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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22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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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가장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하라 하셨으니 그의 전구로 저희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영광 속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뵈옵게 하소서.

2024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22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아가 3,1-4ㄴ)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 오늘 복음
    (요한 20,1-2.11-18)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 오늘 말씀 카드
    (아가 3,4)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아가 3,4)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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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3,1-4ㄴ
오늘 제1독서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말하여라, 마리아, 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무덤, 부활하신 그분 영광 나는 보았네.

 

 

요한 20,1-2.11-18
오늘 복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22일
최성규 레오 신부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5

✚ 강론시작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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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은 그를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은 ‘들음’을 통하여 힘을 드러냅니다. 특히 ‘들음’은 ‘착한 목자의 비유’(요한 10장 참조)에서 예수님의 양들이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그분의 양들은 ‘들음’을 통하여 착한 목자와 깊은 일치의 관계를 맺습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10,3-4).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면 가장 먼저 ‘들음’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이야기하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사에 참여하였어도 그분의 말씀이 들리지도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고백처럼 우리 믿음도 들음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여 참으로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리스도의 사랑에 다그침 받는 우리

막달레나 성녀는 어떤 분인가? 어떤 분이라고 함이 가장 합당할까? 이번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을 가장 사랑한 여인인가? 맞는 말입니다. 

성녀는 주님을 가장한 사랑한 여인인데 여인 가운데 주님을 가장 사랑한 여인일 뿐 아니라 사도들과 비교해도 주님을 가장 사랑한 여인이었고, 주님을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요한 사도보다도 더. 주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다른 사도들은 다 도망쳤어도 실제로 요한 사도만은 주님의 십자가 밑에 있었는데 그런 그도 주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엔 사랑이 끝난 듯 주님을 찾지 않았고, 오늘 복음에서는 빈 무덤을 보고서도 찾아 나서지 않은 그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연인을 찾아 헤매는 아가를 독서로 한 것이 시사하듯 성녀가 주님을 찾아 헤맨 가장 사랑한 여인인 것 맞습니다만 사랑한 여인 이상의 분이라고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성녀의 축일을 축일로 지내게 하였고, 감사송을 특별히 지어 바치며 성녀를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고 명명합니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성녀는 사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께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성녀도 처음에는 주님 만난 기쁨에만 머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붙잡으려는 성녀에게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라!” 

그래서일까 아가서의 대체 독서인 코린토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도 다그침을 받습니까? 그래서 사랑을 넘어 사명을 실천하는 오늘 우리입니까? 늦잠을 자서 많은 묵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포르치운쿨라 행진에 들어갑니다. 혹 강론 올리지 못하는 날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와 행진단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혼자 기도할 때 언제쯤 끝마치는 게 좋을까?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가 들었지만, 예수님에 의해 깨끗해진 여인입니다. 그다음에 얼마나 발전했던지 예수님은 그녀에게 당신 부활의 모습을 처음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바로 드러내시지는 않고 순차적으로 드러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처음 무덤에서 천사들을 목격하고 그다음에는 무덤 밖에서 동산지기로 보이는 예수님을 만나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 그녀를 기쁘게 하십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기도할 때 거치게 되는 과정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어떤 과정을 거치며 나아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합니다. 

기도는 누가 할까요?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가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기도할 수 있었겠으나 그리스도의 무덤 곁에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아니면 세상에서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세상도 어차피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겐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을 줄 분이 아직은 부활을 믿지 못하여도 여전히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한 그리스도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이렇게 필요에 의한 ‘머무름’입니다. 

머무르다 보면 무언가 신비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천사들은 “여인아, 왜 우느냐?”라고 묻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면 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여전히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 묵상기도를 통해 천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묵상의 과정은 신기하고 기쁘고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멈춘다면 기도를 하다 만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더 머무르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분이 동산지기처럼 여겨집니다. 마리아는 두려움을 무릅씁니다. 예수님만 만날 수 있다면 더는 필요한 게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마리아는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동산지기가 정말 예수님을 훔쳐 갔다면 마리아는 매를 맞거나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죽음을 무릅씁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은 “마리아야!”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아시니 그제야 마리아도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마리아는 스승님을 “라뿌니!”라고 부릅니다. 스승을 만났음은 이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줄 분을 만났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너무 기뻐서 예수님과 머물고 싶습니다. 타볼산에서 베드로도 변모하신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와 그곳에서 천막을 짓고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기도가 깊어지면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 기쁨 속에 잠겨있다가는 평생 세상으로 내려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마지막입니다. 예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기도에서 받은 사명만이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향기를 풍깁니다. 

기도는 ‘머무름 – 들음(깨달음) - 기쁨과 평화(만남) - 파견(사명)’의 과정을 거칩니다. 군인이 군대에 들어와 훈련하다 보면 이전의 자기가 무엇을 했고 무슨 의도로 들어왔건 결국엔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전우애만 남게 됩니다. 

영화 ‘지 아이 제인’이 그러합니다. 여자도 네이비실의 훈련을 견뎌낼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남자들과 함께 훈련받던 그녀는 이제 그 의도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과 같은 한 명의 네이비실이 되어 나라와 동료를 위해 싸우게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잘했다면 마지막엔 나의 처지에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사명만 남습니다. 이 사명이 명확히 느껴지면 그때 기도를 멈추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얼마 전에 어디를 가다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옆에 있는 분이 발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신호가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저도 그분을 따라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호가 보입니다. 파란불이 아닌 빨간불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분을 쫓아 건너려고 했던 분이 저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대화 중이던 친구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면 제 손도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잡습니다. 내 옆의 사람이 하품하면 저 역시 입을 벌려 하품하게 됩니다. 이를 가리켜 모방 행동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 모두 공동체 안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행동만 연결되어 있을까요? 아닙니다. 감정까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의 힘든 감정을 이야기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도 감정의 동화를 느끼면서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쁘고 즐거운 감정도 전달되어서 상대 역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에 어떤 행동과 감정을 전달해야 할까요? 공동체 자체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다면, 그 영향을 받는 나 역시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전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성녀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자리는 죽음의 자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이 끝날 때까지도 주님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십자가의 죽음 뒤, 무덤에 묻히신 다음에도 이른 아침에 무덤을 찾아가십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어서, 누가 주님을 꺼내 갔다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했던 분이 왜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슬픔의 감정, 모든 것이 끝났다는 감정,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기쁨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고,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며 전합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서는 주님을 알아보기 힘듭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기를 원한다면,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세상에 기쁨을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도 기쁨을 속에서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 권정생 선생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때가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의 관계 속에 진정한 부활이 있습니다. 말보다 실천을 행하는 사람이 영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진정한 사랑의 사람입니다. 

사랑의 힘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부활입니다. 각박한 삶 속에서 만나는 진정한 부활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에게서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부활이 아니라 삶으로 만나는 부활입니다. 부활은 고정되고 규정되는 정지된 체험이 아닙니다. 역동적인 부활의 체험입니다. 시각의 변화이며 인격의 참된 만남이며 뜨거운 마음의 사랑이며 가장 소중한 이름이며 붙잡지 않는 흐름입니다. 

부활은 부활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부활의 삶을 살았습니다. 부활은 주님을 뵙고 가장 좋은 행복을 만나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저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요를 묻는 부활의 새날 새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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