속에서 악어가 나타나 반려견을 물고 다시 호수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 노인은 본능적으로 호숫가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악어의 입을 벌려서 반려견을 구해냈습니다. 
 
사실 악어의 치악력, 치아의 악력 즉 무는 힘은 엄청납니다. 사자, 호랑이, 곰, 하마 등을 제치고 모든 동물 중에서 제일 강력합니다. 그런데 팔 힘만으로 악어의 입을 벌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노인은 어떤 분일까요? 평소 몸 관리를 잘한 보디빌더일까요? 아니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저 강아지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엄청난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 노인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만일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히려 도망가는 데 급급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 ‘사랑하는 마음’은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자동차에 깔린 자녀를 보고서 자동차를 번쩍 들었다는 이야기도 뉴스에서 종종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사랑의 힘이 별것 아닌가요? 
 
주님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서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파스카 축제가 가까운 때인데도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주님과 함께함으로 인해 영적으로는 충만했겠지만, 육체적으로는 배고픔으로 힘든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라고 필립보에게 물으십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어떻게 배불리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안드레아가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보리 빵은 당시 가난한 이들이 먹는 아주 싼 음식이었고, ‘물고기’로 번역된 그리스 말도 조그만 물고기를 뜻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들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는 기적이었습니다.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가엾이 여기고, 측은히 여기는 주님의 사랑이 엄청난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 우리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 사랑이 주님을 통해 커다란 열매를 맺을 수 있음에도 우리는 자기 욕심과 이기심 채우기에만 급급하면서 열매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활동을 우리의 사랑 없음으로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당신으로부터 부름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 쥘 르나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버려진 삶이 우리를 구원하듯 버려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버려진 것에서 우리자신을 다시 보게 됩니다. 버려진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버려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것입니다.

 깨어지고 부서져 조각난 것들을 긁어모아 하나로 만드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성장하는 우리자신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성체성사로 살아가는 공동체는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으는 공동체입니다. 

남은 조각을 끌어안는 연민이 우리의 공동체를 살립니다. 경이로운 삶은 남은 사랑의 조각을 모으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우리의 약함을 우리가 끌어안는 것입니다. 

끌어안음이 성체성사의 길입니다. 조부모와 노인의 날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성체성사의 길입니다. 노인의 주름에서 사랑과 지혜를 배웁니다. 성체성사의 가슴이 우리의 가슴이 되어야 합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 속한 기도가 있고 봉헌이 있고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남은 조각을 모으니 모든 것은 진심어린 감사의 조각이 됩니다. 기도하시는 감사의 주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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