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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23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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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2024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23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미카 7,14-15.18-20)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 오늘 복음
    (마태 12,46-50)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12,49)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마태 12,49)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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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미카 7,14-15.18-20
오늘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마태 12,46-50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23일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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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만이 혈연관계처럼 예수님과 아주 강한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49,15)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를 모두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이 ‘말씀’ 안에 담겨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가요?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로 살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예수님께 “주님, 주님!”이라고 외치고만 있는 사람인가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예수님의 어머니로 누구보다 하느님의 뜻을 삶으로 실천하신 성모님께서 보여 주신 믿음을 본받아 우리도 말씀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동해 거진 성당에서 있었던 일

동해 거진 성당에서 하룻밤 신세지고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잠 때문일까 세 시간 자고 깼습니다. 

일어나 복음을 읽고 묵상을 시작하는데 왕파리 한 마리가 제 방에 들어와 왱왱대며 방을 이리저리 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위가 어두운 가운데 불을 켰기 때문에 들어 온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낯선 곳이었기 때문인지 왜 왕파리가 한밤중에 내 방에 들어왔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파리가 제 방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왕파리가 들어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것이 들어 온 것입니다. 이 왕파리는 그저 왕파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게 보내신 하느님의 사신일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행진 첫날부터 하느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신 것이라고. 왕파리가 들어왔네 하고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도 그렇게 지나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저를 지나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제 생각이 하느님께 머물지 않고 지나치는 것일 겁니다. 

‘왕파리가 내 방에 들어왔네!’가 아니라 ‘왕파리가 들어왔네!’ 

그저 그 정도이면 생각이 왕파리에 머물지 않고 지나치듯 하느님께서 왕파리와 함께 제 방에 들어오시고 저를 찾아오셨어도 제 생각이 하느님께 머물지 않고 얼마든지 지나쳐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놓친 왕파리가 얼마나 많고, 그렇게 놓친 하느님이 얼마나 많을까?! 하느님 말씀도 그렇게 많이 내게 오셨어도 그렇게 많이 놓쳤을 것입니다. 왕파리가 아니라 풀벌레와 함께 오셨을 때도 있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들과 함께 오셨을 때도 있고, 구름과 비와 천둥 번개와 함께 오셨을 때도 있었을 텐데 놓쳤을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신 말씀도 이렇게 이해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수없이 많이 만난 남자와 여자들이 주님의 형제와 누이와 어머니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남자와 여자들이었거나 미친년 놈들이었지 내 형제와 누이와 어머니들이 아니었고 주님의 형제와 누이와 어머니들이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이 하느님께 미치지 못하고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느님 말씀과 뜻도 지나쳤을 겁니다. 하느님께서 누이들을 시켜서 말씀하셨는데도 웬 여자가 지껄인 말로 지나쳐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형제들을 시켜서 말씀하셨는데도 웬 놈이 씨부려댄 말로 지나쳐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도 않았고, 형제와 누이와 어머니들이 주님의 형제와 누이와 어머니들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밤중 제 방에 들어와 이것을 깨닫게 해준 왕파리가 고맙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드리는 거진 성당의 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기도의 끝이 항상 결심이어야 할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사실 참 부모님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피만을 물려받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뜻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희생 안에 그분의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한석봉을 당대 가장 유명한 명필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희생이었습니다. 그 희생 안에는 ‘뜻’이 존재합니다. 어머니의 희생은 당신의 뜻을 아들에게 강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의 사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동생이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쾌락을 즐기는 데 탕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은 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랐습니다. 

조선 말기 힘든 시절에 조선 땅에서 승승장구한 조선의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완용입니다. 그는 항상 성공했고 자녀에게 성공하는 법도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강한 나라를 섬기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완용은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이 우리와 가까이 지낼 때 친미파의 주동 인물이 되었고, 세상이 변하여 러시아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어느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친러파의 중심인물이 되더니,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자 이번엔 유창한 일어를 앞세워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합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갈 때 그는 서슴없이 일본인이 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습니다. 그러나 조선 땅에서 당시 가장 성공했던 이완용을 지금 누구도 자랑스럽게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선의 피가 흐르지만, 그는 일본사람이고 러시아 사람이며, 미국 사람입니다. 누구의 뜻을 따르느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저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가 사제로서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칠 때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가장 예쁘게 보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느님도 그러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기자가 오상의 비오 신부에게 악마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비오 신부님은 나 자신이 악마라고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란 나의 뜻입니다. 본래 나의 뜻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게 아닙니다. 나의 뜻을 하느님 뜻으로 바꿔나가야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눈이 먼 것이고 실제로 눈이 뽑혔습니다. 기도의 과정은 다시 하느님이 뜻으로 나를 봉헌하는 데 있습니다. 삼손은 하느님의 뜻을 잃은 것을 뉘우치고 결국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봉헌합니다. 그렇게 세상이 아닌 아버지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기도의 과정에서 우리 뜻을 당신 뜻으로 감싸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붙잡지 말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위해 그녀를 파견하십니다. 저도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 게 기도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당신께 붙어있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성체조배를 하게 되었고 그 뜻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하느님의 뜻으로 파견되지 않으면 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알고 내 뜻을 그분의 뜻으로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세례받으신 분들에게 100일 잔치해 드릴 때 처음엔 적지 않게 놀랍니다. 저는 세례받을 때 청하는 두 가지는 반드시 이루어주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그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러면 본당신부로서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신자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받기 이전에는 그런 문제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잘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세례라는 은총이 이들을 하느님 뜻에 봉헌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일이 매 기도 때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그만큼 땅에서 벗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까워집니다. 

이것이 하느님 뜻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을 위해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의 해답까지 얻기 전에는 그 기도를 마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뜻을 찾기 위한 기도는 며칠,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으로 나의 구체적인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기도는 나에게 어떤 좋은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하느님은 기도로 내가 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공자의 논어 ‘위정’ 편에는 우리가 많이 쓰는 나이대별 한자가 나옵니다. 열다섯이 지학(학문에 뜻을 둠), 서른이 이립(뜻이 확고하게 섬), 마흔은 불혹(인생관이 확립되어 마음에 혼란이 없음), 쉰은 지천명(하늘의 뜻을 알게 됨), 예순은 이순(귀가 순하게 됨. 남의 말을 받아들임), 일흔은 종심소유불유구(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음)가 그것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 나이 때 그런 삶을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천명을 넘어 이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하늘의 뜻도 잘 모르는 것 같고 또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제 말만 하려는 꼰대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공자 시대보다 지금의 기대 수명이 훨씬 늘어났으니, 공자에 나오는 나이에 ‘20’씩은 더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위안입니다. 하지만 변화를 무서워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있다면 어른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즉, 아무런 노력 없이 나이만 늘어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합니다. 그 나라에 어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내세워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편법을 사용해서 뇌물을 주고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께서 명확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사랑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나라에 들어갈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 막연한 희망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나이 들면 저절로 들어가는 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삶 안에서 성실하게 실천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시지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혈연관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시면, 하느님 나라에서의 가족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사랑 안에 있기에, 우리는 사랑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변화하고 변화해서 주님의 사랑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가족으로 살고 있을까요? 입으로는 ‘주님, 주님!’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랑의 실천에는 무관심하다면 하느님의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쓸데없이 나이만 먹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의 명언

햇빛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빛을 준다. 그리고 사람의 웃는 얼굴도 햇빛과 같이 친근감을 준다. 인생을 즐겁게 지내려면 찡그린 얼굴을 하지 말고 웃어야 한다.

- 슈와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저마다의 생명 안에는 하느님의 뜻과 실행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 외에 다른 것을 주지 않으시는 실행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건 실행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소중한 모든 것은 실행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뜻을 살리는 실행입니다. 뜻과 실행은 그래서 한 몸입니다. 가족 안에서 말씀과 실행은 서로를 위해 더 깊어져야 합니다. 실행 없이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실행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소중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붙잡고 우리에게 주신 삶을 끝까지 살아냅니다. 실행으로 환해지면 가족도 편안하여 집니다. 뜻과 실행을 잃어버린 관계는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막막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도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도 하느님의 뜻과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하느님의 뜻과 실행입니다. 오늘이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이고 축복인 것은 뜻과 실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뜻과 실행으로 어머니가 되고 형제가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기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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