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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17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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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4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17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10,5-7.13-16)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 오늘 복음
    (마태 11,25-27)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11,25)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 11,25)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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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이사 10,5-7.13-16
오늘 제1독서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 약탈질을 하고 강탈질을 하며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처럼 짓밟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뜻을 마음에 품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에는 멸망시키려는 생각과 적지 않은 수의 민족들을 파멸시키려는 생각뿐이었다.” 

13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나는 민족들의 경계선을 치워 버렸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으며 왕좌에 앉은 자들을 힘센 장사처럼 끌어내렸다. 

14 
내 손이 민족들의 재물을 새 둥지인 양 움켜잡고, 버려진 알들을 거두어들이듯 내가 온 세상을 거두어들였지만 날개를 치거나 입을 열거나 재잘거리는 자가 없었다.” 

15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태 11,25-27
오늘 복음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17일
김기헌 대건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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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같은 하느님 말씀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같은 고해성사인데 어떤 이들은 하느님과 진실한 화해를 이루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은총을 얻습니다. 같은 기도인데 어떤 이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살이로 얻은 지혜와 슬기는 하느님에 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가치와 이득을 좇게 만들고, 합리와 효용을 찾게 만들기에 하느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께 믿음을 두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보다 오히려 인문학과 심리학 강의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 시간도, 필요하거나 바라는 것이 생기기 전까지는 의미 없는 시간으로 느껴집니다. 

오히려 기도보다는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지혜와 슬기는 하느님 앞에서 언제나 이 말만 되풀이하게 만듭니다. 

“다음에요, 주님.”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싶나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봅시다. 어린아이가 무조건적인 신뢰로 부모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말씀을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지혜와 슬기로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나 ‘부담스러운 말씀’으로 여기지 말고, ‘하느님 말씀이니까 오늘 꼭 실천하여 보겠다.’는 단순함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대하여 봅시다.

그리고 성체 앞에 자주 머무르는 시간을 가집시다. 철부지가 부모 곁에 늘 머물러 있으려는 것처럼, 무엇인가 필요할 때만이 아니라 아무 이유가 없어도 성체 앞에 자주 머무릅시다. 

하느님의 신비는 이러한 단순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오늘 하루는 우리 모두 철부지가 되어, 살아 계신 하느님을 꼭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안다는 모름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제 생각에 대표적인 교만이 바로 내가 옳다는 교만과 안다는 교만입니다. 진정 올바른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올바르지 않으면서 옳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은 옳지 않다고 하며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에 대해서 비유를 가지고 비판하셨지요. 바리사이와 세리가 모두 기도하러 성전에 갔는데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지요.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에 비해 세리는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이렇게 기도하지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오, 하느님!’ 하며 둘 다 하느님을 불렀지만 누가 실제로 기도했고, 하느님을 뵈었습니까?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리 앞에 있었고, 하느님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리를 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런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이지 않으신다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또 다른 교만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안다는 교만, 곧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교만인데 마찬가지로 진정 하느님을 잘 알고 진정 지혜롭고 슬기롭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서 잘 안다고 더 나아가서 다 안다고 하니 그것이 문제지요. 

그러나 아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곧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지혜로운 것이고, 하느님께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지혜로운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지혜는 겸손과 동의어입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자기를 잘 아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인데, 자기를 잘 안다는 것은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할 때 모르는 것을 물을 겁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반대로 자기는 잘 알고 있으며 다 안다고 자신하고,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잘 알고 다 안 결과가 신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행히 이렇게 교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를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고 다만 땅에서 교만하고 그래서 땅만 보고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할 바에는 얼치기로 겸손하지 말고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이 제대로 겸손해야 합니다. 

철부지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귀찮을 정도로 모든 것을 물어댑니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손주와 그 할머니와 함께 어디를 간 적이 있는데 가는 내내 눈에 보이는 족족 할머니에게 그것이 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런데 그때 저는 모든 것을 모르고, 그래서 모든 것을 묻는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주님 말씀을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알고 일부 아는 것으로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지, 안다는 모름이 나의 교만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과의 기도를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대화의 한자어를 보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Dialogue인데, 어원상 고대 그리스어 dia(통과하다, 사이로)와 logos(말, 말씀)에서 왔습니다. 직역하면 ‘말을 통과하다’, ‘사이로 말하다’로, 말이란 서로를 통과해서 나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한쪽에서 일방적이 되어서는 대화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잘 하십니까? 예전에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는 공중전화 줄이 길게 서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나오고서는 길을 걸어가면서 길게 통화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화로 길게 통화하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메신저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또 메신저로 소통할 때도 유행어와 이모티콘 표현이 가득해서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대화하지 않는 시대에 사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화가 없어진 것은 아닐까요? 꼭 필요한 대화이지만, 대화가 없다 보니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해도 많습니다. 
 
이런 대화 부족이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잠식 기도하는 것도 어려워하며, 메신저를 통한 간단한 대화처럼 짧은 기도에만 익숙해져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성체만 마치고서는 밖으로 나가시는 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주님 곁을 떠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도, 짧은 만남을 통해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있을까요? 계속된 오해와 불통으로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식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전교 활동 가운데에서도 홀로 외딴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당신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어렵고 힘든 시간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범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대화를 멈춰버리면 당연히 주님과의 관계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대화도 감사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불평불만만 하고 있다면 과연 대화가 가능할까요? 대화가 되지 않고 가까운 관계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과의 기도를 절대로 멈추지 마십시오. 이렇게 계속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라.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과 자기희생의 길이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해질 수 있는 법이다.

- G.E. 레싱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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