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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28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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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가 없었네. 그는 나와 함께 평화롭고 바르게 걸으며, 많은 이를 악에서 돌아서게 하였네.

하느님, 복된 이레네오 주교가 진리를 가르치며 교회의 평화를 이루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믿음과 사랑으로 새롭게 되어 일치와 화목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게 하소서.

2024년 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28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마태 8,17)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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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2열왕 25,1-12
오늘 제1독서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 


그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기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은 모두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통하여 아라바 쪽으로 갔다.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그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그는 치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가운데 살해하고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10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 

11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 

12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마태 8,1-4
오늘 복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28일
김준휘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소개 00:06

✚ 미사시작 01:21

✚ 강론시작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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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주님의 자비를 청할 때

이스라엘의 위대한 점은 주님 말씀에 충실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렀고 주님의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그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실패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으며, 신앙의 눈으로 실패의 역사를 바라보고 이를 끝까지 기억하며, 그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게 멸망한 역사를 들려줍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모든 집은 불태워지고, 임금과 남은 백성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이방인의 포로가 된 이 치욕적인 역사를 낱낱이 기억하며 그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율법을 따르지 않았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며 반성합니다. 그래서 다시 계약에 충실하고자 주님의 말씀 자료들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바빌론 유배 시기에 구약 성경이 정립됩니다. 실패의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신앙의 눈으로 반성한 이스라엘은 주님의 말씀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으며, 그 경전으로 이스라엘은 더 충실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워지는 때는, 하느님께 충실하다고 자신하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그것을 돌아보며 주님의 자비를 청할 때입니다. 

흠 없이 주님 뜻을 따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죄인인지 절실하게 깨닫는 사람이 더 거룩하고 더 성숙하게 보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겸손하게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 나에게 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의 치유 얘기입니다. 나병은 인간의 힘으로는 지금도 치유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물론 여기서 치유란 병에 걸리기 이전 상태로 돌리는 것을 말하기에 요즘도 병의 진행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치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시대는 더더욱 치유가 불가능한 병인데 주님께서는 자기를 치유해주실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이고 인간의 능력 이상의 능력이 주님께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치유가 어려운 병일수록 치유 가능성은 믿음의 영역이고, 불치병의 치유는 더 많은 믿음이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고, 아주 드문 믿음의 소유자이지요. 

사실 그 당시 그 말고도 나병환자가 수많았을 텐데 그들은 치유를 불가능한 것으로 믿고 고치려고 들지 않았고, 예수님께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치유를 청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차례 얘기한 내용이지만 인간은 다 믿는 존재입니다. 가능을 믿는 존재와 불가능을 믿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한다고 믿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존재가 있을 뿐이고, 전능하시다고 믿는 존재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존개가 있을 뿐이며.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존재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존재가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믿는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선택입니다.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하느님도 불가능하다고 믿고, 하느님은 사랑이 아니라고 믿기로 인간은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한 인간은 나병을 운명 또는 숙명으로 알고 살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이 없으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나병은 운명(運命)도 숙명(宿命)도 아닌 하느님의 뜻 곧 신명(神命)이라고 믿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 곧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에 자기 나병을 맡길 것입니다. 

나병을 주신 분도 하느님이시니 나병을 고쳐주실 분도 하느님이시며 고쳐주실지 말지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믿음과 순종으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았지만 사렙다 마을의 과부만 구해주시고,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나아만만 고쳐주셨다고.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도 이런 믿음으로 하느님 뜻 곧 처분에 자기를 맡깁니다. 나병을 주신 하느님이 나병을 고쳐주시는 것도 하느님 뜻이고 사랑이며, 나병을 주신 하느님이 고쳐주시지 않는 것도 하느님 뜻이고 사랑이라고 믿고 사랑이신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맡깁니다. 

이렇게 믿는다는 그리고 맡긴다는 오늘 나병환자의 믿음에 주님도 배신하실 수 없으셔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맡길 것인가? 말 것인가? 
다 나에게 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늘도 원하게 할 수만 있다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치유해주시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나병 환자가 어떻게 끝까지 믿고 희망하며 주님 앞에까지 나아왔는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나병 환자는 치유되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그리스도께서도 원하시기를 바랐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무언가 좋은 것을 원하게 되는 것도 하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못 할 게 없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리스도교가 더는 로마에서 박해받지 않게 하였습니다. 바로 통일 전쟁에서 막센티우스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임박하자 콘스탄티누스는 태양 위에서 십자가 표징을 보았고 꿈에 이 표시를 하면 승리할 것이란 계시를 받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군사들의 방패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문양을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였습니다. 

희망을 북돋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북돋아 주시는 희망에는 성취의 믿음도 포함됩니다. 이때 그러한 희망을 품는 이들은 가슴이 뜁니다. 이것이 내가 희망하는 것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어린 농부 소녀였던 잔 다르크도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도록 하느님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믿었습니다. 천사에 의해 계시받았다고 믿는 그녀에게 프랑스 왕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셨다면 하느님께서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성취될 것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허물어진 다미아노 성당에서 “내 교회를 재건하여라!”라는 목소리가 십자가에서 들려왔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돌을 모아 무너진 성당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르는 무리가 생겨났고 그렇게 가난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의 창설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에 취해있던 교회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탁발수도회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교황은 꿈에 라떼라노 대성전을 성 프란치스코가 어깨로 받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회의 회칙을 승인합니다. 이렇게 나중에야 예수님께서 하신 교회를 재건하라는 목소리는 작은 다미아노 경당이 아니라 물질주의로 허물어져가는 교회를 재건하라는 뜻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넣어주는 꿈은 주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오는 꿈을 꾸는 이는 정말로 성취될 그 기대감에 취해서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켈리 최는 10억이 넘는 빚을 진 노처녀였습니다. 이때 ‘시크릿’이란 책을 60번 읽었습니다. 이 책은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그동안 성공한 모든 사람의 주장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때 켈리 최는 꿈을 정하되 가슴이 뛰는 꿈을 정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면 하늘로부터 오는 꿈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27년간 옥살이하였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게 나온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끝까지 해보기 전까지는 늘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난 견뎌낸 게 아니라 준비한 거라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그는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믿고 있었습니다. 그 꿈이 하늘에 준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얻어내려면 하늘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게 된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게 되어 그 꿈으로 벌써 가슴이 떨려야 합니다. 가슴이 떨리는 꿈은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 우리의 믿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형제님께서 제 강의를 듣고 배우자인 아내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많이 하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여보,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아내의 반응은 어떻게 돌아왔을까요? 
 
“나 몰래 뭐 잘못했어? 그것도 아니면 뭐 잘못 먹었어? 무섭게 왜 그래?” 
 
이런 아내의 반응에 남편은 깜짝 놀랐습니다. 진심 어린 자기의 사랑 고백을 이렇게 받아들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한다는 말은 남편이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다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랑의 말, 따뜻한 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말을 아끼지 않고 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말하는 것에 돈이 드는 것도 또 자기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말을 하면 자기에게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좋은 말은 아끼고 나쁜 말은 과감하게 토해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모습이 사람과의 간격을 더 멀게 만듭니다. 
 
주님과의 간격도 좋은 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불평불만, 원망의 말만 하면서 과연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미사 때 이루어지는 응답에 전혀 진심을 담지 않으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도 ‘제 마음 다 아시죠?’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니었나요? 
 
주님과의 기도 내용에 따라 주님과의 관계도 쉽게 파악됩니다. 전혀 믿음 없이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또 급할 때만 주님을 찾으면서 바치는 기도, 자신의 청원을 들어주시면 자기도 무엇을 하겠다는 협상의 기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기는 의인이라면서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협박의 기도 등등…. 모두 믿음 없는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오늘 나병 환자의 모습에서 발견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 앞에 다가간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나병 환자는 일반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자기 뜻이 먼저가 아니라 주님 뜻이 먼저였습니다. 이렇게 용기를 내어 당신 앞에 나아오고, 그리고 자기 뜻보다 주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그 믿음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병 환자의 용기 있고 주님의 뜻을 먼저 따를 수 있는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 미치 앨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아무도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주십니다. 치유의 여정은 온전한 우리자신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생활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생활은 깨끗하게 되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말하기 싫은 우리자신만의 이야기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치유의 시작입니다. 쉽게 낫지 않는 원망과 스스로 자신을 아프게 망가뜨리고 있는 적개심을 주님께 내어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치유되길 바라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위험한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치유되어야 할 우리의 아픔입니다. 아픈 것을 아프게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확신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새롭게 빚어내시는 하느님의 치유입니다. 다시 살게하시는 하느님의 힘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 있음을 깨닫습니다. 치유의 여정으로 더 깨끗해진 새로운 생활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님을 향한 확신은 투명한 치유로 이어지고 치유는 새로워진 생활이 됩니다. 우리의 새로워진 생활로 하느님을 드러내는 찬미가 되십시오.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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