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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12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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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4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12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호세 14,2-10)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0,16-23)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10,16)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마태 10,16)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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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14,2-10
오늘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마태 10,16-23
오늘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12일
이창준 세례자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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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박해가 있는 곳에 스스로 찾아가 순교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현실적으로 분별하여 박해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순교는 철저하게 하느님께서 한 사람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일입니다. 이 놀라운 일은 우리의 ‘의지’나 ‘신념’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박해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 주시는 일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처럼 슬기롭다.’는 것은 현실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박해로 드러나는 악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와 반대로 ‘비둘기처럼 순박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 신비를 드러내신다는 순수한 믿음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자세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순교는 ‘죽음’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생명과 사랑’,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순교의 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를 흘리는 박해나 순교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는 ‘생명과 사랑’,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믿음’이 더욱 요구되는 요즘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 끌고 가는 것은 모두 다 피할 수 있는 신앙인다운 판단력을, 고통과 어려움 앞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할 줄 아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분께 향하는 판단력과, 가장 절망적일 때 그분께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키워 주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조심은 하되 걱정은 않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주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어제와 오늘의 말씀을 나열하면 이렇습니다. 


ㅡ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ㅡ 평화를 빌어줘라! 

ㅡ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마라!

ㅡ 발의 먼지를 털고 ‘쿨’하게 떠나라!

ㅡ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라! 

ㅡ 사람들을 조심하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복음 선포를 위한 파견이 기본적으로 양들이 이리 떼 가운데로 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양들이 이리 가운데 가면 당연히 잡아먹히는 것이 뻔한데 주님께서는 그런데도 가라고 하시는 것이며, 그런데도 사람들을 조심은 하되 걱정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우리보고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게는 내가 너희를 위해 걱정하고 있으니 너희는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랑이 느껴지며 나의 사랑을 믿으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걱정한다면 단순히 걱정하는 잘못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더 큰 잘못을 범하는 셈입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어리지만 부모가 있기에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부모가 더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걱정을 내가 한다면 부모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지요. 부모가 없다면 내가 걱정해야 하고, 부모가 있어도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걱정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걱정해주시는 하느님이 계신데도 걱정한다면 하느님의 그 사랑을 믿지 못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표시지요. 그렇다면 조심하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걱정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것이고, 조심은 그래도 생산적이기에 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걱정은 진정 쓸모가 없고, 조심은 안 좋은 일을 예방하는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신앙적으로 보면 하느님이 보살펴주시니 조심 안 해도 된다는, 그런 무모한 믿음으로 하느님을 시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조심하는 것은 조바심하는 것과는 다르고, 방심하는 것과는 반의어이며, 깨어있는 것과는 동의어입니다. 그런데 방심하게 되면 악마가 침입해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에 비해 조심하게 되면 악마가 침입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깨어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바 조심은 다 하고, 그런 다음에는 하느님 사랑을 믿기에 걱정하지 말고, 내일 보게 되겠지만 두려워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에게 실망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송봉모 신부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강의 중에 많은 사람이 ‘용서’와 ‘화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며 이런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성당 단체에서 한 자매가 다른 자매님의 말에 상처를 입어 마음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정과 기도 끝에 어차피 성당을 다니기 위해서는 그 자매를 다시 보아야 하기에 고해성사를 보고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자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도리어 그러더랍니다. 

“이제야 네 잘못을 뉘우치는군!” 

결국 화해하려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실화는 더 충격적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 성추행당했던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오랜 노력으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해를 청하여 아버지와 화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딸이 결혼하여 또 딸을 낳았는데, 자유롭게 딸 집에 드나들던 아버지는 어느 날 손녀딸에게도 또 몹쓸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문제는 위 자매들에게 뱀처럼 슬기로운 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여지라고 하시며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란 어떤 특정한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파견된 세상에서 만나게 될 보통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며 제자들에게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을 믿으면 안 될까요? 영화 ‘불한당’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르완다 종족 대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임마쿨레는 자신의 책에서 모든 인간이 상황이 바뀌면 다 배신하게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자신의 절친들도 종족이 다르다고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고 목숨 걸고 자신을 숨겨주던 목사님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리고 자기 목숨을 위해 살아남더라도 무인도에 가서 사람 만나지 말고 살라고 했습니다. 자기와 가족의 목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이렇게 만든 벨기에는 군대를 가장 먼저 빼버렸고 미국과 유럽도 모른 채 눈을 돌렸습니다. 

이때 믿을 분은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기도에 할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한 임마꿀레에게 절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평화를 주셨습니다. 한 사람 들어가기도 어려운 작은 화장실에서 여덟 명이 석 달 동안 숨어 살면서 그녀는 사람을 절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께 의지하였습니다.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뱀처럼 슬기롭게 되지 않으면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꼬마는 평생 처음 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 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 한번 호되게 밀쳐내 버립니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오직 믿을 대상은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의 제자들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며 비둘기와 뱀의 두 모습을 동시에 지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두 상반되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뱀이 되면 하느님께는 비둘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지구상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무엇일까요?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입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온갖 동물이 모여드는 남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물웅덩이에 스피커를 설치한 뒤, 사람 말소리와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결과 동물들은 사람 말소리에 40% 더 빠르게 반응하며 도망가는 것입니다. 어렵게 사냥한 먹이를 물고 가던 표범은 사람 말소리가 들리자마자 먹이를 포기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덩치의 코끼리도 사자 소리에는 오히려 스피커에 달려들어 망가뜨렸지만, 사람 말소리에는 서둘러 도망가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덩치가 큰 것도 아니고, 물리적인 힘이 세지도 않은 인간입니다. 빨리 달리지도, 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만물의 영장으로 모든 동물이 두려워하는 지구상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살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외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접을 받게 된 것에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생각할 수 있게 해서 모든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순간의 만족만을 또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커다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능력이 없다, 힘이 없다 등의 말로 자기 할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며 지혜롭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받아, 다시 이 세상에 그 사랑을 전달하며 살아갈 때, 하느님 안에서 큰 기쁨의 만족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 마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마음일까요? 부모가 자식을 군대는 보내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먼 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보내는 마음일까요? 아무튼 이런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자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능력 없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총독이나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 앞에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연 가능할까요? 
 
예수님의 제자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기에 부족하고 나약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이 함께 하시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곁에 주님이 분명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굳게 믿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내가 아닌,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은 나를 발견하면서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 루이제 린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우리 멋대로 살아온 길에서 돌아서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돌아갈 수 있어야 회개이고 돌아가야 진짜 복음입니다. 서로를 죽이는 독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지혜의 말씀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지혜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보여 줍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주님 행세를 하면서 살아온 우리의 교만을 기어가며 허물을 벗는 슬기로운 뱀이 가르쳐 줍니다. 순박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가며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이 다름 아닌 우리의 순박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미루지 않는 기쁨이며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이와 같이 만남의 최종 목적지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받지 못한 날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얼 말할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복음 말씀이 있습니다. 무수히 예수님과 마음을 나누는 지혜와 순박함이 끝까지 주님을 따르게 하는 부르심의 기적입니다.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주님이십니다. 걱정이 아니라 내어드리는 기쁨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의 여정을 오늘도 함께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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