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네.
하느님, 라자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내신 성자께서 복된 마르타의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형제들 안에서 성자를 섬기며 마리아와 함께 성자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024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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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요한 4,7-16)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1,19-27)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1,26)
너는 이것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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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4,7-16
오늘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 11,19-27
오늘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29일
최정현 힐라리오 신부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소개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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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너는 이것을 믿느냐?
죽음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도, 사회적인 지위와 능력도, 그 어떤 것도 죽은 이를 살리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우리를 주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를 사랑하신’(요한 11,5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정말로 가져야 할 것, 곧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됩시다. 라자로가 죽음에서 일으켜졌던 것처럼, 이 믿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신 예수님까지 희생시키시면서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초대가 이 믿음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을 외면하면서까지 무엇인가 가지고 싶어질 때마다, 마르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거룩한 가족.
아시다시피 오늘 축일이 옛날에는 성녀 마르타의 축일이었습니다.
이 말은 옛날에는 마르타의 동생과 오빠는 성인으로 공경받지 못했다는 말이고, 마르타만이 가족들을 대표하는 성녀가 되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면에서 세 분을 성인으로 같이 기념하는 새로운 전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의미도 있고 과거에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것을 이제 제대로 조명하는 의미가 있을 텐데 제 생각에 이것이 더 중요한 의미입니다.
한 가족이 모두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한 가족이 모두 주님을 사랑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 말입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저는 이순희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를 높이 삽니다 부부가 같이 하느님께 나아간 경우이니 말입니다.
사실 서로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대단히 훌륭하지만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인에게 귀감이 되지요.
그렇지요. 서로 사랑하는 것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 사랑은 갇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에 갇히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의 사랑에 갇히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많은 사람이 자기 사랑에 갇히고, 기껏해야 가족 사랑에 갇혀 더 이상 사랑이 확장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세상 서로 사랑하다가 같이 사랑을 끝내는 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이것을 심하게 얘기하면 고양이를 사랑하며 한 생을 살다 가는 것처럼 슬픈 사랑입니다. 인간이 되어서 그래 고양이나 사랑하며 살다가 간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인생입니까?
마찬가지로 신앙인이 되어서 하느님 사랑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신앙생활입니까?
이는 천국에 가려 하지 않고 기껏 이 세상에서 복되게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참으로 슬픈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자주 얘기합니다. 연인들의 풋사랑은 서로를 보지만 부부의 익은 사랑은 같이 한곳을 바라본다고.
그런데 부부의 사랑이 같이 한곳을 바라보긴 하지만 그 한곳이 하느님이 아니라 자식일 수도 있지요.
이번 행진자 중에 딸이 출산하여 첫 손주를 본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딸이 출산하러 가는 날 행진에 참여하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출산하는 딸 옆에 있지 않은 비정한 엄마일 수도 있지만 내가 옆에 있을 테니 잘 갔다가 오라고 한 남편이 있어 자녀도 같이 사랑하고 주님도 같이 사랑하는 것을 동시에 실현한 성숙한 부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튼 교회는 오늘 한 가족의 축일을 통해 한 가족의 거룩한 삶에서 자극도 받고 본도 받으라고 합니다.
우리 프란치스칸에겐 성녀 클라라의 가족이 이 거룩한 가족의 본보기이지요. 세 자매가 클라라의 수녀가 되었고 나중에 어머니까지 수녀가 되었으며 마침내 세 자매가 모두 성녀 또는 복녀가 된 거룩한 가족이니 말입니다. 한 가족이 거룩한 가족이 되는 것은 욕심을 내도 좋을 욕심일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은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살아야 할까?
한국의 유명한 가수, 작곡가, 연극 창시자 김민기 선생이 2024년 7월 21일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민기는 197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요 히트곡이자 찬가가 된 노래 '아침이슬'의 작곡가입니다. 김민기 씨는 아침이슬 외에도 ‘상록수’ 등을 작곡하였지만, 그의 노래는 나오는 대로 금지곡이 되었고 옥살이까지 해야 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공장에서 일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야학당을 만들어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다 학전이라는 극장을 만들어 ‘지하철 1호선’ 등으로 황정민, 설경구 등의 연기자, 윤도현 등의 가수들이 설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의 영결식에는 수많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각계각층의 유명인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나도 저래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하던데 그게 아니라 사람은 죽어서 사람을 남긴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세계 4대 성인으로 공자, 소크라테스, 부처, 예수를 말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물론 이름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은 책을 쓰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제자집단을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책보다 오래 남는 게 사람들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라는 세 남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남매로서 하나의 제자 공동체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라자로를 살려주시는 은혜를 베풀었고, 마리아가 향유로 당신 죽음을 준비하게 허락하셨습니다. 마르타의 호의도 다 받아들이셨고 그러나 물질적인 봉사보다는 당신께 머무는 마리아를 본받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왜 이들에게만 그리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사실 한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보다 그 사랑해주는 이들이 여럿일 때 더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함께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에 당신도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의 공동체에 당신 이름이 새겨질 때 한 사람에게 새겨지는 것보다 더 오래 남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타니아 세 남매의 집에서 자주 쉬셨고 에너지를 회복하셨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만날 때 지치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여러 명을 만날 때는 마치 기도를 할 때처럼 힘을 얻습니다. 함께 하는 이들 안에서 주님의 성령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이라는 세 과학자가 실험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 둘을 잠깐 만나 눈을 마주치게 하고 따로 어두운 방에 들어가게 하고는 한 사람에게만 빛을 비춥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의 뇌파에도 그 반짝이는 빛을 감지하는 지에 대한 실험입니다. 놀랍게도 거리에 상관없이 잠깐 마주친 두 사람은 한 사람에게만 빛을 비추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 도미니코, 성 베네딕토 등은 많은 말씀을 하신 분들이지만, 정작 그들을 알게 되는 이유는 그 수도회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 살아계시기 위해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영향을 받아 믿음이 증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목표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남길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거룩하게 살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사람들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그들 안에서 오래 살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느 형제님은 반드시 회사에 출근한 뒤에 회사 화장실에 들러 대변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 데요.
“나는 똥을 싸면서 돈을 번다.”
틀린 말이 아니죠?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산다면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겠다 싶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회사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박봉인데도 늘 즐겁게 생활하십니다.
사실 세상은 불공평해 보입니다. 아니 분명히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그 형평성은 자기 마음에서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누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보상을 받으면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 세상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하나를 베풀면, 상대방도 하나를 줘야 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10개를 줘도 하나도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큰 이득을 얻었다면서 좋아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오히려 주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너무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 삶은 길게 잡아봐야 100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 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은 이 세상 안에서 자기가 베푼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사랑이 하느님 나라에 보물로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입니다.
100년 동안 사랑만 베풀었다고 하느님께서 바보같이 살았다고 하실까요?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나라에 가야 진정한 공평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마르타와 예수님의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마르타는 라자로의 누이며 마리아의 자매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집은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에 지치셨을 때 찾아오셔서 쉴 수 있는 곳이었지요. 그만큼 예수님과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과 같은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오빠 라자로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예수님만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었지요. 다른 사람은 다 살리면서, 사랑하는 오빠에게 무관심했던 예수님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르타는 자기의 신앙을 강하게 고백합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이라는 믿음을 표현하지요. 그 결과 오빠를 살리시는 주님의 기적을 직접 체험합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의 모든 일에,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주님의 섭리를 그때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소통은 이해의 과정이며, 이해는 인간관계의 밑바탕입니다.
- 피터 센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주님께서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고 받는 형제들의 믿음입니다. 하나의 믿음 속에 사는 소중한 형제들을 만납니다. 마르타의 형제들처럼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참사람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참사람이 되는 길이 다름 아닌 주님의 길이며 주님의 생활입니다.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마음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과 같이 원하고 주님과 같이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마음을 열고 우리의 아픔과 한계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라자로를 향한 진실한 구원은 되살리는 생명으로 드러납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만납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현실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는 마르타를 마리아를 라자로를 구원하십니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죽음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만납니다.
주님을 통하여 구원으로 가득한 믿음의 길을 우리는 봅니다. 라자로를 되살리셨듯이 우리를 되살리시는 구원의 새날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맞이하고 신앙으로 고백하는 오늘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믿음을 되살리는 생명의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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