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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14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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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드러날 때 흡족하리이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4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14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5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아모 7,12-15)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제 2독서
    (에페 1,3-14)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르 6,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85,14)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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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아모 7,12-15
오늘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그 무렵 베텔의 사제 

12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에페 1,3-14
오늘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마르 6,7-13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14일
최대제 로베르토 신부

 

✚ 예수회센터 소개 00:22

✚ 미사시작 01:22

✚ 강론시작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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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제1독서에서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돌무화과나무를 가꾼 경험과 기술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 아모스를 예언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은, 앞으로 그를 통하여 이루어질 하느님의 일에 관한 모든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소유’를 요구하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러면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6-17)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언제나 주인이나 스승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때,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단죄, 험담,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같은 잘못된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만일 하느님의 일 때문에 이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꾸 갈등을 겪는다면, ‘누구의 힘’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성체 앞에서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당신 자녀로 부르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이 부르심을 받은 이들 안에서 열매 맺기를 바라십니다.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여행자가 아니라 파견된 자

배가본드(vagabond)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말로 여행자라고 번역되는 말인데 이것을 영영사전에서는 ‘wandering aimlessly without ties to a place or community’라고 풀이합니다. 

풀이하면 어떤 일정한 장소나 공동체에 매임 없이 그리고 아무 뚜렷한 목적 없이 떠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는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참으로 여행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좀 더 고상하게 성지 순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곳에 매인 삶이 답답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저는 함부로 의심도 하고 비판도 합니다. 아무튼 여행이나 순례나 공통점은 어떤 곳에 매이지 않고, 머물던 곳을 떠나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아모스나 복음의 제자들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여행자나 순례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행자와 순례자가 자기 스스로 떠나는 것이라면 예언자와 사도들은 부르심 받고 파견받아 떠나는 것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여행자와 순례자가 자기가 좋아서 그리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곧 자기가 끌리는 데로 간다면 예언자와 사도들은 가기 싫어도 가라고 하시니 가고, 가고 싶지 않은 곳도 가라고 하시니 가는 것이 다른 것이지요. 

실로 저희 수도자와 선교사에게 관건은 파견의식입니다. 여기서 파견의식이란 파견 예절의 뜻이 아니라 나는 파견되는 존재라는 정체성 의식을 말함입니다. 내가 파견되고 안 되고는 파견자의 뜻이고, 어디로 파견되는 것도 파견의 뜻이며, 파견되지 않으면 있는 곳에 계속 있는 것도 파견자의 뜻입니다. 

그런데 수도자건 신자들이건 이런 파견의식이 없어 파견자의 뜻을 생각지 않고 ‘셀프파견’을 하려 합니다. 옛날 수도자들은 선교사로 파견될 때 선교사가 될 생각이 없는데도 선교사가 되라고 하니 되고, 갈 곳도 자기 선택이 아니라 가라는 곳이, 갈 곳이 되었는데 지금은 내가 선교사가 되고 싶어서 되고 가고 싶은 곳이, 갈 곳이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여행자나 순례자와 예언자나 선교사의 차이는 여행 짐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요즘 여행자들은 웬 짐이 그리 많습니까? 짐이 짐스럽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비판합니다. 다른 것은 그렇게 짐스러워하면서 여행 짐은 하나도 짐스럽지 않은가 보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짐에 관한 규정을 파견 규정으로 내려 주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아무것도 너에게 짐이 되고 지장이 되지 않게 하라! 아무것도 네가 의존하는 필수품이 되지 않게 하라! 

네가 오로지 지녀야 할 것 곧 짐은 주님뿐이다!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평화만 너의 짐이다! 

주님의 파견 규정에는 가야 할 곳도 있습니다. 가야 할 곳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경치 좋은 곳 또는 명승지가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목적이 복음 선포이니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파견 규정에는 마무리 규정도 있습니다. 떠나갈 때 파견자의 뜻대로 파견되었듯 마칠 때도 파견자의 뜻대로 마쳐야 합니다. 더 있고 싶다고 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환영받지 못할 때 뒤끝이 작렬해서도 안 됩니다. 발의 먼지를 털고 깨끗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에는 그곳을 깨끗이 떠나는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뜻은 새로운 곳으로 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도 그리고 어떤 사람도 애착하지 말고, 그저 하느님 뜻에 따라 있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라는 주님의 뜻 말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여행자가 아니라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된 자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요즘엔 왜 기적이 적게 일어날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는 능력을 받고 파견받습니다. 병의 치유는 하느님만의 능력이고 거룩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치유의 기적을 좀처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그냥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먼저 하느님을 믿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예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 중년 남성이 자전거를 탄 10대 소년이 차에 깔린 것을 보고는 얼른 달려가 차를 들어 올렸습니다. 소년은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아저씨, 조금만 더 높이요, 조금만 더 높이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중년 남성은 차를 20센티미터 이상 들어 올렸고 그 소년을 친 운전사가 소년을 빼냈습니다. 그는 “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어요. 그 소년에 제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거였죠.”라고 말했습니다. 중년 남성의 이름은 톰 보일이고, 이 일은 2006년 여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은 뜻밖에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2005년 여름 영국 선더랜드에서 친구와 함께 캠핑하던 23세 카일라 스미스는 차를 나무에 들이박는 사고를 당해 차가 뒤집혔습니다. 신장 165센티미터의 가냘픈 스미스는 자신도 등뼈 두 마디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과 함께 타고 있던 친구를 빼내기 위해 차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무조건 차를 들어 올리지 않으면 친구의 다리는 못 쓰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 팔을 운전석 창문으로 넣어 차 지붕을 밀어 올렸죠.” 

스미스는 BBC 등 영국 언론에 나와 자신의 몸무게보다 20배가 더 나가는 무게를 들어 올릴 당시 자신은 차 무게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출처: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이런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할 때의 특징은 ‘사랑’은 있는데 더는 줄 것이 없는 상태라는 데 있습니다. 이를 ‘가난’, 혹은 ‘청빈’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이르셨습니다. 억지 가난이 아닌 다 내어주어 더는 가지지 못한 상태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당신 영이 활동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지만, 2017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겠다며 후원금을 모은 뒤 수만 명으로부터 12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아 외제차를 사고 요트 파티를 하는 등 호화 생활을 즐기는 데 쓴 일당이 잡힌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도 받은 돈 일부를 후원하기는 하였습니다. 사진은 찍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알고 그들에게 기부할 사람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병원에 갈 돈 정도는 줄 수 있으면서 그것은 아끼고 주님께 치유의 기도를 하면 들어주실까요? 하느님은 조롱당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 교회에 기적이 없다면 아직은 교회가 신자들이나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이 남아있기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교황이 교황청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온 유럽 전역에서 걷은 돈들이 수레에 실려 교황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자랑스럽게 “저것을 보아라. 이제 베드로가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사도 3,6)라고 하던 때는 지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도 “맞습니다. 교황님, 이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라고 하던 때도 지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루 리마의 성 마르티노 수사는 흑인입니다. 수도회의 재정 사정이 나빠지자 그는 자기를 노예로 팔아 수도회의 재정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줄 때 빵이 무한정 늘어나는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이런 분들의 시복·시성 조사 때 꼭 하는 게 기적 심사입니다. 성인의 생전에 일으킨 기적이 아닙니다. 돌아가신 뒤에 거룩함의 표징으로 일어나는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은 곧 죽음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성인이 더는 줄 것이 없이 되었을 때 분명 그 성인을 통해 당신께서 더 내어주십니다. 이러한 표징들이 많아야 초대 교회처럼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책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한 남성이 상체에 ‘타투’를 했습니다. 자기 친구들이 많이 했고, 또 그 친구들이 자신감 넘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정했습니다. 이 남성의 어머니께서 우연히 아들의 타투한 것을 보았습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김치 담던 반찬 통으로 아들의 머리를 두들겨 패며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사실 이 남성은 부모의 말씀에 늘 순종하며 살았던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할 때마다 긴소매 티셔츠를 입거나 토시를 해서 상체의 타투를 가렸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운전하다가 전방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신호를 기다리는 앞차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잠시 뒤에 앞차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우락부락한 모습의 운전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빨리 윗도리 벗어!” 
 
숨기고 싶었던 아들의 타투가 이런 상황에서는 드러내고 싶었나 봅니다. 이렇듯 숨기고 싶은 면이 때로는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고 잘못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이 아닐까요? 
 
섣부르게 단정짓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찾으려 노력하면 어떨까요? 그러나 만약 도저히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라면 과감하게 그만둘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하시지요. 부족함 없이 챙겨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게 다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 말에 제자들은 모두 실망했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부족하고 나약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 없이 그 모든 것이 가능할까 싶은데, 예수님께서는 가지고 있는 것까지 놔두고 떠나게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만을 모시고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모두 내려놓고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평생 제자들과 함께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곧 수난과 죽음을 겪으시고 이 세상을 떠나 하늘 나라에 자리 잡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닌, 오로지 하늘의 가치를 좇는 삶입니다. 사랑만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세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할 것을, 하느님께서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명언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힘써라.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단호하게 마음을 세우는 새날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덮은 먼지를 우리가 털어 버리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마음대로 되지않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순서대로 되지않는 우리의 일들입니다. 우리의 일들은 우리자신을 발견하는 뜻밖의 시간입니다. 

먼지는 먼지를 만들어내고 은총은 은총을 만듭니다. 과거의 낡은 먼지를 내려놓습니다. 먼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먼지를 털어 버려야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할 행복의 시간입니다. 먼지만 있고 행복이 없다면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리듯 기도로 다시 일어서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허점도 우리의 약점도 우리의 잘못도 은총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거룩한 주일 되십시오. 먼지를 알아야 빛을 볼 수 있는 우리들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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