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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15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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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양 떼를 찾아서, 그들을 먹일 목자를 세우리라.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보나벤투라 주교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비오니 저희가 그의 높은 지혜와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며 언제나 그의 불타는 사랑을 본받게 하소서.

2024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15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24년 7월 15일 피어나네 렉시오 디비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말샘기도 이미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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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이사 1,10-17
오늘 제1독서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10,34─11,1
오늘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15일
양우석 마태오마리아 신부

 

✚ 성 보나벤투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23

✚ 강론시작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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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사랑을 하여 보았나요?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족의 평화가 깨지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찾아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절되는 고통이 그 사람과 함께하며 겪을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음에도 당신에 대한 사랑이 있기를 바라십니다. 사랑이 담긴 믿음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게 합니다. 예수님을 먼저 선택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기도 시간이 소중해지도록 합니다. 

그분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 우리를 움직이게도 합니다. 어쩌다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와도,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합니다. 그분을 외면하고 잃어버리는 것이 더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후반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여 줍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바오로 사도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고백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 안에 살아 계신 신비가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자주 만나고 그와 자주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그러다 사랑하게도 됩니다. 이 방법을 예수님께도 써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체 앞에 머무는 신앙생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신앙생활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합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께서 칼을 주신 뜻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주님께서는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이때의 칼은 어떤 칼일까요? 

찌르라는 칼일까요? 자르라는 칼일까요? 

죽이라는 칼일까요? 끊으라는 칼일까요? 

말씀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그것은 명백합니다. 

관계를 끊는 칼입니다. 

지인과의 관계가 불의한 관계일 때 그때 그 관계를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뇌물을 받으라는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불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지나친 애착 관계일 때 그때 그 관계를 끊으라는 말씀입니다. 

며칠 전 저의 어머니 11주기 미사를 형제들과 같이 봉헌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내용의 강론을 저의 형제들에게 했습니다. 

자식들이 더 살아주길 바랄 때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시라! 

이젠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하기 전에 돌아가시라!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느냐 하면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돌아들 가지 말라는 뜻이었지요. 

제가 생각할 때 저의 어머니는 아주 지혜로운 분이셨고, 여러 가지로 저희의 모범이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저희 어머니가 이상해지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집착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수도원 들어갈 때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으셨고, 수도원 들어가고 난 뒤에는 전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제가 집 걱정할까 봐 집 얘기도 하지 않으셨고, 당신 걱정할까 봐 당신 아프신 얘기도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 전 많이 편찮아지신 뒤부터 저에게 전화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안부 전화였고 안 와도 된다고 하셨지만 실은 보고 싶으시다는 전화였지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자식들에게 집착하지 마시고, 이제는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시라고, 이제는 저희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딸이 되시라고 저는 어머니께 간곡하고도 긴 편지를 드렸습니다. 인간적으로 매우 괴롭고 불효막심한 내용이었지만 이것이 어머니의 영적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정을 떼는 저의 단호한 권고를 들으시고 처음에는 무척 괴로워하셨지만 그때부터 어머니께서도 정을 끊는 영적 싸움을 아주 심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악령과도 싸우셨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것이 보인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께서 제게만 유언하신 적이 있는데, 당신이 13살 때 보신 그 환시와 같은 거였습니다. 열세 살 때의 이 환시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그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사셨는데 돌아가시기 2년 전에는 하늘 보기를 그치시고 자식들에게 집착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기 직전 곡기를 끊으시면서 다시 그 환시를 보셨던 것인데 제게는 곡기도 끊으시고 자식들에 대한 애착도 끊으시고, 비로서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실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칼을 주신 뜻도 이런 것이라고 다시 묵상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평화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작년 휴가 때, 어떤 자연 휴양림에서 겪었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휴양림 안에 아주 근사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예약해서 시간 맞춰 입장했습니다. 그 식당의 자리는 산 중턱에 있었고 경치가 한 마디로 “끝내준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 주인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여유롭게 혼자 여행도 다니고 좋겠어요.” 
 
솔직히 저는 이 식당을 보고는 이곳의 주인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좋은 경관 안에서 여유를 느끼면서 책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바라는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주인이 얼마나 좋아 보였겠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 식당 주인이 저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평화스러운 곳에 살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음이 진정으로 평화로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이분께서도 저를 바라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혼자 여행하면서 평화로울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 식당 주인을 부러워하면서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평화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함을 아쉬워합니다. 그 아쉬움 속에서 평화는 깨지고 맙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남이 가지고 있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고 만족하는 삶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니 평화롭지 못해서 계속 두리번거릴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지요.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평화를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세상이 가리키는 평화와 달랐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평화를 칼로 잘라버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평화를 우리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함이 진정한 부러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먼저 당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기꺼이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라. 다음으로 그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곧바로 그 일에 착수하라.

- H. L. 린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들꽃이 더욱 향기롭습니다. 평화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릅니다. 평화 아닌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칼다운 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다운 칼은 다름 아닌 참된 사랑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하느님을 제대로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욕심을 베고 자르는 칼을 매순간 우리에게 주십니다. 결단의 칼을 모르면 참된 평화도 모르는 것입니다. 칼다운 칼은 빈말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받아들이고 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칼이 우리의 우유부단한 삶을 증언합니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우리의 삶입니다. 평화가 되고 싶은 삶은 먼저 자신의 삶을 살핍니다. 힘껏 쥐고 있던 집착과 변명을 이제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칼이란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는 십자가의 칼입니다. 

여기서부터 잘라내야 할 가짜 평화입니다. 가짜를 잘라내야 자유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은 우리가 깨어나는 참된 평화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삶이 바로 우리의 참된 평화입니다. 칼을 주러 오신 예수님과 함께 깨어나는 평화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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