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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25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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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을 지켜 주시니 남북으로 갈라진 저희 민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평화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한데 모여 기쁘게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2024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25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 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신명 30,1-5)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 제 2독서
    (에페 4,29―5,2)
    서로 용서하십시오.

  • 오늘 복음
    (마태 18,19ㄴ-22)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오늘 말씀 카드
    (에페 4,29)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에페 4,29)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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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30,1-5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차지하였던 땅으로 너희를 들어가게 하시어,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들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

 

 

 

에페 4,29―5,2
오늘 제2독서

 

서로 용서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의 교회는 하나의 빛, 온 세상에 퍼져 있어도 갈라지지 않으리라.

 

 

마태 18,19ㄴ-22
오늘 복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25일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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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기

해마다 6월 25일에 한국 교회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 전쟁을 기억하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우리 민족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주님의 자비를 청하며, 이 땅에 평화와 일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는 아직도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무슨 전쟁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얀마 내전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많은 이가 상대를 누르고 자신을 지킬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방식이 아닙니다. 참평화는 용서와 화해로 이루어집니다.

힘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2014년 유럽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 테러에 대응하도록 주요 명소에 군인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테러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도심에서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은 오히려 긴장과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힘에 대한 더 큰 힘의 대응은 평화를 가져오기보다 더 큰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힘의 대결이 지속되는 한, 참평화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며 힘을 과시하고, 남한은 군사 연합 훈련으로 이에 대응합니다. 더 큰 힘으로 서로 위협하는 이 상황에서 참평화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평화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실천할 방식을 제시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본받아, 형제의 죄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바탕으로 서로 화해하고, 대화로써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우호적인 태도와 그렇게 쌓인 신뢰가 참평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기도의 실패는 없고 실패한 기도만 있을 뿐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헛수고 2. 

어제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 강론에서 저는 헛수고에 대한 나눔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저의 헛수고가 또 생각났습니다. 사실 제 인생에서 최대의 헛수고는 북한 사업일지도 모릅니다. 

몇 년의 힘든 줄다리를 하여 가까스로 평양에 종합 복지관 ‘평화 봉사소’를 세우고 그것을 통해 북한에 상주하며 인도적인 사업과 복음화 사업을 하려 했는데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가 피살된 후 북한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가는 것을 막아 아직도 가지 못하고 그 많은 돈이 투입된 복지관은 운영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운 ‘평화 봉사소’가 개점휴업 상태인 것이 헛수고의 느낌을 제일 많이 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헛수고의 느낌을 더 크게 느끼게 하고 좌절감까지 느끼게 하는 것은 남북 관계가 지금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남북의 망나니들 때문에 특히 윤석열 정부 때문에 그동안 이뤄놓은 많은 것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같아 정말로 속이 쓰리디쓰립니다. 

기도의 헛수고. 

기도한 것이 헛수고라는 느낌, 이것이 ‘평화 봉사소’ 헛수고보다 더 큰 헛수고 느낌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한우리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이 기도를 바치면서도 계속 바쳐야 하나? 언제까지 바쳐야 하나? 공염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혹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공염불(空念佛)이라는 느낌, 이것 정말 고약한 느낌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느낌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많은 기도가 사실 ‘아직은’ 공염불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도하고 싶지 않고 포기하고 싶습니다. 

이때 저를 붙잡아주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ㅡ 네가 아직 간절하지 않구나! 

ㅡ 포기할 때 진짜 실패하는 것이다! 

ㅡ 악마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낫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기도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남이 아픈 경우라면 몰라도 내가 아픈데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기도의 실패는 없고 실패하는 기도가 있을 뿐입니다.


ㅡ 간절하지 않은 기도. 

ㅡ 성급한 기도. 

ㅡ 같이하지 않는 기도. 

ㅡ 사랑이 부족한 기도.
  

이런 것들이 실패케 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하는 것으로 오늘 나눔을 끝내며 그러니 또 그리고 더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는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은 남북통일 기원 미사입니다. 남북통일은 우리가 하는 것일까요?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선물의 가치를 아는 이에게 그 선물을 주십니다. 

동서독의 통일되는 과정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통일은 정말 선물과 같이 왔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치국 귄터 샤보프스키 의원이 동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동독인들이 해외여행을 위해 비자를 더 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여행 규정을 발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샤보프시키는 일설에 의하면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새로운 규정의 세부 사항과 시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인은 샤보프시키에게 새로운 규정이 언제 발효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발표문을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다소 불확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가 아는 한, 지체 없이 즉시 발효됩니다."

이 발언은 틀렸으며 동독 정부를 포함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해당 규정은 즉각 시행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순차적으로 시행되도록 의도됐습니다. 샤보프스키의 성명은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수천 명의 동베를린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것을 요구하며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습니다. 갑작스럽고 대규모의 인구 유입에 대비하지 못한 국경수비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명확한 명령도 없이 늘어나는 군중에 직면한 그들은 결국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었고 이 물결은 더는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이후 몇 달 동안 협상과 외교적 노력이 강화되어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선물처럼 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북한 주민들이 수없이 철책을 넘어온다면 우리는 기쁘게 맞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내가 왜 그 많은 통일비용을 내야 하느냐며 통일을 반대합니다. 앞으로의 치안과 전체적으로 나라가 가난해질 것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결혼도 안 하고 자녀를 낳지 않아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통일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되면 새롭게 국민들의 마음도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통일비용이 많이 든다고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은 장기적으로 북한과의 대립으로 우리가 소비해야 하는 군사비용이나 핵무기의 위협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관광적으로도 기대되는 이익도 엄청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건 북한을 이용하기 위한 것 아니냐, 우리가 북한이 불쌍해서 통일해주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관계는 쌍방의 고마움을 전제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비굴해지느니 죽는 것을 선택합니다. 

로마에 끝까지 맞서다 나중에 집단으로 자살했던 마사다 항쟁을 생각해봅시다. 아니면 영화 ‘300’에서 자신은 관대하다는 페르시아 장군에게 목숨을 잃더라도 끝까지 저항한 몇 안 되는 스파르타 군인들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북한에게 다가갈 때는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갑작스러운 선물로 통일의 물꼬가 트일 때 서독인들처럼 기쁘게 동독 사람들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약 나의 배우자가 “너 나 아니었으면 거지로 살았을 거야?”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 사람과 살겠습니까?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 통일이 우리에게 더 좋다는 전반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오면 내분이 없이 바로 통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고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이 더 좋다는 믿음이 먼저 있어야 그 선물도 받을 수 있습니다. 분명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독에서는 통일의 이점이 어려움보다 크다는 것이 전반적인 공감대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몰려올 때 우리가 기뻐 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통일의 준비가 된 것이고 이때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남은 15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단지 15분’이라는 연극이 있다고 합니다. 이 연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극 중 주인공은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아갑니다. 여러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로부터 “당신은 15분 후에 죽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됩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는데 전화가 울립니다. 재산상속을 해줄 테니 얼른 서명하러 오라는 할머니의 전화였습니다. 15분 후면 죽는다는데 유산 상속 소식에 기뻤을까요? 
 
잠시 후에 오랫동안 구애를 했던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의 청원을 받아들일 테니 얼른 자기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15분 후면 죽는다는데 결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곧바로 세계적 과학 학술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의 논문 게재가 확정되었으니, 게재료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15분 후면 죽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주인공은 15분 앞에서 세상의 모든 욕망이 의미 없음을 깨닫고 오열합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 하나였습니다. 
 
‘남은 15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안에서 과연 중요한 것이 나의 욕망일까요? 그보다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사랑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삶을 통해 지금이 의미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나의 전부가 있는 것처럼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 욕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나의 삶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의 전쟁을 시작으로 남북한은 지금까지도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갈라져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과연 중요한 것일까요? 아직도 우리 민족 간에는 거리감이 무척 커 보입니다. 좌파, 우파, 빨갱이, 보수라는 말 등으로써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민족 간의 간격은 너무나 커 보입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의 삶을 통한 일치인데도 아군 적군 식의 편 나누기가 더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시만 동시에 이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님 말씀을 따라,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즉,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인생의 3/4을 남의 인생을 살다가, 나머지 1/4은 내 인생을 살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죽는다.

- 쇼펜하우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분단의 상처를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로 바꾸어 주십니다. 민족을 생각하는 절절한 기도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시작됩니다.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를 헐뜯는 일을 우리가 멈추는 것입니다. 

평화가 아닌 길은 결코 더 나은 진전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군사적 긴장이 서로를 향한 이해와 신뢰로 옮겨가야 합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동일한 역사를 지닌 우리들입니다.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귀중한 디딤돌은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동일성이며 이 공통분모가 분단의 모순을 없애는 참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는 길은 서로를 향한 상호존중입니다. 

서로 자기주장과 자기 뜻만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통일은 상호비방이 아닙니다. 불신과 증오를 어울려 살게하는 기쁨과 평화로 바꾸어 주는 것은 우리들의 진실한 모습 진실한 기도입니다. 

평화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이 땅의 아픈 현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실 이 땅의 평화를 믿으며 기도드리는 새 날입니다. 서로를 향한 진실한 기도와 서로를 향한 진실한 존중이 새 날을 만드는 희망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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